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68화 (68/119)

〈 68화 〉 위를 향한 일상 (6)

* * *

검무는 칼을 들고 추는 춤이다.

사람을 죽이는 흉악한 도구를 들고 춤을 춘다는 건 어찌 보면 모순적이지만, 검무의 의의는 그런 모순점에서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시퍼렇게 날카로운 칼과 하늘대는 옷을 입은 무희.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 서로의 위태로운 간격을 메꾸며 아름다운 궤적을 그릴 때 검무는 실로 의미를 갖는다.

­ 그래서 화편검무에는 제자리에서 도는, 그러니까 스핀이 들어가는 초식이 많아. 일곱 초식 중에 여섯 개 그래서 즉시 발동은 어려운 면이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개화?花만 해도 그렇다.

위력은 더할 나위 없지만 준비 동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아무 때나 막 지를 수 없는 게 난점.

때문에 숙련도가 낮은 나로서는 개화를 큰 공격에 대한 카운터로 사용하거나 틈을 찌르는 데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런데 첨극??은 화편검무에서 유일하게 스핀이 없는 초식이야. 빠르게 갈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지.

작은 휴대폰 화면 속에서 가소희가 자세를 취한다.

거리를 가늠하듯 왼손을 뻗고, 검을 쥔 오른손을 천천히 올린다.

그리고, 가소희의 어깨가 작게 한 바퀴 돌았다.

허공을 겨눈 월왕구천은 손가락 위에서 미친 듯이 회전했고, 하얀 면티를 입은 그녀의 허리는 아름답게 뒤로 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찌르기.

앞으로 뻗은 왼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회전을 멈춘 월왕구천이 앞으로 쏘아진다.

칼날이 돌면서 한껏 응축된 복숭앗빛 힘은 뭐라 형언하기 힘든 예쁜 무늬를 그리며 검신에서 터져 나왔는데, 그 모습은 마치 크나큰 가시와 같았다.

검신의 길이보다 더 넓고 길게 뻗쳐나간 가시는 약간의 꽃잎을 뿌리다가 곧 꿈결 같이 흩어졌다.

"와아."

­ 흠흠! 대충 이래. 사정거리는 한 3m 정도? 원판은 10m인데 혼검기를 빼느라 많이 약해졌어. 위력도 엄청 낮아졌고 준비 동작도 많이 늘어나긴 했는데, 어때?

송곳니 학살자의 검신은 약 150cm 정도.

그런 내게 3m의 빠른 견제기가 주어진다는 건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좋은데요? 그런데 손 위에서 칼 돌리는 건 연습해야 되는 거에요?"

­ 응. 기왕이면 빠르게 돌릴 수록 좋아. 가시를 칼날에 형성하는 과정이니까. 많이 돌릴수록 가시는 더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질 거야.

가소희는 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칼을 내리더니 순식간에 옷깃 안에 갈무리했다.

분명히 흰 반팔이건만, 어떻게 했는지 월왕구천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 와, 무슨 인벤토리라도 있나? 저건 볼 때마다 신기하네요.

"뭔 놈의 인벤토리. 나도 없는 걸."

= 당연히 없으시겠죠! 그런 건 영웅담 속에나 존재한다는 건 저도 알거든요?

"난 별 말 안 했는데."

인벤토리 말고 정보창은 내게도 있었지만 굳이 말해줄 이유 따위 없겠지.

칼을 집어넣은 가소희는 멋쩍은 시선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더니 볼을 긁적였다.

­ 다른 초식은 여기서 보여주기 힘들겠네. 여기 집주인이 조금 무서워야 말이지.

­ 무섭다는 사람의 집에서 칼춤을 추는 건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

­ 너 집에 결계 마법 비슷한 거 깔려 있잖아. 나는 무녀님의 솜씨를 믿은 것 뿐이지. 실제로 벽은 안 부서졌잖아?

­ 무례한!!! 결계 마법 따위로 칭하지 말라는 것이다!!! 금줄을 이용한 신성한 주술을 결계 마법 같은 쓰레기 잡기랑 엮다니!!!

스피커 너머로 누군가 방방 뛰는지 연신 딸랑이는 소리가 들려 온다.

가소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쪽으로 눈을 찡긋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 아무튼 구체적인 건 나중에 만나서 알려 줄게. 무리하게 따라하다 괜히 다치지 말고.

"안 따라해요. 저희 방학 시작 즈음에 돌아오시죠, 아마?"

­ 그렇지 뭐. 혹시 계획 있니?

"설악산에 며칠 들를 생각이에요. 그 외에는 별 다른 곳 갈 생각이 없고요. 근데 계획은 왜요?"

­ 괜찮다면 방학 동안 나 따라다니면서 배우지 않을래? 꽤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가소희의 제안은 일종의 종자 비슷한 것이었다.

무려 칠성이 직접 제안하는 일대일 밀착 과외.

나는 굳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해 그러겠노라고 했다.

설악산 방문을 제외하면 딱히 굵직한 일정은 없었으니 말이다.

= 왠지 괴물 사체나 먹기 좋게 썰고, 그런 임무를 부여받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

혹시 식용 가능 괴물과 식용불가 괴물, 이런 것도 구분할 수 있게 되려나.

가소희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 그래. 설악산은 네가 알아서 방학 시작하자마자 갔다 오고, 그 다음에 나랑 같이 가자. 헌터협회의 일은 빡세니까 조금 긴장해두고.

"에이, 그냥 따라다니는 건데 긴장할 게 뭐 있어요. 설마 제게 전투를 시키진 않으실 테고."

­ 음, 뭐. 그렇긴 하지. 살아 있는 괴물을 썰어야 할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신선한 산낙지 같은 녀석을 마주치지 않는다면 말이지.

뭐라.

­ 아, 그럼 이만 가볼게! 나중에 봐!

"자, 잠깐"

뚝.

= 와, 조수다! 요리조수!

"에휴."

뭐, 무검희의 요리법이라면 배워서 나쁠 건 없겠지.

누가 뭐래도 괴물요리의 전문가니.

***

다음 날.

나는 정령부에서 열심히 토템과 방울을 흔들며 정령의 환심을 사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무표정으로 앉은 샬롯은 내 곁에 슬쩍 나타나 아닌 척하며 방울을 흔들어 내가 부른 정령을 파렴치하게 가로채갔다.

"설악산? 헌터들이 포위해버린 던전 말입니까?"

"어, 맞아. 거기."

"거기는 뭐하러 갑니까? 당신 같은 학생이 가기엔 급수가 많이 낮은 것 아닙니까?"

머리 위에 정령을 태운 샬롯이 무표정으로 몸을 살짝 흔들거렸다.

금발을 붙잡고 놀고 있던 정령들은 부드러운 둥가둥가에 꺄르르 웃으며 샬롯에게 매달렸다.

"급수가 낮다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설악산은 와이번 무리가 둥지를 튼 곳이잖아."

"와이번이 결계 밖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나오는 놈들은 죄 약한 놈들 뿐인데. 해봤자 새끼 아비늑대 정도 아닙니까?"

아비늑대는 큰 늑대형 괴물의 한 종이다.

불교에서 전하는 팔대지옥 중 하나인 아비지옥의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아비늑대의 흉포함과 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칭이다.

실제로 아비늑대가 수백 이상의 무리를 이루면 특유의 정서연결 체제로 작은 도시 하나 정도는 쉽게 지울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는다.

하지만, 설악산을 둘러싼 결계는 일종의 미로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 뚫고 나오기도 힘든데다 설사 나온다 하더라도 동료들과 흩어져 제각기 다른 곳에서 나오게 되므로 설악산에서 아비늑대 무리에게 사지가 찢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실제로 결계 밖을 나오는 아비늑대는 철 모르는 새끼 늑대인 경우가 많고 말이다.

"음, 사실 나한테 중요한 건 실전 경험이라서. 설악산 정도면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고. 괜찮지 않아?"

"그렇습니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샬롯이 귀여운 정령들이 매달린 머리를 조심히 끄덕였다.

정령들이 꺄륵대는 소리가 듣기 좋다.

"그러고 보니 넌 뭐할 거야? 미국으로 돌아가나?"

"큰일이 있지 않는 한은 졸업할 때까지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정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기숙사에 남거나, 그럴 것 같습니다."

모처럼의 방학인데 어디 나가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수연이야 가정사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고향에 가족을 두고 이역만리에 유학을 온 샬롯에게 있어서는 조금 우울한 일일 터다.

"그래? 그런데 집은 그렇다 치고 다른 곳은 나갈 생각이 없는 거야? 왜 기숙사에만 있겠대?"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가는 것도 귀찮고, 다른 던전으로 봉사나 체험을 간다고 해봐야 인프라가 잘 갖춰진 아카데미에서의 단련보다는 성취가 적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극정 아카데미는 단련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진 세계 최고의 무력양성기관.

1학년에게 실전감각 운운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기에 차라리 이곳에서 육체를 더 단련하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래? 방학 동안 단련 엄청나게 하겠네. 하긴 기본 베이스가 중요하니까."

"으음"

"왜?"

"아닙니다. 알 것 없습니다."

샬롯은 눈동자를 내게서 슬쩍 떼며 제 손에 들린 정령을 죽 잡아당겼다.

붙잡힌 불의 정령은 연신 꺄악, 하는 비명을 질렀지만 샬롯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잡아당겼다.

아코디언 마냥.

"왜 그래?"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만 친하다고 생각했나봅니다."

"?"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방학 첫 날.

한껏 짐을 챙긴 샬롯은 마음대로 나를 따라 설악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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