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72화 (72/119)

〈 72화 〉 아직 못 본 푸른 갈기도 (4) (수정됨)

* * *

강신이 풀려 기절한 여성을 냅두고 샬롯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자기가 알아서 설악산으로 잘 쫒아 오겠다고 했으니 슬슬 샬롯과 함께 설악산으로 가야 했다.

숙소 건물은 텅 비어 있었는데, 아마 오팔이 강림하면서 새어나온 마기에 모두 대피한 듯했다.

'인퀴지터가 올지도 모르겠네.'

저 안에서 자고 있을 여성에게 다 뒤집어 씌우면 된다.

저 여성은 마기를 갖고 있지만 나랑 샬롯이야 마기가 없는 스피릿 사용자니까 용의자가 될 일은 없겠지.

"으, 으음 무슨 일이"

"안녕? 나는 너희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야."

"허 허억!? 제가 죽은 겁니까?"

"미안. 내가 너를 실수로 죽여버렸어."

바닥에 질질 끌려 나오던 샬롯은 깨어나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내 얼굴을 보더니 눈가를 확 찌푸리며 뒷덜미를 잡은 내 손을 쳐냈다.

"이런 장난은 좋지 않습니다. 순간 기대했잖아요."

"혹시 이세계 전생이 꿈이었니?"

"누,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일이 아닙니까? 제가 아니라 당신이었어도 기대했을 것 같은데."

"아하하. 그런 건 기대해서 되는 일이 아니던데."

설마 다페르헤이드에 빙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나였다.

소설 속에 빙의하려고 5700자 쪽지를 박니, 뭐하니 하는 것도 다 부질 없는 짓이었겠지.

"그래서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제가 이불에 포장당해서 쓰러진 건 기억이 나는데"

"내가 때려서 기절시켜 놨어. 잘했지?"

"자, 잘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숙소를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설악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가야 하는 감시초소는 속초시가 아닌 양양군의 한계령 부근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꽤 먼 거리에 있었던지라 버스를 몇 번 갈아 타야 할 듯 했다.

문제는 그 쪽으로 가는 버스들의 배차간격이 끝장나게 길었다는 것이지만.

"버스 40분 뒤에 오네. 정오까진 늦을 것 같은데."

"흐음. 위대한 차 도둑이라도 되어야 쓰겠습니다."

"네가 자동차왕 샬롯이냐? 택시 좀 부를게. 잠깐 기다"

끼이이이익ㅡ!

콜택시 번호를 찾는 내 앞으로 웬 차가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정지한다.

요즘 세상 치고는 꽤 비싼 차다.

"야호~~!!!!! 안녕하세요!!!!!"

"헐."

"빨리 타요!!!!! 한계령까지 고고씽!!!!!"

창문을 내리고 모습을 드러낸 오팔의 계약자가 눈을 찡긋거린다.

일단은 상호부조 관계라는 건가.

그런데 딱 곤란할 때 와서 딱 필요한 도움을 주다니, 어디서 우릴 보고 있던 건 아니겠지?

'차는 또 어디서 났대. 진짜 위대한 차 도둑이라도 찍은 건 아니겠지.'

나는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다가 샬롯을 끌고 뒷좌석에 탔다.

일단은 서로 돕기로 했으니 의심 같은 건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다만 샬롯은 쩍 굳어버려서 눈동자만 덜덜 떨고 있었다.

"오우!!!!! 치즈파스타초밥 안녕!!!!!"

"어째 단 하나도 미국 음식인 게 없네요."

"넌 조용히 해, 빅 붑!!! 난 저 맥주랑 대화하고 있거든!!!"

"이, 이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분이 왜 여기에?"

"난 가이드야!!! 너희가 설악산에서 수상한 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가이드!!!"

딴엔 공무원인 척을 하고 있는 여성이 와이셔츠 가슴팍에 걸려 있던 뿔테안경을 꺼내 얼굴에 낀다.

관리를 안 했는지 안경알은 긁혀 있고 테는 휘어 버렸다.

"그, 그런 그게 언제부터 있던 겁니까?"

"후핫!!! 방금 생겼어!!!!!"

"몇 달 전부터 생겼대. 하도 몰래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많아서. 속초 헌협 입장에서는 5설악산 안에서 사람 시체가 나오면 엄청 곤란해지잖아? 또 산불 같은 이상한 짓을 저지르려는 놈도 한둘이 아니고 그래서 얼마 전부터 생긴 거래."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쓸데 없는 소리를 한 여성의 의견을 보충했다.

샬롯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방금 생각해낸 핑계인데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제겐 왜 안 말해주셨습니까?"

"미안. 사실 나도 몰랐어. 저 분이 우릴 찾아 왔던 이유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더라고. 미리 안 알려 줘서 미안해."

"세상에!!! 가슴 큰 여자는 멍청하다고 들었는데 꽤 말을 잘 아, 알겠다구요!!! 조용히 하면 되잖아요!!! 네!!!"

"."

오팔에게 핀잔을 들었는지 허공에다가 대고 소리친 여성.

양극성장애(조울증)가 심히 의심되는 언행이다.

사정을 모르는 샬롯이 본다면 양극성장애 정도가 아니라 조현병으로 보이겠지만.

"흠흠!!! 아무튼!!! 나는 너희의 인솔 겸 감시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 모두 내 명령에 잘 따르도록!!!"

네가 우리를 잘 따라와야지.

이 인간은 대체 무슨 능력을 가졌길래 오팔의 계약자가 된 건지 실로 궁금했다.

"아, 네. 뭐 잘 부탁해요. 혹시 성함이?"

"스피 아니지. 난 스핀이야!!! 박스핀!!!"

당연히 가명이겠지만, 실로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름대로 완전 돌아버린 여자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거기서 떨고 계신 까르보나라의 이름은!??"

"휴우. 샬롯 스털링입니다."

"오!!! 말투가 많이 의연해지셨네!!! 혹시 제가 미움 받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그냥 제가 낯을 가려서 말입니다."

"아하!!! 저는 또. 옛날 생각이 나서 많이 슬플 뻔 했네요 흑. 마기를 타고 났다고 얼마나 학대를 당했는지"

이후로 박스핀은 운전을 하면서 궁금하지도 않은 자기 과거 경력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대충 마기를 타고 나서 어렸을 때부터 길바닥에 버려진 얘기, 고아원의 선생에게 심심찮게 목이 졸리고 구타를 당한 얘기, 그런 선생이 길바닥에서 술을 마시다 남자친구한테 맞는 걸 보고 마기를 이용해 남자를 때려눕힌 얘기, 그렇게 구해준 선생에게 역으로 신고를 당해 충격을 먹은 얘기.

그리고 똑같이 마기를 지닌 은사를 만나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해서 마침내 공무원이 된 에피소드까지.

일부는 사실이겠지만, 아마도 다 거짓말일 것이다.

'마기를 지닌 공무원이 대체 얼마나 된다고.'

천의린처럼 천사의 힘인 신성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태생적으로 악마의 힘인 마기를 타고난 사람도 있다.

치유의 힘을 지닌 신성력 소유자가 그간 우대받은 것과 달리 마기 소유자는 비극적이게도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 과거가 있다.

마기 소유자를 인간이 아니라 괴물로 취급해서 확인 즉시 사살해버린 것이다.

차원충돌 이후로 괴물로 태어난 인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마기를 타고난 인간은 괴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차원충돌 초기에 악마에게 큰 곤욕을 치르고 있던 각국은 그런 걸 조사할 여유도 없었고 그래야 할 의리도 없었다.

그렇게 마기를 지닌 인간은 괴물로 분류되어 확인 즉시 사살하도록 법령이 제정되었고, 이는 실제로 여론통합과 악마계약자 처단의 효과를 가져왔지만 여러모로 비상식적인 조치긴 했다.

마기를 타고난 칠흑여제는 그런 이유로 처단을 당했던 거고.

그 법안은 칠흑여제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마기 소유자에 대한 차별은 사회에 만연하다.

잠재적 악마계약자로 보거나, 그냥 악마계약자로 보거나, 괴물로 보거나.

때문에 마기 소유자는 공무원 시험을 치를 수는 있어도 공공기관에서 데려가지 않으려 한다.

만에 하나라도 악마들에게 기관이 장악당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사실 마기가 있든 없든 악마계약에는 문제가 없긴 하지만 말야.'

아무튼, 샬롯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핀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원시의 힘이 보내오는 직감만으로 그녀를 두려워했던 게 미안해졌는지 부끄럽게 머리를 긁적이면서까지 말이다.

"죄송합니다. 전 그런 것도 모르고 실례를"

"아뇨, 괜찮아요!!! 저는 익숙하니까!!! 음, 그러니까 이름이 샐리?"

"샬롯입니다."

"아하, 샤론!!! 앞으로 잘 지내봐요!!!"

"네. 스핀 님."

성공적인 과거세탁으로 샬롯의 거부감을 지워낸 스핀이 즐겁게 웃으며 차를 몰았다.

그녀의 성격답게 중앙선 따위는 무시하는 과격한 드라이빙이 예사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빠른 시간 내에 한계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계령은 설악산을 지나는 고개다.

이때 이름에 붙은 '한계'란 단어는 끝을 의미하는 ??가 아니라 차가운 시냇물을 뜻하는 ??로, 설정상 그 이름대로 차가운 설악산 봉우리의 시냇물이 흘러 들어오는 장소였다.

때문에 일년 내내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 흔치 않은 장소로 가끔씩 피서를 오는 관광객도 존재하는 나름 유명한 플레이스였다.

우리가 지날 한계령 초소가 설치된 장소이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는 처음 때처럼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멋지게 정차한 차에서 내려 한계령 초소를 맞이했다.

지금은 완연한 여름이건만, 18°C로 틀어 놓은 에어컨 밑보다 훨씬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물론 중천에 뜬 햇발은 따갑기만 했지만.

"진짜로 여름방학 여행을 온 느낌이네."

"이건 신기하군요? 설악산의 시냇물 때문이라 듣긴 했지만 시냇물은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죠."

"시냇물은 땅 밑에 있어. 사람들이 흙을 덮어서 묻었거든."

"예?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겁니까? 남겨놨으면 꽤 가치가 있을 법한 곳인데 말입니다. 한기의 정령이 자생했을지도 모르는 것을."

나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을 아스팔트 땅을 툭툭 건드리며 그 의문에 답했다.

"너무 추워서 접근하기 힘들었거든. 여기를 막지 않았으면 한계령 초소를 설치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야. 그렇게 되면 한계령 전체가 괴물의 소굴이 되었을 테니 큰 손실이 났겠지."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겠군요. 그래도 아쉽습니다. 괴물만 없었다면 한기의 정령을 잔뜩 안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건 저 위에서 많이 해볼 수 있을 걸. 안 그래도 한기의 정령이랑 만나려고 설악산을 오르는 정령사도 있다니까 말야."

초소 앞에 자랑스러운 스키드 마크를 남긴 죄로 한소리 듣고 온 스핀이 지친 눈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하늘에다가 대고 조용히 읊조렸다.

"하아 벌써부터 힘드네요. 이 세상엔 왜 이리도 하면 안 되는게 많은지 이건 추가수당을 따져봐야 하겠어요. 예에!?? 아니, 무슨 쪼잔하게 그런 걸로 협박을 안 되겠어요. 일어날 거에요!!! 잃을 건 비늘 뿐이요, 얻을 건 전 세계니!!!"

또다시 미친 소리를 시작한 스핀을 보던 샬롯이 내게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저분 말입니다. 너무 불쌍합니다."

"왜?"

"어렸을 때부터 너무 심한 일을 당해서 정신질환에 걸리신 게 틀림 없습니다. 하늘에다가 대고 대화라니"

"푸후후. 그러게."

우리는 허공에다가 대고 노동자 시위를 하는 스핀을 두고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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