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75화 (75/119)

〈 75화 〉 아직 못 본 푸른 갈기도 (7)

* * *

와이번이 숲에 들어가고 나서 몇십 분이 지나지 않아, 산 전체가 온통 늑대와 비룡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난데 없이 벌어진 세력 다툼에 수많은 다른 괴물들은 살던 곳에서 쫒겨나듯 도망쳐야 했고, 그 덕에 산을 오르는 입장인 우리만 죽을 맛이었다.

까르르르악!

몸 전체에 단단한 갑각을 두른 새가 우리에게 비키라는 듯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묵빛으로 번쩍이는 장갑차가 날개를 퍼덕이며 달려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위압적인 돌진이었다.

"너나 비켜, 이 새대가리야!!!"

빠각!

박스핀이 관수를 내질러 새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겉보기엔 세상 단단해보이지만 그 강도는 기껏해야 석판 몇 개 겹쳐 놓은 수준.

장갑새도 일단 날아야 하는 조류인 만큼 갑각의 강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너무 많군요. 지금으로 스물세 마리 째입니다.

"그런 걸 대체 왜 세고 있는 거야?"

"앞으로 다가올 괴물의 수를 가늠하는 거죠. 봉우리를 반 정도 올랐으니 앞으로 스물세 마리 정도가 더 오겠군요."

샬롯은 자기가 말해 놓고도 짜증이 나는지 눈썹을 한데 모았다.

나무 위에 오른 그녀가 저 멀리를 내다보더니 화살을 꺼냈다.

또 뭔가 달려오고 있다는 소리다.

"실프."

­ 웅?

"여기 앉으십시오."

­ 무, 무서운데 다른 애들도 여기 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잖아!

"그건 그 친구들이 미숙한 겁니다. 부딪히기 전에 내리면 돼요. 가끔은 그런 속도감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 아니! 난 괜찮은 우아악!!!

화살 위에 손바닥만한 소녀를 매달 듯이 앉힌 샬롯.

그녀가 활에 화살을 매기고 신속하게 당겼다.

"목표는 저 앞에 있는 눈꽃다리 지네의 눈알입니다."

­ 자, 잠깐!!!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피잉!

­ 히야아아아아아악!!!

서글픈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정령 미사일.

어떻게 맞긴 한 건지, 저 멀리서 지네가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한 놈은 처리했습니다. 이제 이쪽으로 다가오는 괴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 말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리 스물세 마리의 괴물이 달려 오는 것을 받아내거나 피해내며 길을 오르고 있었으니 지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직접 부딪히지 않고 서포터 역할을 맡은 나도 거친 부적을 연거푸 긁어대느라 지문이 살짝 아려올 정도였으니, 나머지 둘의 피로감은 꽤나 대단할 거다.

"뭣보다 여기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힘이 세네요.

"숲에 사는 괴물들이 다 그렇죠, 뭐! 나무 따위는 손쉽게 부숴버리면서 다니는 애들이 한가득이니까!!!"

"그런 애들을 세력 다툼의 여파만으로 쫓아내는 애들은요?"

"나무 따위가 아니라 큰 바위도 심심풀이로 뽀개고 다니겠죠!"

실제로 바위산 치고는 멀쩡한 바위가 흔치 않기는 했다.

그 유명한 흔들바위도 다 부서진지 오래겠지.

만우절만 되면 나오는 시시껄렁한 그 농담처럼 이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샬롯은 계속 나무 위를 타며 전방을 주시했다.

앞에서 다가오는 괴물의 웨이브를 탐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그녀는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우리에게 물었다.

"사실 아까 전에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뭔데?"

"도망치는 괴물들 사이에 아비늑대 수십이 끼어 있었습니다."

"방해꾼을 쫓는다든가 그런 거 아냐?"

"아뇨. 다른 괴물을 위협한다든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와이번의 공격으로부터 도망치는 기색도 아니었고요."

그러니까 그냥 다른 괴물들 사이에 끼어서 이동한 거란 소리다.

말 그대로 조직적인 이동.

나는 의문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늑대는 영역을 짓는 동물 아냐? 걔들이 대청봉을 왜 내려가? 차라리 와이번과 싸우다 죽고 말지."

"훗!!! 당신은 늑대의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왠지 모르게 괴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박스핀이 짐짓 잘난 체를 했다.

광대버섯도 모르는 인간이

"늑대의 무리는 단 하나의 리더만을 인정하죠!!! 그런데 무리의 대다수가 기존의 리더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할까요??"

"갈아치우는 거 아니에요?"

"보통은 그렇죠!!!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리더를 갈아치울 수 없다면!?? 예컨대 그 리더를 지지하는 늑대도 많이 있어서 무시할 수 없다든가, 그럼 어쩔까요??"

확실히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긴 하다.

늑대들이 사람도 아니고 민주주의 같은 방식을 사용할 것 같진 않았으니.

"그러면 무리가 갈라지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솔라!!! 교회가 싫어서 목사가 떠나는 거죠!!! 물론 기존의 늑대들은 무리가 작아지는 걸 원치 않으니까 힘으로 막거나 하겠지만 서로의 세력이 엇비슷하다면 그런 것도 힘들어요!!! 늑대 괴물들 사이에선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죠!!!"

그렇다면 대청봉을 빠져나간 늑대들은 갈라져 나온 무리란 말인가.

하지만 그 규모는 수십에 불과하다.

내가 알기로 대청봉의 아비늑대는 수백을 훌쩍 넘어가는데 그만한 숫자의 압박을 이겨내고 무리를 떠나는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무리가 모종의 이유로 기능이 정지했을 수도 있겠네.'

그렇다면 떠나는 녀석들을 붙잡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지금은 그런 걸로 드잡이질 하기에는 꽤나 급박한 상황일 게 뻔하니 말이다.

"어찌 됐든 좋아요. 지금 페이스만 제대로 유지하면서 올라가 보자고요. 봉우리를 뒤지는 건 나름대로 시간이 걸리는 일일 테니까."

"네네!!! 당연하죠!!! 저만 믿으세요!!!"

***

일곱 남짓한 와이번이 대청봉의 중턱으로 몰려왔다.

목표는 검은 늑대의 동굴 안에 잠든 빙정.

동굴은 와이번이 들어가기엔 좁지만 굳이 들어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 동굴을 무너트려라!

­ 멍청한 검둥이를 뭉개 죽이자!

그냥 무너트리면 그만이었으니.

와이번들이 동굴에 몸을 마구 부딪히자 검은 늑대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누가 감히 이 산의 주인을 자극하는가?

검은 늑대는 분노에 찬 울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콰득

­ !

그 때, 와이번의 열성적인 부딪힘 끝에 이윽고 동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검은 늑대는 동굴이 무너지기 전에 빨리 뛰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사랑스런 빙정이 동굴 안에 남아 있었으니까.

­ !!!

콰드드드드득!!!

그 짧은 시간 망설임 사이에 동굴이 붕괴한다.

늑대는 본신의 안위보다 빙정을 위해 몸을 날리는 것을 택했다.

동굴의 붕괴 따위로 부서질 빙정이 아니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 깜둥이가 바위에 파묻혔다!

­ 녀석부터 죽여라! 빙정은 나중에 찾아도 늦지 않다!

자기 발톱만한 빙정을 품에 안고 등으로 낙석을 받아낸 검은 늑대.

등뼈에 금이 간 것 같긴 하지만, 결국 빙정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게 지켜냈다.

끼에엑!

무너진 바위에 매몰된 검은 늑대의 귀에 와이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많이 들어봤을 테지만 현재의 그에겐 생소하기 짝이 없는 소리.

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것은 인지했다.

각기 다른 울음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잔해를 헤집는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늑대는 녀석들이 원하는 게 뭘까 추론했다.

비록 그가 치매에 걸렸다지만 인과관계가 너무 명확했다.

말할 것도 없이 빙정이다.

검은 늑대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기척을 죽였다.

이것은 본능 단위로 각인된 매복행위.

자신이 직접 잔해를 헤치고 나타나는 것보다 녀석들이 잔해를 치웠을 때 기습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테니.

그렇게 숨을 죽이고 몇 분이 지나자 비로소 그를 덮은 바위 더미가 움직였다.

바위를 치운 건 무척이나 큰 도마뱀 비슷한 것.

하늘색 비늘이 봐줄 만한 무언가였다.

­ 여기다! 여기 검둥이가

콰각!

­ 끄아아아악!

근 몇 달만에 빛을 마주한 검은 늑대는 시끄럽게 껙껙대는 와이번의 날개를 물어 뜯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내 조카가 날개를 잃었다!

­ 네겐 조카지만 내겐 아들이다!

­ 가족을 도와 저 개놈을 죽여라!

여섯의 와이번이 동시에 날아올라 검은 늑대를 내려다 본다.

와이번에게 있어서 날개란 목숨보다 중요한 것.

바람을 느끼기 위해 온갖 신경이 몰려 있어 잃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다 설사 살더라도 다시는 날지 못하게 되므로.

다시 말하면 와이번의 날개를 물어 뜯는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큰 모욕과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엑ㅡ!!!

살의와 경계가 한가득 섞인 포효.

진정한 빙정 쟁탈전의 효시였다.

***

"어찌어찌 도착했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하산이 남아있긴 하지만, 뭐. 너도 수고했어."

"엥!?? 저만 빼놓고 덕담하기 있는 거예요!?? 저도 해줘요!!!"

"아, 네. 스핀 씨도 수고하셨어요."

나는 성의 없은 말투로 박스핀을 달래고 동굴의 입구를 바라봤다.

갖가지 고초 끝에 도달한 봉우리 중턱의 동굴.

와이번이 몇 마리고 들어와도 가득 차지 않을 만큼 큰 크기였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것도 쓸모가 있으려나.'

딱히 갖고 싶은 녀석은 아니었지만 익힐 것도 아니니 괜찮을 거다.

여차하면 불태우면 끝이고.

"들어가죠."

"네네~"

우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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