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80화 (80/119)

〈 80화 〉 복사꽃, 암살극에도 태연 (1)

* * *

이 세상은 무협지가 아니지만 주화입마라는 개념은 분명히 존재한다.

몸의 혈관을 따라 마력을 돌리다가 삐끗하면 그 부위에 상처을 입는데, 그것을 내상이라고 한다.

내상은 마력의 컨트롤이 까다로운 식도와 폐에서 입는 일이 흔하기에 내상은 대체로 각혈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입은 내상은 며칠 쉬거나 간단한 치료를 받으면 깔끔하게 낫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력을 삐끗'한 경우일 뿐.

본디 마력의 운용이란 물동이를 이고 가는 것과 같아서 가다가 물을 한 줌 쏟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물동이를 이고 가다가 땅에 넘어지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간단한 내상이 물을 조금 흘리는 정도라면 주화입마는 아예 철푸덕 넘어져서 물도 쏟아버리고 항아리도 깨져버린 경우.

마력의 흐름이 한순간 크게 잘못되면 마력에 대한 제어권을 잃고 온 몸의 혈관이 터져나가기 시작한다.

터진 혈관 사이로 난폭하게 새나가는 마력은 온몸에 걸쳐 큰 내상을 낳고, 그렇게 주화입마에 걸린 사람은 폐인이 되고야 만다.

전신이 고통으로 뒤틀리고 칠공에서 피를 뿜는 것은 물론, 섬세한 뇌혈관도 자비없이 터져나가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것까지 주화입마라는 단어가 딱 걸맞는 현상이다.

케엑!! 케헤엑!!

그리고, 주화입마는 아비늑대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뭐야!!! 안 돼애애애액!!!!!"

어보미네이션을 막 처치한 박스핀이 칠공에서 피를 뿜는 늑대를 보고 경악성을 내질렀다.

빙정의 한기를 흡수하는데 충실하던 검은 늑대는 난데 없는 날벼락을 맞고 한기에 대한 컨트롤을 상실했다.

사실 자연적인 벼락의 살상력은 흔히 알려진 것보다 크지 않아서 일반인도 재수만 좋다면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벼락을 맞고도 끄떡없이 마력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신경계 자체가 미약한 전기신호로 다뤄지는데 번개를 맞고도 말짱하다면 그건 고무인간이다.

케헥, 켁 케르르

박스핀이 경악을 하건 말건, 늑대는 땅에 쓰러져 연신 피를 토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제어에서 벗어난 한기는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늑대의 체온을 빼앗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빙정을 함부로 집어먹은 검은 늑대는 곧 몸을 부르르 떨다가 절명하고 말았다.

"우아아아악!!!!! 하데스으으으!!!!!"

박스핀은 털에서 탄내를 흘리는 검은 늑대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그나저나 하데스라니, 벌써 이름까지 지어준 모양이었다.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가?

우우우우!

낙뢰에 리더를 잃은 아비늑대는 구슬픈 소리를 흘리며 단체로 물러났다.

와이번은 하늘을 나는 대형괴물 특성상 낙뢰에 맞기 쉬운지라 벼락을 보자마자 저 멀리 도망친지 오래.

프로스트 어보미네이션은 방금 박스핀이 때려죽였으니 어쨌든 상황이 해결된 셈이다.

나는 모른 척 검은 늑대의 시체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푸른 갈기를 회수했다.

"음 그 뭔진 모르지만 괜찮아요?"

"우으아아아악!!! 방금 보셨어요!?? 벼, 벼락이 떨어졌다고요!!! 감히 우리 멍멍이한테 벼락이!!! 으아아아아!!! 옥황상제 네 이놈!!!"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투로 조심히 말을 걸었지만 정상적인 대답은 없었다.

아주 분하다는 듯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고함을 내지를 뿐.

이러다가 다른 괴물이 찾아오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되었다.

"이제 시간이 간당간당한데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 빙정은 배 갈라서 챙기고요."

"배, 배를 가르라고요!?? 그럼 품질이 더 떨어지잖아요!!! 그럼 진짜로 못 써요!!!"

"품질이요?"

놀랍게도 이런 상태가 된 사체도 써먹을 데가 있는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뭔가 더 수작을 부려보는 건데 아쉬운 일이다.

박스핀은 순간 아차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빙정의 품질을 말한 거예요!!! 그, 잘 모르시겠지만 이런 걸 꺼내려면 등부터 갈라야 품질이 안 떨어진다는 그런 말 아닌 말이 있기도 해서"

"그럼 등부터 갈라서 꺼내시면 되겠네요. 그쵸?"

"아, 으으 네, 네에"

박스핀은 졸지에 내 감시 밑에서 늑대의 등을 갈라야 했다.

중간에 척추를 부수지 않기 위해 용을 쓰는 것을 보고 내심 헛웃음을 삼켰다.

'뭐, 하긴 우월의 융합실험은 DNA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니까 척추 하나하나도 소중하겠지.'

편한 길을 두고 졸지에 등을 갈라 내장을 헤집게 된 박스핀은 있는 힘껏 울상을 지으며 빙정을 꺼냈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힘을 발하고도 기존의 9할이나 남은 빙정은 얼어붙은 핏물 사이에서 요요히 빛을 발했다.

우월의 손에 떨어지는 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1할 정도 작아졌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거리 삼기로 했다.

'어디까지 곁다리일 뿐이니까 해봐야 즈그들 주인에게 바치고 그런 거 아니겠어. 천변으로의 길이 워낙에 욕심쟁이라서 말이지.'

태백산맥의 한기가 한데 꽝꽝 뭉친 결정체도 놈의 목을 넘어가면 아무것도 아니다.

애초에 천변으로의 길이 규격 외 체급이다보니 빙정은 큰 역할을 못할 게 분명하다.

뭐, 반드시 천변 놈이 먹으리란 법은 없지만

"꺼냈으면 가죠. 일출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당신."

"네?"

"아니에요. 순간 화가 나서 히."

드물게도 평탄한 어조로 말한 박스핀.

비척비척 일어난 그녀는 터덜터덜 걸어 샬롯에게 향했다.

"스핀 씨?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많이 안 좋습니다만."

"괜찮아요. 다 쓸 수 있을 테니까! 또 그 씹놈들이 삐빅대며 이의를 제기할 테지만!!! 전 괜찮아요!!! 네!!! 시련 씨도 괜찮죠!??"

"전 샬롯이라고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만."

박스핀은 반은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며 앞장서서 내려갔다.

이렇게 뜻 밖의 동행과 함께한 설악행은 터오르는 아침노을과 함께 막을 내렸다.

***

스피넬은 산을 내려오자마자 건성으로 작별을 고한 뒤 구해둔 아지트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는 설악산에서 내려오기 직전에 몰래 손가락을 하나 잘라 땅바닥에 버려둔 참이었다.

손가락은 예정대로 근처에 널부러져 있던 어보미네이션의 사체를 먹고 지게차 비슷한 전갈로 변화하여 검은 늑대를 챙겨 내려오고 있을 터였다.

지이잉

피로한 몸을 이끌고 피투성이 몸으로 침대에 누운 스피넬.

그녀는 눕자마자 골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관자놀이를 제 손바닥으로 힘껏 때렸다.

두통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전자파를 이용한 우월에서의 연락 때문이었다.

"뭐, 이 나쁜 놈들아!!!"

­ 언성을 낮추는 것을 권장함. 저열한 단백질 성대의 울림 따위 듣고 싶지 않음.

"싫으면 꺼져, 짜식들아!!!"

짜악!

익숙한 모욕을 들은 스피넬은 다시 한 번 제 관자놀이를 때려 통신을 끊어버렸다.

정말이지, 무기파라고 하는 놈들은 쓸데 없이 모욕 관련 언행을 많이 한다.

지이잉

짜악!

"뭐어!!!"

­ 우월 간부에 단 세 명 밖에 남지 않은 유기파의 수장에게 무례를 사과함. 방금의 언사는 온연한 실수였음.

"무기파란 놈이 실수 같은 소리하네!!!"

­ 나름의 단백질 덩어리에 대한 농담이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음.

우월은 현재 유기파와 무기파로 계파가 나뉜다.

전자는 진화과정에 기계를 끼워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게 여기는 집단.

후자는 단백질을 비롯한 유기물을 버리고 온전한 기계 지성체로의 진화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 검은 늑대의 온전한 시체는 구하였음?

"아니. 창났어."

­ 어째서?

"잠깐만 기다려."

스피넬은 자신의 기억을 전자파 형태로 발신했다.

전기를 내뿜는 생물의 매커니즘을 극도로 진화시켜 일구어낸 생체 교신수단이다.

­ 수신됨. 아미노산의 화학작용으로 발신한 것 치고는 깔끔하다고 생각함.

"너네 그 웃기지도 않는 말투는 언제까지 할래? 기계가 무슨 '깔끔'도 아니고 '깔끔하다고 생각함', 이러냐?"

­ 아직 개선점이 많음. 양해 바람.

스피넬은 웃기지도 않는다며 코웃음을 쳤다.

무기파가 기계화를 추구한다지만 그들의 두뇌는 결코 기계가 된 적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인간의 두뇌는 현재 수준의 기술로 구현하기 힘들기에, 저들은 아직도 유기체의 뇌를 영양액이 가득한 통 속에 이고 다닌다.

기계 같은 말투는 어디까지나 컨셉인 것이다.

제들 딴에는 '결점 없는 기계화에 대한 열망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며 존중을 요구했지만.

­ 정보는 잘 받았음. 우월 제일 개체 스피넬의 수행 능력은 아주 처참한 것으로 사료됨.

"난 잘했는데. 그 번개만 아니었어도!!!"

­ 개소리 지직. 터무니 없는 발언은 재제 대상임.

스피커를 지직거린 제삼 개체 김정식(자칭 SPR Version 7.7)은 가슴께에 위치한 수냉 쿨러를 켜고 스피넬을 질타했다.

­ 하데스의 건조는 극히 중요한 사안임. 하데스가 있다면 우월은 한국 칠성 전원을 상대할 수 있게 됨. 포세이돈이 무검희 암살을 실패하고 중파된 이 상황에 하데스의 주 프레임이 되는 검은 늑대의 온전한 확보를 실패했다는 것은 제일 개체의 우월에 대한 진정성과 능력이 의심되는 부분임.

"아, 거!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내 몸 1할 더 가져갔지!!! 난데 없이 칠흑여제가 끼어든 걸 나보고 어쩌라고!!! 본부까지 돌아와서 내 몸 좀 떼가겠소, 했어야 한단 말야??"

­ 애초에 당신 지직. 제일 개체가 억지를 써서 벌어진 일임. 본 개체의 제안을 무시하고 혼자 임무를 수행하러 나간 것은 필요성도, 당위성도 없는 행위였음.

"아아~ 그래~ 또 내 탓이지~ 괜히 카타 뭐시기랑 동맹 맺었다가 포세이돈만 작살나고~ 그 덕분에 기밀이라고 자랑한 재앙급 병기가 동네방네 TV를 탔고~ 한일의 동시다발적인 수색을 받았지만~ 넌 잘했고 난 못한 거지~ 그래~ 너 짱!!! 너 오늘부터 제일 개체 해!!!"

­ 그건 제일 개체의 실책과 전혀 관련 없는 일임. 본인의 판단 오류를 끄집어내지 않는 것을 권장함.

"아몰라나기분따운됐어!!!!!"

짜악!

괜히 짜증만 팍팍 내고 연락을 끊은 스피넬은 이를 보득보득 갈며 허공을 노려봤다.

기만의 대악마, 오팔이 숨이 넘어가라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뭘 웃어요!!!"

­ 흐흐 아, 미안. 뭔가 굉장히 촌극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야. 이거라도 줄 테니까 화 풀어.

허공을 노려보던 스피넬의 눈동자로 진녹색의 비늘이 툭 떨어졌다.

맨 눈알로 날카로운 비늘을 튕겨낸 스피넬은 화를 삭이며 비늘을 주웠다.

대악마, 말라카이트의 비늘이었다.

­ 우리의 대의를 위해 성가신 무기파부터 눌러놓자고. 응?

"아 네네~ 딱히 이런 거 없어도 뇌신경 기생충 한 번이면 되는 건데 생색이나 내지 마세요!!!"

­ 쿡쿡. 그걸 못해서 비늘 달라고 아우성칠 땐 언제고

"흥!!!"

스피넬은 머리에 울리는 연락을 무시하고 연구에 착수했다.

***

나와 샬롯은 다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샬롯은 상당히 피로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조신한 자세로 곯아떨어졌다.

우월에 대한 일장연설을 준비하던 나로서는 김빠지는 일이다.

= 영웅님은 안 피곤해요?

"글쎄 네 말을 들으니 조금 피곤한 것 같기도."

= 네에!? 저랑 놀아요! 그 동안 어둠 속에만 갇혀 있던 제 기분을 아세요!?

"버스 안에서 언성 높이지 마. 심심하면 여제님이랑 대화하든지"

나 또한 대충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대학원생과 달리 사람에게는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

­ 아임~ 어~ 하이~웨이~스타아아~

그때, 주머니 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눈을 반쯤 뜨고 확인해보니 가소희에게 온 전화였다.

= 그 벨소리는 어떻게 맨날 바뀌어요? 그것도 맨 이상한 걸로다가

"조용히 해. 흠흠. 여보세요?"

­ 여보시니라!

"?"

전화에서 들려온 건 가소희의 목소리가 아니라 앳되고 거만한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여보시니라 같은 말은 대체 어떻게 하면 나오는 걸까?

­ 여보시니라!! 게 누구 없느냐!!

"꼬마야. 혹시 땅에서 폰 주운 거니?"

­ 꼬마!?? 태풍조차 비껴나가는 본녀를 감히 꼬마라고 칭하다니!! 그대는 확실히 분홍대가리의 제자가 맞구나!!

나는 뒤늦게 앳된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가소희의 친구, 히라 아유하다.

"아, 네 무녀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왜 전화하셨어요?"

­ 이 녀석이 내 이야기를 했다는 말이냐? 이상하다. 그럴 위인이 아닌데 아무튼! 당장 분홍대가리를 보러 오는 것이다! 위치는 서울대병원! 그대의 스승은 아주아주아주 위급한 상태라는 것이다!

"위, 위급해요!?"

나는 크게 놀라서 언성을 높였다.

가소희 정도 되는 위인이 위급하다고?

대체 어떻길래?

­ 검무를 추다가 미각을 잃었느니라!

"네?"

­ 혀도 굳어서 말도 못하는 상태이니라! 바보 같이 어어거리기나 아야! 이 무례한! 때리지 않는 것이다!! 이 멍청이바보천치가 아야!

전화기 너머로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가소희의 몸은 아주 멀쩡한 모양이다.

'가봐야 되겠네.'

나는 가소희에 대한 걱정을 안고 서울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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