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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82화 (82/119)

〈 82화 〉 별로 위대한 미국이 아니다

* * *

"아니, 분홍대가리! 그걸 얘기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너희만 조용히 하면 됨]

가소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휘갈기곤 다기를 갈무리했다.

마치 뭐 어쩔 거냐는 듯한 태도.

그에 반해 무녀는 이마를 탁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험체?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연구소로 끌고 간다는 건?"

"아아~ 난 모르는 일이니라! 이 빡통한테 물어보는 것이다!"

샬롯의 의구심 어린 질문에 무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뒤로 풀썩 누워 버렸다.

가소희는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무녀를 불만스레 힐끔 보고는 공책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는 붓펜을 들고 잠시간 망설이다가 손가락을 놀렸다.

[미국이 군수 산업이 발달해 있다는 건 알지?]

"예 그렇습니다."

[보급용 소총도 졸라 세. 위험도 B+까지는 미제 소총으로 갈기면 다 뒤지니까.]

실제로 그렇다.

미국에서 시민에게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보급용 소총도 웬만한 C급 헌터 못지 않은 파괴력을 낼 수 있다.

군인에게 지급되는 병기는 아무리 못해도 B급 기준 헌터의 파괴력 재현할 수 있을 정도.

사실상 일반적인 소요 사태는 헌터 없이 일반 군대로 대처가 가능한 것이다.

[근데 우리는 못 만들어. 기술이 없거든. 특히 탄환 제조법이.]

미국은 각 나라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무기 제조 기술을 풀지 않았다.

인류의 생존이라는 거대한 공통과제를 두고도 제 잇속을 챙기냐는 비난도 나왔지만, 미국은 자국의 극심한 경제난 언급하며 원한다면 돈 주고 거래하라고 공표했다.

실제로 거래가 활발히 일어나기도 했고.

[걔네는 기술을 안 푸는 게 아니라 못 푸는 거야. 알려줘봤자 미국에서 대규모 시위만 일어날 걸. 애초에 미국 밖에 못 만들기도 하고.]

"그 말은?"

[그거 사람 갈아서 만드는 거야.]

샬롯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한때 전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이 사람을 갈아 무기를 만들다니.

미국의 분위기가 천계의 공습을 겪으며 여러모로 변했다곤 해도 그 정도 막장은 아니었다.

"사람을 갈아서 만든다는 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나랑 얘가 연구를 해봤거든. 이래 봬도 스피릿에 있어선 세계 제일이니까. 먼저 엘리멘탈 펄스 기관단총을 조사해봤는데 결과가 참 가관이더라고.]

가소희는 입술에 펜 뒤끝을 대고 으음, 하는 비음을 뱉더니 공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린 것은 다름 아닌 탄창이었다.

[총은 그냥 평범한 총이었는데, 탄창 안에 정령을 가뒀어. 원리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 정령을 착취해서 에너지탄을 쏘아내는 형식이야. 정령이 죽을 때까지 돌리니까 공격력과 효율이 좋을 수 밖에.]

"정령 정령을 착취한다고요?"

[그리고 정령을 묶어두기 위해 사람의 영혼을 잘게 찢어 넣었어. 자연친화력이 높은 사람의 영혼을 말야.]

"."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다.

기실 사람의 영혼을 찢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찢어냈다가는 사람은 단번에 이지를 잃고 만다.

내가 악령에게 시달리는 우혜나의 영혼을 찢겠다고 했을 때 윤범중이 말린 이유도 그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정령을 총탄 따위로 사용하고 사람의 영혼을 찢어 착취한다는 말에 할 말을 잃은 샬롯.

가소희는 그녀를 보다가 마저 글씨를 적어내렸다.

[그래서 아유하가 탄창을 잔뜩 구해다가 찢어진 영혼의 기억을 쫓았어. 태어나자마자 연구소로 끌려간 혼도 있었고, 후천적으로 자연친화력이 발생해 사고로 위장 후 납치 당한 영혼도 있었고. 결국 여러가지 실험을 당하다가 망가지면 탄창으로 변하는 결말로 끝났지만 말야.]

"그렇다면 저는 뭐죠? 저는 어떻게 무사히 살아온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 네 가정사랑 관련 있을 걸.]

가소희는 정말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공책을 접었다.

해 줄 말은 다 해줬다는 입장이다.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눈을 가늘게 뜬 샬롯은 곧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단호했지만, 기저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감정이 실린 말투였다.

"솔직히 말하면 선뜻 믿기 힘든 말입니다. 선배들께서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자연친화력이 저와 비슷한 정령사도 미국엔 얼마든지 있습니다."

"금발 정령사. 그걸 본녀가 모를 것 같으냐?"

가만히 있던 히라 아유하가 가소희 대신 말을 받았다.

"본녀가 일본 다음으로 많이 활동한 곳이 미국인데, 그쪽에 정령사가 얼마나 있는지 안 세어 봤을 리 없지 않느냐. 미국의 정령사는 확실히 인구에 비해 극히 적은 수준이니라.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이 없나 보지?"

"누군 잡아가고 누군 안 잡아가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 답을 알고 싶다면, 네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보거라."

"."

샬롯은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선뜻 말하지 못했다.

설정상, 그녀의 아버지는 국가 사업에 참가하는 연구원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샬롯이 잡혀가지 않게 막은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잘 아신다면 이 일을 왜 공론화하지 않으십니까.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선배들께선 이런 반인륜적 행위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겁니까?"

무녀는 샬롯의 날선 질문에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했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얼라 외국인. 그대의 조국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나 보지?"

"그게 무슨."

"날개 달린 버러지들과 전쟁 이후로 미국은 벌써 수십 년째 계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동부와 중부를 잃은 후로는 국력이 여의치 않아 강제 징용과 인권 탄압 없이는 국체를 이어나가기 힘들지. 헌데 갑자기 이런 정보가 미국 사회에 새어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현재 미국의 사회는 극심한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

계엄을 해제하고 자유 국가를 돌려달라는 시민 측, 국가 안보를 위해 그럴 수 없다는 군부 측.

군부가 국민의 보호라는 일말의 정당성을 쥐고 사회의 불만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판국에, 국가가 국민을 잡아다가 생체실험을 하고 무기로 가공한다는 소식이 떨어지면 미국은 그 날로 반란이 터지고 만다.

대외적으로 수많은 위협을 받고 있는 미국에서 극적 소요 사태가 일어난다면 나라가 통째로 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설사 소요 사태를 넘기더라도 비인륜적 기술과 연구 성과를 폐기한 미국이 거기서 더 버틸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실로 무너지기 쉬운 나라야. 실제로 카타스트로피에게 제일 먼저 무너지는 나라기도 하고.'

한 때 인류의 방파제 역할을 하던 위대한 미국은 이제 없다.

차원충돌 이후 전 세계의 중심이 되어 재앙을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던 미국은 아인델로제의 대대적 공습을 받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천신을 포함해 대천사를 무려 넷이나 죽여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그들에게 남은 건 피로스의 승리 뿐.

그나마 멀쩡한 서부를 중심으로 최후의 다섯 나라가 될 때까지 버티긴 했으나 이제 슬슬 국운이 다해가는 시점인 것이다.

마주하기 싫은 진실을 알게된 샬롯은 복잡한 표정으로 바짓자락을 꼭 붙들었다.

나는 그녀의 혼란스레 떨리는 눈가를 보다가 등을 토닥여줬다.

"."

딱히 어설픈 위로는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가야 할 조국의 추악한 면면을 보고 환멸한 건지, 친근하게 치대오던 귀여운 정령이 비명을 지르며 탄환으로 갈려나가는 게 안쓰러운 건지.

그도 아니면 미국의 끔찍한 병기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을 정할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던 까닭이다.

무녀는 샬롯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엣흠! 이 멍청이 분홍대가리야. 그런 걸 왜 말해서 애를 저렇게 만드느냐?"

[네가 울렸잖아]

"아, 안 우는 것이다! 그보다 거기 수박가슴 꼬맹이! 이리로 따라오는 것이다! 할 말이 있으니!"

"네? 저요?"

무녀는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고는 병실을 나섰다.

나는 가소희의 눈치를 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녀를 따라갔다.

"으에."

졸지에 샬롯과 남겨져 어색한 분위기를 만끽하게 된 가소희가 혀 없는 신음을 흘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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