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92화 (92/119)

〈 92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4)

* * *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괴물은 난데 없이 짜잔하고 나타난 게 아니다.

그들의 기원은 변이생물.

지구에 살던 토착생물이 이형의 힘을 받아 급격한 변화를 이룬 생물들이다.

대개는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은 변이생물이 기존의 토착생물을 밀어내고 생태 지위를 빼앗았다.

하지만, 단 한 종만은 그러지 않았다.

토착생물이 도리어 변이생물을 절멸한 케이스.

인간이 바로 그러한 족속이다.

변이생물이 관측된 이래로 인간은 늘 변이생물를 두려워했다.

인간 또한 생물인 이상은 그러한 변이를 피할 수 없을 게 분명하므로.

아니나 다를까, 최초의 변이생물이 관측되고 얼마 되지 않아 도처에서 인간의 변이가 관측되기 시작했다.

해맑게 인사하던 이웃집 어린아이도, 늘 지하철 한구석에서 졸던 대머리 아저씨도.

길 한복판에 픽 쓰러져 변이생물이 되어버렸고 다시는 자신이 알던 생활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세계적으로 하루에 평균 90만 명.

그 중 70만 명은 생존에 잘못된 방향의 변이로 얼마 못 가 숨지지만 나머지 20만 명은 변이를 떠안고 살아남는다.

사상초유의 사태에 사람들은 불안감으로 침대에서조차 편히 잠들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자신이 변이해버리는 건 아닐지, 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되려는 건지.

과학자들은 당시의 일천했던 지식과 기술로 대책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류의 목덜미에 폭탄 목걸이가 걸렸다.

전염병과는 달리 특정한 원인도 없고 어떻게 막아 볼 수단도 없다.

잇따른 괴물의 출현과 변이의 공포, 난데 없는 죽음.

전 세계가 대대적인 혼란에 빠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국경과 분야를 뛰어넘어 힘을 합친 과학자들은 치열한 연구 끝에 마침내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에겐 성과를 현실로 옮겨 마무리할 시간이 없었다.

해서 그들은 잠시라도 좋으니 사회의 전면적 붕괴를 늦추고 시간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사람을 선동하는 법을 잘 알았다.

"모든 원인은 변이생물에게 있습니다."

"세계 과학자 연맹에선 변이의 원인이 로엠에서 넘어온 이형의 바이러스 TSG­17임을 확인했습니다.

"TSG­17은 변이생물의 몸 속에서 증식하여 대기로 퍼져나갑니다만 마스크도 소독약도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상 모든 인류는 이미 감염되어 잠복기에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바이러스와의 잦은 노출이 더 빠른 변이의 발현을 가져오므로, 현재로선 감염을 늦추는 법은 단 하나입니다."

"변이자의 개체수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변이의 원인도 바이러스가 아니었고 TSG­17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에 떨던 군중은 증오의 대상이 생기자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일각에선 학계의 의견에 의심을 품고 변이자를 완전히 격리하는 식으로 해결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난 군중이 이를 들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대번에 병원을 부수고 들어가 변이자를 닥치는대로 죽였다.

정부도 학계도 묵인한 제노사이드.

하루에 20만씩 생기던 변이자는 이제 하루에 50만씩 죽어갔다.

이에 따라 학계는 발생하는 변이자의 숫자를 축소발표했다.

사람들은 변이자 학살이 효과가 있다고 믿고 그에 박차를 가하며 더 많은 유혈사태를 불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추후 전 세계에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차원적응제가 보급되면서 더 이상 인간에게 변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과학자 연맹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주동자는 처벌 받았지만 그건 다른 얘기.

중요한 건 그 차원적응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다.

끼이익…

영수궁의 지하감옥.

어둡고 침침한 이곳에 수정빛 뿔이 빛났다.

일각수一??는 변이생물과 관계 없는 다페르헤이드 고유의 신수.

아인델로제로 떠나버린 천마?馬와 로엠으로 떠난 이각수二??와는 다르게 아직도 다페르헤이드를 지키는 영험한 동물이다.

­ …….

차원적응제의 빠른 제작에는 무수한 인체실험이 필요했다.

일단 만들어 놓고 문답무용으로 임상.

하루에 90만 명이 변이를 당하는 상황에서 동물 실험 따위를 하느라 낭비할 시간 따위 없었으므로.

여러 소요사태와 무리한 평양성 개축으로 정권이 흔들리던 북한은 과학자 연맹에게 정치범을 실험체로 팔겠다는 제의를 했다.

때마침 지원자 모집에 한계를 느낀 과학자 연맹은 제안을 받아들여 비밀리에 영수궁 지하감옥에 실험실을 마련했고, 수많은 인명이 주삿바늘 아래 희생되고 만다.

하지만 실험체가 된 모두가 죽지는 않았다.

그나마 성공적인 약물을 맞은 이들은 지하감옥 속에, 이제껏 살아 있다.

대개는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모양새지만.

"어…으…?"

일각수가 문을 여는 소리에 죽은 듯이 자고 있던 남자가 깨어났다.

그의 몸은 좌반신 전체가 끔찍한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주사된 약물의 부작용이다.

"으… 어, 어으아아아악!!!!! 꺼흐아아아아아악!!!!!"

깨어난 남자가 환상통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일각수는 빠르게 뿔을 놀려 남자를 기절시켰다.

퍽!

"어…? 으…"

남자는 다시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자비 없는 짓이지만 환상통을 겪게 놔두는 것보단 훨씬 낫다.

­ …….

일각수는 감옥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죽지도 살지도 못한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곳은 하나의 완결된 존재가 되지 못한 자들의 무덤.

변이자도, 인간도, 언데드도 아닌 이들이 모인 하나의 수용소.

분노나 슬픔 따위의 감정조차 일소에 부칠 정도로 순수한 고통을 겪는 존재들.

일각수는 그 고통의 정신파를 쫓아 이곳에 왔다.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신수는 오늘도 그들을 지킨다.

***

"아무래도 좆된 것 같아."

"왜요?"

"강남이 개판이 된 거야 그렇다 치지만 아가페 총본부가 몰살당했잖아."

가소희는 영수궁의 정문을 네 동강내서 부수며 그리 읊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아가페 총본부의 몰살은 확실히 심각한 일이긴 했다.

"아가페의 전력이… 한 4할은 줄었으려나요?"

"그럼. 나름 엘리트 친구들인데. 상대가 언데드 군단인 때에 사제가 그렇게 줄다니…"

대 언데드 전쟁에서 사제는 제일 중요한 전력이다.

아군의 회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차하면 앞에 나가 신성력을 두르고 육탄돌격만 해도 전사 하나만큼의 값어치는 한다.

그런데 그 귀중한 전력이 다 죽어버렸으니 전쟁이 훨씬 어려워진 것이다.

'씹. 대체 왜 난데 없이 재앙이 나타난 거야.'

박하민에게 원한을 가진 인간형 재앙이라.

다른 건 몰라도 원작에 나오는 인간형 재앙 중에는 범인이 없는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굴러들어온 놈이라는 건데.

두루마기 천을 손으로 잡아 팍팍 편 가소희가 어두운 영수궁 안으로 들어가며 검날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래도 지금은 아유하가 있으니까. 대규모 전쟁에서 그만큼 도움되는 애도 없지."

"그렇긴 해도 지금의 손실을 메꾸긴 쉽지 않을 텐데요. 특히 치유는 손이 더 부족해질 텐데."

"뭐 어쩌겠니. 지들이 알아서 잘해야지. 사실 사제 믿고 막 들이대는 새끼들이 제일 문제긴 해."

"그건 스승님이 검무가라서."

나는 잔해를 발로 차서 치우며 그녀를 따라 건물에 들어섰다.

영수궁은 이름만 궁궐이지 작은 별장과 크기가 비슷했다.

고작 2층따리 건물 주제에 그나마도 조금 무너져 폐허나 다름 없는 쓰레기장.

가소희는 칼등을 휘둘러 잔해를 뻥뻥 날려버리며 주변을 수색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잔해를 치우며 지하로 가는 통로를 찾았다.

"오, 찾았다."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박살내던 가소희가 무언가를 찾았는지 얼굴에 씩 웃음을 피워보였다.

뭔가 싶어 그녀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키만한 강철 큐브였다.

"그게 뭔데요?"

"뭐겠니? 독재자가 자기 궁궐에 숨기는 강철 상자는 하나 밖에 없잖아?"

뿌듯한 표정으로 강철 큐브를 탕탕 쳐 보인 가소희.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올려다본 나는 뒤늦게 상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금고?"

"그럼! 지구 최후의 독재자가 남긴 은닉 재산이지!"

"나는 이제 부자다~"라고 외칠 것만 같은 그녀의 기분 좋은 표정.

원래 이런 건 국가에게 반납해야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은 권력을 가진 가소희였다.

"그거 막 가져가도 되는 거예요?"

"엣흠! 공무원은 소득이 딸려서 이런 부수입 정도는 괜찮아. 감히 누가 날 막겠어?"

"제가 신고하겠다고 하면요?"

"그야 반 정도 뚝 떼어주고 눈감아주오 하겠지 뭘."

버터링 머리를 한 마피아 꿈나무나 할 법한 소리였다.

"그럼 저도 떼주세요."

"어허, 스승의 물건에 감히 탐을 내느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당인 불양어사(?? 不???: 인을 행함에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풋, 쓸데 없이 머리만 굵어가지곤. 알았어. 반 떼줄게."

귀여운 아이를 다루듯 내 볼을 콱 꼬집은 가소희가 금고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칼 손잡이로 잠금장치를 내리쳐 부수자 금고에서 희미한 경보 소리가 울렸다.

스피커가 노후로 망가진 듯했다.

나와 가소희는 부푼 기대를 안고 금고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한 금괴나 보화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그건가? 네 선물은 바로 나야?"

"진짜 그렇네요."

금고 안에는 썩어서 부풀어 오른 통조림 무더기와 백골 하나가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었다.

나는 백골의 손에 안겨 있던 낡은 책을 꺼냈다.

[죽은 척(C)]

­ 시체놀이는 혼자 놀기의 궁극이죠!

특정 던전에서 이스터 에그 격으로 찾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일전에 이미 익힌 적이 있는 기술이지만…

"죽은 척? 이건 또 뭐야?"

"가지실래요?"

"됐어. 이 녀석은 대체 뭔데 금고를 자기 쉘터로 쓴 거야…"

절망어린 얼굴로 금고를 힘없이 텅 내려친 가소희.

역시 도적질이란 건 할 게 못 된다.

"…그래도 여기 안에 금괴가 있었다면 들어가기 전에 다 빼놓았을 거잖아? 그럼 여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자신을 의미 있게 써줄 멋진 언니를 기다리면서."

"꿈 깨세요. 그런 반짝반짝한 게 지금껏 눈에 띄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아아, 내 금괴…"

텅, 텅, 텅!

억울함을 한껏 섞어 금고를 내리치는 가소희.

가녀린 여성의 해머링에 금고가 불안하게 삐걱이는 게 참 볼만했다.

콰지직…

"어, 잠깐만…"

콰드드드득!

연속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썩은 마룻바닥이 무너져내렸다.

금고는 자연스럽게 땅 아래로 훌쩍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딱 금고가 있는 부분만 무너졌기에 우린 떨어지지 않았다.

허무한 눈으로 훌쩍 사라진 금고를 좇던 가소희가 돌연 눈을 반짝 빛냈다.

"어? 이거… 지하층이야?"

"네. 그렇네요."

"…역시! 내 트레저헌터의 감은 아직 살아있었어. 현물은 당연히 깊숙하게 숨기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치, 시현아?"

"아… 네. 그렇네요."

이젠 언데드를 소탕하러 온 건지 금괴를 털러 온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난 어디까지나 부수입을 챙기는 거야. 딴 생각하는 거 아니지?"

"당연하죠. 공무원이 이런 거 아니면 어떻게 돈을 벌겠어요."

"그치? 역시 우리 제자라니까. 잘 크면 헌협 요직에 꽂아주든가 해야겠어. 자, 가자!"

생기를 되찾은 가소희가 내려앉은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나 또한 부적으로 불을 켜고 그녀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

"으음~ 이상하네? 왜 자꾸 방향이 바뀌지?"

부르르, 까딱. 부르르, 까딱…

주하연의 손에 들린 마법봉이 연신 가리키는 방향을 바꿨다.

반쯤 무너진 건물 안과 땅 아래.

건물 안에 있는 건 간악한 악마에게 세뇌당한 학생이라고 치지만, 땅 밑은 무슨 연유로 가리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캔디. 이거 혹시 고장난 거야?"

­ 아니야뿅! 정의를 상징하는 마법봉이 고장날 리가 없잖아뿅!

"그럼 이 아래에도 내가 멸해야 할 악이 있다는 소리지? 이 녀석들, 대체 어디까지 파고든 거야!"

­ 나쁜 녀석들! 당장 무찌르러 가야해뿅!

주하연이 분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의의 사전에 타협이란 없으니!

설사 땅 밑이 아니라 태양 너머에 악이 숨었다 해도 반드시 무찌르고야 마는 것이다!

"용서치 않겠어…!"

주하연이 땅 밑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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