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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93화 (93/119)

〈 93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5)

* * *

아이러니하게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언데드는 썩을수록 강해진다.

웃긴 소리지만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 비슷한 면이 있다.

갓 일어난 시체는 썩어가는 뇌와 근육으로 몸을 움직인다.

이는 고속도로에서 경운기를 모는 것 만큼이나 비효율적인데, 특히 운신에 정교한 움직임을 요하는 사람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때문에 그냥 좀비의 경우엔 위험도가 무척 낮다.

대개의 좀비는 그 몸이 다 썩어 없어졌을 때 그 기능을 정지하지만, 개중에는 몸이 다 삭아 없어지고도 비로소 다시 깨어나는 존재가 있다.

허연 해골만 남았다고 해서 스켈레톤이라 불리는 언데드다.

이 녀석들은 몸의 모든 살점을 잃고 나서야 몸에 단백질 따위 필요 없음을 깨달은 해탈자.

그들은 살점 있는 언데드처럼 추하게 몸을 비틀지도, 괴기한 울음소리도 내지 않는다.

스켈레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자신의 몸을 이루는 하얀 뼛조각 뿐!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영원을 향해 걷는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봤자 결국 언데드일 뿐이야."

빠각!

복숭아향을 하득 풍기는 생자?者가 백골만 남은 사자死者를 박살냈다.

그녀에게 언데드란 결국 걸어다니는 사자명예훼손.

해탈이고 지랄이고 관심이 없었다.

"시현아. 언데드가 왜 생기는 지 알아?"

"그야 네크로맨시 때문이죠."

"그거 말고. 그건 그냥 촉진제 비슷한 거잖아. 네크로맨시 따위 없어도 일어날 놈은 벌떡벌떡 잘 일어나."

하기사 그렇긴 하다.

유독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 네크로맨시 없이도 언데드화가 되는 비율이 높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아카데미에서 지겹게 가르치던 이론을 들어 대답했다.

"영혼의 흔적이 남아서 그렇다고 배웠어요. 그래서 몸이 영혼이 있는 줄 알고 죽음을 거부하면서 강제로 움직인다고…"

"어어. 맞아. 그런데 그거 알아? 인간은 심장을 부숴 놓으면 언데드가 안 생기는 거?"

그거야 나도 안다.

때문에 네크로맨서와 싸울 일이 생기면 전사자의 심장을 찔러서 파괴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 신기하지. 이게 인간이 천사나 악마와 다른 점이야. 사람의 간절함은 모두 심장에서 나오거든."

"간절함이 심장에서 나온다…"

간절함이 심장에서 나온다, 라.

그런 말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녀만의 깨달음인 것일까.

"천사에게 날개가 있고 악마에게 뿔이 있다면 인간에겐 심장이 있어. 무언가 되고자 하는 소망과 가능성이 한 가슴 가득한 보따리… 그래. 어쩌면 뇌보다 중요한 기관일 수 있겠네."

무언가를 회상하는듯 아득한 표정을 지은 가소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괜히 뼈무더기를 뻥 찼다.

"칫, 괜한 소리를 했네. 빨랑 앞장서! 이 천연 손전등아!"

"왜 저한테 성질 부리세요?"

"부끄러워서 그래. 어서 끝내고 보물찾기나 하러 가자."

"네네~"

무슨 기억이 그녀를 아련하게 만들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무언가 그리운 과거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의 과거를 자세히 들은 적이 없네.'

옛날에 극정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산에 들어가서 화편검무를 창안한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무녀가 날 사질이라 불렀던 걸 보면 같은 스승 밑에서 수학한 것 같은데 이것도 말이 없고.

어쩌다가 헌터가 되고 헌협에 들어갔는지, 언제부터 칠성으로 인정 받았는지도 들은 적이 없다.

하긴, 원작에 없던 존재인 만큼 모르는 요소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

빛이 꺼져가는 부적을 버리고 새 부적을 쓴 나는 가소희의 곁을 쭐래쭐래 따라 걸으며 물었다.

"스승님은 어떻게 헌터가 되셨어요?"

새삼스런 물음에 가소희가 고개를 돌렸다.

딱히 불쾌한 티는 아니었고, 오히려 기꺼운 듯했다.

"궁금하니?"

"네."

"으음~ 내 과거는 비싼데. 한 4000만 원?"

"깎아줘요! 제잔데."

내 항의에 가소희가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 뭐. 우리 제자니까 100% 디스카운트 해줄게. 헌터가 어떻게 되었냐라…"

무언가를 회상하는지 눈을 감고 비음을 흘리는 가소희.

나는 나보다 한 뼘 정도 큰 그녀를 올려다보며 부적을 팔랑거렸다.

"으음… 난 사실 헌터 따위 될 생각 없었어. 적당히 각성자인 걸 숨기고 일반인으로 살려고 했지."

"네? 스승님이 일반인으로요?"

"응. 우리 부모님이 날 무서워했거든."

"아…"

흔한 일이다.

모든 집안이 그런 건 아니지만, 각성자 자녀를 가진 일반인 부모 중에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자식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생긴다.

암만 어린 애라고 해도 일단은 각성자인 만큼 집안 살림을 다 때려부순다든지, 훈계하려는 부모를 외려 곤죽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소희는 가정사를 듣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날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난 유치원생 때도 부모님을 때린 적은 없어. 내가 맞으면 맞았지."

"철이 일찍 드셨군요."

"그런가? 별로 그런 생각은 안 드는데. 혼자 각성자 무리랑 패싸움도 하고 다녔는데, 뭘."

"앗."

나는 두루마기 대신 교복을 입고 17대1로 패싸움을 벌이는 가소희를 상상했다.

…그녀가 밀리는 그림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실 각성자 무리래봤자 아카데미에도 못 들어간 떨거지들이었지만 말야. 아무튼 그러다가 한 놈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예? 식물인간이라면…"

"신성력으로 못 고치는 거지. 당연히 배상을 엄청 해야 했고. 그 날로 부모님은 이런 자식 못 키우겠다면서 집에서 쫓아냈어. 각성자 자녀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양육을 포기할 수 있었거든. 지금도 그렇지만."

월왕구천이 그녀의 손끝에서 휭휭 돌았다.

코너에서 나타난 스켈레톤 하나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당시 내 나이가 16살. 너보다 어릴 때였어. 어디 재워줄 곳도 없고, 이 나이에 고아원 들어가자니까 쪽팔리고.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배운 것도 아닌데다 마력도 못 쓰니 정식 헌터도 못 될 게 뻔했고. 그래도 월급 120 언저리에 숙소 있는 용역헌터는 할 수 있었으니까 그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가소희가 휭휭 돌리던 월왕구천을 굳세게 잡았다.

"세상 일이란게, 꼭 나가 죽으란 법은 없더라고."

"어떻게 됐는데요?"

"헌터협회 앞에서 검무가를 만났어. 길거리에서 검무를 추고 있더라. 딱히 대단한 검무는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적당히 멋진 검무였는데, 난 보는 순간 딱 이거다! 싶었지."

월왕구천을 역수로 잡은 가소희가 팔을 펴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팔을 활짝 열고 자세로 빙글빙글 도는 그녀의 손에서 황동빛 검이 허공에 궤적을 그렸다.

무슨 효과도 없고 그냥저냥 볼만한 수준의 검무.

화편검무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였다.

처음으로 배웠던 검무를 시연해보인 그녀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당장 그 인간에게 따라 붙어서 검무를 가르쳐달라 했지. 처음엔 거절하더니 몇날며칠이고 따라 붙으니까 포기하고 가르쳐주더라고. 그 길거리 공연가가 내 첫 스승이었어."

"그럼 둘째 스승도 있다는 뜻인가요?"

"어. 날 아카데미로 보낸 게 둘째 스승이거든. 아무튼 첫째 스승이랑 길거리 공연을 다니다가… 몇 개월 뒤에 노환으로 돌아가셨어. 그때 엄청 울었는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 하나 대단한 것 없이 사회로 떨어진 그녀에게 첫 스승은 부모 같은 존재였으리라.

"아니, 뭐.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 그 양반은 맨날 나한테 꽁시랑꽁시랑 말 많았다고."

"스승님이 저한테 그러는 것처럼요?"

"…엣흠! 나도 그 양반을 닮았었나. 아무튼 간에! 둘째 스승은 그 양반 장례식에서 만났어. 대뜸 날 보더니 손을 꼭 잡고 내 제자가 되지 않겠냐, 그리 묻더라? 난 얼척이 없어서 거절했지. 스승 장례식에서 울고 있는 애한테 자기 제자가 되라니 이게 무슨 망발이야?"

"그렇네요. 하지만 어떻게든 된 모양이죠?"

"어. 알고 보니 둘째 스승이 A급 헌터더라. 첫째 스승과 친분이 있는."

그렇게 둘째 스승을 맞이한 그녀는 스승에게 검술을 사사하고 추천을 받아 극정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한다.

방황하던 소녀는 그렇게 헌터가 되었고, 종국엔 한국 칠성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엔 딱히 멋진 목표를 갖고 헌터가 된 게 아니야. 당시엔 그냥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된 거니까. 혹시 실망했니?"

"전혀요. 결국 이렇게 어엿하고 멋진 헌터님이 되셨잖아요?"

"풋.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긴."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누가 뭐래도 지금 내 곁에 있는 건 한 명의 인간미 넘치는 헌터.

내 스승, 무검희 가소희였으니까.

"으음, 셋째 스승 얘기도 빼놓을 수 없긴 한데… 그 얘기는 나중에 해줄게. 일단은 앞에서 오는 것부터 치우자."

"앞에…? 헉."

하르미아 시스템으로 캄캄한 복도 너머를 내다본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좁은 복도 사이로 스켈레톤 수십이 달각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 친애하는 나의 제자야. 수련 시간이다. 저걸 첨극??만 써서 쓸어버리렴."

"…스켈레톤 한 구의 위험도는 무려 B+예요, 스승님."

스켈레톤은 결코 약하지 않다.

없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나름 깨우친 괴물인지라 지능과 속력, 근력이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가소희는 내 불평에도 아랑곳 않고 근엄하게 팔짱을 꼈다.

"고고."

"젠장…"

"뭐?"

"아, 아니에요."

제 내키는대로 교육하는 것도 그녀의 스승에게 배운 게 틀림 없다.

나는 스켈레톤 무리의 돌진에 맞서 송곳니 학살자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첨극의 형?을 반복적으로 연상했다.

'어깨를 빼면서 검을 빙빙 돌리고… 자비 없이 푹 찌르면 끝.'

나는 손끝에서 칼을 돌려 보였다.

처음엔 많이 떨어트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동작이다.

'와라…'

"자, 잠깐!!! 살려줘어어!!!"

그때, 나름 깔끔한 누더기를 걸친 선봉의 스켈레톤 하나가 두 팔을 들고 비명을 질렀다.

해골인지라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공포에 질린 그 손짓은 무척이나 인간다웠다.

"히이익!!! 아, 아가씨이이!!! 나 적 아냐!!! 살려줘어어!!!"

"…?"

나는 스켈레톤 무리에게 쫓기는 멀끔한 스켈레톤 하나를 보고 당황스럽게 칼을 멈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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