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6)
* * *
지성을 가진 언데드라.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영혼이 육신에서 떠나갈 때 영혼이 죽기를 몹시 거부하여 몸을 잡고 버티면 된다.
하지만 그런 건 이론일 뿐.
영혼이 육체를 잡고 죽음을 거부한다는 것은 옷감의 실밥을 잡고 쓰나미에 휩쓸리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다.
공전절후의 네크로맨서인 영원한 순회도 제대로 된 자아가 있는 언데드 군단장을 단 다섯 구 밖에 만들지 못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잠깐. 그럼 저 놈은 혹시…?'
그 순간, 가소희가 극적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다.
"으악!!! 방금 잡혔… 엥?"
뭐라뭐라 떠들며 도망치던 해골이 제자리에 뚝 멈춰선다.
그것은 그를 따라오던 나머지 뼈다귀들도 마찬가지.
무검희의 검은 명백하게 허공을 갈랐지만, 나를 비롯한 지하의 모든 존재는 각자 몸을 굳히고 그녀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뒤늦게 울리는 맑은 금속의 마찰음, 함께 찾아온 향기.
화편검무 제육식, 검향??이다.
"…윽!?"
어느샌가 짙게 퍼진 쇳냄새와 복숭아 향기가 불현듯 코를 찔러온다.
맡는 순간 무조건 죽었다고 생각될 만큼 위험한 향훈.
나는 무의식 중에 몸을 뻣뻣이 굳히고 혹시 내가 반으로 베이지 않았는지 몸을 더듬었다.
스르르…
하지만 내가 베인 곳은 앞머리 몇 가닥 뿐이었다.
앞의 스켈레톤 무리는 상황이 다른 듯했지만.
딱.
따각.
딱따가가가가각…
허공을 횡으로 가른 월왕구천이 거둬지자 해골 무리가 일제히 해체되어 땅에 떨어졌다.
그 흉악한 재생력이 무색하게, 뼈가 마디마디 아름답게 해체된 스켈레톤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으, 으악! 아이고!"
떽떼굴…
선두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이상한 해골은 머리뼈를 바닥에 굴리며 신음을 흘렸다.
몸은 완전히 해체됐지만, 가소희가 놈의 머리뼈만은 온전히 남긴 것이다.
"아고고, 뼈마디가 다 쑤시네… 감사합니다! 조금 과격한 방법이지만 도와주셨군요! 이야, 이런 곳에서 산 사람을 볼 줄이야! 생전… 아니지. 사후 처음인 것 같아요!"
"…너, 뭐냐?"
경추 위만 남은 해골에게 죽음의 무도를 들이민 가소희.
그 서늘하고 위협적인 기세는 그녀가 명백한 한국 칠성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 혹시 군단장이냐?"
"군 뭐요? 아, 제가 알기론 제가 생전에 군인이긴 했…"
"발뺌하지 말고 불어, 새끼야!"
빠각!
드물게 소리친 가소희가 두개골을 구둣발로 찼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리쿠션을 당한 해골은 억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자, 잠깐! 이런 식의 의사표현은 옳지 않습니다! 남의 유해를 막 해치다니 이건 고인능욕이라구요!"
"헛소리 말고 네가 뭐하는 놈인지나 불어. 이쪽은 퇴마사도 있으니까 헛짓할 생각은 집어 치우고."
"말하는 도중에 깠으면서… 버, 번복하겠습니다! 발은 거둬주십쇼!"
대가리만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주제에 어떻게든 몸을 덜덜 떨어보인 뼈다귀.
암만 생각해도 영원한 순회의 군단장과는 관련이 없는 모양새다.
"시현아. 이 새끼한테 퇴마부 적당한 걸로 붙여봐."
"어어? 자꾸 선을 넘으시는…"
"네. 잠시만요."
나는 가소희의 말에 따라 새로운 부적에 성?을 써넣고 놈의 이마에 던지듯 붙였다.
놈은 부적이 만드는 성스러운 광휘에 지져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두개골이 금방이라도 가루로 흩어질 것처럼 백열했다.
"끄으아아아악!!!!!!"
"됐어. 떼."
나는 다시 부적을 뗐다.
신성력에 피폭당한 녀석은 턱뼈를 덜덜 떨며 머리에서 시꺼먼 연기를 뱉고 있었다.
성? 한 장에 다 죽어가는 해골을 보며 탐탁찮은 티를 낸 가소희가 해골을 뼛무더기 사이로 차서 굴렸다.
"좋아. 일단 힘은 없네."
"허억, 허억…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일단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몸이나 대충 수습해서 나와."
나는 가소희의 자비 없는 밀당에 등에 식은땀을 흘렸다.
상대가 재앙의 군단장일 수도 있는 판국이니 이해 못할 것은 아니고, 오히려 본받아야 할 처사였다.
"…시현아. 자아를 가진 언데드가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어?"
"제가 알기로는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해요."
"그치? 근데 그러려면 삶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커야 되는 거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비슷한 비밀이라도 갖고 있던 건가?"
"제가 보기엔 저 녀석이 그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하긴 하는데요."
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 정도의 의지가 있는 놈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겠다.
자아를 가진 군단장도 생전에 극히 강력한 투지를 가졌던 개체가 최고급 네크로맨시의 혜택을 받고서야 비로소 탄생한 존재이니 말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요소가 있는 건 확실하다.
"휴우… 말년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살려달라고 갔더니만 대뜸 까고 지지고… 엇차."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자신의 뼈를 세세히 골라 맞춘 해골.
가소희의 검향은 해골이 입고 있던 낡은 옷을 한 오라기도 베지 않았기에 놈은 곧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멀쑥한 모습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크흠, 흠! 다 됐습니다. 이제 뭐 어쩌시려구요?"
"뭘 어째. 눈높이 맞추고 대등하게 말 좀 묻자는 거지."
"방금까지 그렇게 팼으면서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대등입니까? 혹시 제가 갇혀 있던 사이 세상의 도덕관념이 바뀐 겁니까!"
"아하하, 이미 한 번 뒈져서 그런가. 한 번 지졌는데도 말 조낸 싸가지 없게 하네. 시체새끼 주제에…"
세상에.
학창시절 PTSD가 오는 언행이다…
학창시절 가소희의 편린을 엿본 내가 벌벌 떨든 말든 해골은 그녀의 위협을 유들하게 흘렸다.
"아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힘 좀 세다고 남을 막 참수하고 걷어차면은 그 당사자는 조금 화도 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뭐 물을 거 있으면 물으십쇼! 저도 세상에 산 사람 만나서 반가우니까. 저도 조금 말씀 좀 여쭐 게 있습니다만은."
"쯧. 뭐 이리 아가리가 길어? 아무튼, 너 정체가 뭐냐?"
해골은 다 삭아가는 누런 티셔츠의 주름을 펴며 뚱하니 대답했다.
"스켈레톤이죠. 여기서 부활한. 보면 모르십니까."
"여기서 부활했다고. 그 전에는 뭘 했는데?"
"부활 전은 기억이 잘… 아니아니, 퇴마사 아가씨는 가만히 계시고!! 진짜로!"
나는 헛짓 말라는 뜻으로 꺼내보인 부적을 다시 집어넣었다.
"허, 그래? 그럼 생전에 뭘 했는지는 알아?"
"모른다니까요! 기억이 안 난다고요! 제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딴 거 기억이 날 성 싶습니까? 모른다는 걸 왜 자꾸 묻습니까? 저도 답답해 죽겄구만!"
"생전에 치매였나보구나."
담담히 비꼰 가소희가 땅에 검날을 탕탕 쳤다.
"그런데 아까는 군인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치매가 현재진행형이라든지?"
"웃긴 사람이구만. 제가 왜 치매에 걸립니까? 그건 제가 갖고 있던 소지품으로 알게 된 겁니다. 음, 분명 여기에…"
해골이 티셔츠 안에 허연 팔을 집어넣고 갈비뼈 안을 훑었다.
티셔츠로 가려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조금 징그러운 장면을 볼 뻔 했다.
"찾았다! 자, 여기 있습니다."
그가 갈비뼈 안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인식표였다.
흔히 군번줄이라 불리는 물건 말이다.
"어디 봐봐."
가소희가 삽시간에 손을 놀려 녹 묻은 인식표를 빼앗았다.
인식표에는 세월의 흔적으로 흐릿해진 키릴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 닳아서 지워지긴 했는데… 이거 키릴 문자야? 북괴나 짱깨 둘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보드카 놈이었잖아?"
"몽골도 키릴 문자를 쓰긴 하는데요."
"여기 위에 러시아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데 뭐. 어쩐지 기골이 장대하더라니."
실재로 치매 스켈레톤의 신장은 킬힐을 신은 가소희보다 한 뼘 더 컸다.
161cm인 나보다 두 뼘은 더 큰 것이다.
"다 봤으면 주십쇼! 남의 인식표 갖고 장난치는 거 아닙니다."
"이름 부분은 너무 닳긴 했네. 쯧, 죽었으면 이빨에다 끼우든가 해야지 이걸 왜 갈비뼈에 넣고 다니니?"
"아직 안 죽었습니다. 스켈레톤은 언데드Undead가 아닙니까?"
"나 참. 지 이름도 모르는 주제에 말은 잘해요."
인식표를 돌려 받은 해골이 갈비뼈 안에 인식표를 수납했다.
나는 갈비뼈와 팔뼈를 달그락대는 해골에게 물었다.
"근데 스켈레톤한테는 왜 쫓기고 계셨던 거예요?"
"그게, 스켈레톤한테 시계를 뺏다가 실수로 부숴버렸거든요. 군체지능이 있는 놈들이라 까딱 잘못하면 바로 추격전 벌어지는 겁니다."
"…시계를 왜 뺏어요?"
"기왕 자아를 갖고 부활한 거 인간답게 살아야죠! 걔들은 어차피 쓸 데도 없잖습니까? 필요한 사람이 쓰겠다는데 말입니다!"
그는 어깨뼈에 걸린 녹슨 손목시계를 팔목까지 쭉 내렸다.
뼈 밖에 안 남은 팔목인지라 최대한 조인 시계임에도 자꾸만 달그락거렸다.
백골에 시계라니, 무언가 낭만 있긴 하다.
= …대체 어디가 낭만이에요?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텐데요, 셀레스티. 마법소녀한테 들키면 책임 질 건가요?
= 이씨.
…진짜라니까.
"멈췄네요?"
"당연하죠. 몇 년이 지났는데요. 어차피 시계는 과시용이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여기서 시간 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과시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과시할 사람은 없지만 동물은 하나 있습니다."
동물?
이 지하에 시계를 자랑할 동물이 있단 소린가?
"넌 뭘 그리 놀라고 있니? 딱 봐도 두더지나 뭐 그런 거겠지."
"예!? 제가 뭐 탈출을 한두 해 시도한 줄 아십니까!? 여긴 물샐 틈도 없이! 아주! 꽉! 닫혀 있다고요! 두더지가 아니라 두더지 재앙이 와도 못 들어올 걸요? 그리고 여기 뭐가 있는지 아시면 아주 경악을 금치 못하실 겁니다! 듣고 질질 짜지나 마십쇼!"
앙상한 뼈마디로 주먹을 쥐어 흔들어보인 녀석이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아래에!! 유니콘이 있습니다!!"
***
"아이 씨, 왜 이리 깊은 거야? 역시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확실해…!"
그 시각, 주하연은 열심히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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