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7)
* * *
"유니콘이라고?"
"그래요. 유니콘! 수정 뿔을 가진 유니콘이 지하감옥을 지키고 있단 말입니다!"
가소희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눈을 깜빡였다.
몇 초간 침묵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그녀는 이내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리고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풋흐, 프흐흫 하,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시현아, 들었어? 유니콘이란다, 유니콘!!! 꺄하하하하하핳!!! 병신 해골바가지가 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 유니콘을 봤댄다!!! 푸하하하하하!!!"
깡! 깡!
얼마나 우스운지 땅에 월왕구천을 연거푸 내리치며 큰 소리로 웃어보인 가소희.
이러다 공중제비라도 도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아, 아니. 진짜라고요! 왜 비웃으시는 겁니까?"
"하하하하 휴우. 딴 건 몰라도 너 군단장은 아닌 게 확실하구나. 농담도 할 줄 알고 말야. 그치?"
쇠락한 성벽이 지키는 궁전의 밑바닥.
인민을 파리목숨으로 알던 돼지새끼의 쉘터.
언데드가 들끓는 불경의 온상.
내가 생각해도 순수와 균형의 상징인 유니콘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심지어 유니콘 목격담의 주체가 말하는 해골바가지라니.
골계미를 노린 농담이라면 시체새끼 치고는 재밌는 소리였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이 해골 녀석은 이 지하의 토착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그 유니콘이 어떻게 생겼는데요?"
"큭, 퇴마사 아가씨만은 제 말을 믿어주시는군요! 조각상 같은 근육에 하얀 갈기, 그리고 이마에 멋진 뿔을 가지고 있는 녀석입니다."
놀랍게도, 그의 증언은 실제 유니콘이 가지고 있는 외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뿔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뿔이라면 음, 통상적인 뿔은 아니고 수정으로 깎아낸듯한 영롱한 뿔이었습니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오색으로 빛나는 그런 뿔이었죠."
"길이는?"
"보니까 꽤나 길었습니다. 딱 아가씨의 키만했죠. 무슨 칼을 보는 것 같았다니까요!"
확실하다.
칼로 쓰일 수 있을 법한 오색빛의 수정 뿔과 순백의 하얀 갈기를 가진 말.
다른 말로는 일각수라고도 불리는 신수다.
"스승님.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으응? 너 혹시 저 뼉다귀의 말을 믿는 거니? 생각보다 순수하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 수십 년을 갇혀 있던 친구일 텐데 마냥 저 말을 무시할 수만은 없잖아요."
일리 있다고 느꼈는지, 가소희가 해골바가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고는 내게 불퉁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지는 거야. 홀로 이 컴컴한 곳에 수십 년을 갇혀 있었는데 유니콘이 나오는 환상을 봐도 이상하지 않지. 그리고 생각해봐. 이딴 곳에 유니콘이 대체 왜 있겠니? 아무도 없을, 있어 봤자 언데드만 한가득할 지하감옥 간수를 자청하고 있다고? 그 신수가? 솔직히 말도 안 되잖아?"
하긴,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멸망한 궁전의 지하감옥에서 유니콘이 간수 노릇을 하고 있다?
진짜 개도 안 믿을 소리다.
해골바가지도 그걸 알기는 아는 건지, 자못 소심하게 꿍얼거렸다.
"지, 진짠데"
"에휴.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어차피 얼마 못 가 들킬 텐데."
"예? 그건 무슨 소립니까?"
해골의 얼빠진 질문에 가소희가 허리를 짚고 당당히 말했다.
"우린 여기를 청소하러 왔어."
"소탕이라면 언데드를 싹 죽이겠단 말씀이십니까?"
"어. 그러려면 지하감옥까지 내려가야겠지. 너 우리가 지하감옥까지 안 갈 걸 알고 구라친 거 아냐? 가장 깊은 데 있다면서."
그 말에, 해골바가지의 자세가 위풍당당하게 변했다.
"하! 그럼 누구 말이 맞는지 한 번 확인해볼 수 있겠군요! 두고 보십쇼, 코를 납작하게 해드릴 테니!"
"뭐라는 거야. 너랑 같이 거기 갈 일이 없을 텐데."
"예? 같이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 눈치 없는 소리에 가소희의 눈이 갈고리눈으로 변했다.
"아니, 병신아. 우리가 널 왜 데리고 가? 나는 지금 널 죽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왜, 왜요!? 제가 스켈레톤이라 그런 겁니까?"
"잘 아네. 우린 언데드를 거두러 온 게 아니라 치우러 온 거라니깐."
"저는 자아 있는 스켈레톤입니다! 그건 명백한 살인이라구요!"
"인간시절 기억도 없으면서 무슨."
월왕구천의 검날이 바닥을 그르륵, 긁는다.
하지만 내 눈에는 딱히 죽일 생각이 없어 보이긴 했다.
가소희가 그만큼 융통성 없는 인간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스켈레톤으로 사골을 해먹은 적이 없네."
"그거 카니발리즘 아니에요? 저래도 인간 뼈인데."
"아니, 뭐. 내가 이 친구를 끓여서 먹겠다는 말이 아니잖아?"
"머, 먹는다고요?"
"그럼. 이래봬도 요리사인 걸."
잔뜩 쫄아 있는 해골에게, 가소희가 두루마기를 슬쩍 펄럭였다.
번쩍이는 황금 브로치가 백골을 비췄다.
"그, 그건!"
"훗."
가소희가 득의양양하게 브로치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해골은 더더욱 큰 공포에 빠져 몸을 덜덜 떨었는데,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게 대체 뭔데 그래요? 수시로 은근슬쩍 내보이시더니."
"흥. 내가 언제 내보였다 그러니? 설마 이 스승님이 이걸 너한테 자랑이라도 하려고 그랬겠니?"
"어우. 설마요. 그런 추한 짓을 그 무검희께서 하실 리가 없죠."
"그, 그럼. 그렇지!"
아무튼 간에 저 해골의 반응을 보면 아주 역사 있고 두려운 무언가임에 틀림 없다.
대체 뭐지?
"엣흠! 그런데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어차피 너 여기에 계속 박혀 있으면 아마 죽을 걸?"
"왜죠? 누군가 오는 겁니까?"
"여기는 한국 헌터들이 주둔할 예정이거든. 내가 널 무시하고 지나친다고 해서 무사할 거란 보장도 없어. 네가 말할 수 있는 걸 어필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 미친 마법소녀한테는 짤 없이 찢겨 죽을 걸."
가소희가 그를 살리려면 해골을 옆구리에 끼고 능동적으로 보호해야할 의무가 생긴다.
한 티끌의 악도 용납치 않는 주하연의 존재 때문이다.
"죽일까 말까, 라는 건 널 직접 베겠다는 말이 아니거든. 귀찮아서 냅두고 가면 네가 죽고, 덷고 가면 더 귀찮아진다 이 뜻이야. 지키자니 귀찮고. 그래도 지성체인데 죽게 두기엔 뭣하고. 음."
솔직히 넌 나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ㅡ, 하고 덧붙인 가소희.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살려주죠. 저도 지키고 계시면서."
"너는 내 제자잖아. 너랑 쟤랑 같은 선상에 있니?"
"그렇기야 하지만 말하는 스켈레톤은 정말 흔치 않은 존재잖아요? 잡아가서 아카데미 연구계 건물에 던져 놓으면 돈을 엄청 퍼줄 텐데요."
"호오. 좋은 생각인데."
그녀가 돈을 퍼준다는 말에 주먹을 입에 대고 진지하게 고심하는 포즈를 취했다.
정말 나랑 수연이에게 10억을 쾌척한 인간이 맞는 건가?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거라 해줄래? 으음, 야. 해골."
"예에. 뭡니까."
"너, 우리한테 뭘 해줄 수 있냐?"
그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유니콘에게 안내해드릴까요?"
"됐어. 죽든 말든 네 맘대로 해. 우린 간다."
"아, 안 됩니다! 길을 알아요! 이 지하의 길을 빠삭하게 알고 있단 말입니다!"
가소희가 그 말에 멈춰섰다.
"그래? 하긴, 현지인이니까. 길안내를 하겠다, 이거지?"
"넵. 부디 데려가주십쇼 어차피 당신들 없으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걸요."
이곳의 천장은 너무나도 높다.
아무리 스켈레톤이라도 매끄러운 금속 벽을 타고 오를 수는 없으니 자력으론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리라.
"그렇구나. 그리고?"
"그리고?"
"길안내로 끝? 야, 여기가 퍽 복잡하기는 해도 조금만 고생하면 되는 일이야. 우린 던전맵핑도 할 수 있다고."
가소희가 던전맵핑 앱을 켠 핸드폰을 흔들어보였다.
던전의 길을 기록하고 전체적인 구성을 연산해주는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앱이었다.
"뭔가 더 해줘야 되지 않겠어?"
"그치만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
"왜 없어. 여기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손을 들어 해골바가지의 몸을 가리켰다.
그는 그 손길에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이, 인신매매만큼은"
"나도 그런 건 안 해.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거 아냐? 언데드 군단 속에 들어가서 염탐이라든지."
"!"
언데드 군단의 스파이.
그녀가 원하는 해골바가지의 보답이었다.
"간첩을 하라는 거군요."
"길어봤자 한 달을 넘기진 않을 거야. 애초에 스켈레톤이니까 쓸데 없는 짓만 안 하면 들킬 염려도 없고. 그것만 충실히 해주면 헌터협회의 이름으로 신변은 보장해줄게. 어때?"
"헌터협회라고 해봤자 뭔지는 모릅니다만 그리고 내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길안내부터 해. 소탕하면서 설명해줄 테니까."
해골바가지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뜻 밖의 동행자가 하나 생기는 순간이었다.
***
주하연에게 후퇴 따위는 없다.
그녀가 아는 것은 정의의 실현을 향한 전속전진 뿐!
좋게 말하면 추진력 있고 나쁘게 말하면 독선적인 성격을 가진 그녀였다.
까앙!
"어? 캔디! 와서 이것 좀 봐봐!"
왜 그래뿅?
"놈의 본거지를 찾은 것 같아!"
그녀는 곡괭이로 변한 마법봉이 푹 박혀 있는 금속 바닥을 가리켰다.
압도적인 근력과 근성으로 기나긴 수직굴을 판 그녀는 드디어 악이 무척이나 가까워졌음을 실감했다.
이럴 수가 이 깊은 곳에 이런 구조물이 있다니 이건 거대한 악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게 틀림 없어뿅!
"맞아. 하지만 이런 깡통 같은 벽 따위가 우리의 길을 막을 수는 없어!"
맞아뿅! 어서 세상의 쓰레기들을 찢어발기러 가는 거야뿅!
주하연은 결심한 얼굴로 곡괭이를 뽑아들었다.
마법봉을 망치로 변환한 그녀는 어깨를 한껏 휘어 꺾고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큐티☆! 동화 속 유리구두처럼 샤라링 하트ㅡ♡!!"
콰아앙!!
그녀의 망치가 바닥을 박살냈다.
두더지 재앙이 와도 못 뚫을 거라 과장을 하던 해골바가지의 언사와는 달리, 주하연의 간단한 폭력 아래 쿠키처럼 작살나고 만 것이다.
주하연은 터져나간 벽 속으로 순식간에 뛰어들어, 기관단총 두 정을 뽑고 크게 외쳤다.
"순수와 사랑의 화신! 세상의 모든 악을 한 줌 재로 돌려보내는 어라?"
슬프게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어둡고 차가운 복도만이 쓸쓸히 그녀를 반기고 있을 뿐.
놈들을 당황시키고 마법소녀 등장을 선언하려던 주하연으로서는 맥이 빠지는 일이다.
하연! 마법봉은 아직 바닥을 가리키고 있어뿅!
부르르 까딱.
캔디의 말대로, 악은 아직 그녀의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껏 땅을 파서 온 그녀를 우롱하듯이 말이다.
"이 자식들, 역시 보통이 아니구나!"
분통하게 금속 파편을 콱 밟아 짓이긴 주하연.
따지고 보면 그녀를 우롱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하층의 구조가 개미굴과 비슷하기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세상 자기 밖에 모르는 그녀에겐 이보다 분한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철 모르는 애새끼 같은 마인드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곡괭이를 들어 바닥에 내리꽂았다.
"감히 정의를 우롱하다니! 캔디. 어서 가자!"
좋아뿅!
주하연은 다시 곡괭이를 땅에 내리찍었다.
그날, 그녀는 23번이나 금속천장을 부수고 헛된 등장대사를 쳐야 했다.
***
쿠웅
"잠깐,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그러게요? 골석 씨. 원래 자주 이래요?"
"아, 아뇨? 살면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만."
가소희에 의해 조골석(뼈돌)이라는 이름이 붙은 해골이 고개를 저었다.
"쯧. 몇십 년을 살아왔다면서 아는 게 없냐."
"지, 진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저도 놀랐다구요!"
"알았어 임마. 우선 소리난 쪽으로 가볼까? 뭔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 저쪽 방향까진 한참일 텐데"
"까라면 까."
"네이."
머리를 긁듯 손가락을 두개골에 딱딱거린 조골석은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안내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