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96화 (96/119)

〈 96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8)

* * *

헌터가 일을 하다보면 구조물을 부수는 경우는 왕왕 생긴다.

절체절명의 순간 소화전을 부숴 위기에서 탈출한다든지, 가로수를 뽑아 내던진다든지

하지만 주하연의 경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부순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음에도 벽이나 천장을 부수고 등장하고, 그냥 때려잡으면 그만인 괴물을 굳이 아스팔트에 박아서 도로를 못 쓰게 만든다.

퇴치 보수금???보다 건물 보수금???이 더 큰 마법소녀.

주하연은 그런 인간이다.

콰앙!

"쓰읍. 이거 왜 안 뚫리지?"

바닥에 연거푸 내려치던 망치를 거둔 주하연이 곤란하다는듯 읊조렸다.

그녀가 선 곳은 지하감옥의 바로 위층.

강철 바닥 위에는 오색수정빛의 결계가 일렁이며 주하연을 자꾸만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 이건 충격을 분산시키는 결계야뿅!

"충격 분산? 이 자식들이!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쾅!! 쾅!! 쾅!!

분한 마음을 담아 힘껏 휘둘린 망치.

하지만 초여름 아지랑이처럼 여리게 일렁이는 결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쾅!! 쾅!! 쾅!!

­ 진정해뿅! 하연의 망치질로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냐뿅!

"쳇.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무슨 방법이 있어? 난 당장 나쁜 놈들을 없애버려야 한단 말야!"

­ 그, 그게 나도 모르겠어뿅. 이 힘은 너무 이질적이야뿅!

신수의 힘은 스피릿을 근간으로 한다.

하지만 신수의 스피릿은 주술이라는 틀을 거치지 않는다.

이 아래에 있는 유니콘의 경우에는 그 영롱한 뿔을 통해 현실에 직접 간섭하는 것이다.

마법도 아니고 권능도 아닌데다 심지어 주술도 아니니 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했다.

심지어 그들은 신수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 더더욱.

하지만 결계를 뚫는데는 결계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 따위 필요 없다.

만드는 것보단 부수는 게 더 쉽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저것 다 제치고 보면 결계란 것도 조금 단단한 벽일 뿐.

외부에서 충격을 주다보면 결국 부서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아! 마법봉을 랜스로 변신시켜 보는 건 어때뿅?

"응? 그러면 망치보다 파괴력이 약해질 텐데"

힘과 압력의 관계 따위 모르는 주하연은 충실한 마스코트의 조언에 회의적인 반응을 취했다.

딱히 그녀의 탓은 아니고, 마법소녀니 뭐니 하면서 학업을 등한시하다보니 자연하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무지성 돌진 밖에 모르는 주하연과 다르게 그녀의 마스코트는 꽤 똘똘한 면이 있었다.

­ 하연. 바늘보다는 망치가 약하지만 천을 뚫을 수 있는 것 망치가 아니라 바늘이야뿅!

"아,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역시 캔디야!"

네모난 박쥐새끼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인 주하연.

그녀는 망치를 순백색 랜스로 변환시킨 뒤, 주문을 외웠다.

"퍼펙트 · 란시아☆! 심장을 꿰뚫는! 공주님의 JOUSTING—♡!!!"

주문과 함께, 그녀의 창 끝에 백마력이 모여들었다.

검기와 마법의 술식이 맞물리며 기이한 강도와 관통력을 부여했다.

주하연은 이얍, 하는 기합과 함께 바닥에 찔러 넣었다.

키이이이잉—!

흐릿한 결계는 잠시 진해지며 창을 막는 듯하더니, 이내 서서히 깎여나가다가 종국에는 무참히 깨져나갔다.

결계를 부수고 남은 관통력이 바닥을 부순 것은 덤이다.

콰광!

"좋았어!! 이 사악한 것들!!"

무너지는 바닥의 파편과 함께 그녀가 지하감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꽈직.

"컥! 커억"

지하감옥은 수감자들이 빽빽하게 누워 있었다.

당연하지만 무너지는 파편에 깔리고도 무사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응? 뭐야, 얘들은?"

그녀는 노랗게, 빨갛게 물든 그녀의 흰 옷을 내려다봤다.

전신괴사에 빠지는 부작용을 겪은 피험자가 깔려 터지면서 뿌린 고름과 피였다.

"으, 더러워 기분 나빠!"

퍽!

그녀는 벌레를 본 순수한 소녀처럼 미간을 확 찌푸리며 발 밑에 있는 것을 차서 치웠다.

피험자의 사체는 차가운 쇳바닥 위를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안락한 간이침대 속에서 비몽사몽대던 다른 피험자들의 자극이 되었다.

"어, 으,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반대편에 누워 있던 피험자 하나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는 깨어나지마자 끔찍한 광경과 본신의 고통으로 크게 비명을 질렀다.

이는 유니콘이 없는 지하감옥의 환자들을 깨우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사, 사람이 죽었? 어, 어어?"

"흐, 히흐하하하하하!!!! 아흐하하하하하!!!!"

일각수의 힘으로 가사상태에 빠져있던 피험자들.

잠깐의 자비로 현실의 고통을 잊고 있던 자들이 현실로 끌려나오고 말았다.

"꺼흑, 끄어어어어억 꺼어억"

누군가는 죽지 못해 제 목을 부서져라 움켜쥐었고, 다른 누군가는 바스라진 왼팔을 찾아 다른 피험자에게 달려들었다.

온 피부가 벗겨지는 부작용을 받은 자와 고열로 뇌가 익어버린 자가 침대를 부수며 한데 뒤엉키고, 어떻게든 살아 있던 녹아내린 인간이 소리 없는 고통 속에 발버둥치며 죽어갔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규환지옥이 마법소녀의 등장으로 펼쳐진 것이다.

아아아아아아——!!!

사, 살려줘, 살려줘—!! 안 돼!!!!

아파! 아파요, 아프다고! 아파아아아아!!!!!!

"어?"

차원적응제의 부작용.

영혼과 육신의 결합을 강화하여, 사람을 죽지 못하게 만든다.

이들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것들.

죽었어야 하지만 차마 죽지 못한 것들.

때문에 반쪽짜리로 영원히 고통받는 이들이다.

주하연은 이 광경을 천천히 돌아보며 무언가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언가 느껴져야 하는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어렴풋하기만 할 뿐 잘 잡히지 않는다.

마치 높이 뜬 보름달을 손으로 쥐는 것처럼 될 듯하면서도 되지 않는 일.

맹목 속에, 무언가 매몰된 감정이 있다.

'뭐였지? 뭔가, 있어야 하는데'

부르르.

까딱.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 맞아."

마법봉의 진동을 느낀 그녀는 비로소 까먹고 있던 것을 떠올렸으니까.

"나, 나쁜놈 죽이러 왔지?"

그녀는 아비규환 속에서 기관단총을 뽑아들었다.

마법봉은 주변 피험자를 향해 미친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 .

그 시각, 사람들을 재우기 위해 힘을 보충하던 유니콘이 지하감옥의 이변을 느꼈다.

***

"와, 이게 다 뭐다냐."

은근히 뭉그적대는 조골석을 닦달하여 도착한 소음의 근원지.

바깥부터 무저갱까지 위아래로 시원하게 뚫린 구멍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또 누군가 들어온 것 같네요. 직빵으로 뚫고 내려온 것 같은데"

"이 짓거리를 또 누가 하겠냐만은 대체 자리 안 지키고 뭣하러 온 거야? 우리 애들 또 개고생하고 있겠네."

가소희의 한숨 어린 짜증.

주하연의 단독행동 때문이다.

"오오 세상에 하늘이잖아!"

눈썹을 콱 찌푸린 가소희의 눈치를 찔끔찔끔 보던 조골석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바깥까지 뻥 뚫린 갱도를 통해 서광처럼 내리쬐는 희미한 태양빛.

감격스레 무릎 꿇고 햇빛을 맞이하는 스켈레톤이라니, 진짜 세상이 말세긴 한가보다.

"꼴값 떨기는 뼈돌이! 이 아래로 쭉 내려가면 뭐가 있어?"

"헛? 넵? 아, 그 아래에 뭐가 있냐고요? 이쪽은 상층이니까 뭐 별거 없고요, 아래로 내려가다보면은 무기고나 포탑 같은 방어용 시설이 있고 거기서 더 내려가면 생활구역이 있습니다. 또"

"아, 몰라. 일단 떨어지고 보지 뭐. 얘는 어차피 최하층에 있을 거 아냐?"

가소희가 됐다는듯 손을 휘젓자 조골석은 몸을 웅크리며 침울한 티를 냈다.

뼈 밖에 없으면서 감정표현은 쓸데 없이 다채롭다.

"일단 내려가보자. 구멍이 은근히 좁으니까 그냥 뛰어내리지 말고 조심히"

히아아———!!

휘잉.

구멍을 가리키는 가소희의 곁으로 백색 형체가 깜빡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분명히 어두캄캄한 무저갱으로 향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방금 대체 뭐야!?"

"유, 유니콘입니다! 제가 봤어요! 유니콘이라구요!"

"개소리하지 마, 임마! 혹시 주하연인가? 그건 아닌데?"

한국 칠성마저 형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

차원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빠른 신수다웠다.

"우리도 일단 내려가보죠. 뭔지는 알아야 하니까."

"휴우. 그래. 순간 당황했네. 젠장, 이 지랄날 줄 알았으면 그 꼰대 보내는 건데"

한 차례 탄식한 가소희가 멍하니 서 있던 해골의 척추를 콱 붙잡았다.

그러고는 문답무용으로 맨 아랫층까지 뻥 뚫린 구멍 아래로 뛰어들었다.

"어어? 헉! 으, 으아아아아아!"

가소희와 함께 끌려간 조골석의 아득한 비명소리가 어둠을 메웠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가소희를 따라 구멍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수직굴을 팔 생각을 하다니 그 년도 제정신이 아니구만.'

나는 심연 속으로 빠지며 그리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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