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97화 (97/119)

〈 97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9)

* * *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각성자의 위치는 늘 이리저리 변해왔다.

걸어다니는 대기업, 돈만 주면 뭐든 다 하는 깡패,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싸운 용사

각성자의 사회적 위치는 오늘날에도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재미 있는 건, 각성자의 위상을 정하는 건 그들의 행보가 아니라 국회에 앉은 높으신 분들이라는 거다.

세태가 평화로우면 각성자를 운 좋게 팔자 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구국의 영웅이자 영예로운 투사로 대접한다.

사실 경제고 국방이고 정치와 얽히지 않은 분야가 없는 이 나라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6년 전, 세 살 짜리 각성자 유아가 밥 먹기 싫다고 난리를 피우다 실수로 어머니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멸치볶음이 싫어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자그마한 주먹에 어머니가 급소를 맞고 즉사한 것.

안타까운 일이지만,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진 아이를 가진 가정에선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본래라면 적당히 묻혔을 일이지만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당시에는 총선기간이었고, 지지율에서 밀리던 한 당이 이 일을 문제삼아 불을 지폈다.

선동당한 국민들은 아이가 일부러 어머니를 죽였다느니, 평소에도 힘만 믿고 부모를 패던 막장 아이였다느니, 심지어는 어머니만 죽인 것이 아니라 연쇄살인을 벌인 아이였다느니 하는 되도 않는 루머를 퍼트리며 각성자에 대한 혐오를 키워나갔다.

뒤늦게 아이의 아버지가 기자회견에 나서서 울먹이며 그만두라고 호소했음에도, 이미 정치판에 떨어진 사건인지라 그 눈물은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했다.

총선은 사건을 키운 당의 압승으로 마무리 되었다.

국회는 각성자에 대한 극심한 규제를 내세워 각성자를 탄압하는 법안을 연속적으로 통과시켰고, 때때로 각성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각성자의 이유 없는 5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면서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당시 헌터협회는 공권력의 개 역할을 충실히 해냈으므로.

그 과정에서 아이는 수 년 간 세상의 수많은 악의에 마주해야 했다.

어디 나도 죽여봐라 하는 내용의 삐라는 물론이요, 어린 아이만 있는 집에 침입해 아이의 뺨을 때리는 영상을 찍은 방송인, 심지어는 창문을 깨고 날아온 최루탄까지.

아버지 또한 무사한 건 아니라서 어디 나갔다 오면 항상 어드메가 깨져 피를 흘리곤 했다.

그럼에도 부성애를 꺾을 수 없던 아이의 아버지는 각성자들을 만나 시위 계획을 세우다가 내란선동죄로 징역을 받고 감옥에 처박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잃어버린 아이는 그렇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

14살.

11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소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사에 의욕 따위 있을 리가 없었고, 사소한 일에도 벌벌 떨며 마음을 부서트려나갔다.

오늘도 그녀의 책상에는 '마미 킬러' 따위의 악의적인 낙서가 가득하다.

물론 의자 따위는 옛저녁에 사라진지 오래고, 책상은 물로 가득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화를 내지 못한다.

분함에 소리를 지르기라도 하면 학교 경비헌터가 당장에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을 땅에 처박아 진압해버릴 게 뻔했으므로.

오래 전의 일로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힌 순간, 평생토록 감내해야 할 일이다.

'난 왜 살지.'

자연히 죽을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친구에게 입수한 야한 로맨스 소설을 읽고 이불을 차며 꺅꺅대야 할 나이에 이딴 취급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여지껏 별다른 사건을 일으키지 않은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소녀가 자살충동을 느끼든 말든, 그녀는 아직 쓸모가 있었다.

국회에서 실명이 언급되며 각성자의 위험성을 상기시키는 것 외에도 말이다.

­ 반가워뿅!

"."

­ 어라?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뿅?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뿅?

"."

­ 뭐, 됐어뿅! 오늘이야 말로 확실히 답을 얻어낼테니까뿅!

언젠가부터 나타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절대기 시작한 네모낳고 귀여운 박쥐.

캔디라는 이름이 붙은 마스코트였다.

­ 자! 나랑 같이 마법소녀가 되자!

"싫어."

­ 어째서뿅?

"정의를, 자칭하는, 족속들은 모두, 쓰레기야."

아직 열네 살 남짓한 소녀, 이서하의 이빨이 까드득 갈린다.

자신을 예로 들며 각성자는 뇌에 칩을 박아 관리해야 한다는 정치인, 낯선 사람에게 놀란 세네 살짜리 유아에게 카메라를 들이밀고 뺨을 때린 방송인, 내란선동죄를 들며 아버지를 감방에 처박은 법원

모두 자신을 정의라 자칭했다.

하지만 이에 쉽게 물러나면 마스코트가 아니다.

박쥐는 영악하게 혀를 놀렸다.

­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마법소녀가 되어야만해뿅! 온갖 부조리를 겪은 너만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거야뿅!

"난, 우리 엄마를, 죽였어."

­ 그건 네 잘못이 아냐뿅! 잘못한 건 네가 아니라 이 썩어빠진 세상이야!

박쥐는 소녀를 유혹했다.

너만이 정의의 척도가 될 수 있노라고.

마법소녀가 세상의 악을 치우고 모두 너를 따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내가 힘을 줄 테니, 놈들에게 복수하자고.

ㅡ그리고 함께 아버지를 구하자고.

"아, 아빠? "

­ 그래. 억울하게 갇힌 네 아버지를 구할 수 있어뿅! 이대로 망설이고만 있을 거야뿅?

"우리 아빠는, 분명 교도소에"

­ 누구도 서하를 막을 권리 따위 없어뿅! 너도, 아버지도 죄가 없으니까!

"아, 아냐, 난 살인자"

­ 살인자가 아니라고 했잖아뿅!!!

귀엽게 생긴 네모 박쥐가 소리쳤다.

­ 정의! 넌 정의 그 자체라고!!!

이빨을 부서져라 깨문 이서하가 손아귀를 꽉 쥐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순백의 마법봉이 쥐여져 있었다.

"이건"

­ 당장 가는 거야뿅! 정의를 실현하러!

순백의 마법봉이 위험하게 빛났다.

그날, 이서하는 자살을 위장하고 사라졌다.

대신 마법소녀 전우회에 초신성 한 명이 등장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주하연이었다.

***

"이, 이 미친년이"

마침내 바닥에 떨어진 가소희가 지하감옥의 참상을 보며 살짝 뒷걸음쳤다.

아마도 산 사람이었을 핏덩어리들이 바닥에 흥건히 널린 지하감옥.

희게 울부짖는 일각수와 광기에 가득 찬 주하연이 그 사이에서 처절히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전투구???, 아니. 혈전투구血??.

오색 빛을 머금은 수정뿔과 순백의 마법봉이 공중에서 얽히며 굉음을 만들어냈다.

"무, 무슨 허억!?"

뒤늦게 땅에 착지한 나 또한 가소희를 따라 몸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조골석은 아예 기절했는지, 땅을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시체가 움직여?"

땅에 뒤덮인 살점이 꿈틀거렸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울며 산 자의 발목으로 기어와 붙잡고 늘어진다.

모두 기관단총의 마력탄이 벌집처럼 박혀 있다.

"윽 으욱"

"토하지 말고 정신 차려! 지금 그럴 때가 아냐!"

"아, 안 해요 그냥 헛구역질이"

나는 가소희의 부축을 받고 헛구역질을 했다.

전쟁걸음에 앵기는 살덩이들은 눈 꽉 감고 털어서 없애버렸다.

늘 그랬듯이, 전쟁걸음은 언제 그랬냐는듯 희게 돌아왔다.

­ 히아아아아——!

일각수의 수정뿔이 희게 빛나며 주하연의 낫을 멀리 쳐냈다.

마법봉을 놓친 주하연은 당연하다는듯 기관단총을 둘을 뽑아 일각수에게 갈겼다.

기관단총임에도 머신건 못지 않은 탄막이 형성됐지만, 일각수는 오색빛의 보호막으로 견디며 밀리는 척하다가 순발력을 발휘해 주하연에게 돌진했다.

퍼걱!

일각수의 신적인 속도에 반응하지 못한 주하연.

그녀는 수정뿔에 복부를 꿰뚫려 순식간에 반대쪽 벽에 일각수와 함께 메다꽂혔다.

지하감옥 전체가 무너질듯 흔들렸다.

"스승님, 이게 대체 무슨"

"넌 여기 가만히 있어. 아무래도 상황을 봐서 둘 다 눕혀야 할 것 같은데!"

가소희의 검에 짙디 짙은 혼검기가 맺혔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이보다 더 깊을 수 있을까 싶은 색이다.

­ 히아아아아아아——!!!!

주하연과 일각수가 사라진 벽의 구멍 속에서 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후두둑 떨어지는 금속 파편 사이에서 배가 꿰뚫린 주하연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뿔에 꿰인 채로, 앞으로 돌진하려는 유니콘의 머리를 잡고 역으로 밀어내면서.

"뿔 달린, 괴물딱지 주제에!"

이를 갈며 저항하는 일각수의 힘이 빠지자, 그녀의 손이 흰 말의 목덜미를 콱 잡아챘다.

일각수는 뒤늦게 몸을 비틀어 저항했지만 주하연의 손아귀는 그녀만의 정의처럼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주하연은 팔에 힘을 줘 일각수의 목을 우둑, 부러트렸다.

일각수의 굳건한 다리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흐, 후 좀, 아프네"

복부에서 뽑은 수정빛 뿔을 휙 내던진 주하연.

백열하는 마법봉이 꿰뚫린 복부를 지지자, 꿰뚫렸던 구멍이 서서히 수복되었다.

"너. 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야?"

월왕구천을 까딱거린 가소희가 미간을 일그러트리고 물었다.

상처를 지지던 마법소녀가 눈동자만 끼기긱 움직여 가소희를 노려봤다.

"어어ㅡ? 사사, 건건, 참견하는 방해꾼이네에. 아아안녕하세요오오?"

"대체 뭘하냐고 물었어, 씨발련아. 이게 다 뭐야?"

"그거야아, 느그 알 바가 아니지 않을까요오오? 이 하연이가, 정의 좀, 집행하겠다는데에에?"

바닥을 구르던 기관단총, 러브 앤 피스가 그녀의 등 뒤로 둥둥 떴다.

총구는 가소희를 향하고 있었다.

"제가아~ 알아서 할게요오. 그러니까 일반인은 나가세요오 예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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