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11)
* * *
인간관계에 있어 거짓말은 하책이다.
잠깐의 이득을 위해 짜낸 거짓말은 결국 들통이 나게 되어 있으니.
정정당당하게 이득을 취할 자신이 없을 때 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거짓말이 넘쳐난다.
거짓말은 공을 차다가 꽃병을 깨먹은 5살 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행위니까.
누구라도 쉽게 즉각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편이니 그 효용은 가히 사채에 비견될만 하다.
있지도 않은 진실을 끌어다 쓰는 사채 말이다.
"너 갑자기 뭔 콜록."
늑골에 주먹을 맞고 비틀대던 가소희가 당황해 피 섞인 기침을 토했다.
내 말을 들은 주하연이 미간을 꽉 찌푸리며 내게 손가락을 뻗었다.
거대한 백마력이 손끝에 모여들었다.
나는 터질듯 부푸는 백마력에 식겁해서는 크게 외쳤다.
"마법소녀 강령 3조!!! 같은 마법소녀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마법소녀의 탐지능력은 가끔씩 같은 마법소녀를 향하기도 한다.
그들 또한 악마에게 힘을 빌리는 주체니.
마법소녀 강령 3조는 그런 까닭으로 생긴 규칙이다.
주하연은 손가락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쏘아질듯하던 백마력의 팽창은 어느샌가 뚝 멈췄다.
마법소녀라고 당당하게 외친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이다.
그녀는 이를 아드득 갈며 천천히 물었다.
"너 따위가, 마법소녀라고?"
"후우. 그래. 난 마법소녀 퍼플, 으음 퍼플탄젠트! 퍼플탄젠트다!"
나는 되는대로 지껄이고는 아차했다.
마법소녀 이름이 퍼플탄젠트라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만한 이름이다.
하지만 삼각비를 모르는 주하연은 명칭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퍼플탄젠트? 그딴 마법소녀는 들어보지도 못했어! 어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 진짠데? 마법소녀 전우회에 등록을 안 했을 뿐이야!"
주하연은 얼척이 없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캔디! 저 말이 사실이야?"
어, 그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뿅?
"뭐?"
거짓말을 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았어뿅!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야뿅!
예상과 다른 반응에 주하연이 행동을 멈췄다.
물론 내가 한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거짓말이었다.
주술소녀면 몰라도 내가 어떻게 마법소녀가 되겠는가?
애초에 마력이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저 네모박쥐는 내 거짓을 읽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늘 도움이 되는 죽은 척 덕분이었다.
'전에 만났을 때 저 박쥐새끼가 날 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말인 즉 놈은 감정의 동요를 읽을 수 있다는 것.
진짜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건 당연히 아닐 테니 그 원리야 뻔했다.
식은땀이나 시선 처리, 심박수 따위로 심경의 변화를 읽는, 어찌 보면 거짓말 탐지기와 비슷한 원리.
죽은 척으로 몸의 신진대사를 늦출 수 있는 내게는 무척이나 속이기 쉬운 상대다.
캔디의 보증에 나를 겨누고 있는 주하연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법소녀를 '절대적 정의'로 분류한 그녀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일일 터다.
내가 정말 마법소녀라면 같은 마법소녀를 때려죽이려고 한 꼴이 되니 말이다.
마법소녀를 절대선으로 규정하고 광신적 믿음을 보이는 주하연에게 있어서 마법소녀라는 것은 그녀의 긍지이자 가장 큰 단점이다.
원작에서도 마법소녀 전우회를 잘 이용하면 주하연을 자살로 몰고 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럴듯한 논리만 있다면 등쳐먹기 가장 쉬운 칠성이었지'
잘못 걸리면 그대로 피곤죽이 되기 십상이지만.
당황한 티를 내던 주하연은 이내 도리질을 치더니 다시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사그러들던 백마력이 다시 크게 세를 피워올렸다.
"하지만 캔디! 저년이 거짓과 관련된 악마와 계약을 한 걸 수도 있잖아! 그리고 저 녀석이 전에 만났던 악마는 환상의 악마야!"
그, 그런 걸지도 몰라뿅! 하르미아, 아니면 기만의 대악마와 관련이 있을지도!
지 능력이 안 통하면 악마계약자냐?
웃긴 마스코트네, 저거.
몰래 만드라고라 김치를 씹으며 회복하는 가소희에게서 아닌 척 시선을 뗀 나는 마저 억울한 말투로 항변했다.
"악마와 계약이라니! 몰래 정체를 숨기고 마법소녀의 힘이 필요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어떻게 같은 마법소녀에게 이럴 수 있어! 퓨어하트는 가장 정의로운 마법소녀라고 들었는데 완전 새빨간 거짓말이었구나!"
"하! 진짜 웃기는 친구네. 마법도 못 쓰는 게 무슨 마법소녀야? 넌 주술사잖아, 이 악마년아!!!"
찌잉ㅡ!
콰광!!!
주하연의 손가락에서 백마력이 폭사했다.
나를 맞춘 것은 아니고, 천장을 향해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답답함에 지른 티가 나는 저 행동은 도리어 그녀에게 확신이 없음을 시사했다.
"난 분명히 주술사야. 하지만 마법소녀이기도 해!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여자아이라면 누구라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으니까!"
"씹소리! 그리고 너 마스코트도 없잖아! 대체 마법소녀를 뭘로"
"마스코트가 없다니? 내 친구는 여기 있어!"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어깨 위에 얹힌 망토를 가리켰다.
내 행동에 잠시 멍하니 꼼지락댄 빨간 망토가 뒤늦게 어설픈 반응을 보였다.
= 어, 어어? 마, 맞아요!! 저는 영웅 시현이의 마스코트!! 그으, 래디시예요!!!
그리 외친 셀레스티가 어깨 위에서 포즈를 잡았다.
평소 취하는 것과 비슷한 나름 위풍당당한 포즈였다.
래디시? 그런 마스코트는 들어본 적 없어뿅!
= 나도 캔디 같은 유치한 이름을 가진 마스코트 따위 들어본 적 없어!
뭐라고뿅!?
셀레스티의 도발에 박쥐새끼가 길길이 날뛰었다.
주하연은 그런 캔디를 콱 붙들어 잡고 으르렁거렸다.
"후우. 너까지 난리피우지 마, 캔디."
하지만 저 사칭범이!
"아니, 됐어. 아무래도 좋아. 거기 사칭범!!"
"사칭범이 아니라 퍼플탄젠트"
"아아, 됐어!!! 됐고요!!! 진짜 퍼플 뭐시기라면 마법소녀로 변신해보세요. 지금 당장!!!"
나 보고 마법소녀로 변신해보란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딴 건 못한다.
난 마법소녀가 아니니까.
"으, 지금 몸상태가 영 아니라서 힘들 것 같은데."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주하연의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백마력의 구체가 떠올랐다.
"아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같은 마법소녀끼리 이러기야? 하면 되잖아, 하면!"
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 위해 다급히 입을 놀렸다.
주하연의 시선은 여전히 적대감이 서려 있었지만 어쨌든 백마력의 움직임은 멈췄다.
'나도 폼체인지 비스무리한 건 할 수 있다고.'
나는 마법소녀가 아니라 만능주수리니까 말이다.
"으 벼, 변신!!"
내 외침과 함께, 몸 위로 깔끔한 칠흑갑주가 나타났다.
묵색 금속이 짤각이며 머리까지 꽉 보호해 덮는 경갑.
엄밀히 말하면 변신은 아니지만 마법소녀 변신도 옷갈아 입기에 불과하니 어쨌든 변신이다.
"자! 네 말대로 변신했어!"
갑주를 입은 나는 주하연에게 당당히 변신했노라 외쳤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무리수였다.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씨발련이 감히!!!!!!!"
갑옷 하나 걸치고 마법소녀를 사칭한 내 행동에 격분한 주하연.
공간 가득 백마력의 구가 동시다발적으로 피어오른다.
시야가 순간 하얗게 물들었다.
하지만 나는 투구 속에서 눈을 감고 살짝 웃음지었다.
애초에 내 되도 않는 거짓말은, 모두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었던 까닭이다.
히아아아아아ㅡ!!!
퍼엉!!!
섬광 속에서 덤프트럭과 승용차가 추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망막을 태울듯이 명멸하던 백마력의 구체들은 일제히 빛을 잃고 사그라들고 말았다.
사그라든 빛 속에는 또 다른 하얀 것이 둥둥 떠 있었다.
= 유, 유니콘?
내가 거짓말을 하며 주하연의 관심을 끌어낸 사이, 어떻게든 유니콘의 목을 끼워 맞춰 부활을 앞당긴 조골석이 하얀 일각수 위에 얹혀 있었다.
"너, 너어!!!"
"나 참. 대체 뭔 짓을 하나 싶더니만."
거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을 나는 주하연의 목 위로 짙은 쇳소리가 울렸다.
살의를 함뿍 담은 가소희의 검향??.
주하연이 백마력의 컨트롤을 잃어버린 그 0.2초가 둘의 승패를 갈랐다.
파차앙——!
"카악!"
지독하게 향긋한 쇳냄새가 찾아오고, 동시의 주하연의 목이 달아났다.
가소희는 태연히 팔을 휘둘러 떨어지는 마법소녀의 머리를 낚아챘다.
"드디어 잡았네. 그만 얌전히 있어."
"하악, 하아악!"
"어이구. 폐도 없는 주제에 숨은 잘 뱉네."
목을 잃은 주하연의 빈 몸통이 뒤늦게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거짓말은 사채.
일시적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어도 그 대가는 결코 싸지 않다.
하지만 나는 대가를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떼어먹는데 성공했다.
사채든 뭐든 갚지 않고 삥땅치면 그만.
내가 주하연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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