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00화 (100/119)

〈 100화 〉 마법소녀와 일각수 (12)

* * *

한국 칠성 정도 되면 목이 잘리는 것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그냥 떨어진 목을 몸에 잘 이어붙이고 침 바르면 낫는 수준.

칠성이란 그런 괴물들이다.

"넌 일단 자고 있어. 뒷정리는 뭐, 너네 동생들이 알아서 하겠지."

가소희는 머리만 남은 주하연의 뒷목에 주사를 꽂았다.

주하연은 이내 입술을 파들거리다가 눈을 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 어으. 좀 그로테스크한데요.

"수면제야. 얘 머리 밖에 없어서 이 정도면 치사량이려나. 에이, 상관 없겠지 뭐."

그녀는 머리와 몸통을 잘 맞춰 이어붙였다.

주하연의 뛰어난 재생력이 순식간에 상처를 지우고 둘을 감쪽같이 이었다.

하지만 대헌터용 수면제를 근 치사량까지 받은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가소희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주하연을 구석으로 걷어차서 치웠다.

떼구르르

그와 함께 일각수의 등 위에서 조골석이 툭 떨어졌다.

"아야! 아이고오, 내 삭신"

"수고하셨어요."

"그럼! 수고했지요! 팔자에도 없는 말대가리 뼈 맞추기 놀이를 하느라 아주 혼났지요! 뭐 그쪽은 다친데 없습니까? 땅에 엄청 세게 꽂혔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도 흉부 위쪽은 나름 멀쩡하지만 나머지 뼈가 있는대로 작살이 났다.

척추뼈가 우그럭거리는게 오호십육국 시대의 중국처럼 아주 잘게 박살난 게 틀림 없다.

"뼈돌아. 보면 모르겠니? 안에서부터 작살이 난게 눈에 뻔히 보이는구만."

"흥, 당신들은 저처럼 뼈를 내놓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저를 보십쇼. 얼마나 직관적인 부상현황입니까?"

"아이고, 잘났다 그래."

상체의 일부만 남아 나불대는 해골을 성의 없이 툭 걷어차 치운 가소희는 소매에서 철제 김치통을 꺼내들었다.

말해 무엇하랴. 만드라고라 김치다.

"아."

아다만타이트 젓가락으로 김치를 들어 내게 내미는 그녀.

나는 가소희의 명령에 따라 입을 조그맣게 벌려 만드라고라를 와작 물었다.

알싸하게 청량하고 달면서도 매콤한 김치가 입 안을 어지럽힌다.

"음우음"

"하아. 불쌍한 것. 정말 괜히 데려왔나 싶다, 정말. 수련은 수련대로 못하고 미친년한테는 처맞을대로 처맞고. 그 와중에 쓸데없이 용감하게 나서서 나 마법소녀요, 같은 소리나 하고 말야."

입을 오물거리는 내 이마를 톡톡 건드린 가소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만드라고라를 꼴딱 삼키고는 히히 웃었다.

"아무튼 제가 잘한 거잖아요? 많이 밀리고 계시던데 조금은 고마워하셔도 돼요!"

"하! 웃기는 소리하네. 이 지하를 무너트릴 각오로 싸웠으면 말이야, 응? 저런 건 삼초지적이었어, 삼초지적!"

상황을 보아 딱히 그래보이진 않았지만 눈을 깜빡여 긍정해보였다.

내가 영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자 뺨을 살짝 부풀린 그녀는 내 이마를 탁탁 치며 일어섰다.

"아니, 뭐. 딱히 못했다는 건 아니야! 정말 잘했어. 그래도 이 스승님을 조금 더 믿어보지 그랬니?"

"믿고 있으니까 그런 짓을 한 거죠."

만드라고라의 신비한 힘이 몸 안을 휘돈다.

금간 뼈들이 빠르게 붙고 있다.

그래도 상처가 낫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겠지.

따각, 따각.

지면을 통해 높은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올려 쳐다보니, 뿔달린 멋들어진 백마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내 친구! 오랜만이야!"

굴러들어온 조골석이 유니콘의 다리를 치며 아는 체를 했다.

그를 힐끔 쳐다본 유니콘은 한 발을 들어 그의 팔 한짝을 가리켰다.

그곳엔 조골석이 어깨에 묶듯이 맨 낡은 시계가 있었다.

그 난리통 속에서도 용케 부서지지 않고 있었다.

"아, 그래! 이번에 새로 노획한 시계야! 역시 알아보는구만."

"진짜 유니콘한테 시계를 자랑하고 다녔어요?"

"그럼요! 제 소소한 행복이지요."

= 외로움에 못 이겨 배구공으로 친구를 만든 표류자가 생각나는 짓이네요.

"아, 그거요? 그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저 유니콘은 어쨌든 살아 있고 의사소통 비슷한 게 되니까 훨씬 낫죠."

조골석이 자랑스레 시계를 손목으로 빼 걸었다.

유니콘을 친구삼는 건 이해가 가긴 하지만 그 주제가 굳이 시계자랑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생에 시계를 못 차서 한이 맺혔나.

"흐흐. 밖으로 나가면 시계를 양쪽에 두 개씩 차고 다녀야죠. 맞다! 검사 아가씨! 저 시계 좀 비싼 걸로 사주십쇼!"

"나 참. 내가 왜?"

"내기 이겼잖습니까! 보세요. 진짜 유니콘입니다! 감히 이 지하의 죽은 증인인 절 비웃은 대가를 치루셔야죠!"

일각수가 가소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신기방기한 눈을 하고 길게 뻗은 수정빛 뿔을 매만졌다.

"안녕, 뿔돌이?"

따악!

가소희의 손길에도 얌전히 있던 일각수가 돌연 고개를 움직여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다페르헤이드의 균형을 지키는 신수에게 감히 뿔돌이라니.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는 것이다.

"아얏! 이 싹바가지 없는!"

신수 모욕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가소희가 반발하여 손을 뻗었다.

그러나 수정뿔은 그녀를 농락하듯 예술적으로 움직여 그녀의 손등을 때렸다.

한국 칠성과 신수가 만난 것 치고는 꽤 유치한 장면이다.

"그런데 골석 씨. 혹시 유니콘이 왜 여기 있는 지 아세요?"

"글쎄요. 저도 모릅니다. 저 친구는 그냥 처음부터 지하감옥을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제가 지하감옥 앞에서 막 깨어났을 때부터 있었으니 말이죠."

"여기서 깨어났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지하감옥 밖이죠. 사실 지하감옥은 들어와 본 적 없긴 합니다만"

조골석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뼈를 따닥 떨며 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죽지 못한 자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울고 있던 까닭이다.

­ 감옥의 형식을 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여긴 거대한 실험장 같네요.

= 으, 대체 얘네가 무슨 실험을 한 거야? 불사 연구라도 했나 지가 진시황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그런 시시껄렁한 연구는 아니야."

나는 어느정도 회복된 몸을 이끌고 바닥에서 일어섰다.

주변에 조골석의 나머지 잔해가 있길래 그쪽으로 녀석을 던져두었다.

"아이구야. 오늘따라 자주 만나는구나."

열심히 뼈를 맞추는 조골석을 뒤로 하고 지하감옥의 벽을 찬찬히 훑었다.

중앙의 감시초소를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고 배치된 감방.

흔히 원형감옥, 파놉티콘이라 불리는 구조의 감옥이었다.

'피험자의 상태를 보기 위해 파놉티콘으로 설계를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창살이고 초소고 부서져서 없지만'

나는 원형감옥의 중심으로 생각되는 곳에 다가가 잔해를 치워봤다.

약 일 분 여를 치운 끝에, 운 좋게도 깨지지 않은 샘플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통에 착착 꽂힌 샘플의 약물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변질되어 있었지만 정보창은 그 약물의 내력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변질된 차원적응제 샘플 SIN­0273 (C)]

­ 인간의 변이를 막기 위해 시행된 '프로젝트 순수'의 산물. 영혼과 육신의 괴리를 좁혀 이능에 의한 변이를 막지만 심장이 벌레먹듯 파이는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현재는 오랜 시간 끝에 변질되어 사용할 수 없다.

약물의 이름이 SIN­0273이라.

현 인류가 성공적으로 발명해낸 차원적응제의 이름은 ISN­4219.

SIN과 ISN은 애너그램 관계이니, ISN­4219는 아마도 4219번째로 완성된 SIN 약물일 터였다.

'지들이 못할 짓을 한다는 자각은 있었나보네.'

약물의 이름에 죄악을 뜻하는 영단어 Sin이 붙었다.

옛 과학자 연맹이 벌인 것은 뭣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인체실험이었으니 이보다 어울리는 이름은 없으리라.

"가끔 보면 말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아."

= 넹? 그게 뭔데요? 함께할수록 행복해진다는 말이에요?

셀레스티의 질문에 픽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보니 공리주의를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과 이 파놉티콘을 설계한 사람은 제러미 벤담이라는 같은 사람이다.

정말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이 그런 걸 따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세상은 아니지.'

나는 샘플통을 안고 일행에게 돌아왔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넋을 잃고 바닥을 구르던 주하연이 드디어 깨어났다.

그녀는 몽롱한 상태로 땅을 딛고 일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우는 소리도, 꿈틀대는 시체도 없다.

남은 것은 저 멀리 타고 남은 뼛가루 뿐.

주하연은 그런 광경에 잠시 기시감을 느끼다가 바닥의 메모를 발견했다.

­ 가소희의 제자 정시현입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주술로 영혼과 육신의 얽힘을 풀고 제사를 지내 성불시켰습니다. 다음에 뵐 때는 조금 더 좋은 상황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찌직.

손에 힘을 줘 메모지를 찢은 주하연이 고요히 흩어지는 뼛가루를 봤다.

아직 둔하게 머리를 때리는 졸음기를 몰아내며 고개를 돌린 그녀는 천천히 걸어 뻥 뚫린 천장을 우러렀다.

그리고, 주하연이 삽시간에 뛰어올라 지하감옥에서 사라졌다.

지하감옥은 비로소 평안을 찾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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