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08화 (108/119)

〈 108화 〉 존재 문답

* * *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신분증의 주민등록번호? 서류상의 주소지? 학생기록부의 수상기록?

글쎄. 적어도 저 셋이 정답이 아닌 것은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위의 세 가지가 정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널리고 널렸다.

재수학원의 재수생 만큼 많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하지만 저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 외로 적다.

물론 저 질문이 답이 정해진 물음은 아니다.

개인마다 각자의 답이 있으며, 영 터무니 없는 이유만 아니라면 그 모든 답안은 정답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저 질문에 잘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야 당연하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을 하지 못할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저런 철학적 의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생각해놓고 다니지는 않으니 말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느냐고요? 흐음, 글쎄요"

그리고, 저 멀리서 죽음의 군세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평양성에는.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그런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시계광 스켈레톤 하나가 있었다.

스켈레톤의 로브에 새겨진 뉴르공 학파의 표식을 힐끗거린 마법사가 괴짜 스켈레톤에게 답했다.

"그야 생각하기 나름 아닙니까. 누군가는 관계에서 그 답을 찾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사회와 국가에서 찾을 것이고 그런데 지금 와서 그런 건 왜 물어보시고 다닙니까?"

담배를 뻐끔거린 수척한 마법사가 스켈레톤을 빤히 쳐다봤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병신같은 스피시스 디스포리아(species dysphoria)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마법사는 이어진 스켈레톤의 답에 그만 침묵하고 말았다.

"그게, 우리 마탑주님 과제 때문에 말입니다."

"앗, 이런"

조골석은 그냥 그렇게 답하고 말았다.

일면식도 없는 뉴르공 학파의 마탑주 핑계를 댄 그는 그렇게 휙 돌아서고 성벽을 따라 걸었다.

영원한 순회의 군세가 저 끄트머리에서 보이게 된 시점.

이성이 있다고 해도 결국엔 스켈레톤이라는 언데드로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영원한 순회가 쏘아대는 정신파에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정줄을 놔버리겠구마.'

수많은 절망을 품고 죽어간 영혼들의 울부짖음.

그러한 저주를 몸으로 견뎌낸 영원한 순회가 그를 모방해 내뿜는 정신파는 비단 조골석 뿐만 아니라 뭇 사람들도 잠을 설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스켈레톤인 조골석은 신성장막 아래에 들어가 그 정신파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지.

"뭐해요?"

전쟁의 임박을 맞아 성벽의 순찰을 돌던 나는 성벽을 짚고 선 조골석을 마주쳤다.

엔키트의 후계자이자 암살부 부장인 권하율의 힘을 빌려서 구해준 뉴르공 학파의 로브 덕에 마음대로 밖을 쏘아다니는 모양이지만, 원래는 지금 상황에 마음대로 밖을 나다녀서는 안 된다.

전쟁이 아닌가?

관자놀이로 추정되는 머리뼈의 홈을 톡톡거리던 조골석은 나를 발견하고 방정맞게 인사했다.

평소의 페이스는 아니었다.

"아이고, 주술사님!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아뇨, 그냥 순찰도는데요. 근데 어디 아파요?"

"조금 속이 울렁거려서"

"울렁거릴 속도 없으면서. 정신파 때문에 그러죠? 그러면 좀 찾아오시지."

나는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으로 만든 부적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내가 만든 건 아니고 무녀가 대량생산한 건데 일본인이 부적을 만드느라 이순신 장군의 초상에 구멍을 뚫었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뭣한 기분이다.

'많은 사람의 손때를 탄 게 좋다나 뭐라나'

마땅한 게 화폐 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군님도 적당히 이해해주시겠지, 뭐.

"이게 뭡니까? 동전에 구멍을 뚫어놨군요?"

"부적이요. 당신 같이 신성력 안 받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거래요. 저 정신파의 영향을 막아주는 효과를 가졌어요."

"오,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저것 때문에 뒈지는 줄 알았습니다. 왜 층간소음이 살인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조골석은 그리 말하며 동전을 로브에 대충 쑤셔넣었다.

그러면서도 두개골의 음영에는 무언가 편치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정신파가 층간소음 흐, 죽일 수 있으면 진작에 죽였겠죠. 아무튼, 그걸로도 버티기 힘들면 그 유니콘이라도 불러서 같이 있으시면 될 거예요. 아, 바빠서 안 되려나."

"요즘은 꽤 바쁜지 불러도 안 오더군요. 그보다 주술사님.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 뜬금없는 질문에 멀뚱히 서있다가 답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린네, 뭐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철학적인 질문인 거죠?"

"호 뭐요?"

반응을 보니 과학적 질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반문에 답해주지 않고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뭐,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런 거에 정답이 어딨어요? 무슨 삼차함수와 일차함수가 접하는 점을 찾으라느니, 어떤 두 사람이 애를 낳았는데 이 애의 동생이 가질 표현형은 몇 개라느니, 이런 것처럼 딱딱 정해진 것도 아닌데요. 뭘."

= 맞아요! 정해진 답이 없기에 상상은 늘 즐겁죠! 지구가 태양계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해도 세상엔 아무 손해가 없다는 게 상상의 묘미인 걸요?

"글쎄. 상상을 해도 이뤄지지 않으니 어찌보면 비참한 게 아닐까?"

= 흥, 영웅님은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신다니까!

셀레스티와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조골석은 무언가 석연찮은 기색이었다.

근육이 없는 뼈라 표정은 없었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해서,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내가 생각하는 답을 했다.

"흠흠!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냐니,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건 사람의 역사가 정의한다고 믿어요."

"역사 말입니까? 개인이 겪어온 경험?"

"음 단순히 경험이라고 하면 뭔가 좀 그렇죠. 기억을 비롯한 데이터 같은 거라고 해둘까요?"

이래봬도 어렸을 땐 문과소년의 꿈을 꾸었던 몸이다.

사람이 무엇인지 생각 한 번 안 해봤을까.

"아무리 정보가 많이 남아 있더라도 사라진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어요. 우연히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찾아 몸을 재구성하고 그 사람이 남긴 일기장을 뒤적거려 취미나 말버릇까지 모두 재현하도록 두뇌를 조작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다시 살아돌아오는 것은 아니죠. 그 사람의 뇌에 담긴 데이터는 뇌가 썩어가면서 모조리 사라졌을 테니까."

"그러니까 기억이 사람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이 말입니까? 그렇다면 치매환자는?"

"치료할 수 없는 치매에 걸린 사람은 개인적으로 건강했던 과거의 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쌓아온 데이터가 사라진 거잖아요?"

사람은 곧 자신의 역사이다.

그 모든 경험이 각자의 개성을 만들고, 생각을 만들고, 습관을 만든다.

그러한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아물려 떨어지는 정신체제가 곧 사람이고.

비록 그게 담긴 하드웨어가 어떻든 말이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렇지 않던가?

조골석은 저 멀리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시체더미를 보며 손가락을 갉작거렸다.

"그렇다면 모든 역사를 잃고 다시 깨어난 저는 새로운 사람입니까?"

"제 논리에 따르면 그렇죠. 당신이 살아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상황도 아니고."

스켈레톤은 시체에 영혼의 흔적이 남아 움직이는 언데드.

영혼 그 자체가 남아 있는 게 아니니 옛 기억을 다시 찾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 제게 남은 역사는 흔적 뿐이군요"

"그렇죠. 왠진 모르겠는데 시계같은 치장품을 좋아하는 것도, 왠지 기관포에 익숙한 것도 모두 흔적에 불과하죠. 뭐 다른 게 있나요. 닳아버린 인식표와 조금 짙은 영혼의 흔적이 당신에겐 전부에요, 사실."

"그럼 저는 의미 없는 사람입니까?"

나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의미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당신은 지성체라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어요. 저것 보세요. 저 시체들이 의미가 있는지."

수많은 시체가 얽혀 하나의 거병을 만들었다.

멀리서 평양성을 내려다보는 200층 빌딩과 비슷한 기를 가진 거병.

믿을 수 없겠지만, 영원한 순회가 직접 이끄는 친위군단이다.

"저런 것들은 역사를 만들 수 없어요. 사건을 주워서 정신에 담지 못하고 흘려버리는 놈들이니까. 당신과는 한참 다르죠."

"음"

"솔직히 골석 씨, 저것들과 내가 뭐가 다른지 고민하고 있던 거 아니에요? 누구는 운이 좋아 여깄는데 쟤들은 잘못 잡혀서 저러고 있다. 그럼 나는 쟤들이랑 근본적으로 다른 게 뭐지대충 이런 생각?"

조골석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철학이랑 아무런 관련도 없던 그가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다니, 그의 생각이야 뻔하지 않은가.

"당장 그딴 거 고민해서 뭐해요. 당신은 역사를 만들 수 있고 쟤들은 아닌데요. 중요한 건 가능성 아니겠어요? 신생아를 보고 가치없다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나는 그에게서 돌아서며 수레바퀴를 핑핑 돌렸다.

피젯스피너 비슷한 것인지라 한 번 돌리면 멈출 수가 없다.

"그냥 그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살아갈 뿐이죠. 깊이 생각할 것 있나?"

"개똥밭에 굴러도 사는게 낫다는 말입니까?"

"일단 굴러보고 뒈지는 게 낫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뒈지세요. 아니, 그보다 지하에 수십 년을 갇혀서 버티던 인간이 이런 걸로 고민을 해요? 지조 하난 굉장한 해골일 줄 알았더만."

"그건 에잇, 모르겠습니다! 주술사님 말대로 깊이 생각할 것 없는 고민인 것 같군요."

조골석은 몸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달각거렸다.

그의 손에는 키릴문자로 적힌 인식표가 들려 있었다.

"새 삶을 살아가야지요."

"그 대사 되게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 같네요."

흐흐 웃은 조골석이 인식표를 성 밖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멀리서 금속조각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떠오르지도 않을 옛 기억은 안녕이다.

"안녕, 무슨무슨스키."

"이름이 스키로 끝났어요?"

"하하!! 그냥 러시아 출신이니까 스키로 끝나지 않을까 싶어서 막 씨부려본 겁니다."

그는 로브를 조여매고는 성 안의 어딘가로 사라졌다.

등에 걸린 검은 기관포가 달빛에 반들거렸다.

조골석을 보낸 나는 성벽을 마저 순찰하며 작게 읊조렸다.

"드디어 내일이네."

= 정말요? 장담할 수 있어요? 저대로 포진한 게 한 며칠은 되지 않았어요?

"내일 아침 여섯시야. 날 믿어."

첫번째 재앙, 영원한 순회의 침공.

드디어 내일 시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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