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진흙 속에 피어나는 (4)
* * *
주거구역으로 달렸다.
천막을 허겁지겁 걷고 나오자마자, 하늘에 폭죽이 터지는 것이 보인다.
일인군단이 보내는 총공세의 시작 신호다.
크르아아아아───!!!!!!
그에 부응하듯, 사룡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썩어버린 성대에서 울리는 기괴한 포효.
드래곤 피어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개념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이 순간만큼은 온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 이, 이거 용이에요?? 악마가 왜 여깄어요!!! 불공평해!!!
'지도 악마면서.'
평소라면 그렇게 쏘아붙였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목구멍으로 삼켰다.
시급한 일을 앞두고 농을 칠 정도로 경우 없는 년은 아니다.
나는 주하연이 사룡을 쳐 날려버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각 구역을 계속 뛰어넘었다.
부르르
그렇게 달리고 있자니, 돌연 일인군단의 뼈가 향하는 곳이 바뀌었다.
그냥 주거구역에서 주거구역의 상공으로.
= 앗! 보인다!
뼈가 가리키는 방향을 올려다봤다.
마법진을 굴리는 일인군단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초원의 태양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함께.
"이런!"
나는 놈의 속셈을 눈치챘다.
오래 끌 것 없이 대단위 마법으로 주거구역을 단번에 박살내려는 것이다.
주거구역에는 아직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자칫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내가 경악하든 말든, 일인군단은 곧 왼팔을 들어 기계를 작동시켰다.
이해하기 힘든 비명이 사방에 울리며 기하학적인 초차원적 다면체가 나타난다.
정이십면체 안에 정육면체, 정육면체와 맞물리는 구, 테서렉트를 관통하는 직선
수많은 도형이 난립하며 맞물리는 그 모습은 척 봐도 대마법에 비견하는 묘리를 띠고 있었다.
= 으아악! 저 미친놈! 영웅님!!
"어쩔 수 없나!"
바닥에 토템을 꽂고 브로치를 어루만졌다.
번개의 정령이 한가득 모습을 드러낸다.
와~ 보라순이야!
저 위에건 뭐지? 으응
노랑노랑한 정령들이 스파크를 파직거렸다.
나는 지체없이 쪼꼬미들을 와락 껴안고 브로치를 뜯어내 들었다.
"얘들아!!!"
으, 으응?
나는 푸른 갈기를 작동시켰다.
싯푸른 번개가 길게 뽑혀나온다.
하늘에는 이미 새빨간 유성우가 생성되어 일인군단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의 몸을 맴도는 유성우는 곧 사막의 태양을 연상시킬만큼 불어나, 거무죽죽한 하늘 위에 훤득거렸다.
멸망의 날을 간단히 표현한다면 바로 저것일까.
위대한 대마법사의 혼을 착취하는 일인군단.
그에 맞서 푸른 번개를 일으키며 외쳤다.
"얘들아아아!!!!!!!!"
꽉 붙들어 쥔 푸른 갈기가 장엄한 투창으로 변한다.
그 길이만 해도 장장 7m.
황금빛 번개의 정령들은 푸른 갈기에 휘말려 붙으며 짜릿짜릿 환호를 지른다.
"달려들어어어어어어!!!!!!!!'
번개의 정령들을 수없이 붙인 뇌창.
창을 가로로 들고 허리를 한껏 뒤튼 뒤, 제자리에서 몇 바퀴 돌았다.
그리고, 시뻘건 유성우에 맞서 힘껏 창을 던졌다.
콰지지지지직!!!
황금빛을 두른 푸른 뇌창이 땅에서 하늘로 솟구쳤다.
벼락의 본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갈래번개.
감히 신적인 방전에 맞선 유성우들은 말 그대로 과자처럼 부스러져 버렸다.
"으아악!"
"뭐, 뭐야, 저게"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헌터들.
그들은 찌릿찌릿한 부스러기를 맞으며 이 장엄한 광경을 넋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
하지만 모든 유성우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주거구역의 변두리는 이미 처참하게 파괴.
그 안에 있던 헌터도 족히 수십은 사상을 당했으리라.
일인군단은 뇌창을 비껴내고는 이쪽을 내려다봤다.
텅 빈 안와가 자못 섬뜩함을 자아낸다.
'푸른 갈기는 어쩔 수 없어. 이 많은 사람이 죽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었단 말야.'
푸른 갈기는 내게 있어서 손꼽히는 강력한 수다.
제대로 맞는다면 일인군단을 탄두리로 만들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수.하지만 이 헌터들이 죽게 둘 수만은 없었다. 사람 한 명 한 명의 목숨도 소중하거니와 대전쟁에서 한 명의 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해서 입만 아플 뿐이니까.
일인군단이 내렸던 팔을 다시 들었다.
곧 하늘을 장악한 언데드 와이번 하나가 검은 광검을 그에게 던지듯 전달하고 사라졌다.
그의 애병인 라이티메디아다.
창공군단의 공수로 애병을 되찾은 일인군단.
그는 곧 검을 잿빛의 사기로 물들이며 안와에 적의를 넘실거렸다.
= 공중에서 검격을 날릴 생각이에요!
"나도 알아, 그 정도는!"
내게 대공수단은 한정적이다.
암기를 날린다고 해서 저놈이 간지러워 할 것 같지도 않고, 직접 날아가서 막아보자니 그건 명백히 자살행위다.
녀석의 팔과 등에 달린 마법구현기계를 먹통으로 만들지 못하면 일인군단을 정상적으로 상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 막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건지, 몇몇 헌터들이 방어진을 구축했다.
나는 기함해서 사람들을 말렸다.
"저기요!!! 막지 말고 피해요!!! 당신 진짜 죽어요!!!"
"나는 괜찮네, 용감한 아가씨! 여긴 내게 맡기고 어서 대피하게!"
"아니!!!"
용감하게 하늘로 방패를 치켜세운 중년의 A급 헌터.
일인군단은 그쪽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꽈과광!!!
"끄어으어억?!!"
아니나 다를까.
쓸데 없는 곳에서 용감했던 그는 몸이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이, 이 씨발창!!"
검격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간이빌라들.
무겁게 내리지르는 사기의 검격은 주거구역을 반으로 찢어버리기 충분했다.
"완전 찢었네, 씨발"
내가 하늘을 나는 일인군단을 망연히 올려다보고 있던 그 때.
뒤에서 천의린이 나타났다.
"뭘 그리 멍 때리고 있어? 저 새끼 막아야 될 거 아냐!!"
천의린이 반으로 갈라진 헌터를 붙잡아 다시 이어붙였다.
반으로 갈라졌던 헌터는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씹년아! 저걸 어떻게 잡아! 저 새끼 하늘 날고 있는 거 안 보이냐? 포탑이랑 요격도 거의 안 먹히는구만!"
나는 열심히 공격을 날리는 궁수와 마법사, 마도병기들을 가리켰다.
그들의 공격은 일인군단의 잿빛 투기에 닿지 못하고 스러져 떨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천의린은 호르몬 조절을 실패하고 약간 동요한 건지 내 어깨를 쥐고 다급히 흔들었다.
"너 주술사라며!!! 주술사라며어!!! 어떻게든 해봐!!!"
나는 천의린의 양손을 붙잡고 쳐내려 했지만 힘이 힘인지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손길에 몸을 맡기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놈을 추락시킬 방도를 계속 생각했다.
'저 새끼가 내려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침묵토템을 먹여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어. 하지만 놈도 뇌가 있는 이상에야 내려오지 않겠지. 젠장, 대체 왜 처음부터 날고 지랄이야.'
게임에서야 사람이 몇이 죽든 상관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내려오긴 하겠으나 놈을 저대로 둘 수는 없다.
검격 한 방에 사람 수십이 갈려나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으니까.
"."
그러고 보니, 놈을 굳이 공중전으로 꺾어서 땅에 내리꽂을 필요성은 없다.
마법구현기계를 먹통으로 만들기만 하면 저절로 땅바닥에 고꾸라질 테니까.
아하, 그렇다면 공중에서 한 방만 제대로 먹이면 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어떻게?라고 하기에는 너무 답이 명확하네.'
나는 힘없이 흔들리던 목에 힘을 줘 천의린의 코에 박치기를 날렸다.
불의의 공격에 놀라 물러난 그녀는 드디어 진정했는지 열심히 숨을 몰아쉬었다.
"미, 미안."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고. 저 새끼를 어떻게든 떨구면 되는 거잖아? 결국 네가 투기장 펼쳐서 시간 끌겠다, 이거 아냐?"
"뭐? 그걸 어떻게"
"네가 할 생각이야 뻔하지 않아? 설마 앞에 강대한 적을 두고 도망을 칠 위인은 아니니까."
나는 부적을 하나 펼쳐들고는 글씨를 써넣었다.
써넣은 글자는 부를 소?.
부적은 곧 둥근 고깔처럼 말려 자색으로 불타올랐다.
[뿔돌아!!!!]
나는 그것을 입에 대고 유니콘을 불렀다.
곧, 허공을 가로지르는 발굽소리가 하늘에 다각다각 울려왔다.
"우오으옷!!!"
유니콘의 등에는 기관포를 든 조골석이 겨우겨우 매달려 있었다.
나는 내 앞에 멈춰선 유니콘의 등 뒤에서 조골석을 팽개치듯 끌어내리고는 천의린을 잡아 끌어 함께 탑승했다.
왠지 위대한 차 도둑이 된 기분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자아ㅡ!!"
뿔을 흔든 유니콘이 하늘에 발굽을 딛었다.
말이 하늘을 나는 것이 그리도 경악스러운 일이었는지, 천의린은 내 옷자락을 찢어져라 움켜쥐었다.
"뭐, 뭐야!!! 뭔지 설명은 해줘야 될 거 아냐!!!"
"유니콘을 타고 일인군단을 떨어트릴 거야!!"
나는 침묵토템을 랜스처럼 비껴들었다.
천의린은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눈치챈듯 눈을 크게 떴다.
"야! 설마 이대로 돌진해서 들이박을 생각은 아니지?!"
"들이박아야지! 나름의 전략은 있지만!"
천의린의 눈동자에 갈등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곧 혈류를 조절하며 몸을 달구었다.
뭔진 모르지만, 나를 믿고 함께 들이박기로 결심한 것이다.
"설명해봐!"
유니콘과 함께 뛰어오르며, 나는 천의린에게 나의 전술을 설명했다.
약소하지만, '신의 지팡이' 작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