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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13화 (113/119)

〈 113화 〉 진흙 속에 피어나는 (5)

* * *

생전에, 일인군단은 영웅이었다.

단신으로 대륙 최후의 도시를 몇달이나 지켜낸 영웅.

그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죽을 때마저도 제자리에 칼을 짚고 굳건히 서서 죽었다고 한다.

실로 영웅스러운 최후다.

하지만 생전의 결의는 사후에 씻을 수 없는 결점으로 나타났다.

더는 배후에 지킬 것이 없음에도, 혹시 뒤에 있는 이가 다칠까봐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

전략적 후퇴는 있을 지언정 전투의 회피는 결단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덕에, 일인군단은 아예 저지하지 못할 적은 아니다.

안정성이 낮더라도 충분히 화력이 강한 공격수단이 있다면 저지가 아니라 처치까지 노려볼 수 있는.

어떻게 보면은 호구 같은 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인군단의 강력함은 본신의 스펙에서 나온다.

단 한 명임에도 영원한 순회의 '군단'이라는 대접을 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

뛰어난 침투 능력이나 전술의 의외성도 그에 한몫하겠지만 가장 큰 것은 그가 군단의 이름에 걸맞는 힘을 가진 까닭이다.

'어설픈 공격은 절대 통하지 않아.'

앵간한 공격에는 눈도 깜짝 안 한다.

기왕 할 거라면 놈을 일격에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할 터.

물론 내게는 그럴 힘이 존재하지 않지만, 내 밑의 친구에게는 그런 힘이 존재한다.

순수 속력만으로 상대성원리를 증명하는 일각수에게는 말이다.

"달려어어어어!!!!"

내 외침에 부응한 일각수가 세차게 발을 딛었다.

영원한 순회가 뿜는 검은 안개도, 그 위에 드러난 하늘의 푸르름도 거의 희미해지고야 마는 대기의 열권.

나는 신수의 오색영롱한 힘으로 보호받으며 검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이제 땅 아래에 펼쳐진 것은 이제 자그마하게 보일 뿐인 대륙과 바다.

열권의 희미한 대기를 느끼며, 나는 부적을 적어내렸다.

하늘을 뜻하는 건? 위에 다시 건?을 적는다.

이곳이야 말로 하늘 위의 하늘.

힘을 상징하는 하늘에 또 하늘이 겹쳤으므로, 그야말로 정점.

타협도 양보도 필요 없다.

양괘 여섯이 겹쳤으니 그야말로 무한한 에너지

인간이 담기에는 너무 강력한 하늘의 일이나, 진짜 하늘 위의 하늘에 닿은 지금이라면 그 힘을 조금이나마 빌릴 수 있을 것이니.

천외천.

육십사괘?四?, 건위천??.

"때려죽이자아아아아!!!!!"

송곳니 학살자는 건위천의 힘을 받아내며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일각수는 다시금 평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일각수의 속력, 건위천의 성세.

거기에 신수의 오색찬란한 힘과 빠를수록 날카로워지는 송곳니 학살자까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대악마라도 제대로 맞으면 즉사다.

가만히 서서 맞는다는 가정하에 말이지만.

= 저도 가요!!

퍼베이시브 에픽이 거칠게 휘날리며 황금의 종소리를 울렸다.

신수와 영웅이 하늘에 꼬리를 남긴다.

"하으아아아아아!!!!"

눈 한 번 깜빡하니 구름을 뚫고,

다시 눈동자를 또렷히 뜨니 전장이 코앞에 있다.

순간적으로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된 나는.

뒤늦게 우리의 존재를 알아챈 일인군단에게 칼을 내리쳤다.

"!"

빠지지직

속력이 멎는다.

날카롭게 베어내는 촉각 대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측의 검 뿐만 아니라 내 손목에서도.

"윽 흐아악"

손목에서 으깨진 뼈들이 우그럭댄다.

온갖 힘으로 보호받고 있었음에도 자비없이 깨져나간 것이다.

일인군단은 양손으로 검을 받치고 송곳니 학살자를 막아내었다.

놈의 검도 금이 가는 등 결코 멀쩡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깔끔히 막아낸 모양이다.

"아쉽군."

일각수가 길게 울며 빛을 일으켰지만, 일인군단은 검에 싸인 사기를 한번에 터트려 나를 낙마시켰다.

세상이 뒤집어지며 천천히 땅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나는 고통을 억누르고는 작게 비웃었다.

"땅 밑에서 봐."

그 순간.

놈 위에 드리운 별빛을 가리우며, 나무토막이 퍼렇게 훤득였다.

나보다는 느리지만 제법 빠른 속도로 떨어진 그것은.

시간차 공격을 대비하지 못한 일인군단의 머리 위로 추상같이 떨어졌다.

"뭐"

콰직!

일인군단은 급히 왼팔을 들어 막았고, 나무토막은 허무하게 부서져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계획의 성공을 의미했다.

놈의 왼팔에는 영혼을 착취하는 마법구현기계가 장착되어 있었고, 그 나무토막은 무려 침묵토템이었으니.

쪼개지는 나뭇조각들이 다시금 모여들어 어떠한 형상을 이룬다.

다름 아닌 토템에 새겨져있던 재버워크.

기괴하게 생긴 그것이 괴기하게 웃으며 놈의 마법구현기계를 꽈득, 물어뜯었다.

­ #, ?※#@*☆£??─!!!

기계에서 알 수 없는 신음이 울려퍼지며.

마법구현기계가 빛을 잃었다.

비행능력을 잃은 일인군단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덤으로─ 꺼져어어어──!!!!"

침묵토템을 휘두른 천의린이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일인군단은 검날을 대어 별부수기를 손쉽게 막아내었으나, 지지기반을 잃은 놈은 그 반동으로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의린아!!"

내가 팔을 내밀자, 천의린이 다가와 내 손목을 세게 낚아챘다.

뼛조각들이 조직 사이사이에 파고들어 아파 뒤지는 줄 알았지만 그것도 순간.

천의린에게 치유를 받고 나니 순식간에 멀쩡해진 뒤였다.

'어떻게든 됐네.'

일각수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에 천의린에게 침묵토템을 쥐어주고 공중에 떨어트렸다.

나는 그녀보다 높이에서 그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일인군단을 향해 떨어졌고, 그 덕에 내게 신경이 팔린 일인군단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떨어져내리는 천의린의 침묵토템을 피하지 못했다.

모두 하르미아 시스템의 정밀한 계산이 동반된 치밀한 작전이었다.

"이제 반이야, 의린아."

"정말 소방대라는 게 오긴 하는 거지?"

"당연하지."

나는 태양이 떨어진 곳에 빛나는 은하수를 흘깃거리고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선도 여유가 생겼을 테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천의린이 주먹에 신성력을 가득 채웠다.

"그럼 한 번 뒈질 때까지 해보자."

어깨가 부서져라 팔을 당긴 천의린이 땅바닥에 성권??을 찍으며 착지했다.

검게 물든 흙먼지가 사방을 자욱하게 메꾸었지만, 검은 흙먼지는 곧 신성력에 지져지며 밝은 황토색으로 바뀌었다.

신성한 투기장이 열렸다.

***

태양이 떨어진 뒤, 대신 별빛이 떠올랐다.

검성의 절기인 은하염허????가 드디어 발동된 것이다.

"우리 검성 아저씨는 아주 여유가 넘치시나본데?"

천구에 박힌 별빛은 간간히 기갑군단 한가운데에 떨어지며 무검희와 패창을 도왔다.

안 그래도 슬슬 기갑군단을 베는 게 지겨워지던 참인 그녀로서는 바라마지 않던 지원이지만, 거대한 해골의 거병이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검성이 제 할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괜히 오지랖을 부리는 것 같았다.

"끌끌. 그럴 리가 있나. 아주 고군분투하고 있을 게 훤히 보이는구만."

패창은 그리 말하면서 시체전차 수십 대를 일거에 찢어발겼다.

이미 시체조각으로 뒤덮여 피아식별이 불가할 정도로 더럽혀진 패창.

가소희는 혹시 자신도 저런 꼴을 하고 있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두루마기를 털어내었다.

"고군분투는 아니지 않아? 우리 선배님이 마냥 노는 것도 아니고!!"

월왕구천을 힘껏 쥔 가소희가 몸을 낮추고 빙글 돌았다.

힘껏 올려친 개화?花가 일렬로 달려오는 거대괴수들을 삽시간에 침묵시켰다.

분홍색 꽃잎이 전장을 일순간 밝게 물들였다.

"아무튼 간에 지금 달려오는 저 새끼 있잖아, 누가 막을래? 할배."

"자네가 더 전장유지력이 높지 않겠나? 내가 가지."

"가끔 할배는 자기가 늙은 걸 인정 안 한단 말이지? 그 노구를 끌고 저 앞에 가면 진짜 돌아가셔."

"클클, 말솜씨 하고는 푸릇팔팔한 낭랑십팔세인 네가 알아 하거라."

"낭랑십팔세는 누가"

킬킬 웃어보인 패창은 핏물을 뱉고는 창을 끌며 사라졌다.

자기 편마저 짓밟으며 덮쳐오는 저것을 상대하기에는 자신이 한없이 늙었으므로.

가소희는 흉흉히 대오를 이룬 기갑군단의 전열을 마저 베어넘기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겉에는 벗길 수 없는 비늘, 속에는 무쇠같이 단단한 통뼈를 욱여넣은 견고의 제왕.

기갑군단장이 수천의 다리를 놀리며 가소희에게 짓쳐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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