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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14화 (114/119)

〈 114화 〉 진흙 속에 피어나는 (6)

* * *

신성한 투기장.

천의린이 직접 해제하거나 어느 한쪽이 죽지 않는 이상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신성결계의 일종이다.

"."

그 속에서, 일인군단은 자신을 구성하는 뼈마디의 연결이 약해진 것을 느꼈다.

신성한 투기장은 그 자체로 작은 신전.

아무리 강한 언데드라도 쉬이 몸을 가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뚫고 나가기는 힘들겠군.'

무슨 조화인지는 몰라도 결계의 구조가 아주 조밀하다.

약화된 그의 힘으로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일인군단이 힘이 빠져나가는 무릎을 디디고 칼을 짚어 섰다.

그는 뒤늦게 광검에 크나큰 흠이 간 것을 발견했다.

방금의 공격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간 대검의 검신.

그 균열로 시꺼먼 연기가 전기밥솥의 증기마냥 맹렬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제법이군."

일인군단이 고개를 돌렸다.

왜소하고 강력한 신성투사와 코트에 망토를 걸친 해괴한 옷차림의 소녀.

검을 쥔 손아귀가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일인군단이 둘에게 말을 건넸다.

"하늘을 뒤덮은 유성우에도, 땅을 뒤흔드는 불길한 검격에도, 그에 더해 전쟁의 비참함에도 굴하지 않고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그 용맹 저 밖의 어느 생자들보다 낫구나."

천의린이 신성력의 권풍을 날렸다.

일인군단은 맨손으로 가볍게 튕겨냈으나, 그를 지나친 권풍은 투기장의 벽에 맞고 증폭되어 그에게 곧바로 반사되어 돌아왔다.

결국 손날을 세게 휘둘러 권풍을 상쇄한 일인군단은 해골에 음영을 짙게 드리웠다.

"하지만 그대들은 용맹이 가진 역날을 모르겠지."

생전에, 그는 누구보다 용맹했다.

단 한 걸음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며, 적이 나타나면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 싸웠다.

그는 늘 전진, 또 전진.

지킬 것이 있을 때에는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하지만 후퇴 없는 전진만을 반복하던 그는.

걸음 닿는 곳이 붕괴하는 낭떠러지임을 알면서도 계속 나아갔다.

상인이 자신의 장사 밑천이 든 수레를 두고 도망칠 수 없는 것처럼.

그 또한 사람들을 두고 뒷걸음질칠 수 없었으므로.

"너희들은 실패를 두려워했어야 했다."

영원한 순회가 봉인한 광검의 빛이 서서히 돌아온다.

그는 옛 실패를 함께한 광검을 바스라져라 쥐고 두 소녀에게 경고했다.

"물러날 곳 없는 용맹은 죄다."

어느 쪽도 물러날 곳이 없는 신성한 투기장 아래.

옛 영웅이 잿빛 사기를 머금었다.

***

스피릿의 양을 가늠한다.

육십사괘인 건위천??을 사용했지만 이전처럼 스피릿이 텅텅 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은 스피릿이 엄청 많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은 내가 제일 좋아.'

온몸에서 신성력을 발산하는 천의린.

하지만 저 강맹한 기세는 사실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신성한 투기장은 신성력과 더불어 생명력까지 게걸스레 빨아먹는 위험한 기술.

결판을 내기도 전에 천의린이 먼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는 것은 일인군단도 마찬가지.

자외선 살균기에 들어간 스테인리스 컵처럼 몸 곳곳을 신성력에 쬐이고 있는 이상은 점점 몸이 둔해질 수 밖에 없다.

광검의 봉인이 깨져 점점 빛이 돌아오는 것도 그렇고.

"."

그 사실을 아는 건지, 잠깐 가만히 서있던 일인군단이 우리에게 뛰어들었다.

천의린은 기다렸다는듯 내 뒷덜미를 잡고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졸지에 뒷덜미가 잡힌 모습이 된 나는 그녀에게 크게 외쳤다.

"나 혼자 피할 수 있거든!!"

"됐어!! 너 혼자 뭐가 될 것 같냐!!"

천의린은 내 뒷덜미를 쥐고 옆으로 힘껏 밀쳤다.

기다렸다는듯, 공중에서 분열하듯 떨어진 우리의 간격을 일인군단의 서슬퍼런 검격이 휘어갈랐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른다.

'진짜 까딱하면 뒤지겠는데!'

그러든 말든, 일인군단의 시선은 정확히 내게 향하고 있었다.

나를 노리는 것을 확인한 직후, 손아귀 한가득 암기를 쥐었다.

"!"

하지만 그의 검격은 내가 아니라 천의린에게 향했다.

뒤를 치려고 했던 천의린은 당황스럽게 가드를 세웠으나, 왼손의 팔꿈치 아래가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어쨌든 눈먼 공격이었던 관계로 팔 하나로 그치긴 했지만 말이다.

"그딴 수를!"

휑한 팔꿈치를 날아가는 팔에다 낚아채듯 갖다댄 뒤 신성력으로 이어붙인 천의린.

팔은 깔끔히 붙었지만 신성력은 그만큼 날아갔으리라.

"일인군단은 그딴 장난질로 딴 칭호였냐ㅡ!!!!"

곧이어, 천의린이 일인군단에게 별부수기를 날렸다.

일인군단은 왼발을 뒤돌려차듯 뻗어 배후로 덮쳐오는 천의린의 명치를 까 날려버린 뒤, 내가 떨어질 착지지점으로 대검을 휘둘러왔다.

­ 예상은 했지만 꼭 전략가처럼 싸우네요.

칠흑여제의 말대로,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계산된 바가 있다.

무작정 달려드는 타입보다는 훨씬 까다로운 유형이지만, 나는 놈의 계산을 벗어날 수를 얼마든지 갖고 있다.

황동혼구를 찬 왼팔을 아래로 뻗었다.

금속을 찰각거린 황동혼구가 아래에 숨기고 있던 글씨를 드러냈다.

숨겨진 글자는 포?.

황동혼구가 땅으로 주술의 포탄을 쏘아 내 체공시간을 잠깐이나마 늘렸고, 놈의 칼날은 허무하게 공기를 갈랐다.

자연스럽게 착지한 나는 오른손을 연거푸 세 번 휘둘러 암기를 하나씩 쏘아냈다.

생전의 트라우마로 공격을 피할 수 없는 놈은 검을 대고 암기를 모두 막으려 들었지만, 채 두번째를 막기도 전에 천의린이 다시 한 번 놈을 덮쳐왔다.

"하아아아아!!!!!"

새벽울림.

땅꺼트리기.

머리 위로 심상치 않은 공격이 오는 것을 감지한 일인군단.

놈은 암기를 쳐내던 검을 급히 들어 천의린의 급강하를 막았고, 내가 쏘아낸 두번째와 세번째 암기는 놈의 척추 사이에 정확히 꽂혀들었다.

"그딴 허접한 협공으로 날 이기려는 거냐!"

척추가 꿰뚫려 순간 다리의 제어를 잃은 일인군단은 자리에서 비틀거렸으나, 그것도 잠시.

척추를 비틀어 암기를 부숴버린 일인군단이 대검 위에 올라탄 천의린을 도리어 바닥에 처박아버리고는 그 위로 검을 찍어내렸다.

"조심해!!!"

하지만 천의린은 이미 놈의 발에 단단히 깔려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나는 급히 부적을 감은 암기를 날려보냈다.

"크윽!"

그런데 암기는 일인군단이 아니라 천의린의 팔뚝에 꽂혀들었다.

내가 실수를 했다 생각한 일인군단은 그대로 검을 내리찍으려 들었으나, 그것은 큰 실수였다.

"하아아아아!!!!"

암기가 꽂힌 손으로 급하게 검면에 주먹을 날린 천의린.

무겁게 내리찍는 대검을 비껴내기엔 형편없는 공격이었으나, 그 그녀 자신도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이 깃들어 있었다.

꽈앙ㅡ!!

"윽?!"

천의린의 심장으로 떨어지던 대검은 대신 옆의 흙바닥을 무겁게 파고들었다.

내게로 주의를 옮긴 일인군단이 검을 빼내는 사이 신성력을 폭발시켜 구속에서 탈출한 천의린.

그녀는 뒤늦게 자신의 팔에 파고든 수리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력力.

"씨발!!! 깜짝 놀랐잖아!!!"

"도와줘도 지랄!"

조금 폭력적인 방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내게 원거리 보조수단이 있는가, 뭐가 있는가.

"문제는 너였군."

일인군단의 검은 이미 삼할 이상이 밝게 물들어 있었다.

방금의 공격으로 검의 봉인이 더 무너져버린 것이다.

"신성투사도 성가시긴 하지만 우선은 네가 먼저다."

= 네 검이나 간수 잘하시지! 제 칼도 제대로 못 가누는 게 무슨 우리 영웅님을 죽이겠다고!

일인군단이 검병을 세게 쥐었다.

검을 쥔 손아귀가 빛으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게 보인다.

"영웅? 영웅이라? 흐흐"

옛 영웅은 지금의 어린 영웅에게 작은 비웃음을 보냈다.

"내가 말했지 않은가. 물러설 곳 없는 용맹은 죄라고. 살아남아 사람을 도와야 할 영웅이 알아서 사지로 들어가는 게 어딜 봐서 영웅이란 말이냐."

일인군단이 검에 잿빛 사기를 모은다.

부서져버린 검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힘만을 쓰고 있었지만, 이제는 순식간에 몰아쳐 우리를 쓸어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기를 끌어모으자 지축이 크게 뒤흔들린다.

광검의 봉인이 더욱 불안정해져 더 많은 연기를 내뿜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신성한 투기장이 내뿜는 신성력을 중화시켜 일인군단에게 조금의 여유를 줄 뿐이었다.

"네가 하나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나는 빈 손으로 검집을 꽉 쥐었다.

놈이 해올 공격은 이미 알고 있다.

"살아남은 영웅이 사람들을 구하는 게 아니라."

밝았던 투기장이 까만 안개로 물든다.

일인군단의 검이 점점 위로 향하면서 제 빛을 되찾았던 황토는 다시금 검게 변해 발 밑을 꺼림칙하게 했다.

"영웅이 명백한 죽음으로 행진할 때 사람들이 살아남는 거야."

안와에 어둠을 드리운 해골이 땅에 검을 내리찍었다.

거대한 상어떼가 몰아치듯 덮쳐오는 잿빛 칼날들.

투기장의 천장을 긁으며 파도처럼 몰아치는 그것들 사이에서

나는 하르미아 시스템의 동화율을 올렸다.

[역경을 헤치는 영웅의 칼 피하기 (­76%)]

[잔여 동력: 2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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