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16화 (116/119)

〈 116화 〉 격멸, 종식

* * *

정시현과 천의린이 어떻게 북성으로 후송된 뒤.

일인군단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녀가 도착했다.

"너도 주술사인가."

일인군단이 손아귀에 박힌 패를 뽑아 던져버렸다.

그새 기능정지에 면역이 생긴 건지 마법구현기계는 금세 정상화되었다.

"주술사라는 족속이 이렇게 성가실 줄은 몰랐군."

"호오 그 마도구는 굉장히 비인간적이구나. 재자가인을 사후까지 착취하다니."

무녀는 일인군단보다 마법구현기계에 흥미를 보였다.

영혼을 현세에 묶는 것은 쉽지만 저토록 효율 좋게 착취하는 것은 생각 외로 어려운 기술이기에.

'어째선지 그 코쟁이들이 하는 짓이랑 비슷한 것 같구나.'

무녀는 그런 잡다한 생각을 털어내고 주변을 슬쩍 살폈다.

다행히도, 하르미아는 근처에 없는 것 같다.

"해골바가지."

"뭐지."

"그대는 쌓아온 죄가 많겠지. 아니냐?"

일인군단은 무녀의 의미심장한 말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대체 무엇이 내 행동을 재단한단 말이냐. 선과 악의 경계를 감히 누가 정할 것이며, 산 자가 죽은 자를 심판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후후. 그런가? 그렇다면 풀어서 다시 물어보마. 네놈이 지금까지 벌인 일은 과연 떳떳한 일이냐? 네놈의 소중한 사람들을 되찾기 위해 원수의 첨병이 되어 애꿏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것은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이냐? 그것에 대해 네놈은 정녕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 것이냐?"

퍼어엉!

일인군단의 손아귀가 마법을 뿜었다.

무녀는 성 전체에 덮인 하르미아의 환상을 조작해 일인군단의 공격을 방어했다.

"네년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어째선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수상한 무녀.

일인군단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른다.

"글쎄? 본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캐낼 수 있느니라. 가령 사연 있는 물건으로부터 과거를 본다든지, 그런 것 말이다."

보통 사이코메트리라 부른다지, 아마?

무녀는 광검으로부터 깨어져나간 검은 보석을 흔들어보였다.

죽은 영웅이 일인군단이 되던 순간부터 존재한 물건이다.

"지키지 못해 죽은 사람들을 되돌리기 위해 적의 첨병이 되었다 후후! 아주 슬픈 사연이로구나. 영원한 순회가 그딴 약속을 지킬 거라 생각한 것이냐? 그대는 자신의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단 말이냐?"

"."

자신의 군단장으로서 싸워주면 죽은 이들의 의식을 되돌려주겠다는 영원한 순회의 약속.

마주한 재앙이 얼마나 믿지 못할 놈인지도, 의식 있는 언데드가 얼마나 만들기 힘든 존재인지도 잘 아는 그였으나 죽은 영웅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일인군단의 단편적인 과거를 본 무녀가 환상을 조작해 기억 속의 장면을 하나하나 재생했다.

영웅이 일인군단이 되던 순간, 마도구에 갇혀버린 연인을 마주하고 흐르지 않는 눈물을 닦던 나날, 어느새 연인의 알 수 없는 외침을 성가시다고 여기게 된 그 자신.

그리고 의식을 돌려받을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책을 어느샌가 잃어버린 그 날.

일인군단은 죄악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네놈이 과거에 무슨 일을 하며 영웅이라 불렸는지는 잘 모르니라. 하지만 스러진 영웅으로서 지금까지 벌인 짓을 되돌아볼 때 정녕아무런 죄악감도 느낄 수 없었단 말이냐?"

"나는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구차하더라도 자신의 실수로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내야만 했다.

내가 잘못한 일이니 내가 다시 돌려놔야만 했다.

나처럼 의식 있는 언데드가 되더라도 다시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제발, 되돌릴 수 있는 구석이 있기를 바라면서.

"네년은 그걸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믿는다는 의미를 모른다. 그들의 기대는 날 강하게도 했지만 나를 지치게끔 만들기도 했다. 너 따위가 그런 진통제 같은 우러름을 안단 말이냐."

일인군단의 마법공학기계가 비명을 지른다.

잊은 과거가 일인군단을 잠식한다.

"합리화는 그만두거라."

무녀의 스피릿이 사기에 맞서 흘러나오며 주변의 환상을 잡아 조작한다.

"네놈이 지키던 십만의 사람만큼, 네놈에게 죽어나간 일천만의 사람도 소중하다."

무녀가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거울을 수없이 마주댄 것처럼, 수십의 무녀가 허공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걸어나온다.

"그것을 알았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지."

수십의 무녀가 다시 한 발자국.

이번엔 수백의 무녀가 일인군단을 에워싼다.

그 속에서, 일인군단은 말 그대로 일인일 뿐이었다.

"내가 잘못한 거냐. 그럼 나는 나를 믿고 따라준 이들을 배신했어야 한다는 말이냐!"

일인군단이 그 속에서 비참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의 죄악감은 이미 그 자신을 좀먹고 있는 상태.

아무리 악을 써도 무녀의 주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대는 그대가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파멸할 것이니, 선택하라."

수없이 불어나던 무녀의 걸음이 불시에 멎으며.

일인군단의 시야가 뚝 암전된다.

""업화에 타올라 재가 되겠는가, 만한에 파묻혀 부서지겠는가?""

어느새 광검과 옛 연인을 잃은 그는, 허무함에 탄식하며 고개를 떨궜다.

"둘 다."

그의 대답을 수천의 웃음이 받는다.

암흑 속에서 수없이 뻗어나온 손아귀는 일인군단의 뼈마디를 갈갈히 부수었다.

반은 불타고, 반은 얼어붙으며.

일인군단은 그렇게 잘못된 속죄의 고리를 끊었다.

***

"저 좆같은 녀어어어언!!!!!"

창공군단장이 악을 썼다.

주하연이 사룡을 향해 마법봉을 마구 휘둘렀다.

"브릴리언트!!!! 떨어진 시계처럼 샬라리이이이ㅡ!!!!!"

일전의 상큼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마법영창.

상큼함 대신 악바리가 가득 들어간 마법주문은 실로 그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 커아아아악!!!

흉악하게 반짝이는 주하연의 일격이 마침내 사룡의 머리를 반 정도 터트린 것.

사룡이라는 이름답게 곧이 곧대로 죽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큰 타격임에는 창공군단장도 이견이 없었다.

"젠자아아앙!!!!!!"

머리가 터져 균형을 잃은 사룡 위에서 군단장이 비참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그 순간 심히 불순한 생각을 품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사룡을 버리더라도 저 북성에 브레스를 한 번 뿌리고 보자!'라고 하는 최후의 발악 비슷한 작전을 떠올린 것이다.

"아아아아아악!!!!!"

창공군단장은 군단제어력의 대부분을 사룡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뇌가 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으나,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뜻 밖에도 마법소녀는 성벽에 내려앉아 북성을 지키기보다 사룡을 끝장내는 것을 우선으로 삼은듯 했으니 말이다.

'흥! 사룡은 주지만 산성은 가져가겠어!'

성이 아니라 사룡을 향해 떨어지는 주하연을 비웃으며.

창공군단장은 사룡의 아가리를 북성으로 향했다.

"안 돼!!!!"

하지만 그런 사룡을 막으려고 달려든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애시드라 티어즈, 김동규였다.

"대, 대장님!"

"말리지 마라!! 나는 저걸 막아야!"

"그게 아니라, 성벽에 서서 막으면 뭐가 되긴 됩니까?"

저 멀리 떨어진 사룡의 브레스를 성벽에 서서 막겠다니.

그는 멀쩡할지 몰라도 성은 모두 녹아내린 뒤가 될 것이다.

"그, 그럼 어쩌냐!! 우리 길드원들이라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그야 대장님이 직접 저쪽으로 가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뭐?"

"얘들아!!! 대장님을 날려버리자!!!"

산성비의 길드원들이 김동규에게 앞다퉈 달려들었다.

사실 신체능력 자체는 별 거 없는 김동규는 식겁해서 길드원들을 말리려 들었지만, 길드원들은 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기 길드장을 던져버리는 것도 불사할 정도로 의리로 가득 찬 이들이었다.

"자, 잠깐!!! 이건 아니야!!!"

"간다아아아!!!!"

길드원들은 다함께 김동규의 발목을 붙잡고 휭휭 돌리다가, 곧 사룡의 아가리를 향해 날려버렸다.

사룡의 끔찍한 아가리가 삽시간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김동규는 두려움에 절규했다.

"으, 으어아아아아악!!!!!"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힘을 모아 던진 투포환.

김동규는 쾌속으로 사룡의 아가리에 짓쳐들었다.

"쏴라아아아!!!!"

때맞추어 창공군단장이 산성 브레스를 쏘라 명령을 내렸고.

대가리가 부서진 사룡은 목구멍 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명령에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자, 잠까아아안!!!!!"

흉부로부터 넘쳐든 시독이 김동규를 때린다.

온 몸이 산으로 이루어진 김동규는 살기 위해서라도 목구멍을 잡고 버티는 수 밖엔 없었다.

한 남자의 살기 위한 투쟁은 아주 자명한 결과로 나타났다.

­ 끄, 끄르아아아아악!!!!

시독과 김동규의 산이 부딪히며 사룡의 목구멍을 녹여버린다.

이내, 역류하기 시작한 시독은 목구멍 대신 사룡의 허술한 몸에 구멍을 내고 탈출했고.

그렇게 사룡은 공중에서 장엄한 폭발을 일으켰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