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18화 (118/119)

〈 118화 〉 정시현 헌 칼 쓰듯 (2)

* * *

칠지도.

삼국시대 시절에 백제가 야마토에 주었다는 검으로, 한국인이라면 아무리 공부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유물이다.

"네, 네가 왜 우리나라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앗!!! 분명히 내란 때 소실되었다고 알려졌거늘!!"

대경과 대노의 사이를 오가는 무녀가 대뜸 가소희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둘의 신장 차이로 인해 무녀가 가소희에게 매달린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호, 혹시 네가 훔친 건 아니겠지?! 설령 그렇다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응? 아냐, 아냐. 훔치기는 뭘 훔쳐.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 막장은 아니다."

가소희는 무녀의 손을 피해 칠지도를 높이 들었다.

무녀의 태도를 보고 당황할 법도 한데 다 예상했다는듯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한국이랑 일본이 공동사업을 하던 때가 있었거든. 그 때 얻어낸 거야."

"무, 무슨 공동사업을 말이냐?"

"왜, 그… 밀수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걸 단번에 싹 몰아 잡아서 감옥에 처넣자, 이런 사업이 논의된 적이 있거든. 비밀리에 추진된 거라 왕따 히어로인 넌 모르겠지만."

정작 국제 감시망을 피해 죽음의 무도를 밀수해온 가소희가 참여할만한 프로젝트는 전혀 아니었다.

"물론 나도 참여했지. 헌터협회의 칠성으로서 빠질 수 없는 프로젝트였으니까… 뭐. 왜 날 그렇게 쳐다보니?"

"아무것도 안 했거든요."

"미안. 내 망상이었나보네. 아무튼! 그런데 이 사업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단 말이지? 나도 그렇지만."

가소희가 무녀를 달래서 다시 자리에 앉혔다.

무녀를 떼어낸 그녀는 살포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대한해협의 암시장은 단순히 때려잡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 그 암시장은 이미 실질적인 무역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어."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세상에 경제란 건 참으로 어렵기 짝이 없으니.

차원충돌 전만 해도 글로벌 경제니 뭐니 하면서 인류가 온 대륙과 해양을 파먹고 살던 시절이었지만, 딱 다섯 나라를 빼고 전 인류가 싸그리 죽어버린 이 세상에선 기존의 경제학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이제 완전히 내수경제로 돌입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근처에 무역할 나라라곤 하나 없고, 그렇다고 저 머언 대륙에 연락도 잘 안 되는 나라랑 무역하기에는 마해를 가로지를 방법이 없고. 자연히 예전보다 살기 힘들어졌잖아."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가소희가 허리를 구부렸다.

"그런데 한국이랑 일본은 무역하기가 참 쉽단 말이지? 솔직히 대한해협이 그렇게 위험한 바다도 아니고, 부산에서 보면 저 멀리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까."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냐?"

"나는 솔직히 지금 경제정책이 마음에 안 들어. 높으신 분들은 무역의 위험성이 생각보다 낮다는 걸 아직 모른단 말이지? 그 밀무역 시장이 양국의 경제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데…그래서 내가 그 공동사업에 어깃장을 놨어."

무녀는 황망한 얼굴로 가소희를 쳐다봤다.

아무리 그래도 국제적 사업을 독단으로 깨버리는 게 가당키나 한 짓인가?

"…물론 나도 혼자 한 짓은 아냐. 제각기의 이유로 암시장의 철폐를 반대한 세력이 꽤 많았단 말이지? 그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암시장에서 꿀을 빨고 있든, 암시장 철폐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가졌든.

사업의 진척에 훼방을 놓고 싶어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차저차 해서 사업 자체를 좌초시키는 건 성공했지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넌 칠지도가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궁금한 거잖아?"

"사실 나도 네 지독한 암투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노라."

"암투? 그딴 고상한 말을 쓸 정도로 깨끗한 과정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칠지도는 일본의 어느 기업이 내게 로비를 하면서 넘긴 거야."

담보.

보증만큼이나 두려운 단어다.

"깨끗하게 얻은 물건은 아닌 것 같구나…"

"계약 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즈그 나라 유물을 선제시로 넘긴 병신이 멍청한 거지."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란 때 소실된 칠지도는 이미 일본의 지하세계 곳곳을 전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빌런이라는 탈을 쓴 야쿠자나 부패 히어로 등등의 손을 거쳐서.

"그러니까 칠지도는 때마침 그 기업한테 있었단 말이지."

가소희가 칠지도를 얻게 된 경위는 이랬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암시장의 철폐를 원한 기업이 가소희에게 무언가 로비를 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넘어온 물건이 칠지도라는 뜻이다.

"아니… 걔네가 왜 암시장을 열렬히 지지하는 네년한테 로비를 한단 말이냐?"

"그 친구들은 내가 헌터협회의 실세인 줄은 몰랐거든. 밖에서 보기엔 나는 그냥 별동대원이라는 간소한 직위에 만족하는 성실한 S급 헌터니까 말야."

가소희는 헌터협회의 숨겨진 실세로서 헌터협회장이라는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그러니까, 그 기업은 가소희의 진짜 위치를 모르고 헌터협회에 압력을 가해달라는 부탁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 그 제안을 받은 것이냐? 그 대가로 칠지도를 받았고?!"

"응. 쓸만한 검이 갖고 싶다! 라고 했더니 그걸 냅다 바치더라고. 나도 참 어이가 없었지만은."

아마 칠지도의 경도나 절삭력 따위를 보고 과소평가한 것이 틀림 없다.

전투용이 아니니 만큼 전투용으로 설계된 검보다는 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웃긴 건 뭔지 알아? 쟤들은 이게 정교한 레플리카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진짜 유물이 이 정도로 약할 리가 없긴 하나, 그래도 명검의 반열에 드는 만큼 당신께 잘 어울릴 것…이라던가? 세상에. 웃고 자빠질 일이지."

하지만 칠지도는 주술에 있어서 최고의 무구나 다름 없다.

겨우 로비 따위로 넘어갈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뭐, 경도가 경도인 만큼 내 혼검기를 버티긴 역부족이었지만. 아무튼 칠지도는 이렇게 얻게 된 거야."

"…그래서 그걸 네 제자한테 넘겨주겠다는 거냐? 본녀가 시퍼렇게 눈 뜨고 살아있는 이곳에서?"

"아니? 내가 너랑 연 끊을 것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하겠냐. 내가 이걸 왜 네 앞에서 꺼냈는지 생각을 해봐라."

가소희가 무언가를 요구하듯 눈썹을 으쓱였다.

착잡하게 고개를 흔든 무녀가 이마를 짚었다.

"너 칼 좀 많잖아."

"네 제자 걸 왜 내가 줘야 하는 것이냐? 지도 많이 갖고 있으면서…"

"다 깨먹었어. 남은 건 이런 것 밖에 없거든."

소매에 손을 넣은 가소희가 불길하게 번쩍이는 진홍빛 직검을 꺼냈다.

검신에 섬뜩한 선혈의 아우라가 어리는 것이 마검이 틀림 없었다.

"이걸 우리 시현이한테 줄 수는 없잖아?"

"알았다, 알았어. 칠지도에 비하면 한참이나 싸지… 보답이라고 생각하마. 됐느냐?"

"응."

무녀가 가소희의 손에서 칠지도를 홱 빼앗아 품 속에 넣었다.

칠지도의 가지가 옷 너머에 불룩하다.

"옛다. 좋은 스승 만난 줄 알거라."

무녀는 허리춤에 숨기고 있던 칼 하나를 풀어 내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깔끔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일본식 카타나였다.

"애한테 좋은 거 쥐여주면 버릇 나빠지는데."

"그럼 빼앗을 참이냐? 애초에 신이하고 좋은 것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년인데 이거 하나가 뭐 대단하다고 그러는 것이냐?"

"푸흐흐, 그렇긴 해."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걸까?

칼을 별로 쓰지 않는 무녀라곤 하나, 무녀 씩이나 되는 사람이 쓰던 검이니 무언가 범상치 않은 것은 틀림 없었다.

"그거 우리 집에는 수두룩하게 쌓인 것이니 그렇게 긴장하지 않는 것이다."

"쌓여 있다고요?"

"똑같은 게 한 네 자루 더 있느니라. 그게 쌓여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가소희가 언급할 정도로 좋은 무기인데, 그것이 또 무녀의 집에 쌓여 있다?

유일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지만, 글쎄…

나는 약간의 의문을 느끼면서 검집에서 칼을 천천히 빼었다.

살짝 드러난 검날을 보자마자, 나는 자연히 그 발언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무라마사??…"

다른 말로는 촌정??이라고도 하는 명검.

무라마사다.

"검무를 추려면 그 정도 칼은 되어야 실례가 아니지 않겠느냐."

나는 무라마사에 혼검기를 불어넣었다.

검은 혼검기의 압력을 요요히 견뎌내었다.

"무라마사는 뭐, 일본에선 사실 브랜드 이름 같은 느낌이니라. S급 히어로 중에 무라마사를 쓰는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만큼 많고 성능이 좋다는 거 아니겠어."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만큼 많지는 않느니라. 기껏해야 전국에 아홉 자루가 전부니."

나는 무라마사의 정보창을 띄웠다.

[무라마사(A)]

­ 도쿠가와를 저주하는 요도라는 오명이 있지만… 그건 음해입니다! 치유를 곤란하게 하는 옵션은 있지만요.

그래도 수가 많은지라 등급은 A일 수 밖에 없다.

충분히 S급에 들 수 있는 검이지만 유일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내구도가 좋은 거랑 치유감소 외에 다른 옵션이 없긴 하니 A급이 맞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 정도면 내게 아주 좋은 검이다.

나는 무라마사를 소중히 갈무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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