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3)화 (3/89)

3화 무서워하는 걸 들키지 마

일부러 오해할 만한 말을 던졌지만, 아이가 생각하는 방식은 특이했다.

‘나타나지 못한다는 말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진 않지.’ 

일반적인 아이는 말이다.

블레이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꺼냈다.

“부모님은?”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안 계셨고 어머니는 이틀 전에 돌아가셨어요.”

부모 없는 아이였나. 보호자가 사라지니 애를 판 거군. 

블레이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네 외삼촌은 죽지 않았다고 말하려는데, 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은 죽었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부정하지 않으셨으니깐요.”

블레이크는 눈썹을 들썩였다.

아이가 죽음을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을 때부터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죽는다는 게 뭔지는 알고?”

“죽는 건……. 모든 게 끝나는 거예요. 나중에 하려고 했던 일도 죽어버리면 할 수 없어요. 저희 외삼촌이 이제는 저를 못 파는 것처럼요.”

“……내가 무섭다거나 하지는 않나?”

“왜요?”

“네 외삼촌을 죽인 게 나라면, 너도 죽일 수 있을 테니까.”

블레이크의 눈이 한순간에 섬뜩하게 가라앉았다.

아이는 미동 한번 없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걸 원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공작님께서 절 사셨으니까요.”

겁만 조금 주려던 블레이크는, 오히려 제가 아이에게 한 방 맞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무슨 이런 아이가 있단 말인가.

좋은 사람이건, 싫은 사람이건.

아는 이의 죽음은 7살의 어린아이가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순간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블레이크는 검지로 작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슬쩍 걷어 올렸다.

‘허.’

마주한 것이 무척이나 의외였다. 아이의 얼굴 역시 머리카락처럼 지저분했으나, 그중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이 있었다.

새벽이슬을 닮은 맑은 은색의 눈동자. 겁도 없는 한 쌍의 눈은 그저 빛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어린애의 눈이 아니군.’

아그네스는 슬쩍 눈을 돌려 블레이크의 시선을 피한 뒤,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사서 데려오셨잖아요. 주인이 무엇을 하든 노예는 따라야 해요.”

그 말에 블레이크는 골이 지끈거리는 듯했다.

흥미는 무슨. 이제는 기가 찼다.

따라올 거냐고 했지 내가 널 사겠단 소리를 했던가.

어떤 교육을 받았길래 저 나이에 이런 사고방식을 갖는 건지.

한편, 아그네스는 제 감정을 눈앞의 귀족에게 숨기느라 필사적이었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돼. 무서워하는 걸 들키지 마.’

블레이크 로드윅.

아그네스는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처음 들었던 것은 과거에 게르웨르 공작에게 팔려 간 직후, 반년 동안 귀족들의 교육을 받았을 때였다.

“로크샤 제국은 황제보다도 4대 공작 가문의 균형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게르웨르, 세르디야, 히베츠만. 이 세 개의 가문은 제국민의 칭송을 받지만, 단 한 곳. 로드윅 공작가만은 악명이 높죠.”

가정교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제가 할 말에서 악취를 맡기라도 한 얼굴이었다.

“로드윅은 대대로 내려져 오는 능력으로 암살을 일삼았습니다. 역대 가주들은 수많은 시체 위에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었죠. 현 가주인 블레이크 로드윅 또한 그들과 다름없는 잔혹한 살인귀입니다.”

“살인귀요……?”

“명심하세요. 아가씨가 있을 곳은 이곳, 게르웨르 공작가 뿐이라는 걸.”

겁에 질린 과거의 아그네스는 가정교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다시 그 질문을 받는다면 가정교사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도망갈 테지만.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돼. 게르웨르 공작처럼 이 사람도 언제 변할지 몰라.’

그것도 무려 살인귀 공작.

르티옴인 걸 들키지 않아도. 정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었다.

‘공작인 줄은 알았지만, 로드윅인 줄은 몰랐어. 따라간다고 하지 말 걸 그랬나. ……아니야. 그래도 노예상에 팔리는 건 안 돼. 탈출이 어려우니까.’

로드윅인 걸 알고 보아도 좀전의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은 이 귀족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살기 위해 비위를 맞춰야 했다.

아무리 눈앞의 귀족이 무섭더라도.

“그러니까 주인님께서 제 외삼촌을 죽이셨다고 하셔도 전-.”

“그만.”

블레이크가 아그네스의 말을 막았다.

그가 검지를 거두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다시 아그네스의 눈을 가렸다.

“그만 말하거라. 네 외삼촌은 죽지 않았으니.”

블레이크의 말에 아그네스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벌써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었다.

“…….”

“…….”

그다음부터 마차는 조용했다.

블레이크는 입을 다물었고, 아그네스도 실수하지 않으려 아까보다 더 몸을 굳혔다.

길어지는 침묵 속에, 이내 졸음이 아그네스를 찾아왔다.

아침부터 긴장한 데다가, 체력도 없는 어린아이의 몸으로 죽을 둥 살 둥 뛰기까지 했으니 피로는 더했다.

아그네스는 꾸벅꾸벅 꺾이는 고개를 버티고, 버티다 결국 잠에 빠져들었다.

블레이크는 그런 아그네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아이가 데온의 놀이 상대라…….’

로드윅 가문의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타인에게 무심했다.

어느 정도냐면, 길가에 있는 쥐나 사람을 보더라도 두 개체의 차이를 몰랐다.

힘이 없는 아이라면 약간의 사회성 결핍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강한 힘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로드윅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쥐를 죽이듯 인간을 죽이지 않을 정도의 도덕성은 갖춰야, 위협을 느낀 인간들이 뭉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사회성은 필요하지. 이 제국에서 가문을 이끌고 살아가려면.’

그렇기에 로드윅은 가문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비슷한 나이대의 놀이 상대를 저택으로 불렀다.

현 가주, 블레이크의 아들인 데르케디온 로드윅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주님, 도련님의 놀이 상대로 오신 분께서 밤중에 실신을…….”

“가주님, 이번에 오신 분도 돌아가시겠다고…….”

“가주님…….”

데온의 놀이 상대로 온 아이들은 만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그 배후에 데온이 있다는 것을, 블레이크는 모르지 않았다. 

내쫓을 때 겁이라도 줬는지, 이제는 로드윅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가 수두룩했으니.

“귀족들이 더는 자제분들을 놀이 상대로 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오늘 블레이크가 평민들의 마을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후원하던 학교로 가서 놀이 상대가 될 만한 아이를 찾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

지저분하고 냄새가 났다.

자신과 부딪힌 아이는 딱 봐도 데온에게 호감을 살 만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나와 함께 갈 거냐.”

그럼에도 그리 말했던 것은, 아이가 처한 상황과 그 나이에 연민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7살의 여자아이.

“블레이크, 미안해요.” 

그의 아내가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면 저 나이였을 터였다.

아까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온 죽음이라던가, 노예라던가 하는 소리가 속을 긁는 것처럼 거북했던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데려온 건, 잘한 것인가.’

쌕. 쌕.

덥수룩한 머리카락 아래로 곤히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블레이크는 마차 안의 램프를 끄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 * *

아그네스가 잠에서 깬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정신이 든 아그네스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고는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렸다.

‘어라……?’

마차가 아니잖아.

화려한 응접실의 소파 위였다.

“아, 일어났니?”

주변을 살피는 아그네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미인형인, 밝은 인상의 젊은 여자였다.

아그네스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로드윅 공작가야. 나는 여기서 일하는 안나. 네 이름은?”

“…….”

아그네스는 우물쭈물하며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제 손바닥에 느껴지는 벨벳의 감촉에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내려왔다.

“왜 그래?”

“저, 저는 소파에 앉을 수 없어요.”

마차에서는 블레이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가 시키는 대로 맞은편에 앉아왔지만.

지금은 블레이크가 없었다.

“응?”

아그네스는 안나의 어리둥절한 시선을 받으며 방을 걸었다. 아그네스가 자리를 잡은 곳은 벽난로의 석탄 찌꺼기를 담아둔 양동이 옆이었다.

“전 더러우니까, 여기에 앉아 있을게요.”

“뭐……?”

안나는 순간 제 귀를 의심하며 눈을 크게 떴다.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가 낯선 사람인 절 경계하는 건가 싶었는데, 입에서 나온 거라고는 영 황당한 소리였다.

‘무슨 아이가 이런 말을 해?’

제드에게 노예상에 팔렸던 아이를 데려온 거란 소리를 들었지만, 그동안 어떤 취급을 당했길래 스스로 더럽다며 저런 곳에 가 있는 건지.

일단 아이를 다시 소파 위로 앉히는 게 우선일 듯싶었다. 

하지만 안나는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쪼그려 앉은 아이의 배에서 들린 천둥 같은 커다란 소리 때문이었다.

“배고프니?”

“…….”

안나의 질문에 아그네스는 고개를 푹 숙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피해서 말을 못 하는 게 맞았다.

‘창피해.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긴 했지만…….’

다락방에서 눈을 뜬 뒤로 먹은 것이 없었다.

뱃가죽이 등에 붙은 거 같긴 해도, 하필이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런……. 

“음…….”

한편, 안나는 쪼그려 앉은 아그네스를 보며 고민했다.

소파에 앉히느냐, 배부터 채우느냐.

저 세운 무릎을 양팔로 단단히 가둔 모양새를 보니 보통 고집은 아닐 듯싶고.

“먹을 것 좀 가져올 테니까 잠시 혼자서 기다려 줄래?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더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안나는 그 말을 남기고 응접실을 나갔다.

주변이 고요해지니 상황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혼자 남은 아그네스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마차에서 잠들어버리다니. 실수했어.’

심기를 거스른 것도 모자라 잠까지 자버리다니. 

이래서야 공작이 쓸모가 없다고 저를 내쫓아도 할 말이 없었다. 

‘내쫓기면 안 돼. 적어도……. 내가 밖에서 혼자 살아갈 나이가 될 때까지.’

바깥은 일곱 살의 아이가 혼자 살아가기에는 각박했다. 

보호자 없는 아이는 노예상에 팔린다거나 굶어 죽는다거나 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세상이었으니.

로드윅 공작을 따라온 이상, 그의 울타리가 제게는 필요했다.

‘열넷 정도는 돼야 돈이 될 만한 일을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르티옴인 걸 들키지 말아야 해. 그런 다음에는 공작들과 전혀 접점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나자.’

꽉.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아그네스 혼자만 있던 응접실에 다른 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야.”

“…….”

“내 말 안 들리냐?”

생각에 잠겨 듣지 못했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자, 아그네스는 그제야 제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드, 들려요!”

번쩍 고개를 들자, 고급 옷을 입은 한 소년의 모습이 머리카락 너머로 보였다.

날카로운 붉은 눈과 단정한 검은 머리.

로드윅 공작을 닮은 잘생긴 남자아이는, 지금의 자신보다 두세 살 정도 많을 듯했다.

‘아.’

아그네스는 소년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심장 근처에 뭉친 기운.

‘능력자다.’

외모나 옷차림으로 봐, 로드윅 공작의 아들일 확률이 높았다.

그 짐작이 틀리지 않았는지, 소년은 아그네스를 빤히 내려보다 인상을 썼다.

“아버지가 또 쓸데없는 걸 데려오셨네.”

아그네스는 ‘또’라는 말에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로드윅 공작이 이전에도 다른 아이를 데려온 적이 있는 건가? 

“야.”

“……저요?”

“그러면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생각해야 할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년의 말투와 모습을 빌어 볼 때, 저 소년은 제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로드윅 공작의 아들에게는 잘 보여야 하지 않을까.

아그네스가 마른 입술을 달싹이려던 그때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