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6)화 (6/89)

6화 아빠라고 부르거라

“리체란 이름도 잘 어울리긴 하네.”

집사의 말에 제드도 백기를 들고 이름을 칭찬했다. 

트아리체 로드윅.

아그네스, 이제는 리체란 이름을 갖게 된 아이는, 새하얗게 질려 굳었다.

‘정말로 내 이름이라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로드윅 공작이 자신에게 이런 이름을 준 걸까. 혹여나 자신이 르티옴인 것을 눈치채고 이 저택에 가두기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무슨 짓을 벌이기에 가족만큼 허울 좋은 핑계는 없으니까.

외삼촌의 집에서 지낼 때도 이웃들은 아그네스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 가족 간의 일이니, 자신들이 끼어들 것이 아니라며.

‘싫어.’

다시금 귓가에 게르웨르 공작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두려움이 리체를 집어삼키려던 그때였다.

“이름을 읽었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렸다. 리체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집사실의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머리, 붉은 눈. 조각상처럼 잘생겼지만 무표정한 얼굴의 블레이크였다.

“읽으셨습니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블레이크와 눈이 마주친 제드는 할 말이 많은 눈치였으나, 입을 다물었다.

‘정말 얘한테 로드윅의 성을 주실 생각이세요?!’ 같은 질문이, 아이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리체는 이 상황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제 앞으로 걸어오는 블레이크를 바라봤다.

“깨끗해졌군.”

블레이크는 리체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러고 보니 목욕한 뒤로 블레이크와는 처음 만났다.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지만, 블레이크에게 물어봐야 했다. 

제게 왜 이런 이름을 준 건지.

은빛의 동글동글한 눈이 블레이크를 올려다봤다.

“공작님. 질문이 있어요.”

“…….”

용기 내어 한 말이었는데, 블레이크는 제 머리에 손을 올린 채 대답이 없었다.

리체는 정말로 울고 싶었지만, 다시 용기를 쥐어 짜냈다.

“공작님.”

“질문해도 된다.”

“제가 왜 로드윅이에요……?”

그 말에 집사와 제드의 귀가 쫑긋해졌다.

그들도 아이에게 로드윅의 성을 준 블레이크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음.”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예상 밖인 것은 블레이크도 마찬가지였다.

무표정해서 당황한 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눈물?’

자신을 보는 아이의 눈이 곧 울기라도 할 듯 흔들렸다.

‘로드윅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나?’

마차에서도 태연히 제 외삼촌의 죽음을 논하던 아이였다. 

이제 와 암살자 가문이 두렵다는 것은 아닐 테고.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로크샤 제국에서 평민이 귀족이 되는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누구도 사양하지 않을.

거기에는 그 과정에서 매겨지는 엄청난 세금이라든지, 콧대 높은 귀족들의 프라이드라든지 같은 이런저런 까닭이 있었지만.

블레이크가 아이에게 이름을 주기로 마음먹었을 때 신경 쓴 부분은 아니었다.

어쨌든 흔하게 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은 이 아이도 알 텐데.

블레이크는 정말로 영문을 몰라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싫은가?”

“……딸꾹.”

그때였다. 리체의 입에서 딸꾹질이 나온 건.

블레이크가 생각에 잠겼던 약 2분.

말이 없는 그 모습에 리체가 정화 도구로 살게 될 제 미래를 상상하며 울음을 참다가 시작된 딸꾹질이었다.

딸꾹. 딸꾹.

리체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괜찮아?”

제드가 서둘러 등을 쓰다듬어줬지만, 딸꾹질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괴롭다는 생각이 들 때쯤, 리체는 묘하게 편안해지는 호흡을 느꼈다.

“가주님……!”

제일 먼저 눈치챈 건 제드였다. 다급한 목소리로 블레이크를 말렸다.

제드의 시선을 따라 블레이크를 본 리체는, 블레이크가 저한테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생명체의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로드윅의 능력.

‘왜?’

리제는 혼란스러웠다.

능력자들은 능력을 사용할수록 저주처럼 검은 기운이 몸에 쌓인다. 

능력자 대부분이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는 것은, 그 기운 때문이었다. 

오로지 르티옴만이 그것을 정화할 수 있었으나, 백 년에 한 명꼴로 태어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블레이크의 지금 행동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작 어린아이의 딸꾹질을 멈추려고 능력을 사용하다니.

역시 제가 르티옴인 것을 알고 있는 걸까.

“그 멍청한 것들은 널 알아보지도 못해. 르티옴을 알아볼 수 있는 건 혜안을 가진 나뿐이다. 나의 아그네스.”

블레이크의 기운이 일렁였다. 쌓이는 검은 기운은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리체는 블레이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세요.’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블레이크에게는 그게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이름이 싫지 않다는 건가?”

“그, 그게.”

딸꾹질이 멈춘 리체가 입을 열었다.

뒤에 말을 더해야 하는데 제대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서워.’

여기서 싫다고 했다가 능력을 사용하면 어떻게 하지. 이번에는 제 호흡을 멈추게 할지도 모른다.

리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음에 들어요.”

“그럼 됐군.”

블레이크는 만족한 얼굴로 리체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품속의 리체와 시선을 맞췄다.

“앞으로 아빠라고 부르거라.”

* * *

아이와 늦은 아침을 함께 하고, 기사들의 오전 훈련을 봐주고 나자 어느덧 정오가 지났다.

“정말로요?”

서재로 블레이크를 따라 들어온 제드가 문을 닫자마자 한 소리였다.

둘만 있을 시간이 쭉 없어, 이제야 꺼낸 말이었다.

블레이크는 제드의 뜬금없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지만, 대꾸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서류를 집어 들었다.

책상 위에는 그의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이 꽤 쌓여 있었다.

“정말로 아이를 양녀로 들이신다고요?”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요.”

날카로운 블레이크의 눈과 마주한 제드가 깨갱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실은 있다. 그것도 무척이나 많이.

평민이 귀족이 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지만, 그보다 더 희귀한 건 공작가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귀족이 아이를 입양하는 때는 대를 잇기 위함이었으나.

로크샤 제국의 네 공작 가문은 한 대에 한 명씩 태어나는 능력자들이 가주의 자리를 이었다.

수백 년 동안 능력자는 늘 태어났고, 가주의 자리가 비는 일은 없었으니.

공작가는 타인이 들어갈 수 없는 가문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문제는 없지만……. 공표하시면 소문이 금방 돌겠네요.”

그런 공작 가문에서 수양딸을 들였다. 

그것도 가장 폐쇄적 성향이 짙은 로드윅 공작 가문이.

‘다른 공작 가문이 주시하겠네. 황제 쪽이 움직일 수도 있고.’

황제의 힘보다 네 공작가의 힘의 균형으로 유지되는 제국이었다.

그렇기에 튀는 행동은 경계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자신도 아는 그걸, 블레이크가 모를 리 없겠지만.

“제깟 것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다고.”

블레이크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알고 계셨죠? 아이가 이름을 읽을걸요.”

글자를 읽으면 이름을 준다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다 알고 있던 게 분명했다.

지금도 봐라.

블레이크는 제 질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으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얹혀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을 예감하고 있던 사람처럼.

역시 그랬어.

끙, 하고 뒷골이 당기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쩌겠는가.

애초에 이 가문에서 가주의 말은 절대적. 제가 반대한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제드는 목덜미를 매만지며 물었다.

“그러면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애를 수양딸로 들이신 이유요. 도련님 때문이라면 그냥 놀이 상대로 두셨어도 괜찮았을 거 같은데.”

블레이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잃어버린 자식이 생각나 리체를 애틋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아이를 수양딸로 삼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 또한 사실.

그렇다면 어제 처음 만난, 지저분한 평민 아이에게 계속 마음이 쓰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능력자의 힘이 르티옴에 반응하기 때문이었지만, 블레이크가 알 턱이 있나.

그는 저에게, 그리고 제드에게 납득갈 만한 그럴듯한 말로 제 행동을 변호했다.

“가족이란 존재는 특별하니까. 동생이 생기면 데온도 책임감을 느끼고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겠지. 지금 데온은 너무 고립돼 있어. 그 어떤 로드윅보다도.”

진지하게 말하는 블레이크의 모습에, 제드는 속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했다.

'도련님 핑계 대시긴.'

물론 블레이크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지만-.

제드는 속으로 콧방귀를 뿜었다.

‘앞으로 아빠라 불러라~? 아버지도 아니고 아빠~?’

제가 로드윅 저택에 온 지 16년. 살다 살다 저런 말을 하는 블레이크를 볼 줄이야.

친자식인 데온에게도 아빠라 부르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위인이었다.

놀리고 싶었지만, 제 목숨은 소중하니 참아야겠지. 

“가주님.”

“왜.”

그러고 보니 갑자기 여동생이 생겼다는 걸 알면 그 성격 나쁜 도련님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제 동생이 생겼다고 축하 파티라도 열어주지는 않을 테고. 

제드는 볼을 긁적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련님이 아가씨를 죽이시진 않겠죠……?”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블레이크가 제드에게 물었다.

“오늘 아이가 이름을 받은 걸 누군가한테 말했나?”

“저는 말 안 했죠.”

“그러면 아직 데온은 모르겠지. 내가 찾아가 말할 테니 걱정 없어.”

집사인 폴은 입이 무거우니 저택에 소문이 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리체 아가씨가 안나한테는 말했을 지도요.”

제드는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자신을 의심하던 여동생의 눈빛을 떠올렸다.

분명 돌아온 리체에게 ‘제드가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느냐’ 추궁을 했겠지.

그 자리에는 안나 말고도 다른 하녀들도 있을 테고.

아, 소문났군.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블레이크는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밖으로 나가는 그를 제드가 뒤따라 나갔다. 

‘첫눈에 꿰였네.’

제드는 무심한 듯 빠르게 걸어가는 블레이크의 뒷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가 걱정돼서 그러냐고 묻는다면 시치미를 떼며 아니라 하겠지만.

블레이크 로드윅에게 일보다 타인이 중요한 때가 있었나. 서류에 미련 없이 일어나던 그 모습이라니.

‘보인다. 딸바보가 된 우리 가주님.’

어화둥둥 리체를 안고 헤벌쭉할 블레이크를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러다 복도에서 허둥거리는 하인 하나가 보여 뛰어가 한쪽 팔로 어깨를 낚아채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제, 제드 씨! 앗, 가주님!”

제드에게 어깨동무를 당한 하인은, 복도를 걷는 블레이크를 발견하고는 다급히 말했다.

“도련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어제 가주님께서 데려오신 아이도 보이지 않고요!”

* * *

“…….”

끼우우.

께름칙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창한 숲길은 해가 들지 않아 어두웠다.

리체는 빽빽한 나뭇잎 틈새로 조금씩 보이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숲길을 걸었다.

“저기.”

그러다 앞서가는 흑발의 뒤통수에 대고 말을 걸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휴, 작은 입술 사이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디까지 가는 거지.’

약 두 시간 전.

방으로 돌아온 리체는 안나와 하녀들의 추궁에 제가 받은 이름을 털어놓았다.

그 뒤로 사용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고, 그게 부담스러워 옷장 속에 숨어 있었다.

그러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옷장 문이 벌컥 열렸다.

데온이었다. 

자신을 어떻게 찾은 건지 모르겠지만,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보아 제가 로드윅의 이름을 받았다는 것을 들은 듯했다.

붉은 눈이 자신을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따라와.” 

그렇게 데온을 따라 조랑말을 타고 달려온 곳이 이곳이었다.

로드윅 공작성 인근의 숲. 조랑말은 숲 입구에 매어놓았다.

‘계속 안으로만 들어가네.’

데온에게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니 불안했다.

이대로라면 숲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걸어도 대꾸조차 없으니.

‘이 수밖에 없나.’

리체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데온의 옷소매를 살짝 잡았다.

“오빠.”

“……뭐?”

데온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왜 네 오빠냐는 짜증 난 목소리. 

역시 이렇게 해야 네가 내 상대를 해주는구나.

리체는 일부러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며 말했다.

“리체 다리 아푼데.”

데온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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