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7)화 (7/89)

7화 내가 그렇게 싫어?

“도련님이 왜 인간을 싫어하시냐고?”

로드윅 가의 기사는 신입 기사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냄새가 나서……?”

“네?”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인간의 숨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대.”

“숨에서요?”

“로드윅 가문의 능력자들은 다른 생명체의 호흡을 조절하니까, 그쪽에 민감하신 거지. 이건 자랑인데, 우리 도련님께서 가진 잠재 능력이 역대 로드윅들보다 뛰어나시거든.”

“아, 저도 밖에서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너무 강하신 탓에 돌아가신 마님께서 도련님을 낳고 몸이 약해지셨-.”

“시끄럽다. 가주님 계시는데.”

그러다 기사단장에게 한 소리를 듣고 조용해졌다.

로드윅 가문의 기사들이 모여있는 곳은 마물의 숲 입구.

30분쯤 전, 사라진 두 아이를 찾으려 몇 시간 동안 성을 이 잡듯 뒤지던 중이었다.

숲 경계 순찰 임무를 맡은 기사들 중 하나가 성으로 찾아왔다.

“숲 입구에서 도련님의 조랑말을 발견했습니다.” 

보고받은 블레이크는 곧장 기사들을 이끌고 숲으로 향했다.

‘숲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아들의 무모한 행동에 화가 났다.

데온이 리체를 숲으로 데리고 들어갔을 거라는 가정도 그의 걱정을 가중시켰다.

능력자인 데온은 제 몸 하나 정도 간수 할 수 있겠지만, 리체는 아무 능력도 없는 7살에 불과했으니.

블레이크는 손에 든 회중시계를 바라봤다.

제드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곧 여섯 시입니다. 숲이 닫힐 텐데.”

“알아.”

로크샤 제국 남쪽 변방에 자리 잡은 로드윅 공작가는, 가문의 시작부터 마물이 나오는 숲을 하나 지키고 있었다. 

도시 하나만큼의 거대한 숲은, 아주 오래전, 거대한 마력을 가진 운석 하나가 숲속에 떨어진 이후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석양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숲은 몇 번이고 모습을 바꿨다.

숲의 입구는 닫히고 나무 같은 지형물들이 위치를 옮긴다. 

갈림길이 막다른 길이 되거나, 걸어왔던 길이 다시 제 앞에 펼쳐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해가 뜨면 숲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문제는 마물이었다.

밤의 숲은 그들의 사냥터였다.

“방법이 없네요. 여기서 기다렸다가 날이 밝을 때 바로 숲으로 들어가는 수 밖……. 가, 가주님. 뭐하십니까?”

제드는 놀라 블레이크를 바라봤다.

말에서 내린 그는 당장이라도 숲에 들어갈 기세였다.

“들어가시려고요?!”

“가야지. 애가 위험하잖아.”

가야지, 라니.

‘오전에도 아가씨 딸꾹질 때문에 능력을 쓰셔놓고!’

제드는 블레이크가 능력을 사용하는 걸 썩 내켜 하지 않았다. 

블레이크의 나이는 올해로 32세. 

전대 가주는 36세에 사망했다. 능력의 부작용으로 쌓인 기운 때문이었다.

게다가 블레이크는 젊었을 때 참전한 전쟁으로 능력을 꽤 사용하고 다녔으니.

블레이크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면, 앞으로는 최대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숲에 들어가면 능력을 사용할 일이 또 생기지 않겠냐고……!’

리체는 귀엽지만, 그래도 블레이크가 더 중요했다.

“그, 그래도 데온 도련님도 함께 있으실 테고…….”

“내가 데려온 아이다. 책임도 내가 져야지.”

저 똥고집. 제드는 이마를 짚었다.

기사단장에게 아침까지 대기하라는 말을 전하고는, 숲으로 들어가는 블레이크의 뒤를 서둘러 쫓았다.

“나 혼자 가도 충분한데.” 

“가주님 때문에 가는 건 아닌데요?”

블레이크의 말에 제드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아가씨랑 도련님이 걱정돼서요.”

* * *

같은 시각.

리체는 숲길을 걷는 데온의 등에 업혀 있었다. 

“오빠, 우리 언제까지 걸어가?”

“그렇게 부르지 마.”

데온은 짜증스럽게 대답했지만 리체는 그런 데온이 꽤 귀여웠다.

말투나 행동은 어른스럽게 보여도, 아직 9살이라 그런지 도발에 잘 넘어갔다.

지금도. 오빠란 말을 남발했더니 듣기 힘들다며 이렇게 업어주지 않는가. 

‘어디로 가는지는 끝까지 말 안 해주네.’

의외로 다루기 쉽다는 점은 좋았으나, 데온의 입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오빠, 숲속은 위험해. 공작님께서 걱정하실걸.”

“…….”

데온은 조용했다.

오빠란 말에 반응하지 않기로 작전을 세운 모양이었다.

리체는 고집불통 같은 데온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어제 인간이 싫다고 그랬잖아.”

“…….”

“나도 사실은 싫은 게 있어.”

데온이 상대해주지 않으니 혼잣말 같은 대화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아픈 게 싫어.”

솔직히 말해 데온이 어린아이란 점이 마음을 조금 놓이게 했다.

지난날. 그녀에게 상처를 줬던 건 모두 어른이었으니.

어린아이와 함께 있던 적이 언제였던가. 과거 노예 상인의 우리 속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그마저도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노예상은 시끄러운 걸 싫어했고, 말이 많은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아픈 게 싫어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못 도망쳤어. 잡히면 이전보다 더 아플 걸 아는데, 그런데도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더라.”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도 며칠 동안 긴장의 연속이었다.

외삼촌에게 도망치고, 로드윅 공작에게 주워지고.

“그게 나한테는 유일한 희망이었거든.”

지금은 데온이 아무 말도 없어서일까.

발소리와 숲 소리만 들리는 조용함 속에 평온함을 느끼며 리체는 점점 제 속마음을 늘어놓고 있었다.

“한 번은 죽을 뻔했는데, 살아났어.”

“……어떻게 살아났는데?”

처음으로 데온이 제게 질문했다.

리체는 놀랐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갔다.

“모르겠어. 신한테 빌어서 그랬나?”

“신?”

“응. 더는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했거든.”

신이 제 기도를 들어줘서 과거로 돌아온 걸까.

리체는 마지막 날을 회상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공작 중 누군가가 제게 손을 내밀었었는데.

‘그 사람이 데온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블레이크의 것보다 더 커다랗고 끔찍하게 일렁이던 기운.

게르웨르 공작이 지하실을 마지막으로 찾았던 날 말했던 전쟁과 연관이 있을까.

“……내 부탁은 안 들어주던데.”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데온의 목소리가 조금 울적했다.

“신이?”

“응.”

“무슨 부탁을 했는데?”

“…….”

또 입을 다물었다. 뭐가 이렇게 비밀이 많은지.

“내가 대신 부탁해줄까? 내 부탁은 들어줬으니까, 이번에도 들어줄지도 몰라.”

뒤통수가 안쓰러워 보여, 리체는 자신도 모르게 데온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작은 손가락 사이로 지나갔다.

‘헉.’

그러다 화들짝 놀라 손을 떼려고 했지만, 웬일인지 데온이 짜증을 내지 않았다.

혹시 제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나? 지금이 대답을 들을 기회일 지도 몰랐다.

“오빠, 그런데 왜 숲으로 들어온 거야?”

“…….”

“말해주면 안 돼?”

리체의 끈질긴 물음에, 데온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널 숲에서 나오는 마물한테 주려고.”

“뭐?”

꽉. 마물이라니. 놀란 리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머리카락이 잡힌 데온이 악, 하고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미, 미안.”

리체는 손을 놓았다.

그러다 울컥 분한 감정이 들었다.

아니, 제가 미안하단 말을 할 필요가 있나? 데온이 자신을 마물에게 주려고 했다는데?

“날 죽이려고 한 거야?” 

“…….”

“왜? 인간이 싫어서? 내가 로드윅 이름을 얻어서?”

화를 내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뭘 그리 잘못했는가.

살고자 하여 외삼촌한테 도망쳤다. 살고자 하여 공작을 따라가겠노라 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이름을 받겠다 했다.

“나는 로드윅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로드윅이라니. 그토록 엮이고 싶지 않았던 능력자들과 가족이 되었다니.

블레이크의 생각은 알 수 없지. 데온은 제가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지.

평온했던 기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서러움이 자리 잡았다.

리체는 오전부터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내가 공작가에 들어온 게 그렇게 못마땅했어? 검으로 죽이겠다고 협박할 만큼? 마물한테 먹이로 던져주려고 할 만큼?”

“자, 잠시만.”

“나는 공작가밖에 있을 곳이 없었는데-! 네가 안 쫓아내도 몇 년 뒤에 내 발로 나가려고 했다고……!”

서럽다. 격해지는 감정에 리체는 엉엉 울면서 데온에게 따졌다.

당황한 데온이 걸음을 멈추고 리체를 달래려 했지만, 달래질 리가 없었다.

“그냥 겁만 주려고 한 거야. 마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고 우리 집에서 꺼지라고……. 구해주려고 했다니까? 야, 멍멍이. 내 말 듣고 있어?”

“멍멍이라 하지 마-!”

이제 개털도 아닌데!

그러는 사이, 커다란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 주변 나무들의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싸아아아아.

음산한 소리에 리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훌쩍거리며 눈물을 대롱대롱 단 은색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봤다.

데온은 언제 당황했냐는 듯, 표정을 굳혔다.

“……나무들이 움직여.”

리체가 중얼거렸다.

숲이 변하고 있었다. 가던 길이 막히고 새로운 길들이 생겨났다.

조금씩이나마 보였던 노을 지는 하늘도 나뭇잎에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주위가 밤처럼 어두컴컴해졌다.

쿠우우웅.

저 멀리, 거대한 무언가의 발소리에 땅이 울렸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긴장된 분위기 속, 데온이 리체에게 말했다.

“내 어깨 잡아. 떨어지지 않게.”

“응.”

어깨를 잡은 리체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데온은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에서 나온 마물들이 그 뒤를 쫓았다.

* * *

허억, 헉.

나무를 등지고 선 데온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주변에는 쓰러진 수십의 마물들이 있었다.

모두 호흡이 끊긴 상태.

“……괜찮아?”

데온에게 업힌 리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능력을 사용한 데온의 기운이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르티옴이 아닌 이가 보더라도, 데온의 상태는 심각했다.

원래도 하얀 편이었지만, 환자처럼 희게 질린 얼굴색. 

“내려.”

데온은 리체의 다리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꼬물거리며 내려온 리체가 땅을 밟자, 데온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야……!”

오빠라고 말하는 것도 잊은 채, 리체는 작은 두 손으로 데온의 팔을 붙들었다.

반쯤 감긴 데온의 붉은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나 잠들 거 같은데.”

“으, 응!”

그 말에 리체는 낑낑거리며 데온을 반 바퀴 굴려 곧게 눕혔다.

그러고는 겉옷을 벗어 돌돌 만 뒤, 데온의 머리 아래에 끼워 넣었다.

누가 잠자리를 봐달라고 했나.

데온은 미간을 좁혔지만,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마물이 또 나오면 그냥 도망쳐. 나 신경 쓰지 말고.”

“왜? 싫어!”

리체의 입에서 단박에 대답이 흘러나왔다.

데온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너 마물한테 주려고 했던 거 잊었어? 두고 가. 아침까지만 도망치면 숲에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평소처럼 시건방진 말투지만, 데온은 머리카락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물이 생각보다 많이 모여, 사용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은 능력을 쓴 탓이었다. 

‘내 능력으로 아침까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래서 아버지가 숲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나.’ 

눈에 열이 올라 시야가 뿌옜다.

저 겁도 없는 멍멍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자신을 두고 가지 않을 것 같으니.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데온은 일부러 위협하듯 리체에게 경고했다.

“야, 눈 떴을 때 내 옆에 있으면 능력을 사용할 거야.”

“…….”

탁.

리체의 손바닥이 데온의 이마를 때렸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