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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14)화 (14/89)

14화 너 이상해

얼마 전, 제드가 그러지 않았는가.

“도련님께서 사람을 싫어하시는 데에는 저희가 숨 쉴 때 나는 냄새도 한몫했죠? 도련님만 맡으실 수 있는 건데, 그 냄새가 좀 지독한가 봐요. 물론 아가씨한테서는 꽃냄새밖에 안 날 테지만요.”

리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세상이 두 쪽이 난 기분이었다.

첫 만남 때도, 마물의 숲에서도, 공작성에서 데온과 함께했던 이런저런 때도.

데온은 자신의 숨에서 나오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지독하게 느껴지는.

‘더럽다고 생각했을 거야.’

전생에 수도 없이 들은 말이었다. 그 때문에 리체는 더럽다는 말에 익숙했고, 그것을 딱히 부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로드윅 가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휴, 냄새. 이런 걸 데려오시다니.”

“게르웨르 공작님의 명령이니 아가씨라 불러드리긴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본인의 처지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더러운 노예 출신의 평민이니까.”

정확히는 과거에 들었던 소리를 그들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았다.

처음 가져보는 바람이었다.

‘정을 붙일 생각이 없었는데…….’

로드윅 가에 들어온 지 어느덧 삼 주가 흘렀다.

처음에는 혼자 살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만 지낼 울타리 같은 곳이라 생각했다.

이름을 받은 후에도 그 생각은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언제든 이들에게 버림받는 때가 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니 너무 마음을 주지 마. 리체는 이따금 한밤중에 일어나 컴컴한 창밖을 보며 자신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유 없는 애정, 사람들의 호의.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따뜻한 온기였다. 이 온기가 사라졌을 때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놓고 싶지 않아. 그 마음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로드윅 공작가에 마음을 연 후였다.

‘그러니 데온하고도 잘 지내보고 싶었는데…….’

냄새라니. 망쳤다.

그렇게 좌절하는 리체를, 데온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너 냄새 안 나.”

“……?”

“내가 언제 너한테 냄새난다고 했어? 애초에 숨 냄새가 그렇게 심하게 나는 것도 아니라고.”

데온이 커다란 잠재력 때문에 블레이크와 달리 생명체의 숨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로드윅 가문에 퍼진 소문만큼 그가 맡는 숨 냄새가 그리 지독한 것은 아니었다.

기사들이 자꾸 저한테 치대는 게 싫어서, “숨 쉴 때마다 지독한 냄새가 나니까 가까이 오지 마.”라고 대충 핑계를 댄 게 사실처럼 퍼진 것뿐.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네.”

“뭐가?”

리체는 조심스럽게 코와 입을 가렸던 손을 내리며 물었다.

데온이 그런 리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얘한테서는 왜 냄새가 안 나지?’

인간만이 아니었다. 데온이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의 숨에서는 냄새가 났다. 같은 능력자인 블레이크의 숨에서조차.

그런데 왜 리체한테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마물의 숲에서 사라진 제 옴도 그렇고. 이 꼬맹이와 엮이면 뭔가가 이상하다.

‘……시험해 볼까.’

데온은 손을 들어 올렸다.

순진무구한 은색 눈과 데온의 무감정한 붉은 눈이 마주쳤다.

“왜?”

지금 제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저 멍청한 얼굴.

데온은 절 올려다보는 리체의 이마를 툭 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이상하다고.”

“으앗.”

“앞으로 피하지나 마.”

그러고는 리체를 두고 자리를 떴다.

* * *

“도련님. 어쩐 일이십니까?”

블레이크의 주치의는 자신의 진료실에 찾아온 데온에게 물었다.

문은 활짝 열렸고 진료실은 텅 비었지만, 데온은 들어올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문틀에 몸을 삐딱하게 기댄 채 주치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애매한 물음이었으나 언제나 같은 질문이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좀 어때?”가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주어만 말해도 통할 정도가 되었다. 

주치의는 데온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열심히 이겨내고 계십니다. 상태가 더 나빠지지도 않았고요.”

“그럼 됐어.”

데온은 미련 없이 문틀에서 몸을 떼고 등을 돌렸다.

무뚝뚝하게 행동해도 블레이크가 걱정되어 매번 찾아오는 것을 주치의가 모르지 않았다.

‘쯧쯧……. 우리 도련님도 안쓰럽지.’

역대 가주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로드윅 공작 가문은 대부분 외동으로 대가 이어졌다.

거기에 명을 달리한 로드윅 공작부인마저 손이 귀한 귀족 집안의 영애.

현재 데온에게 가까운 혈육이라고는 아버지인 블레이크뿐이었다.

‘리체 아가씨가 로드윅의 일원이 되셔서 어찌나 다행인지.’

바깥은 공작 가문에서 평민을 입양했다는 데 반발하는 귀족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로드윅 공작성 내의 사람들 대부분은 리체가 입양된 걸 환영했다.

아이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다들 블레이크가 죽고 혼자 남을 데온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마냥 사람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여도 상처가 크신 분이니…….’

주치의는 6년 전의 일을 회상했다.

고작 세 살짜리 아이가, 숨이 끊긴 제 어미를 살리겠다는 염원 하나로 능력을 사용했다.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 아닌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아이는 관 앞에 앉아 잠든 듯 누워 있는 어머니의, 돌아오지 않는 호흡을 되돌리려 밤새 애를 썼다. 

다음 날 아침. 블레이크가 쓰러진 그를 발견할 때까지. 

무척이나 어렸을 때의 일이라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텐데도, 데온은 늘 그날의 자신을 자책했다. 그렇게 자라왔다.

“날 낳지 않으셨다면, 어머니께서 사셨을까?”

데온이 여섯 살 때, 주치의인 자신에게 와서 한 말이었다. 

주치의는 “공작부인께서 그런 말을 들으신다면 슬퍼하실 겁니다. 공작부인께서는 도련님을 낳으시고 무척이나 행복해하셨으니까요.”라 답했다. 

그날 이후로 데온은 제게 공작부인의 생사에 관해 질문하지 않았다. 사람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짐작하기로는, 제게 질문하기 전에 공작성에 잠시 방문한 외부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었다. 

‘로드윅 공작부인께서 돌아가신 건, 로드윅 공자가 태중에 있었을 때 힘이 너무 강해 공작부인의 몸이 약해지신 탓’이라는 소문을. 

‘자신이 강하기 때문에 날을 세우는 아홉 살이라니.’

데온이 인간을 싫어하는 게 인간이 약하기 때문이라든지. 인간이 가까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게 혹여 실수로 죽여버릴까 하는 걱정 때문이라든지.

그런 이유를 아는 이는 한때 악몽에 시달리던 데온을 진료하다 우연히 잠꼬대를 들은 자신뿐이었다.

주치의는 데온이 떠난 빈자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 * *

리체는 지난주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예법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배움은 후에도 늦지 않았으나, 귀족이 되었으니 적어도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평생 공작성에서 살 게 아니라면, 예법은 배워두는 편이 좋지.”

“예법 수업 들으세요? 그런데 아가씨, 그거 아세요? ……로드윅은 발로 식사를 해도 황제 말고는 뭐라 할 사람이 없어요.” 

“제드. 리체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넵.”

예법은 배워두는 게 좋다. 블레이크의 말이 리체의 학구열을 높였다. 

푸근한 인상의 마담 미셸이란 사람이 리체의 예법 선생이 되었다.

리체는 항상 수업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빈 서재에 와서 미셸을 기다렸다.

오늘 데온을 마주쳤을 때도 수업 전에 서재로 가던 중이었다.

리체는 책상에 앉아 봄바람에 살랑이는 커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상한가?”

[이상하지.]

리체의 혼잣말에 파이톤스의 즉답이 날아왔다.

파이톤스는 책상에 놓인 두꺼운 책 표지 위에 벌러덩 누워 있었다.

그러고는 그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 리체에게 돌려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이상해. 별의 힘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존재라니. 내가 모르는 게 있단 말이야? 세상 만물은 다 내 눈 아래 있어야 하는데.]

끄으응. 파이톤스는 팔이 짧아 끼워지지 않는 팔짱을 낀 채 끙끙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괴물 같은 녀석의 정체를 모르겠어. 르티옴은 르티옴이 맞는데…….’

우선은 며칠 전부터 시작한, 별의 힘을 사용하는 훈련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여전히 바닥을 태워 먹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적어도 힘을 조절할 수는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

‘그 자식들 중 하나가 인간계로 나왔다면 또 기운이 느껴질 거야. 그때를 놓쳐서는 안 돼.’

파이톤스는 무덤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제 친구를 떠올리며 다짐했다.

그런 파이톤스에게 리체가 물었다.

“데온이 알아차렸을까?”

[뭘? 네가 르티옴인 걸?]

“응.”

[전혀 모르는 눈치던데.] 

“그러면 다행인데…….”

불안함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는지, 리체는 말꼬리를 내렸다.

[너도 참 쓸데없이 걱정한다. 그런데 계약자, 너 르티옴인 걸 영영 알리지 않을 생각이야? 이제 정화해도 아프지 않을 텐데, 정체를 밝혀보는 건 어때? 부귀영화가 한 번에 쏟아질걸. 그뿐이냐. 르티옴은 능력자들이 보물처럼 모셔 준다고.]

파이톤스는 히죽였다. 위대한 별이 잠들기 전, 파이톤스는 인간계를 구경하는 친구 옆에서 종종 르티옴을 본 적이 있었다.

하나 같이 값비싼 것들을 몸에 두르고, 좋은 것을 먹고, 아늑하고 화려한 곳에서 지내고. 사람들은 르티옴을 칭송하고 능력자들은 르티옴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

[네 삶이 달라질 거다. 어린 계약자야.]

“나는……. 그런 거 싫어.”

리체는 고개를 저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할지 몰라도, 그런 삶이 좋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제가 갇혀 지냈던 지하실의 우리가, 넓고 안락한 우리로 바뀌는 것밖에 더 되지 않을 터였다.

그곳에 자유는 없었다. 능력자들은 르티옴을 놓아주지 않을 테니.

무엇보다 그 능력자들 중에서는 게르웨르 공작도 있었다. 전생에 그녀에게 지독히도 집착했던.

“나의 아그네스. 나는 널 독차지하기 위해 내 아들도 죽였단다.”

능력자인 아들에게 가주 자리와 르티옴을 빼앗길까 걱정하던 게르웨르 공작.

그는 리체가 15살이 되던 해, 그녀에게 제 아들을 죽였노라 고백했다. 마치 열렬한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듯 애절한 태도였다.

리체는 그때의 미치광이처럼 번뜩이던 게르웨르 공작의 금안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었다.

[좋을 대로 해. 나야 네 곁에 있으면서 널 살린 그 녀석의 의도만 알아내면 그만이니.]

“……블레이크 공작님 말이야. 얼마나 남았을까?”

리체는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파이스톤에게 물었다.

블레이크에게 쌓인 검은 기운의 영향으로 줄어든 그의 수명을 묻는 것이었다.

파이톤스는 옆으로 몸을 돌리고는 얄밉게 실실거리며 리체를 놀렸다.

[너 말이야. 블레이크 앞에서는 아빠라고 잘도 부르더니. 그냥 이참에 없을 때도 아빠라고 부르는 건 어때? 아빠, 리체는요~.]

“그,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흥. 벌써 사춘기네. 이대로 놔둔다면 2년이다.]

“……고작?”

[원래 몸이 좀 약한 인간이었던 거 같아. 그냥-.]

“트아리체 로드윅 아가씨.”

그러던 중, 미셸이 서재로 들어와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리체는 책상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맞인사를 하며, 복잡한 머릿속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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