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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45)화 (45/89)

45화 나도 자주 울어

하지만 전투 상성이 맞지 않으면 상대를 바꾸면 그만.

데온과 로벤하프는 마물을 상대하며 대화를 나눴다.

“리체는?”

“아버지랑 같이.”

“아, 오늘 총장님이랑 학부모 면담하러 오신다고 했나? 그나마 다행…….”

……다행?

로벤하프는 제가 한 말에 의문을 느끼고 데온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데르케디온. 로드윅 공작님, 기운 얼마나 쌓이셨어?”

능력자들은 30대가 되면 능력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부작용으로 쌓이는 기운 탓에, 그때부터는 생명력을 깎아 먹으며 능력을 사용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더욱이 블레이크는 젊었을 때 참전한 전쟁에서 능력을 상당히 썼으니. 다른 능력자들보다 기운이 더 쌓였을 터였다.

‘로드윅 공작님, 위험하신 거 아닌가.’

검술 또한 여느 기사단장보다 뛰어난 실력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마물을 상대하려면 능력을 사용해야 할 텐데.

그런데 의외로 데온의 얼굴이 태연했다.

“아버지는 괜찮아.”

“그래?”

또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로벤하프는 옆에서 달려드는 마물을 상대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갑자기 능력을 세게 방출해 두 마리를 한 번에 얼려버리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있잖아. 데르케디온. 내가 조금 황당한 가정을 해봤거든?”

로벤하프의 표정이 보기 드물게 심각했다.

데온은 제 앞에 쓰러진 마물의 숨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

“그냥 하는 얘기야? 나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사이. 지하에서 전갈을 닮은, 성인의 두 배 크기만 한 마물이 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데온과 로벤하프는 석궁의 화살처럼 날아오는 꼬리를 동시에 피했다.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그, 마물들은 지능이 없잖아? 그나마 제일 가까운 룸 사막에서 온 마물이라고 해도 말로 5일 거리인데. 여기까지 알아서 몰려오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지?”

“그랬겠지.”

“누가 목적지의 좌표라도 찍어준 것처럼 아카데미로 몰려온 거야.”

데온과 로벤하프 모두 가정이라 여기고 하는 대화였다.

로벤하프는 누가, 왜, 같은 의문의 설명 없이, 생각한 것을 이어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로드윅 공작님이 아카데미에 방문하시는 날이지.”

“……너.”

능력으로 전갈 마물의 숨통을 조이던 데온이 로벤하프를 바라봤다.

로벤하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누군가는 마물에게서 학생들을 지켜야 돼.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데온과 로벤하프가 아카데미의 동쪽에서 마물과 싸우는 것처럼, 다른 곳에서도 마물과 싸우는 이들이 있을 터였다.

가령,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의지할 만한 로드윅 공작이라든지.

로벤하프가 다시 가정을 시작했다. 조금 전 망설이며 말하던 것과 달리,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마물을 보내 로드윅 공작님께서 능력을 사용하시게 만든 거라면? 오늘 아카데미 방문하시는 게 비밀은 아니었잖아.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데온의 눈빛이 달라졌다. 가능성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로벤하프의 가정이 맞는다면, 왜, 는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왜. 로드윅 공작이 능력을 사용하게 만들어서 그의 생명력을 단축하려고.

“어때?”

“나쁘지 않은 가정이네.”

데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정대로면 마물을 보낸 자가 노리는 건 블레이크였다.

그리고 블레이크와 함께 있는 사람 중에는…….

“리체가 위험할지도 몰라.”

로벤하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온이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총장실이 있는 서쪽 건물.

장소를 이동하려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또 조류형 마물이야?”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빨리 처치하고 가는 수밖에.

고개를 든 로벤하프와 데온은 놀란 얼굴로 할 말을 잃었다.

“어? 오빠들!”

리체가 왜 하늘에서 자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가.

게다가 타고 있는 건, 붉은색의 조류형 마물이었다.

……마물?

“데르케디온, 저거 마물 맞지……?”

“…….”

데온이 황당한 얼굴로 리체를 올려다봤다.

쟤는 뭘 타고 있는 거야.

* * *

“아빠는 교수님들이랑 보호 결계 펼치러 가셨어. 교수님들이 결계 주문 영창 하시는 동안 주변에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리체는 데온과 로벤하프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리체와 같이 있던 이안까지 포함해 네 사람은, 조류형 마물의 외형으로 변한 지크베르트를 타고 공중을 나는 중이었다.

“지하형 마물입니다!” 

아까 전. 총장실의 진동으로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블레이크, 총장, 교수들 모두 위급상황에 발 빠른 대처를 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한 이들이었다.

마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총장은 마법과 교수들을 모아 보호 결계를 치라 지시했고, 블레이크는 총장의 부탁에 그런 그들을 도우러 움직였다.

블레이크를 움직이게 할 수 있었던 건, 지크베르트가 마물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물로 변할 수 있다니. 하지만 지크베르트 군. 세르디야는 동물로만 변할 수 있지 않나요?” 

총장이 제 말을 믿지 못하자, 지크베르트는 바로 짐승형 마물로 변해 보였다.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편했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총장에게는 썩 달가운 방법은 아니었다.

지크베르트의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에 총장은 곧바로 제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지크, 어떻게 한 거야?”

“마물의 숲에서……. 됐어.”

리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지크베르트에게 놀라 물었다.

리체의 물음에 지크베르트는 설명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는, 그렇게 됐다는 말로 대답을 함축했다.

그동안 리체를 보러 로드윅 공작성으로 갈 때마다 지났던 마물의 숲에서 익힌 능력이었다.

마물의 모습일 때는 마물들이 지크베르트를 공격하지 않았기에, 블레이크는 총장의 부탁을 받아 결계 치는 것을 도우러 움직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블레이크는 리체를 두고 가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지크랑 이안이랑 셋이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해서 대피소로 데려다주고 있었어. 제드랑 필립도 따라오려고 했는데, 지크가 무겁다고 내리라고 했어. 이안, 오빠들이 마지막인 거 같지?”

“응. 이제 구조할 사람은 더 안 보이는 거 같아.”

데온과 로벤하프는 벙찐 얼굴로 방긋방긋 웃는 리체를 바라봤다.

이렇게 듬직해 보이는 애가 정말 우리 리체가 맞나?

[다 컸네. 다 컸어.]

어깨 위로 올라온 파이톤스가 작은 손으로 리체의 볼을 팡팡 두드렸다.

이틀 전. 본래 외형이랑 비슷하게 다닐 거면 상체에 뭐라도 걸쳐달라는 리체의 말에, 파이톤스는 다람쥐 모습으로 외형을 바꿨다.

아무리 인지 조작이라도, 자신의 자랑스러운 근육들을 천 쪼가리 따위로 가리는 불경스러운 짓을 할 수는 없었으니.

“그 다람쥐……?”

데온이 파이톤스를 보고 긴가민가해 눈매를 좁혔다. 

그러고 보니 파이톤스가 돌아오고 난 뒤, 데온의 앞에서는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는 거였다.

“응! 오빠, 기억나? 피칸이야! 돌아왔어!”

리체가 들떠 파이톤스를 가리켰다.

아직도 돌아온 사실이 기뻐 파이톤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이 났다.

데온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리체를 향해 피식 웃었다.

“잘됐네. 사라졌다고 며칠을 울더니.”

[오, 계약자, 울었냐? 울었어? 나 보고 싶어서?]

“그……. 아니…….”

리체가 붉어진 얼굴로 더듬거렸다.

이번엔 데온이 악의 없이 한 말이란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당사자 앞에서 감췄던 과거 일이 드러난 게 창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리체, 나도 자주 울어.”

옆에서 가만히 듣던 이안이 넌지시 리체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 장면에 데온과 리체의 대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멀뚱히 있던 로벤하프가 정신을 차렸다.

이안드웨인, 방심하는 사이에 선수를 치네?

“그래, 우는 게 뭐가 어때서? 나도 가끔 우는데.”

“……너 우냐?”

“하하. 데르케디온. 나 엄청 울지. 감수성이 풍부해서. 지금도 울 거 같은데?”

질색한 얼굴로 로벤하프를 보던 데온은, 슬쩍 로벤하프의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잠시 뒤, 대피소 앞으로 지크베르트가 착지했다.

네 사람이 땅을 밟자, 지크베르트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리체의 옆에 섰다.

“다들 고생했네. 그러고 보니까 우리 다 같은 동아리잖아?”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던 로벤하프는 동아리 부원이 모두 모여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말에 양옆을 둘러본 리체와 이안도 신기하다며 목소리를 냈다.

“어? 그러게?”

“우연치고 신기하다.”

데온과 지크베르트는 관심 없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눈이 마주쳤다. 둘은 별 감흥 없이 각자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갈까?”

자기가 동아리 부장이니 사주겠다며, 먹고 싶은 걸 말해보라는 로벤하프의 뒤로 대피소 문이 열렸다.

“로벤하프!”

안쪽에서 교수 한 명이 다급히 로벤하프를 불렀다.

3학년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 중 한 명이었다. 얼굴을 확인한 로벤하프가 사교성 있게 인사를 건넸다.

“아, 브라운 교수님! 무사하셨네요. 괜찮으세요?”

“빨리 안으로 들어오세요!”

무슨 일이시지?

항상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던 브라운 교수였다. 저런 여유없이 초조한 얼굴이라니.

로벤하프는 곧장 브라운 교수의 뒤를 따라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로벤하프다.”

“로벤하프가 왔어요!”

로벤하프의 등장에 안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일어나 길을 터줬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로벤하프는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그리고.

“…….”

대피소 안쪽에 설치한 간이침대에 힘겹게 숨을 쉬며 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다.

로벤하프와 똑같은 하늘색 머리가 땀에 젖어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단정하게 올라가 있을 머리인데.

“……아버지?”

로벤하프의 푸른 눈이 진동했다.

* * *

보호 결계가 설치되고 마물이 더는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대피소 밖으로 나왔다.

히베츠만 공작도 아카데미의 귀빈실 숙소로 옮겨졌다.

황립 아카데미 소속의 의원이 방문해 히베츠만 공작을 진찰했다.

“능력을 많이 사용한 탓이래.”

로벤하프는 침실에서 나오며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의원의 말을 전했다. 

같이 들어갔던 블레이크는 아직 침실에서 히베츠만 공작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 열흘 정도 남으셨을 거래.”

아카데미에 나타난 지하형 마물이 공중형이나 지상형 마물보다 적은 이유가 있었다.

히베츠만 공작은 만만치 않은 럼블라 이즈마틱을 상대할 블레이크가 걱정돼 지원할 요량으로 황립 아카데미로 오던 중이었다.

그러다 아카데미 근처에서 지하형 마물과 마주쳤다. 마물을 상대하다 지하로 들어가게 됐고, 지하에 뚫린 굴에 마물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히베츠만 공작은 지상으로 올라온 뒤 쓰러졌고, 공작의 능력으로 얼려진 지하에서 나오는 냉기가 아카데미 전체에 퍼졌다.

아카데미는 겨울이 온 듯 추워져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꺼내고 벽난로를 켜야 했다.

“……집에 계시지 왜 오셔 가지고.” 

끝내 로벤하프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아무리 능력자의 짧은 수명을 긍지로 여기는 히베츠만 가문이었어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별마저 덤덤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거실에 모인 이들이 일제히 로벤하프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넸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

[계약자, 정화할 거야?]

‘우선 공작님 상태를 확인해보고.’

닫힌 침실 문을 보며 파이톤스와 대화하는 리체와,

“…….”

그런 리체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데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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