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59)화 (89/89)

59화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지

모건은 그런 파이톤스가 귀여운지 눈웃음 짓고는, 리체를 향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다행히 제법 양심이 있는 놈이었네.

파이톤스는 리체의 팔을 타고 내려가 콧김을 내뿜으며 반지를 관찰했다.

흑색의 별 조각.

[별 조각인 건 좋은데, 검정이네.]

‘문제가 되는 거야?’

[검은색은 고유 특성을 색으로 추측할 수 없거든.]

도서관의 별 조각을 찾고 치유 특성을 떠올린 것과 달리, 파이톤스는 끙,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이게 무슨 특성이지?]

리체는 그런 파이톤스에게 반지를 넘기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 도망쳤던 여학생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모, 모건~~!”

지금 보니 메고 있는 배낭이 꽤 무거워 보였다.

[저러니까 마물한테 잡힐 뻔했지.]

잠시 핀잔을 준 파이톤스는 다시 별 조각에 집중했다.

“헉, 헉.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그 사이, 여학생이 헉헉거리며 리체와 모건 앞에 멈춰 섰다.

리체는 감사 인사를 건네는 여학생에게 살짝 웃어 보인 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모건,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야영지 주변에서 네가 마물에 쫓기는 걸 발견해서 따라왔어. 어쩌다가 마물에 쫓기게 된 거야? 지하형 마물이던데, ……혹시 오전에 말했던-.”

모건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하마드는 머쓱하게 목 뒤를 긁적였다.

“맞아. 이번에 개발한 휴대용 땅 파는 기계 성능을 실험하다가……. 땅이 진동하는 것 때문에 근처에서 마물이 튀어나온 모양이야. 그런데 다음 실험은 못 하겠네. 마물이 턱으로 부수는 걸 내가 봤거든.”

하마드는 떠난 발명품을 애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서 어떻게 하지? 밤새 걸어야 야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벌써 새벽이었다. 아침까지 걸어야 우딕 아카데미의 야영지에 도착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곧장 출발할 테니, 참가 자격 심사는 뜬눈으로 치러야 할 판이었다.

“그러게.”

“저기.”

리체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하마드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방심한 심장이 또 쿵쾅거린다. 이런 말 많이 듣고 다녔을 것 같지만, 진짜 예쁘네.

모건과 견주어도 절대 지지 않을 외모였다. 

정작 본인들은 매일 보는 자기 얼굴 때문에 미인에 면역이 생긴 건지, 서로의 비현실적인 외모를 마주하며 태연하게 대화하고 있지만.

“들어보니까 원래 있던 곳까지 가려면 오래 걸어야 하는 것 같은데, 괜찮으면 우리 쪽 야영지에서 자고 갈래요?”

“아, 말씀은 고맙지만…….”

“크셀폰 대회 참가하러 가는 거죠? 우딕 아카데미 교복이잖아요.”

리체는 모건이 입은 교복과 하마드의 작업복에 한 번씩 눈길을 주며 말했다. 하마드의 작업복 상의에도 자수로 작게 ‘우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 황립 아카데미랑 경쟁자 관계라고는 들었어요. 그래도 밤새워서 야영지까지 가는 것보다 우리 야영지에서 자고 내일 대회장에서 일행들이랑 합류하는 게 낫지 않아요? 내일이 자격 심사니까.”

지금 적의 컨디션 관리까지 신경 써주는 건가.

하마드는 제 앞에 보이는 천사의 후광에 눈이 부셔 손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면…….”

리체의 나쁘지 않은 제안에 모건과 하마드가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염치없지만 하룻밤만 신세 질게요.”

모건은 그렇게 말한 뒤, 자신과 하마드를 리체에게 소개했다.

“저는 모건 데이얼. 이쪽은 하마드 릭.”

“전 트아리체 로드윅이에요.”

리체는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모건은 리체가 내민 손을 잠시 응시하더니 조심히 마주 잡았다.

“잘 부탁합니다. 트아리체.”

* * *

모건 데이얼은 의외로 귀족적인 외모와 달리 넉살 있는 학생이었다. 

리체의 이름을 듣자, 자신들과 같은 학년이니 서로 말을 놓는 건 어떠냐며 제안했다. 

“우리 아카데미까지 알려졌을 정도로 유명하더라. 로크샤 황립 아카데미, 7학년 트아리체 로드윅. 맞지?”

그때도 모건은 말을 놓고 있었지만.

로벤하프와 맞먹는 친화력에 리체는 살짝 당황했으나, 이내 그렇게 하자며 동의했다.

그렇게 모건과 하마드와 함께 야영지로 돌아온 뒤, 하룻밤이 지났다.

[오! 일어났어?]

“……응. 좋은 아침.”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각.

새로 친 천막에서 잠을 잔 리체는 반쯤 감긴 눈으로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멍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니 쌀쌀한 새벽 공기가 살갗에 닿았다.

벌써 일어난 부지런한 인부 몇몇이 아침 준비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밤에는 구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아, 어제 그 아가씨구먼! 실력이 대단하던데, 졸업하고 우리 용병단에 들어올 생각 없어?”

리체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아침 인사를 건넸다.

리체도 맞인사를 하며 걸어가다, 맛있는 냄새에 걸음을 멈췄다. 

아카데미에서부터 동행한 요리사가 천막 앞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꼬치구이를 하는 화로대 옆에 그득히 쌓여 있는 손질한 고기들.

식재료는 삼 일째 되던 날부터 저장식품을 이용했기에, 갑자기 나타난 신선한 재료가 의아했다.

“트아리체 아가씨, 일찍 일어나셨군요. 오늘 아침 메뉴는 꼬치구이입니다!”

화로대 근처로 다가온 리체를 보고, 요리사가 쾌활하게 맞이했다. 그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맛있어 보여요. 아침부터 생고기를 이만큼이나 구하신 거예요? 용병분들이 사냥하셨나 보죠?”

“겸손하시긴. 아가씨께서 사냥하신 겁니다.”

“……제가요?”

리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를 사냥한 기억이 없었다.

“그럼요. 어제 아가씨께서 마법으로 잡지 않으셨습니까.”

마법으로. 그 소리에 리체는 설마, 하며 중얼거렸다.

“마물……?”

“맞습니다!”

“마물을…… 먹어요?”

상상도 못 한 요리 재료에 리체는 당황해 물었다. 요리사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이 잡기 힘들어서 그렇지, 고기 맛이 일품입니다. 육즙이 가득하고 식감이 좋아 풍미가 무척이나 뛰어나죠.”

[땅의 마력 때문이야. 네가 온실에서 키운 식물들이 튼튼한 것처럼.]

주머니 속 파이톤스가 하품하며 리체에게 설명했다.

마물은 땅의 마력이 동물에게 스며들어 탄생하는 것이었으니.

“드셔보실래요?”

“아, 그게-.”

“드셔보세요! 아가씨께는 특별히 두 개를 드리죠! 분명 맛이 좋을 겁니다! 먹고 힘내셔서 우딕 아카데미를 눌러주세요!”

요리사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리체에게 커다란 꼬치 두 개를 내밀었다.

차마 준다는 걸 거절할 수 없어, 리체는 양손에 꼬치를 쥐고 자리를 떴다.

‘파이톤스, 먹을래?’

[나는 인간 음식은 잘 안 먹어.]

파이톤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먹기 싫으면 버리든가.]

‘어떻게 그래.’

[그러면 먹을 거야?]

“음…….”

리체는 고민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요리사 말대로 맛은 있는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꼬치는 먹음직스러워 보이긴 했다.

다만, 끼에엑 하고 울던 마물의 모습이 떠올라 선뜻 베어 물기가 꺼려지는 것이었지.

……먹어볼까.

“트아리체?”

그렇게 리체가 결연하게 꼬치를 입으로 가져가려던 순간.

누군가 리체를 불렀다.

돌아보니 모건이었다. 천막에서 나오는 그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고 있었다.

리체는 꼬치를 내리고 모건에게 살갑게 인사했다.

“안녕, 모건. 여기서 잤구나. 씻은 거야? 천막에 물 부족하지는 않았어?”

“응. 새벽에 검술 연습을 좀 했거든. 근처에 좋은 호수가 있더라. 거기서 씻고 왔어.”

전날 밤, 마물들 때문에 엉망이 된 야영지를 수복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리체를 포함한 마법과 학생들이 망가진 걸 복구했고, 다른 사람들은 천막을 새로 쳤다. 모건도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도왔으니, 잠자리에 늦게 들었을 터인데.

벌써 새벽 훈련까지 다녀오다니. 그것도 저렇게 개운한 얼굴로.

‘우승자는 다르네.’

리체는 내심 감탄하다, 모건과 하마드도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

‘눈칫밥…… 먹겠지?’

어젯밤 모건과 하마드를 데리고 왔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못했다. 리체가 데려온 사람들이라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라이벌 관계에 있는 우딕 아카데미의 학생들인 데다가 한 명은 작년 크셀폰 우승자이니.

‘두 사람도 아침을 먹어야 할 텐데.’

눈칫밥을 먹을 게 빤하니 자신이 먹을 것을 챙겨주자, 싶었으나.

리체가 가진 먹을 거라곤 마물 고기 꼬치뿐이었다.

하마드의 배낭에 먹을 게 있으면 좋겠지만, 어제 배낭에 든 게 뭐냐는 모건의 질문에 “이거? 내 장비들.”이라고 답했으니.

장비를 아침으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모건, 마물 고기 좋아해?”

“마물…… 고기?”

모건은 상냥한 말투로 되물었으나, 미소가 애매했다. 모건에게도 생소한 식재료임이 분명했다.

“오늘 아침 식사가 어제 잡은 마물 고기로 만든 꼬치랑 스튜여서…….”

“아, 혹시 손에 들고 있는?”

“맞아. 오늘 아침.”

“우리 주려고 가져온 거야?”

“그게…….”

리체의 말꼬리가 양손에 쥔 꼬치와 함께 서서히 내려갔다.

모두가 먹을 아침이지만, 자신도 용기를 내야 먹을 수 있는 마물 고기를 모건에게 준다는 게 너무하다 싶었다. 차라리 다른 음식을 찾아오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던 중.

“고마워, 트아리체.”

모건이 리체의 손에 있는 꼬치를 가져갔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한 조각을 빼 물었다.

‘헉.’

“음?”

잘 뻗은 모건의 눈썹 사이가 좁혀졌다. 역시 못 먹을 거였나. 리체가 화들짝 놀라 손을 뻗었다.

“모, 모건. 이상해? 내가 다른 걸 가져다줄 테니까, 그건 그냥 내가 먹을-.”

“맛있는데?”

“어……?”

“마물한테서 이런 맛이 난단 말이야? 겉에 바른 소스도 완벽한데. 트아리체, 요리사랑 만나봐도 돼?”

모건은 눈마저 빛내며 리체에게 물었다. 맛있다며 좋아해 주니 다행이긴 하지만.

“요리사?”

“꼭 만나고 싶어.”

주 종목이 검술에, 마법도 한다던데. 요리에도 취미가 있는 걸까.

우딕 아카데미를 눌러버리라던 요리사의 말을 떠올리던 리체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절 보는 초롱초롱한 금안에 작게 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렇게 사람 만나는 데 적극적이라니. 닮은 외형이라도 이안과는 딴판이다.

리체는 요리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고, 모건은 그런 리체의 뒤를 강아지처럼 쫓아갔다. 

요리사는 리체가 데려온 모건을 보고 깜짝 놀라 경계하다가, 미남자의 순수한 시식 감상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뺏겨 비법을 술술 넘기고 말았다.

아침 식사 후, 배식 내내 조용하던 요리사는 리체를 조용히 찾아갔다.

“아가씨. 모건 데이얼을 조심하세요.”

저자의 앞에서라면 적국의 첩자도 정보를 술술 불 것이라며.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외모와 대형견 같은 태도에 넘어가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모건을 향한 찬양인지 경계인지 모를 말.

리체는 그런 요리사의 말을 반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기세에 눌려 알겠노라고 답했다.

후에, 늦게 일어난 하마드는 모건에게 받은 꼬치를 먹고는 환상의 맛이라며 감격하다, 마물 고기라는 걸 알고는 그대로 게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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