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강력 추천
크셀폰이 열리는 대회장은, 작은 성곽 도시 한가운데 있었다.
초기에는 광활한 평야에 거대한 원형 대회장과 참가자들을 위한 숙소 건물 몇 개가 전부였지만.
크셀폰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주변에 상권들이 형성됐고, 그렇게 몇백 년이 흘러 하나의 도시가 되었다.
“로크샤 제국 황립 아카데미 분들의 숙소는 이 건물입니다.”
성곽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시작한 경비원이 3층짜리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오랜만에 지붕 있는 곳에서 묵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야영 끝이네.”
“나는 따뜻한 물에 목욕부터 하고 싶어.”
“쉬는 건 멀었지. 자격 심사를 봐야 하니까.”
크셀폰의 특이한 심사 방식이었다.
3일의 기간을 정해 참가자들의 입장을 허가하고, 도착한 날 오후에 개별적인 참가 자격 심사를 진행한다. 거기서 통과를 받아야만 참가자 자격을 얻어 크셀폰의 예선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3일 중 첫째 날.
첫째 날은 심사에 관한 정보가 적긴 했지만, 참가하는 아카데미의 수 또한 적다는 이점이 있었다.
오랜 시간 대기하느라 학생들이 진을 빼지 않아도 되니.
그 때문에 학생들의 실력에 자신 있는 아카데미들이 모이곤 했다.
로크샤 제국 황립 아카데미와 우딕 아카데미도 그런 경우였다.
“그건 그렇지. 다들 몸 상태는 괜찮아? 밤에 마물만 안 만났어도 덜 피곤했을 텐데.”
“그 마물, 트아리체가 다 잡아줬잖아. ……마물 꼬치, 맛있긴 하더라.”
4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건물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우연히 학생들의 대화를 들은 경비병은, 깜짝 놀라 제 앞에 있는 교수에게 물었다.
“지난밤에 마물을 만나셨습니까?”
“만났죠. 조류형 마물 일곱 마리.”
“일곱 마리나 말입니까?”
일곱 마리면 사상자가 반드시 나오는 정도의 규모였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었다기에는, 학생들의 행색이 무척이나 말끔했다. 설마 사망자가 나왔나?
경비병은 아까 성곽에서 확인한 지원자 명단을 다시 확인했다.
43명. 모두 무사히 도착했는데.
“농담이시군요. 이거, 믿을 뻔했습니다.”
경비병은 농담에 분위기를 맞추려 슬쩍 웃음 지었다.
마물이 나왔어도 한두 마리였겠지. 교수가 과장해 말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교수는 경비병의 반응에 흡족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껄껄. 농담으로 생각하실만합니다. 저희 학생이 워낙에 뛰어나다 보니!”
“……진담이셨습니까?”
“그, 들으셨나 모르겠네요. 저희 아카데미 마법과 학생 중에 트아리체 로드윅이라고. 마법 친화도가 98이나 되는 천재 중의 천재가 이번 크셀폰에 지원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구, 구십팔이라고요?”
“내가 우리 학생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얼마나 대단한지.”
교수는 경비병이 들고 있는 명단에서 리체의 이름을 검지로 짚으며 속삭였다.
“반년 뒤에 우승자로 여기, 이 학생을 뽑으시면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크셀폰 때문에 만들어진 도시다 보니, 대회 시즌에는 도시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경기의 승자를 맞추는 크고 작은 내기가 성행했다.
그중 제일 인기 있는 내기는 본선의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것.
6개월이나 지나야 결승전 후보가 결정될 텐데도, 교수는 마치 리체가 당연히 후보가 될 것처럼 엄지를 치켜올렸다.
“강력 추천.”
한편, 리체는 숙소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 서 있었다.
모건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하마드와는 성곽 입구에서 헤어졌다.
우딕 아카데미가 오늘 아침 일찍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숙소로 곧장 가봐야겠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갔다.
“장비에 기름칠해주러 가야 해……!”
모건도 그런 하마드를 따라가려나 했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리체의 곁에 남아 있었다.
리체 껌딱지 같은 그 모습에 교수가 “데이얼 학생은 이제 가보셔야죠?”라며 눈치를 주기도 했다.
어쨌든, 리체의 숙소 안까지는 타 아카데미 학생인 모건이 들어갈 수 없으니.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이제 적이네.”
리체가 가볍게 농담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모건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마주 잡았다.
“우딕 아카데미로 전학 올 생각은 없어? 나는 트아리체랑 적이 되기는 싫은데.”
“빈말은.”
모건의 넉살에 익숙해진 리체가 입꼬리를 올렸다.
호선을 그리며 보기 좋게 웃는 리체. 모건이 제 금안에 그 모습을 담으며 리체를 따라 미소 지었다.
“나도 만나서 반가웠어. 트아리체.”
“나중에 또 봐. 본선까지 가게 되면 몇 개월은 같은 도시에 사는 거잖아?”
“……맞아. 그렇지. 나중에 또 보자.”
모건은 밝게 인사하며 자리를 떴다. 리체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계약자.]
‘응.’
[저 자식. 가까이하면 안 돼.]
파이톤스의 말에 리체가 동의했다.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지고 진중해진 리체의 얼굴이, 데온과 블레이크의 무표정을 닮은 듯했다. 리체의 은빛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오늘 아침.
천막과 짐을 정리하는 번잡한 때에, 우연히 들었던 모건의 통신.
“아니요. 마물로 공격하는 건 실패했습니다.”
단 한 문장이었지만. 리체와 파이톤스는 그 말의 의미를 금세 깨달았다.
‘마물을 우리 야영지로 유인한 건 모건이야.’
모건은 적이다.
* * *
우딕 아카데미의 숙소 건물.
“모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 모건을, 1층 거실에 앉아 있던 교수가 불러세웠다.
“디클란 교수님.”
“늦었군.”
긴 눈을 가진 30대의 젊은 교수였다.
모건이 하룻밤 동안 실종됐다가 나타났는데도, 늦었다는 말 외에는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
마치 모건이 자리를 비울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태도였다.
“따라오게.”
앞서가는 디클란의 뒤를 모건이 따라갔다.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디클란 교수가 사용하게 될 방이었다.
모건이 방문을 닫자, 디클란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왜 실패했지? 마물을 끌어들일 미끼는 분명히 건네줬는데.”
커다란 마석을 땅에 심고 폭발시키면 일정 범위 내에 있는 마물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우딕 아카데미의 총장과, 간부급 교수들은 그걸 이용해 로크샤 제국의 황립 아카데미를 견제하려고 했다.
트아리체 로드윅이 합세한 올해의 황립 아카데미가 자신들의 우승을 위협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임무를 수행할 사람으로 모건 데이얼을 보냈다. 그들의 야영지 근처에서 마석을 폭발시키도록.
“설명해보게.”
디클란은 대답을 기다리며 제 앞에 선 모건을 바라봤다.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다고는 하나, 모건은 학생으로만 볼 인물이 아니었다.
검술과 교수들도 버거워하는 검 실력.
아직 아카데미 졸업도 못 한 학생이 오러를 다루고, 마법에도 재능이 있어 전투에 능숙하게 사용했다.
총장이 몇 년간 모건의 뒤를 봐주며 자신의 개로 키울만했다.
“아침에 통신 드린 그대로예요. 로크샤 제국 황립 아카데미 학생들이 마물보다 강했거든요.”
총장의 개. 모건 데이얼.
어느새 대리석처럼 차가워진 금안을 보며, 디클란은 혀를 찼다.
“쯧. 그러면 자네가 나섰어야지. 어떻게 해서든 못 오게 막았어야지.”
“제가 무슨 수로요. 게다가 총장님께서는 마석을 파괴하고 귀환하라고만 하셨는걸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모건의 태도는 냉랭했다.
디클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래서 총장의 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목줄을 쥔 총장의 말만 들으니.
디클란은 모건에게 물었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지하형 마물에게 쫓기던 하마드를 자네가 구했다던데. 그 자리에서 반지 하나 보지 못했나?”
“반지는 없었어요.”
끙.
없었다는 말에 디클란은 더 물을 말이 없었다.
제 가문의 가보를 길을 걷다 떨어트린 것은 저이니.
하필 반지가 땅을 굴러 자신과 멀어진 순간, 지하에서 마물들이 땅을 가르고 올라왔고. 마물의 돌기에 반지가 걸려버렸다.
그리고 세 마리의 마물은 근처에 있던 기계과 학생, 하마드를 쫓기 시작했다.
“알았네. 임무에 실패했다 해도 로크샤 놈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지. 학생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가 트아리체 로드윅이었지? 오늘 자격 심사 중에 자네가-.”
“디클란 교수님.”
모건의 단호한 음성이 디클란을 불렀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 그것은 총장의 개의 심기가 몹시도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건은 차디찬 눈동자로 디클란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리체는 건드리지 마세요.”
“리체? 트아리체를 말하는 건가? 언제 이름을 줄여 말할 정도의 사이가 됐지?”
“저 혼자 멋대로 줄여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디클란의 좁혀진 눈매에도, 모건은 웃는 낯을 유지했다.
날이 선 분위기 속에서 모건은 다시 말을 이었다.
“총장님께서 트아리체는 결승전까지 건드리지 않기로 저와 약속하셨거든요.”
* * *
모건은 총장의 연락이 올 때까지, 다른 학생들처럼 대회에 집중하겠다고 말하며 방을 나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숙소로 배정받았다는 방을 찾아 올라갔다.
몇 개월을 머물 수 있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가구들이 채워져 있는 단정한 방이었다.
“…….”
달칵.
닫힌 문 앞에 잠시 조용히 서 있던 모건은, 무거운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지친 걸음을 따라 6년간 그의 삶을 지독히 따라다닌 과거의 말들이 떠올랐다.
“내가 왜 다시 왔냐고?”
한 걸음.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니까. 네가 살아서 대를 이어야, 내 그릇이 될 몸이 이어질 테니까.”
두 걸음.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인데, 그러면 이건 어때? 네 죽음이 르티옴을 죽게 만든다면?”
……세 걸음.
“티타가 되돌린 과거에 너희 둘의 운명이 얽혔어.”
털썩.
이안은 쓰러지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앉았다.
6년 전.
게르웨르 영지에 도착하고 한 달 정도가 흘렀을까. 히켄카가 자신을 찾아왔다.
티타, 라는 르티옴을 만든 별이 리체의 시간을 한 번 되돌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리체의 운명이 얽혔다.
“네가 죽으면 르티옴도 이전과 같은 마지막을 맞게 되겠지.”
자신이 죽으면, 리체도 죽는다.
이안은 16살, 리체는 19살에 끝나는 자신들의 운명.
히켄카는 11살의 이안에게 도망치라 말했다.
5년 뒤 찾아올 운명을 조금이나마 속이기 위해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라 했다.
“언제까지 도망쳐야 하는데?”
“르티옴이 19살을 넘길 때까지? 르티옴마저 정해진 죽음에서 벗어난다면, 과거의 운명은 너희를 놓칠 테니까.”
왜 리체와 자신만 운명의 위협을 받는 걸까.
다른 능력자들 또한, 그들이 살았던 이전 삶보다 더 오랜 삶을 살았을 텐데.
이안의 의문에 히켄카가 답했다.
“그때의 능력자들은 부작용 때문에 죽은 거지. 정해진 수명을 온전히 산 게 아니니까.”
하지만 리체와 이안의 죽음은, 정해진 수명에 따른 죽음.
“너와 르티옴의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이곳을 떠나. 이안드웨인. 사라지는 건 내가 도와주지.”
이안은 히켄카의 말을 듣고 도망치듯 로크샤 제국을 떠났다.
리체와 작별 인사를 나눌 수도 없었다. 떠나는 이유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으니.
그때부터 이안은 제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판 대륙으로 넘어갔다.
가문도, 이름도, 능력의 원주인인 히켄카가 잠시 앗아간 제 능력도.
다른 인물로 살기 위해 가진 것 없이 발버둥 치던 이안을, 우딕 아카데미의 총장이 주웠다.
“키울만한 개가 필요했지. 마침.”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로크샤 제국 황립 아카데미 2학년이었던 이안드웨인 게르웨르는, 그렇게 같은 해 우딕 아카데미 1학년인 모건 데이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