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64)화 (63/89)

64화 군침이 돌아

예선 첫째 날의 시계탑 광장.

리체와 다른 출전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광장 바닥에 꽂힌 팻말 하나였다.

시험 교관인 케이슬리를 찾아온 마법과 학생들은 팻말의 과제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숨바꼭질인가? 너무 쉬운 거 아니야?”

“다들 교관님 얼굴 알지? 나눠서 찾을 사람?”

“나 비행 마법 자신 있어. 공중은 내가 맡을게.”

크셀폰의 예선은 과제가 만만치 않기로 악명이 높았다.

발아까지 1년이 걸리는 씨앗의 싹을 틔워오라든지, 수백 년 동안 난제로 남겨져 있는 문제를 풀어온다든지. 

가끔은 목숨을 위협하는 과제도 나오는 마당에, 고작 숨바꼭질이라니. 예선은 도시 전체에서 치러지니 일반적인 숨바꼭질보다는 범위가 좀 넓지만. 그쯤은 할 만했다.

“오늘 합격증 동나겠네.”

학생들은 자신만만했다. 만 하루 정도는.

시험 교관인 케이슬리를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니, 몹시 어려웠다.

“이틀 밤낮을 찾아다녔는데. 어떻게 목격담도 하나 안 나오지?”

“나……. 하도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만 보고 다녔더니, 이제 교관님을 봐도 얼굴 알아볼 자신이 없어.”

“차라리 다른 교관님한테 가는 게 낫겠다. 이건 시간 낭비밖에 안 돼.”

이틀 만에 12명 중 절반이 포기하고 다른 시험 교관에게로 갔다.

또 그 나흘째에는 3명뿐이더니.

“나도 일단 포기. 바션 교관님 과제가 좀 쉽대. 트아리체, 내가 장담하는데 케이슬리 교관님 과제는 아무도 성공 못 할 거야.”

일주일째인 지금. 남은 사람은 리체밖에 없었다.

[너도 다른 교관한테 가라니까.] 

‘좀 더 찾아보고.’

리체는 거리를 걸으며 파이톤스의 말에 대답했다.

무려 제 계약자씩이나 되는 리체가 애를 먹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파이톤스가 투덜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참가 자격 심사에서 그 교관을 봤을 때 별 조각이라도 넣어놓을 걸 그랬다.

[그랬으면 내 탐지 능력으로 단숨에 찾아버리는 건데!]

‘그러게.’

리체는 웃으며 파이톤스의 말에 맞장구쳤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으면 벌써 찾고도 남았을 터였다.

이렇게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숨었을 줄이야.

생각보다 장기전이 될 듯했다.

[계약자.]

‘응?’

[검은색 별 조각. 그걸 한번 써볼까?]

모건을 처음 만난 날 주운 반지를 말하는 거였다.

그간 리체와 파이톤스는 별 조각의 고유 특성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혹시 알아? 사람 찾는데 유용한 특성일지도.]

‘아, 해볼게.’

리체는 흔쾌히 반지를 쥐어 미셸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것도 아니-.’

[……뭐지, 진짜?!]

이것도 아니라니. 그러면 도대체 무슨 특성이란 말인가.

강한 별의 조각을 손에 넣으면 뭘 해. 사용할 수가 없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답답함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며칠을 꾹꾹 눌러왔던 파이톤스의 인내심이 드디어 폭발했다.

리체의 어깨에서 펄쩍 뛰어내린 파이톤스는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허공에 발길질했다.

[이 몸이 고작 이 정도에 애를 먹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피, 피칸.”

삑, 삑. 높은 다람쥐 울음소리가 거리를 시끄럽게 울렸다.

길에서 난동을 부리는 다람쥐라니. 구경감이 되기 딱 좋았다.

“째깐한 게 성질이 보통이 아니구먼.”

“어이구, 주인 말 좀 들어라.”

도시에는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있었다. 벌써 지나다니는 사람 중 몇몇이 파이톤스를 향해 한마디씩을 건넸다.

리체는 그런 파이톤스를 안아 들었다.

[안 되겠어. 계약자. 다 때려치우고 호숫가로 가자. 내가 이 별 조각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서~~!]

‘진정해……!’

머릿속이 시끄럽게 울렸다. 리체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파이톤스를 안아 들고 후다닥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길을 고르고 골라 빠른 걸음으로 돌았다. 그러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샛길이 하나 나왔다.

걷는 사람이 없는 대신 길에 쭈그리고 앉은 모건은 있었지만.

모건은 깜짝 놀란 눈으로 제 앞에 갑자기 나타난 리체를 올려다봤다.

[이 자식, 그때 그 마물 푼 놈이잖아?]

“트아리체.”

모건은 숨을 몰아쉬는 리체의 모습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본의 아니게 뛰듯이 걸어 다녔더니 숨이 찼다.

리체는 가쁜 숨을 고르며 제게 걸어오는 모건을 바라봤다.

아무 일도 없다는 말에도 걱정이 듬뿍 담긴 얼굴. 모건은 자격 심사 이후로 처음 보는 거였다.

두 번 밖에 못 본 사람을 저렇게 걱정해주다니. 원래 성격은 다정한 모양이었다. 적이지만.

“모건, 여기는 어쩐 일로……?”

리체의 머릿속이 모건은 향한 경계와 약간의 반가움, 뛰면서 오른 열로 복잡했다. 조금은 횡설수설한 질문이 리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차, 먼저 이곳에 있던 건 모건이었는데.

하지만 모건은 개의치 않고 답했다.

“고양이랑 놀고 있었어.”

“고양이?”

그 말에 리체는 고개를 옆으로 빼서 모건의 뒤를 바라봤다.

방금 모건이 있던 자리 앞에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날렵한 느낌의 회색 고양이.

고양이는 꼬리를 작게 살랑이며 리체를 향해 작게 울었다.

“……?”

리체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할 말이라도 있는 듯한 헤이즐 색의 눈동자. 그리고 흔한 색이지만, 어디선가 본 적 있는 회색의 털.

“리체.”

주황색의 붉은 털을 가진 지크베르트를 떠올리게 하는 낯설지 않은 기분에, 리체는 고양이를 향해 중얼거렸다.

“……케이슬리 교관님?”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모두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모건과 파이톤스가 어리둥절하게 리체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계약자. 저건 고양이-.]

고양이한테 무슨 교관이냐며, 파이톤스가 뭐라 하려던 그때.

“어머.”

리체의 말을 들은 고양이의 입에서 울음소리 대신 쾌활한 느낌의 여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알았지?”

리체, 모건, 파이톤스의 시선이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고양이는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 후, 작은 소리로 8초가량 빠르게 영창했다.

그러고 리체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회색 고양이는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더니,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150cm 초반의 작은 키, 회색 단발. 고양이를 닮은 치켜 올라간 헤이즐 눈을 가진 20대 후반의 여자.

마탑의 이인자이자 이번 크셀폰의 시험 교관 중 한 사람인 케이슬리였다. 목에 착용한 초커에서, 장식처럼 박힌 마석이 반짝였다.

“듣던 대로 훌륭해요. 트아리체 로드윅. 시험 교관을 찾았군요.”

케이슬리는 시원스레 웃으며 리체의 앞에 섰다. 악수를 청하듯 내민 손을 리체가 잡으려던 그때.

달깍. 하고 불길한 소리가 리체의 손목에서 났다. 이어 리체의 옆에 있는 모건의 손목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슬리가 수갑 하나를 두 사람의 손목에 한쪽씩 채운 것이었다.

“수갑?”

“교관님,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모건과 리체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케이슬리는 자신이 만든 상황이 재밌는 듯, 씩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런데 아직 교관을 꽉 잡지는 못했네요?”

“아!”

합격증을 받고 싶다면 저를 찾아서 꽈-악 붙잡아보세요.

이어 팻말의 내용을 떠올린 리체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케이슬리가 좀 더 빨랐다. 그녀는 리체의 손을 가볍게 피하고, 뒤로 폴짝 뛰어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계약자! 담벼락을 부숴!]

‘응!’

합격증을 받으려면 케이슬리를 잡아야 했다. 리체는 급히 파괴 주문을 영창했다.

“……어?”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번을 더 같은 주문을 영창하고, 파이톤스의 파괴 능력까지 사용하려고 했지만. 주변은 여전히 잠잠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담벼락 위에서 케이슬리가 어쩔 줄 모르는 리체를 향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저런, 마법을 사용할 수 없나 보죠?”

마치 이 사태가 일어날 걸 예상한 말투.

그 사이, 원인을 찾은 파이톤스가 외쳤다.

[그 수갑, 그게 별의 힘을 몸에 가두고 있어!]

별의 힘. 즉, 마력을 몸에 가둬 마법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리체가 케이슬리에게 물었다.

“교관님, 수갑으로 제 마력을 가두신 건가요?”

“……대단하네.”

케이슬리는 리체에게 대답하는 대신, 아무에게 들리지 않을 소리로 중얼거렸다. 순수한 감탄이었다.

트아리체의 말대로였다. 자신이 트아리체에게 채운 수갑은 마력의 흐름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탑에서 극비리에 만드는 중이라, 아직 바깥에는 노출도 안 됐는데.’

그래서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모건 데이얼도 함께 수갑을 채웠다. 거기에는 제 취향인 외모 둘이 붙어 있는 걸 보고 싶은 사심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채운 수갑은 그렇게 쉽게 용도를 알아볼 만한 게 아니었다.

'내 변신 마법도 간파하고. 영감들이 데려오라고 난리를 부릴 만해.'

케이슬리는 ‘트아리체 로드윅을 잘 구슬려서 크셀폰이 끝나면 마탑으로 데려와.’라던 마탑의 장로들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마법사들의 단체, 마탑.

마탑 내에서는 국적도, 신분도, 재력도 소용없었다.

중요한 건 실력뿐. 즉, 강한 놈이 최고다.

‘아쉽다. 자격 심사 때 제대로 붙어볼걸.’

주최측에서 아직 출전자 신분이 아니니 지원자를 죽이지 말라는 소리만 없었어도.

천재라고 소문난 트아리체 로드윅은 얼마나 강할지. 싸워보고 싶어 군침이 돌았지만, 아직 예선 중이었다.

명색이 마탑의 이인자다. 고작 일주일 만에 잡힐 수는 없지. 

“그러면, 두 사람. 재밌는 시간 보내면 좋겠네요.”

“자, 잠시만요. 교관님! 수갑은 풀어주셔야-!”

자리를 뜨려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리체가 다급히 외쳤지만, 케이슬리는 담벼락 반대편으로 뛰어내려 리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하지.’

[내가 쫓아갈까?]

이번에야말로 잡고야 말겠다며, 파이톤스가 팔을 걷어 올리던 그때였다.

“트아리체. 이 수갑, 줄이 늘어나는데?”

리체의 뒤에 서 있던 모건이 말을 걸었다. 그런 뒤, 리체의 몸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붕 떴다가, 모건의 단단한 품에 안겼다. 순간 포근한 향이 리체의 후각을 자극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란 리체가 몸을 뻣뻣이 굳혔다. 모건이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교관님, 잡으면 돼?”

“으, 응.”

리체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건은 리체를 안은 채 케이슬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달렸다.

* * *

몇 시간 뒤.

“저 남자, 모건 데이얼이야. 작년 우승자.”

“헉. 진짜네. 같이 있는 사람은 누구지? 연인인가?”

“너 몰라? 트아리체 로드윅이잖아. 유력 우승자 후보라고 소문난. ……우승자 후보 둘이 사귀나?”

어느 카페 안.

리체와 모건은 손은 맞잡고 나란히 앉아,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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