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자 가문의 수양딸이 되었다 (85)화 (84/89)

85화 형들 못 믿어?

로크샤 제국.

서쪽 외진 곳에 있는 신전.

제단 앞에 선 사제는, 봉우리가 맺힌 화분을 향해 두 손을 들었다.

“티타님을 찬양하라!”

와아아아아-.

신전 내의 수십 명의 사제가 환호를 질렀다.

이내, 그 환호는 비명으로 변했다.

“으아악!”

“마, 마물이다!!”

단 위쪽, 2층 높이의 창문에 번뜩이는 짐승의 눈이 보였다.

저 정도 크기의 짐승은 없으니, 마물인 것이다.

위협적인 짐승 울음소리가 났다. 이어, 거대한 짐승의 발톱이 3층 되는 건물의 천장을 무너트리고 신전의 반을 뜯었다.

“공격, 공격하라!”

사제들이 무기를 꺼내고 마법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물이 휘두른 앞발에 모든 것이 속수무책이 되었다.

신전의 잔해와 뒤섞여 쓰러진 사제들.

힘의 차이가 명확했다. 움직일 수 있는 사제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살아남아라!”

“교단을 지켜!”

뜯겨나간 신전의 반대쪽.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그곳으로 달려 나간 사제들을 기다린 건.

“어디가?”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귀남자였다.

네다섯 명 되는 사제들이 주춤거렸다.

“티타 신께서 함께 하시-.”

“신은 무슨.”

쩌적.

귀남자의 조소 어린 음성과 함께 사제들의 몸이 얼었다.

로벤하프는 얼음 조각상처럼 변한 사제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마물화를 푼 지크베르트의 검에 여신상이 반으로 갈라지는 중이었다.

“지크베르트, 다 처리했어?”

“응.”

지크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이 고요했다. 로벤하프는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신전의 잔해와 사제들을 한꺼번에 얼려버렸다.

지크베르트가 불만족스럽게 말했다.

“내가 다 끝냈는데.”

“서운해하지 마. 확인차 얼린 거니까.”

로벤하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움직이는 사제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신전에 있는 놈들은 이게 다인가?”

“응.”

[다라고 생각하지 마라. 더 있을지도 모르니.]

“다야.”

[네놈은 정말 겸손을 모르는군. 아까 마물화도 어설픈 곳이 많았다. 지크베르트. 몸 주도권을 그냥 나한테 넘겨. 내가 대신 그놈들을 처리해주지.]

“리체가 안 된다고 했어.”

지크베르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로벤하프가 움찔했다.

또 그 위대한 별인지 뭔지랑 대화하나 보네.

“아, 아가씨!”

“아가씨를 찾아!”

리체가 사라진 지 반년이 지났다.

[……다람쥐의 정체를 알만한 놈이 있어.]

반년 전.

리체가 사라졌다는 통신을 받은 데르케디온은, 모건 데이얼이라는 남학생에게 다람쥐의 정체를 추궁했다.

“리체와 함께 있던 다람쥐는 위대한 별입니다.” 

모건의 입에서 나온 다람쥐의 정체는, 위대한 별. 파이톤스.

하지만 모건은 케이슬리의 증언과, 로드윅 공작성에 나타난 여자의 외형을 듣고는 말을 정정했다.

“그건 리체의 다람쥐가 아닐 겁니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있고, 본모습이 리체와 비슷한 외형을 가졌다면. 아마 르티옴을 만든 별일 거예요. 무슨 목적으로 리체를 데리고 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 모건의 말을, 필립이 도시 바깥에 있는 블레이크와 로벤하프에게 전했다.

얼토당토않은 말이라 넘겨들을 수도 없었다.

이미 카이샨의 존재를 로벤하프는 목격했다. 자신들의 비정상적인 능력의 기원이 위대한 별의 능력이라면, 르티옴 또한 그 능력을 준 위대한 별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모건의 말을 들은 데온이 물었다.

“그 별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답한 모건은 다음날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딕 아카데미의 총장이 기르던 개에게 물어뜯겼다는 소식이 로드윅의 정보망에 들어왔다.

이후로는 모건의 행방이 묘연했다.

“사직하겠습니다.”

데온도 크셀폰을 떠났다. 리체가 없는 크셀폰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

회장이 그를 잡았으나, 여동생이 사라진 데온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후에 본선까지 무사히 치러졌다는 모양이었으나, 거기에 관심을 가질 만한 이는 데온의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데온이 크셀폰을 떠난 직후.

젊은 능력자들은 로드윅 공작성에 모였다.

리체가 사라진 자리에 말라붙은 핏자국.

데온은 그 자국을 한동안 바라보다 손을 그러쥐었다.

“찾을 거야.” 

“무슨 수로.” 

데온이 말했고 로벤하프가 답했다.

무슨 수로. 리체를 데려간 게 르티옴을 만든 별이라는데.

“어디서 리체를 찾게.” 

인간이라면 모른다. 인간이라면 이 세계의 모든 곳을 뒤집어서라도 리체를 데려간 범인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별이라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인간계고, 별들은 다른 세계에 산다며!” 

로벤하프는 울분해 소리쳤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리체를 그 별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다.

“얼렸어야 했어. 그 여자가 리체에게 손을 얹었을 때, 심장까지 얼렸어야 했다고.”

리체가 피를 쏟아서 두려웠다. 

8년 전인, 1학년 때, 하필이면 방학이었다. 그래서 리체가 쓰러졌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생사를 오갔었던 일이라는 것도.

로벤하프는 그 소식에 몇 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했다. 리체가 아픈 걸 몰랐으니, 저도 그만큼 아파야 해. 10살의 로벤하프는 침대 속에서 울며 다짐했다.

‘내가 크면 리체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그 2년 뒤에, 리체가 르티옴인 걸 알았고 그때 쓰러졌던 일이 정화의 부작용이었다는 걸 알았다. 

후에 더는 부작용을 겪지 않는다고 리체는 말했지만. 로벤하프는 리체가 정화해줄 때마다 늘 조심스러웠다.

“리체……!” 

그런 리체가 피를 쏟았다. 제드에게 들었던 정화의 부작용과 똑같았다.

닿지 말아야 해. 리체를 아프게 하는 건 능력자들의 기운이니까.

로드윅 공작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차마 리체에게 닿지 못하고 딸의 이름을 정신없이 불렀다.

은발의 여자가 나타났을 때도, 로벤하프는 두려웠다.

‘내가 지금 능력을 사용하면, 리체가 아플까?’ 

순간 고개를 든 두려움에 여자에게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다.

고민은 짧았지만, 여자가 리체를 데리고 간 순간은 그보다 더 짧았다.

“내가 멍청했어.”

“…….”

데온은 로벤하프의 고백에도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잘한 것은 없었으니. 

리체가 남아 있으라고 해도 따라갔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나 그때 오빠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어렸을 적부터 들었던 불안. 약해빠진 제 동생이, 언젠가는 자신들을 버리고 영영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

데온은 검을 들고 일어섰다. 검집에 단 마름모 모양의 장식이 흔들거렸다. 리체가 크셀폰을 떠나기 전에 제게 주고 간 것이었다.

“돌아다니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

“데르케디온, 냉정해져. 평생 허상을 쫓아다닐 거야?”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방법을 찾자. 찾고 나서 움직여도 되잖아.”

“어느 세월에-!”

데온이 소리쳤다. 이렇게 냉정을 잃은 데온은 처음이기에, 로벤하프가 입을 다물었다.

“어느 세월에……. 찾을 수 있는데.”

데온의 눈시울이 붉었다.

“티타교.”

그러던 중, 근처 계단에 잠자코 앉아 있던 지크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티타교의 신이 리체를 데려간 별이야.”

데온과 로벤하프가 고개를 돌렸다.

그걸 어떻게 아냐며 추궁하는 눈빛에, 지크베르트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카이샨이 말했어.”

“카이샨이 뭔데.”

“……세르디야 가문에 능력을 준 위대한 별.”

로벤하프가 중얼거렸다.

리체를 찾을 실마리가 기대치도 않던 지크베르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티타교가 있어서 별의 힘이 강해진 거야. 사람들에게서 별의 이름이 불리면 별은 점점 강해져서 신이 돼.”

누가 말해준 걸 그대로 내뱉기라도 하는지, 지크베르트의 말이 평상시와 달리 술술 나왔다.

“그 교단의 우두머리가 그 별의 그릇이야. 티타교를 없애다 보면, 리체를 찾을 수 있어.”

서 대륙에서 세력을 불렸다는 그 교단은, 생각보다 넓은 지역을 활동 무대로 삼고 있었다. 서 대륙 전체, 판 대륙 일부와 로크샤 제국 일부.

데온은 서 대륙으로 향했다.

지크베르트와 로벤하프는 판 대륙과 로크샤 제국을 맡았다.

그렇게 이번 세대의 능력자들은 반년 전부터 티타교를 잡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우두머리는 없는 모양이야.”

로벤하프는 손을 털며 말했다.

어제 데온도 쓸만한 게 없었다며 통신했으니.

“다음 지역으로 가자. 지크베르트.”

“응.”

두 사람은 다시금 지역을 이동했다. 

* * *

황립 아카데미. 리체의 온실.

겨울 방학에 접어든 아카데미는 조용했지만, 이곳만은 떠들썩했다.

“로터스, 그게 아니라니까? 은방울꽃은 이곳에 심어야지!”

“릴리, 너야말로 뭘 모르는 거 아니야? 하얀색 팬지를 심어야 리체 누나가 좋아하지.”

쌍둥이는 모종삽으로 흙을 파며 아옹다옹했다.

흙을 싫어하는 릴리는 작업복을 입고 얼굴까지 흙이 묻었다. 로터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둘 다 몇 달 전부터 시작한 정원 일에 영 소질이 없어 아직도 몸에 익지 않은 탓이었다.

“식물과 교수님들한테 꽃을 부탁한 건 나거든?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러니까 내 말 들어. 바보 로터스.”

“흥. 그 꽃을 내가 다 옮겼거든? 릴리 히베츠만.”

쌍둥이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몇 달 전, 리체가 사라졌다는 말이 황립 아카데미에도 퍼졌다.

졸업한 전 부학생회장이 럼블라 교수를 찾아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교수님께서 소속된 교단이 트아리체와 세 공작 가문의 능력자들을 노렸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되돌리고 싶은 과거가 있을 뿐입니다!”

럼블라 교수는 발악하며 항변했다.

로벤하프는 얼음처럼 시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당화하지 마세요. 그런 과거가, 교수님께만 있는 건 아니죠.”

럼블라 교수는 그대로 얼려졌다.

아카데미 내에서야, 학생과 교수의 관계였으나. 로크샤 제국 내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황제보다 큰 권력을 가진 세 공작 가문.

그들을 노린 혐의로, 럼블라는 얼려진 채로 재판받아 로크샤 제국의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면 한쪽에 은방울꽃을 심고 한쪽에 하얀색 팬지를 심자. 그 사이를 리체 언니가 걸어오게.”

“오. 좋은데?”

한발 물러선 릴리의 제안에 로터스가 씩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리체에게 돌아왔을 때 여전히 예쁜 정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푸릇푸릇하고 화사한 정원.

“그리고 리체 언니한테 우리가 꽃다발을 건네면서 말하는 거야.”

“뭐라고 말할 건데?”

“잘 돌아왔어, 라고…….”

“으. 릴리, 너 또.”

로터스는 질색하며 손수건을 꺼내 릴리의 얼굴을 꾹꾹 눌렀다.

또 운다. 또.

“리체 누나 곧 온다니까? 형들 못 믿어?”

“미더(믿어).”

릴리는 코를 흥, 풀고 손수건을 옆으로 던졌다. 로터스가 쓰레기가 되어버린 제 손수건을 향해 으악, 하고 작게 소리를 냈다.

릴리는 다시 모종삽으로 어색한 삽질을 열심히 하며 말했다.

“오빠들이 데리고 올 테니까.”

* * *

[……티옴.]

[르……옴.]

[르티옴!]

“……!”

리체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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