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5화 (5/166)

〈 5화 〉 초전

* * *

행군을 시작한지 이주일.

우리는 시야가 좁은 구릉지대에서 켈자르가 보낸 분견대와 마주쳤다.

전부 보병인데, 어림잡아 보면 한 이백 정도 되려나? 마력을 감지해보니 마력병은 기껏해야 대여섯 정도겠다.

아직 경계선을 넘지도 않았는데, 이것들이 미쳤군.

“쳐부술까요?”

파샨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물었다.

“그래. 제2 기사단이 나가라.”

“소관은...”

“제1 기사단은 저 언덕을 뒤로 가서 패주하는 놈들을 전부 잡아오도록 해. 심문할 테니 계급장 높은 놈은 반드시 살려서 잡아와야 한다.”

내 말에 오록스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보기 좋은 공훈은 전부 파샨에게 몰아줄 거다.

타라... 가 아니라 오록스를 얻으려면 일단 오록스의 기를 죽여 놔야 할 테니.

내가 손짓하자, 나팔수가 뿔 나팔을 길게 불었다.

파샨은 제2 기사단을 쐐기 모양으로 정렬시키고는 바로 달려 나갔다.

오록스와 타라가 이끄는 제1 기사단은 간격을 두고 전장을 빙 둘러서 적들의 뒤로 향했다.

기사단이 출격하자 적들이 우왕좌왕하는 꼴이 여기서도 다 보인다.

보병 이백이 기사 이백을 앞뒤로 맞이하면 어떻게 살아날 방도가 없다. 마법사라도 숨어있지 않은 이상은 그냥 다 죽는 거다.

“죽어라!”

파샨이 천둥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적병 사이를 파고들었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데, 한 번 검이 올라갔다가 내려갈 때마다 목이 휙휙 날아다닌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파샨이 죽음의 여신처럼 느껴지겠지.

“으아!”

“도망쳐!”

“씨발! 기사단이 왜 여길 와!”

적병은 자중지란에 빠져서 기사단과 맞서지도,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죽어나갔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마흐! 웬! 카라투스! 뭉쳐라!”

“여우 여자를 먼저 잡아야 해!”

“마력창이다! 마력창을 만드는 거다!”

몇 안 되는 마력병이 모여서 불그스름한 빛깔의 마력을 긴 창처럼 만들어서 파샨에게 던졌다.

하지만 파샨은 말 위에서 공중제비를 도는 묘기로 그 공격을 피하고는, 곧바로 녀석들에게 달려들어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마력병은 다 죽었다! 계속 휘몰아 쳐!”

파샨은 피에 젖은 채로 흥분해서 소리쳤다.

“부단장을 따라라!”

“백여우를 따라라!”

파샨이 뚫은 혈로로 제2 기사단이 쐐기처럼 들이쳐서 적 분견대를 완전히 반으로 나누어 버렸다. 파죽지세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지.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적군은 붕괴되었다.

파샨은 방향을 돌려서 다시 한 번 적들을 들이쳤지만, 이미 죽일만한 놈들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몇몇 겁쟁이들이 시체 사이에 숨어서 죽은 척을 하고 있었을 뿐. 그 자들도 이내 말발굽에 밟혀 몸통이 터져나갔다.

진영 바깥쪽에 있던 녀석들은 허겁지겁 언덕 쪽으로 도망갔지만, 거기에는 이미 제1 기사단이 일자진을 펴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록스는 검 한 번 휘두르지 않고 그대로 서서 패잔병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수가 생각보다는 많았다. 서른에서 마흔 명 정도는 되겠군.

기다리고 있자니, 곧 타라가 패잔병 하나를 묶어서 데려왔다.

40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어디 한 대 잘못 맞았는지 눈에 멍이 들어 시퍼렜다.

“사령관 각하. 사로잡은 자들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자입니다.”

“그래. 자네 이름이 뭔가?”

“요, 요나스입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각하!”

“자네가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만 한다면 살려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나. 그래, 자네 계급이 뭐였나?”

“고참 보병입니다, 각하!”

“높은 지위는 아니였군.”

“후, 훈장도 받았습니다. 각하.”

“그걸 나한테 말해서 뭐하나? 내가 준 것도 아닌데.”

내가 혀를 차자, 요나스는 고개를 쉴 새 없이 조아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예, 예. 그렇지요. 그렇지만 보병대장이 제 먼 사촌의 친우 되는 분, 아니, 사람이라서 알만한 건 다 압니다요. 뭐든 물어만 보십시오, 각하.”

“그럼 켈자르의 본대가 어디 있는지 아나?”

“물론이지요. 저희가 정찰 나오기 전에 출정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지금즈음이면 성을 나와서 라울 강으로 가고 있을 겁니다.”

“라울 강에서 전선을 형성하려는 건가?”

“그, 그렇겠지요.”

“본대는 수가 얼마나 되나? 아는 대로 말해봐.”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최소한 사천 명은 될 겁니다. 마력병도 사백 명은 될 거고요.”

그런 것까지 고참 보병이 알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은 참고사항으로만 기억해두기로 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나?”

“레시아르 원정군이 어디까지 오고 있는지를 정찰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각하!”

“죄송할 건 없지. 더 물어볼 건... 글쎄, 없군.”

“더, 더 없으십니까? 무엇이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각하! 각하! 제발!”

내가 눈짓을 하자, 호위병이 도끼로 요나스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요나스는 내게 빌던 그 자세 그대로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타라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왜. 내가 자비를 베풀 거라 생각했나?”

“죄송합니다. 각하.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긴장해서 그런지, 내게 실망한 건지 어투가 딱딱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원정길이 바쁜데 포로를 데려갈 수는 없지. 그렇다고 전투에 앞서 적병을 풀어줄 수도 없고.”

“그럼 저 자들도 전부 죽이실 겁니까?”

타라는 오록스가 언덕 밑에 꿇려놓은 포로들을 가리켰다.

“그래. 불만 있나?”

“아닙... 니다.”

“전쟁에 자비를 찾는 놈이 이상한 거지. 나도 좋아서 죽이는 건 아니야.”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가자고.”

잠시 후, 언덕 밑에서 비명이 나다가 곧 조용해졌다.

타라는 해쓱해진 얼굴로 오록스와 함께 언덕을 올라왔다. 검 끝에 피가 묻어있었다.

자식 교육을 엄하게 하네. 아니면 타라가 직접 하겠다고 한 건가.

오록스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켈자르가 여기까지 정찰대를 보냈다면 변경 영지들이 위험합니다. 이렇게 빨리 움직일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원정 정보가 어디선가 새나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이 근방은 마티란 자작령이지?”

“예.”

“일단은 마티란 자작을 만나러 가자고.”

“소관이 선행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

오록스는 제1 기사단 백 명을 이끌고 먼저 말을 달려 나갔다. 어쩐 일인지 타라는 데려가지 않고 내 곁에 남겨뒀다.

나는 제2 기사단은 잠시 쉬게 하고, 보병들로 하여금 시체를 묻고 전리품을 챙기게 했다.

정찰대라 챙길 게 많지 않기는 하지만, 창칼과 투구만 얻어도 상당한 소득이 된다. 이걸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고, 변경 영주들에게 팔든지 해야겠지.

작업이 마무리되고 부대를 정렬시키자, 마침 오록스가 보낸 기사가 되돌아왔다.

투구는 어디 던져놨는지 머리가 흙과 피, 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각하! 마티란 자작령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오록스 단장이 기사단을 돌격시켰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구원이 필요합니다!”

“어째 불행한 예감은 틀리질 않냐. 파샨, 타라. 따라와. 무산토. 그대가 보병대를 맡아 따라오도록.”

“예. 가능한 빨리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제1 기사단이 구원을 요청할 정도라면 적어도 동급의 기사단이 쳐들어왔다는 소린데.

나는 제2 기사단을 이끌고 급히 말을 달렸다.

#

마티란 자작가는 레시아르 백작가의 세 마리 번견(??) 중 하나다.

레시아르와는 앙숙인 켈자르 백작군을 최전선에서 막아내는 울타리이며, 질 좋은 전투마를 생산하는 목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레시아르에 마티란이 중요한 만큼, 켈자르는 마티란을 미워한다.

그래서 켈자르가 레시아르를 침략할 때는 언제나 제일 먼저 마티란을 공격해왔다.

그러니 마티란도 성을 크게 짓고, 첨탑을 촘촘하게 세워서 방비를 튼튼히 해두었다. 작년의 대침공 때에도 켈자르가 마티란의 내성까지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지금 마티란 성이 위태위태해 보이지?”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각하! 명령을!”

타라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마티란 성은 그야말로 사방으로 포위되어서 공성전을 치르고 있었다. 요나스가 켈자르 본대가 사천 명이라고 했지? 이건 최소 그 두 배는 될 만한 대병력이다.

개미처럼 많은 병력들이 꼬물거리면서 마티란 성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성벽 위에서 마티란 자작의 병사들이 화살과 돌을 뿌리고 있었지만, 병력 차이가 너무 심하다.

한 군데에서만 구멍이 뚫려도 그대로 내성까지 쭉 뚫리고 말겠지.

“각하!”

“알아. 안다. 일단은 오록스 단장과 합류부터 하지. 단장은 어디 있나?”

길안내를 한 평기사가 남문 쪽의 작은 관목지대를 가리켰다.

“저기 있습니다!”

언덕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여하튼 평지에 비해서는 지세가 조금 높고 험한 곳이었다.

오록스는 거기서 원형진을 짜고 버티고 있었다.

돌격하다가 말이 다 죽었는지 오록스와 기사 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하마(下馬) 상태였다.

오록스를 몰아붙이고 있는 상대는 기린이 그려진 깃발을 등에 꽂고 있었다.

“여자네?”

“지금 그런 게 눈에 들어오십니까? 하늘기린 기사단장 체닐린입니다.”

파샨은 어이없다는 투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그럼.

여기사는 기린 수인처럼 목이 꽤 길고, 다리도 길쭉길쭉했다. 다만 수혈의 농도가 높은 건 아닌지 딱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그래도 오록스보다 키가 큰 걸 보면 이 미터는 훌쩍 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다.

“가자. 저 년부터 잡는다.”

나는 출정 이후로 단 한 번도 뽑아본 적이 없는 검을 드디어 뽑아들었다.

내 뒤를 파샨, 타라, 그리고 제2 기사단 백여 명이 따라 달리면서 함성을 내질렀다.

“단숨에 쳐라!”

“켈자르 놈들을 죽여!”

“마법사가 왔다! 레시아르의 바이스가 여기 왔다!”

다른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하늘기린 기사단이, 마지막 함성에 놀라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전장에서 마법사는 신이다.

나는 감히 신을 눈에 담으려는 무도한 놈들에게 벌을 내렸다.

“타 죽어라.”

불씨 하나 없는 공간을 찢고 마력의 불길이 휘몰아쳤다.

하늘기린 기사들은 갑주와 투구 사이로 들어오는 뜨거운 마력의 불에 꺽꺽거리면서 오그라들어 타죽었다.

급히 마력으로 방어벽을 친 기사들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내 마력의 불길은 아주 미세한 틈이라도 있으면 타올라서, 적 기사들의 코와 입, 귀와 눈을 불태웠다.

하늘기린 기사단장 체닐린까지도 오록스를 상대하다 말고 꼬리를 말고 도망쳐야 했다.

수십 년간 마력과 검술만을 연마하는 기사들이 허무하게 떼로 죽는 모습에, 전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전율했다.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래서 보병 하나가 내지르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마법사다아아아아!”

켈자르군은 파도 앞의 개미집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레시아르의 바이스야!”

“마법사가 왜 나와?”

“화석(火?)을 쥔 마법사야! 불의 마법사라고!”

적군 장교들은 병사들을 제어하려고 애썼지만, 그게 안 된다는 걸 알고 그냥 퇴각 나팔을 불었다.

타라는 환희에 차서 소리 질렀다.

“각하! 함께 추격하시지요! 이대로 몰아치면 켈자르군을 격멸할 수 있습니다!”

“안 돼!”

파샨이 타라 앞에 조막만한 손바닥을 쫙 펼쳐서 막았다.

“만에 하나라도 저기에 마법사가 숨어 있으면 어쩌려고? 도련... 사령관 각하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

“아, 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각하.”

파샨의 말이 일리가 있다.

적군 측에 마법사가 숨어 있을 확률은 극히 낮지만, 그래도 그 낮은 확률을 무시할 정도로 내 안위가 값싼 것도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마법사가 숨어있다면, 내가 마력을 소모하기를 기다렸다가 나타난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거다. 그런 건 싫다.

켈자르 입장에서야 저기 켈자르 군 팔천 명을 전부 다 죽게 하더라도 나 하나를 저격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득이고.

켈자르의 역침공은 예상외의 일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한 번 일어났다면 두 번도 일어날 수 있는 법.

당분간은 가급적이면 마력은 온존하는 게 안전하겠다.

정자도 좀 아껴야지.

간만에 옳은 말을 한 파샨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파샨이 기분 좋게 고로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남쪽에서 네 개의 보병대대가 진형을 이룬 채로 접근해오는 게 보였다.

곧 기수 몇이 달려왔다.

선두에 거한 무산토가 있었다.

“사령관 각하. 보병대장 무산토, 도착했습니다.”

“병사들은 어떤가. 많이 지쳤나?”

“강행군을 하긴 했습니다만.”

무산토는 적병이 무질서하게 도주하는 모습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추격전 정도라면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보병들을 보내지. 대대 별로 나눠서 추격하도록 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산토는 대대장들을 닦달해서 전과를 확대하러 출진했다.

부상병과 낙오병들은 창 한 번 찔러보지 못하고 그대로 죽거나 사로잡혔다.

“각하. 소관도 하늘기린 기사단을 추격하겠습니다.”

오록스가 이마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

“귀관에게 추격할만한 기력이 남아있나?”

“예. 물론입니다.”

“귀관은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런데 제1 기사단에서 몇 명이나 죽었나?”

“열 두 명입니다.”

오록스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미세하게 관자놀이가 꿈틀거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중상을 입은 자는?”

“스물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귀관의 부대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겠군.”

“송구합니다.”

“부대를 추스르도록 해. 공과(??)는 나중에 묻겠다. 파샨. 네가 제2 기사단을 이끌고 하늘기린 기사단을 쫓아라.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예! 알겠습니다!”

파샨은 공을 세울 생각에 신이 나서 기사단을 다그쳐서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보병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기병인 하늘기린 기사단을 이제 와서 쫓기는 힘들겠지만, 여하튼 중요한 건 내가 사람들 앞에서 오록스 대신 파샨을 세웠다는 거다.

켈자르가 마티란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중 누구도 몰랐고, 오록스가 나 올 때까지 하늘기린 기사단을 붙잡고 버티고 있지 않았더라면 마티란 성이 넘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 관계가 어떻건 간에 오록스가 부하들을 많이 잃은 건 사실이니, 내 용인술을 흠집 잡기도 힘들겠지.

타라는 아버지가 부단장에게 밀린 게 분한지 흰 눈썹을 미세하게 떨었다.

나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어차피 제1 기사단에 편성된 건 오록스를 필두로 아버지에게 충성심이 높은 기사들.

제2 기사단을 건지기 위해서라면 오록스와 타라만 빼고 전부 다 갈아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 놈들도 일단은 내 휘하 부하들이다.

그 부하들이 사십 명 가까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는데, 화가 나지 않으면 비정상이지.

누구에게라도 핏값을 물긴 물어야 할 텐데.

켈자르와 레시아르.

양측 모두 조금씩 어긋난 정보를 들고 있었다.

켈자르는 내가 오는 걸 몰랐고,

레시아르는 켈자르의 역침공을 몰랐다.

누가 농간을 부린 거지?

아버지? 켈자르의 가주? 아니면 ‘정오의 그림자’?

아니면 그 셋의 농간이 전부 다 섞인 걸 수도 있지.

나는 마티란 성의 정문이 열리는 걸 지켜보면서 고민했다.

제일 먼저 나온 건 얼굴에 농염한 미색의 마티란 자작. 그 뒤로도 다양한 외모의 미녀들이 주르르 따라오고 있었다.

음.

어차피 당장은 답이 안 나오는 문제고.

일단은 승리의 기쁨을 즐기도록 할까.

아. 마력 아끼기로 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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