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접대
* * *
“자. 일단은 한 잔 받읍시다.”
“아, 예. 바이스님.”
내가 눈짓을 주자, 부게른 남작을 데리고 온 여자가 잽싸게 술잔에 술을 따랐다.
부게른 남작은 두 손으로 술잔을 받쳐 들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생긴 건 능욕 동인지에 나오는 치한 아저씨처럼 생겼는데 은근 순진하게 살았나 보다.
태피스트리 뒤에서 춤을 추는 여자들의 알몸이 슬쩍슬쩍 드러날 때마다 남작의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술맛은 어떻소?”
“아, 아, 아주 좋습니다.”
“그래요? 난 사실 술맛을 잘 모르오. 하지만 미인을 끼고 마시면 더 맛있다는 건 알지.”
“그래서 이 술이 이렇게 맛있나 봅니다.”
“무슨 소리요? 이런 계집은 미인 축에도 못 끼지. 여봐라, 잘 익은 과일들로 한 상 잘 차려서 가져오너라.”
“예. 공자님.”
부게른 남작에게 술을 따른 여자가 절을 하고 물러났다.
곧 얼굴에 백분(白?)을 잔뜩 바른 여자가 달려 나왔다.
“공자니임!”
“어허. 귀하신 분 모시는데, 이쪽부터 새로 인사드려야지.”
“아고고. 죄송해요~”
마담 포멜로는 우스꽝스럽게 이마를 탁 치고는 부게른 남작에게 인사했다.
허리 숙여 인사하자 커다란 가슴이 헐렁한 드레스 사이로 벌렁 드러난다. 조금만 더 기울이면 젖꼭지가 보일 정도.
물론 다 계산된 행동이지만, 부게른 남작은 콧김을 뿜어대며 열심히 가슴을 훔쳐보고 있다.
저 여자 실제 나이는... 하여튼 젊게 사는 사람인데.
“오늘은 어떻게 모실까요?”
“최고 중에 최고로. 돈은 신경 쓰지 말고 괜찮은 애들만 데려와.”
“예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만 이런 것도 필요하지.
마담은 눈짓과 손짓 몇 번으로 여자들을 불러왔다.
그리고는 부게른 남작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여기 앉으세요~”
“여, 여기 말인가?”
부게른 남작은 나를 살피면서 어정쩡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이미 양반다리를 한 여자 위에 앉은 상태다.
이름하야 여자 의자.
코끼리나 하마 수인 피가 섞여 몸집이 큰 수혈 여자를 의자로 쓰는 서비스다.
뒤로 고개를 젖히면 커다란 가슴이 뒤통수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여자 의자 앞에 여자 한 명이 또 와서는 브릿지 자세를 취했다.
바닥에 정자세로 드러누운 상태에서 허리를 들어, 두 손과 두 발로 바닥을 딛고 버틴다.
이건 여자 탁자.
머리 쪽으로 쏠린 젖가슴과, 허벅지 사이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보지를 감상하면서 배에 올린 음식들을 집어먹을 수 있다.
평범한 손님은 구경도 못할 특별한 서비스다.
사실 이 창관, ‘초가을의 과실(??)’은 내가 소유하고 있다.
성내 메이드들을 즐기다가 약간 매너리즘에 빠져서 한동안 창관을 줄기차게 다녔는데, 생각해보니까 여기 돈 쓰는 게 상당히 아까워졌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라는 명언을 떠올리고 창관을 산거지.
물론 백작가 장남 명의로 할 수는 없으니 마담 포멜로의 이름을 빌리긴 했는데.
이미 원금은 회수했고, 수익을 따박따박 받아 챙기는 단계에 있다. 물장사가 상당히 짭짤하다고.
부게른 남작은 여체 가구를 보고서 이미 헤벌쭉해졌지만, 이건 별 거 아니다.
의자와 탁자 역할을 하는 여자들은 기술과 인내력만 보고 뽑은 거고, 옆에서 모시는 아가씨가 접대의 핵심이지.
“마담. 과일안주 좀 내와.”
“예~ 얘들아. 거기 서렴.”
마담을 따라온 여자들이 일 자로 쭉 늘어섰다. 얘들이 과일안주다.
전부해서 열 명 정도 되는데, 모두 몸매가 강조되는 착 달라붙는 옷을 입었다.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가슴과 엉덩이 크기는 제각각. 얼굴도 귀여운 타입부터 청초한 타입, 섹시한 타입이 모두 갖춰져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일단은 내 취향에 맞춰서 체모가 없거나 적은 아이들이라는 거.
수혈 평민 출신도 조상 중에 동혈이 섞여 있으면 수인 귀나 꼬리, 또는 털이 없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지금은 수녀원에 있을 신입 메이드 유리나 켈자르 시골 마을에서 주운 데이지가 그런 케이스.
반대로 동혈 기사 출신이라도 선대에 수혈이 있다면 수인의 특성이 나오기도 하고.
타라가 흰색 꼬리와 여우 귀를 가진 것도 그 때문이다.
여하튼 이 여자들은 보지 외에는 체모를 싹 다 밀고 관리하게 해서, 언뜻 보면 전생의 여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훨씬 예쁘다는 점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부게른 남작. 이 중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소?”
“마, 마, 마, 마음에 드, 드, 들다니요!”
“하하하. 그리 놀랄 게 뭐가 있소. 예쁜 여자가 따라주는 맛있는 술 마시면서 서로 진솔한 얘기나 나눠보자고 부른 거요. 마음에 드는 여자 있으면 남자답게 딱 찍어보시오.”
“그게…….”
“별로라면 물갈이 하고 다른 애들로 봅시다. 마담, 애들은 다 대기하고 있지?”
“그럼요~ 공자님과 귀하신 분 모시려고 오늘 다른 손님은 안 받았어요~”
내가 손을 휘저으려 하자, 부게른 남작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안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소?”
그는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머리 아저씨가 저러니까 살짝 역겹긴 한데.
나는 가만히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시선 끝에는 키가 작고 어려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물론 그래 보인다는 거고, 초가을의 과실에서 일하는 여자는 모두 성인이다.
부게른 남작의 취향에 약간 의심이 가긴 하는데. 뭐 어때, 여기가 그한민국도 아니고.
동안에 빈유 좋아한다는데 뭐라 할 거 없지.
“거기 너, 이름이 무어냐?”
“살구에요. 공자님.”
여기 ‘초가을의 과실’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별명을 다 과일로 붙였다. 그래서 아가씨를 과일안주라고 하는 거고.
다른 창관과 차별화도 시키고, 손님들에게도 아가씨 인상이 더 잘 남도록 한 건데 이게 은근히 잘 먹혔다.
“일단 살구 남고. 또 괜찮은 아이는 없소?”
“예…….”
부게른 남작이 뺨을 붉히는 걸 보고, 나도 대충 가슴 큰 여자를 점찍고 나머지를 돌려보냈다.
내 모스트픽, 메론이다.
브레이스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래도 가슴이 엄청나게 크다.
“그럼 과일안주에 술 한 잔 하십시다. 마담!”
“예에에~”
마담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와인 한 병을 새로 따고는, 내게 시선으로 물었다.
나는 부게른 남작 쪽을 가리켰다.
오늘은 저 남자 위주로 모시란 거였다.
그러자 마담은 살구 쪽으로 다가갔다.
살구는 위로 고개를 들고 작은 입을 벌렸다.
마담이 그녀의 입 안에 와인을 졸졸졸 흘려 넣고 물러났다.
부게른 남작은 왜 잔에 안 따르고 살구 입에 술을 붓는지, 자기한테는 술을 안 따라주는지 의아한 눈치였는데, 갑자기 살구가 그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읍!”
부게른 남작은 깜짝 놀라 발버둥을 쳤지만, 살구는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와인을 조금씩 넘겨줬다.
그는 전신을 뻣뻣하게 굳힌 채로 술을 받아마셨다.
“그럼 이 포멜로 마담이 공자님께도 한 잔 올릴게요. 메론아~ 아~ 하자.”
“네에. 아~ 으음.”
메론도 입 안 가득 와인을 머금고는 내게 입술을 맞추었다.
술 자체야 취기는 좋아하지만 맛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메론의 길쭉한 혀가 내 혀를 감으며 와인을 넘겨주니 희한하게도 달달한 꿀맛이 난다.
망사 드레스 너머로 메론의 젖통을 문지르면서 와인을 천천히 다 마셨다.
부게른 남작은 살구가 그의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급히 숨을 들이켰다.
“푸하! 이, 이게 무슨...?”
“술을 과일에 담아 마시는 거지. 어떻소?”
그는 대답을 피했지만 굳이 안 들어도 답은 뻔했다.
바지 너머로 빳빳하게 솟아오른 그의 양물이 대신 답을 해주고 있었으니.
남자가 친해지는 데에는 음담패설이 최고지.
“살구 고 년이 몸집이 작고 얼굴이 어리니 분명히 체온도 높을 거요. 어땠소? 그 작고 말랑한 혀가 남작의 입 안에 들어갔을 때 느낌이? 화끈하고 뜨겁지 않았소? 남작이 얼굴을 붉힌 게 술 때문만은 아닐 듯한데?”
“그, 그게…….”
“살구야. 남작께서 술맛이 별로였나 보다. 안주도 한 점 해드려라.”
“예. 공자님.”
살구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부게른 남작이 뭐라 할 틈도 없이 다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술도 없이 맨 입으로 한 딥키스다.
부게른 남작은 주먹을 꽉 쥐고 돌처럼 굳었다가, 이내 정신없이 살구의 입을 탐했다.
내 말대로 그게 안주라도 되는 양.
대머리 추남 아저씨가 소녀처럼 작은 여자애의 입술을 빨아들이니, 살구의 하관이 거의 다 삼켜질 지경이었다.
완전히 능욕계 동인지의 한 장면이다.
메론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샐샐 웃으면서 망사 드레스를 내게 내밀었다.
“공자님. 저도 빨아주세요~”
나는 거침없이 손을 뻗어서 드레스를 양쪽으로 쭉 잡아당겼다.
상당히 탄력성이 있는 소재를 썼는지, 망사는 찢어지지 않고 쭉 늘어났다.
꽉 찬 젖통이 드레스 위로 드러났다.
그대로 메론을 끌어안고 다갈색 젖꼭지를 빨았다.
뒤로는 하마 수인녀의 거대한 젖가슴도 쿠션이 되고 있지만, 이건 내 머리통보다 커서 좀 가슴이라기보다도 그냥 가구 같은 느낌이다.
브레이스가 K컵 정도 되나. 내 한계는 딱 거기까지인 거 같다.
내가 딴생각을 하는 동안 메론은 내 머리를 감싸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바지를 지그시 밀어 올리며 발기한 자지가 메론의 부드러운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찌릿찌릿한 쾌감이 자지 상단을 휩쓸었다.
맞은편에서 살구는 부게른 남작의 허벅지를 슬슬 만지면서 고간을 드문드문 터치하고 있다.
입과 입은 여전히 이어진 상태.
츄바릅. 츄바츄바. 츄루룹.
쭈압. 쭈와왑.
부게른 남작은 아예 살구를 핥고 빨아서 녹여버리겠다는 기세로 능욕 키스를 했다.
“어마어마하네. 저러다 애 잡아먹겠다.”
“그죠?”
나와 메론은 서로 마주보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접대는 이런 관전의 묘미도 있지.
“아. 죄, 죄송합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부게른 남작이 살구를 옆에 내려놓고 사과했다.
“미안할 게 뭐 있소. 이런 자리에선 다 내려놓고 즐기는 거요.”
“하, 하지만 체면불구하고...”
“너희들도 이 분 모시는 데에 소홀함이 없이 해라. 책도 몇 권이나 쓰시고, 현명한 평결로 유명하신 분이시다. 앞으로 중앙의 법무대신이 되실 지도 모르는 분. 이런 자리에서 모시는 것 자체가 영광인 거야.”
“예에!”
“그래. 메론아.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춤 한 번 보여드려.”
메론은 인간 의자 뒤로 돌아가 사르르 옷을 벗었다.
한 손으로 젖가슴을 끌어당겨 유두를 가리곤, 반대편 손바닥을 가랑이 사이에 펼쳐 보지를 숨기고는 다시 앞으로 나왔다.
메론은 그 자세에서 천박한 보지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두 다리를 넓게 열고, 허공에 좆질을 하듯이 허리를 움직이면서, 젖꼭지와 보지를 가린 두 손의 위치를 잽싸게 바꾸는 춤이다.
부게른 남작은 충혈된 눈으로 메론의 유두와 보지를 훔쳐보려 했지만, 능숙한 춤꾼인 메론은 보여줄 듯 보여줄 듯, 정말 중요한 부위는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뒤에 앉아있는 내게는 메론이 똥구멍을 벌렁거리는 게 훤히 다 보였다.
“후욱...! 후욱...! 후욱...!”
부게른 남작은 기차 화통처럼 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다가 더는 못 참겠는지 살구를 제 가랑이 사이에 앉히곤, 허리를 붙잡고 오나홀처럼 흔들었다.
바지를 벗지 않아 삽입이 되진 않았는데, 그게 부게른 남작을 더 미치게 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슬슬 한 발 빼고 싶긴 한데.
오늘은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마담에게 눈치를 보내서 술을 몇 잔이나 더 따르게 했다.
물론 술잔은 살구의 입.
부게른 남작은 술을 따르는 족족 마시면서 살구의 얄팍한 엉덩이를 잡아 자지에 문질렀다.
술잔이 몇 차례나 돌고.
부게른 남작이 이제 바지를 반쯤 벗을 정도로 거나하게 취한 다음.
나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부게른 남작. 오늘 보니 참 사내답고 멋진 분이오. 왜 진작 이렇게 만나서 친해지지 못했나 아쉽군.”
“저, 저도 그렇습니다. 바이스님... 꺼윽! 죄, 죄송합니다.”
“거 죄송할 거 없다니까. 이제 우리도 예의 차리고 그럴 단계 아니지 않소? 나는 우리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남작은 어떠시오?”
“무... 끄윽...! 무, 물론입니다.”
“그럼 이제 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소?”
“예. 히끅. 당연하지요.”
나는 메론을 옆으로 살짝 치우고 물었다.
“남작의 진의를 좀 알고 싶소만. 영지 분봉 문제에서 왜 아버지께 찬성하지 않은 거요?”
평소라면 결코 캐지 못했을 그의 본심.
하지만 술과 여자에 취해 해롱거리는 지금이라면 물어볼 수 있다.
“사실은... 끅. 백작께서 미리 언질을 주시기는 주셨습니다.”
“자기 편을 들어달라고 말이오?”
“예.”
“헌데 왜 중립을 취하셨단 말이오?”
부게른 남작은 갑자기 빡 소리를 질렀다.
“제가! 그래도 중용을 아는 사람입니다!”
깜짝이야.
술버릇 한 번 개 같네.한 대 후려치려다가 참았다.
나중에 내가 백작 달면 갈구기로 하고, 일단은 장단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부게른 남작이 현자로 유명하지. 얘들아, 너희도 들어봤지? 현자 부게른이라고.”
“그럼요! 현명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우리 남작님이!”
내가 추임새를 넣자, 살구도 두 손을 모으고 반짝반짝한 눈길로 부게른 남작을 올려다보았다.
뻔한 아첨이라도 귀여운 여자가 추켜 세워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남자의 생리.
부게른 남작은 짐짓 호기롭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이번에 바이스님께서 켈자르를 이긴 것이 보통 일입니까? 이번에는 백작님이 너무하셨습니다! 아티아에 가만히 앉아서 영지를 삼키시겠다니... 또 뻔히 본인에게 설설 기는 사람들만 뽑겠지요.”
“남작 말씀이 맞소. 아버진 뭐든 자기 손아귀에 틀어쥐려고만 하니 참 문제요.”
“정말 맞습니다! 백작께서 레시아르를 안정적으로 통치한 거는 인정하지요! 그런데 너무 아랫사람들을 조이고 의심한단 말입니다!”
그래. 그 의심병이 어디 안 가지.
아들인 나도 갑갑했는데, 휘하 영주들 중에서도 당연히 불만세력이 있었겠지.
부게른 남작은 그런 불만을 품고 있지만 터뜨릴 기회를 찾지는 못한 기회주의적 중립파였군.
“하하하. 내 아들로서 대신 사과드리리다. 부게른 남작도 고생이 많았소. 아버지가 얼마나 신경질적이오? 그간 변경 영주들이 욕을 많이 봤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건 많은데 정작 돌아오는 건 금화 몇 푼에 공치사가 다니.”
“예! 예! 정말 그럽니다! 사실 저희가 서운한 게 많지요!”
“사실 그대들을 세 마리 번견이라 부르는 것도 모욕이지. 말이 말이지, 집 지키는 개새끼라는 거 아니오?”
“예! 맞습니다! 그래도 제가 남작인데!”
“내가 백작이 되면 그대들이 그렇게 불릴 일은 없을 텐데 말이오.”
“…….”
부게른 남작은 술이 확 깨는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백작을 뒤에서 욕하는 것과, 백작위를 계승받겠다고 떠벌리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지만 내뱉은 말이 어디 가지는 않는 법.
부게른 남작은 창부들 앞에서 내 말에 여러 번 맞장구를 쳤다.
이 말이 새어나갔을 때 과연 부게른 남작은 아버지의 의심을 피해갈 수 있을까?
나는 모른 척하고 내가 백작이 된 다음의 일을 계속 주절거렸다.
“북서부에서 켈자르 놈들이 날뛰는 일도, 북동부에서 파티스 놈들이 설치는 일도 없을 거요. 내가 다 깨부술 테니까. 그럼 변경 영주들이 더 이상 번견이라 불릴 일도 없을 테지. 왜 대답이 없소, 부게른 남작?”
“그게...”
“변경 영주들이 레시아르 방위에 들이는 비용이 대체 얼마요? 그 돈이면 변경에서 아티아까지 도로를 깔 수도 있을 테고, 저택에 금칠도 할 수 있을 테며, 여기 이 창관을 통째로 사서 자기만의 주지육림을 만들 수도 있을 테지.”
“그것이... 그러니까...”
“뭐, 천천히 생각해보시오. 어휴,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했군. 자.”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하고, 메론을 끌어안고 젖통을 주물렀다.
“마담. 노래나 한 소절 뽑아봐.”
“예~ 공자니임~”
마담 포멜로는 목청을 가다듬고는 걸쭉한 가락으로 노래를 불렀다.
부게른 남작은 자리를 피할까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살구가 슬쩍 가슴을 보이면서 유혹하자 홀라당 넘어가고 남았다.
술과 여자의 조합을 이길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성자지.
부게른 남작은 언제 사렸냐는 듯, 한껏 흥분해서 발기한 자지를 바지 너머로 살구의 가랑이 사이에 문질렀다.
살구는 재주껏 부게른 남작의 자지를 허벅지로 애무했다.
나는 슬쩍 마담을 불러서 귓속말했다.
“마담. 살구한테 오늘은 대주지 말라고 은근히 전해.”
“어머~ 왜요? 기껏 접대하는데?”
“가만 보니까 부게른 남작이 여자에 익숙하지 않은 거 같은데. 바로 대줘서 욕구 채워주는 것보다는 애태우면서 질질 끄는 게 낫겠어.”
“정마알~ 우리 도련님은 가끔 보면 무섭다니까.”
곧 부게른 남작은 시뻘게진 돼지 얼굴로 김을 씩씩 뿜어댔다.
“바이스님. 정말 죄송한데... 잠시 나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나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러니까... 그게...”
그는 차마 살구와 섹스하고 오겠다는 말은 못하고 뜸만 들였다.
나는 애써 웃음을 참고 호통을 쳤다.
“어허. 위신을 좀 지키시오. 여기 그런 데 아니오.”
“아니라니요?”
그는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와서 술 마시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노는 데지. 이 여자들이 쉬워보여도 함부로 몸을 허락하고 그런 여자들이 아니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다른 델 가시오.”
부게른 남작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가 갑자기 히히 웃기 시작했다.
“왜 웃으시오?”
“그 말씀은... 살구가 처녀... 아, 아닙니다.”
처녀충이었군.
나도 그렇지만, 창관에서 처녀 찾는 병신은 아닌데.
부게른 남작이 좀 불쌍하게 느껴졌다.
적당히 시간이 흘러 부게른 남작이 성욕이 미치기 일보 직전에서 술자리를 파하고.
“소소하지만 선물이오. 오늘 만남을 추억하는 의미에서 내 드리리다.”
나는 큼지막한 비스킷 박스를 쭉 밀었다.
부게른 남작은 선선히 받으면서도 왜 갑자기 비스킷을 주냐는 눈치였다.
이런 문화가 없나?
집에 가서 확인해보면 기겁하겠지.
안에 든 건 찬란하게 빛나는 금화 삼백 개. 한화로 따지면 약 십억 원.
오늘 만남이 끝이 아닐 테니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눈짓을 주자, 살구는 부게른 남작에게 달려가 안겨서는 속삭였다.
“남작님. 괜찮으시다면 또 한 번 모시고 싶은데...”
“또, 또, 또 오마!”
일단은 그렇게 접대를 끝맺었다.
그 이후론 기돔 자작 주변 인물에게도 돈을 좀 뿌리고, 적여우 기사들에게도 술을 돌리면서 적성 세력을 좀 유화시키려고 애썼다.
물론 부게른 남작에게도 계속 금칠을 해주고.
#
며칠 후.
초가을의 과실에 다시 들렀을 때, 마담이 급히 나와서 속삭였다.
“공자님! 큰일 났어요, 큰일.”
“왜?”
“부게른 남작이 살구를 사겠다고 난리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남작님이 그러시겠다는데 제가 뭐 힘이 있나요... 초가을의 과실은 공자님 것이니, 공자님께 여쭈라고 했지요.”
“그 정도면 잘 했어.”
팔겠다고 했으면 무르기도 힘들었을 텐데.
마담은 잘 해준 거다.
나보다 먼저 와서 즐기고 있었는지, 곧 부게른 남작이 맨발로 뛰어나왔다.
그리곤 내 앞에 넙죽 엎드렸다.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걸 보니 벌써 취했네, 이 양반.
“바이스님! 제발 살구를 제게 주십시오!”
“이 사람아. 처자식도 있는 사람이 이러면 어떡하나?”
“미치겠습니다! 저는 이 나이에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는 체면도 잊고 꺼이꺼이 울었다.
“아내는 제 추한 외모를 조롱하고 딸아이들조차 아비를 무시합니다. 제 외견이 아니라 마음을 봐주는 건 살구 밖에 없습니다.”
그거야 돈 받으니까 그런 거지.
“살구야! 살구야! 사랑한다, 살구야!”
이래서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하는 거다.
사랑할 여자가 없어서 술집 여자를 사랑하냐.
라고 말해도 나는 전생에 저것보다 못한 찌질이 동정이었으니...
“사실 내가 초가을의 과실을 세울 때에 하나 정한 원칙이 있소.”
“뭐, 뭡니까, 그게?”
“사실 남자들이 술 취하면 얼마나 말을 막 하오? 개중에는 취중에 호기롭게 아가씨를 책임지겠다고 해놓고서, 술이 깨면 내팽개치고 가는 녀석들도 적지 않았지. 그러니 내가 정한 원칙은, 아가씨를 함부로 내어주지 않는 거요. 그녀들이 상처 받는 모습을 보기가 싫거든.”
“하지만...”
“아오. 부게른 남작은 현명하고 사려 깊으며, 또 지위와 위세가 있으니. 그런 반푼짜리 사내놈들이랑은 다르지. 그러나 내 원칙을 세운 바 있으니 어찌 살구를 바로 내어주겠소?”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남작은 이미 답을 알고 있소.”
부게른 남작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께 제 검을 바치겠습니다.”
살구도 살구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내게 복속하는 게 그에게 이득이다.
중립을 취하고 나와 어울린 것만으로 이미 아버지의 의심을 산 상태.
여기서 다시 아버지 편을 들면 나와 아버지 모두 그를 기회주의적인 자로 낙인찍고 틈만 나면 팽할 테니.
그로서는 나와 손을 잡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다.
“현명한 판단이오.”
마티란 자작에 이어 부게른 남작까지 나와 손을 잡았다.
이제 형세는 내게 유리하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아버지를 압박하면...
“각하! 여기 계셨군요!”
친위대원들이 사방에 걸린 태피스트리를 마구 헤치고 달려 왔다.
“무슨 일 있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백작께서 움직였다고 하니, 각하께서도 부디 하명 해주십시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