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노예경매
* * *
세세한 부분까지 정해 두진 않았지만, 일단 노예유희의 목표는 노예들을 처음 봤던 모습과 반대로 만들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프렌다와 토모의 우정이 깨지고, 무기력하던 베티아가 자발적으로 내게 사랑을 바치면서 노예유희도 일단락을 내렸다.
때맞춰서 주잔느가 모은 노예상들이 드디어 아티아에 도착했다.
음지에서 사는 녀석들이 돈깨나 만지는지 옷들이 다들 화려했다.
그래봐야 내 앞에서 굽실굽실 거리는 건 다 똑같지만.
대충 인사를 받고나서 경매에 내놓을 노예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널찍한 직공회관을 빌려다가 노예를 쭉 줄 세워놨는데, 다 해서 오백 명은 족히 넘을 듯했다.
그리고 그 오백 명이 전부 옷을 벗고 있었다.
검은색부터 흰색까지 다양한 살색의 향연이다.
“이거 보기 좋긴 한데... 왜 이렇게 많아?”
“많다니요. 백작님. 이것도 상급 노예만 모은 겁니다.”
“그 놈의 상급 노예 소리 좀 그만해. 여기 노예 검정 시험이라도 있나? 시험 쳐서 커트라인 넘으면 상급 노예 되는 거야? 아니잖아.”
자기 꼴리는 대로 상중하로 나누면서 상급 노예는 개뿔이.
당장 주잔느의 상점에서 봤던 상급 노예 둘도 여기 섞여있었다. 얼굴로는 프렌다, 토모에게 딸리고 색기로는 베티아에게 한참 못 미치는데.
그냥 눈에 띄는 단점이 없으면 상급 노예가 되는가 싶기도 하고.
저런 년들을 경매에 내놓으면 경매가 재미없어진다.
“저 오백 명을 다 경매장에 올리자고? 기념비적인 첫 번째 경매가 이따위면 두 번째부터 손님들이 오겠냐 이 말이야.”
“그럼 어떻게...”
“싹 다 쳐내야지.”
나는 노예들을 스무열 종대로 다시 모았다.
그리고 지휘봉을 들고 그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괜찮은 년들을 하나씩 지목했다.
“너. 너, 너. 아니, 너 말고 거기 너. 넌 왜 나오냐... 양심 좀 챙겨라.”
일단은 외모만 보고 오십 명을 뽑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몸매를 보고 스물다섯 명을 다시 뽑았다.
이러니 정말 예쁜 노예들만 남았다.
내 메이드 급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이제 어디 가서 얼굴로는 안 꿀리고,눈 높은 귀족들도 만족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거르기로 했다.
또 떨어뜨리는 게 아깝긴 하지만, 첫 경매니까 최고로 품질 좋은 애들을 선별해야 한다.
첫 경매가 기대에 못 미치면 다음 경매부터는 참가가 확 줄 테니.
이 안에서는 이제 취향의 문제이므로, 다른 노예상들에게 협의해서 열 명을 다시 뽑게 했다.
영 아니다 싶으면 내가 다시 고르려 했는데, 뽑힌 애들을 보니 다들 괜찮다.
이 정도면 중급 귀족이라도 쉽게 취하기 힘든 미인들이다.
노예를 낙찰 받지 못한 귀족들도 입맛 다시면서 다음 기회를 기약하겠지.
물론 예쁜 노예만 팔린다는 보장은 없으니, 뽑히지 않은 노예들 중에게 물었다.
“특기 있는 사람? 요리, 자수 이딴 거 말고. 정말 특별한 거 있는 사람만 거수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백작이 특별하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나 특별해야 하는 건지, 겁먹은 건가.
이건 내가 말을 잘못했네.
“알았어. 별로 대단하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 말해봐.”
“저... 백작님.”
“그래. 거기, 너. 뭐야?”
“제가 특기 하나가 있는데...”
“뭔데?”
“말로 하기는 좀 그렇고, 보여드릴까요?”
“그래.”
여자 노예는 바로 허리를 굽혔다.
인사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까 얼굴을 가랑이 사이에 처박고 자기 보지를 핥고 있었다.
바로 쌍욕을 박으려다가 참았다.
여기서 그러면 딴 년들이 나서려다가도 말겠지.
솔직히 신기하긴 한데. 서커스할 건 아니잖아, 씨발.
“그래. 좋은 특기네. 다음?”
병신 같은 년의 기행에도 내가 관대하게 대해주자, 다른 노예들도 하나둘씩 나서기 시작했다.
계산을 할 줄 안다거나 약을 만들 줄 안다거나.
잘 찾아보니 꽤 쓸 만한 재주를 가진 노예들이 넷 정도 있었다.
“좋아. 거기 네 명 이쪽으로 나와서 기다리고, 마지막으로 사연 있는 사람. 자기가 어디 괜찮은 가문 출신이다, 혹은 멀리서 왔다, 혹은 대단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거수.”
여기서는 뽑히지 않은 노예 거의 절반이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 손들어서 내가 뭐라 하지 않으니 괜찮겠다 싶은 것도 있겠고, 이 기회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도 있겠지.
뭣보다 사연이란 게 참 애매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자기가 제일 비참한 사연을 겪었다고 생각하겠지.
“음…….”
“백작님. 이런 건 아랫사람들에게 맡기세요.”
주잔느가 귓속말을 했다.
하긴.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필요는 없다.
“그래. 주잔느, 너, 그리고 너. 노예상 셋이서 잘 의논해서 괜찮은 사연이 있는 년만 뽑아.”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뽑은 노예가 대략 스무 명.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경매를 마칠 수 있는 수준인 듯하다.
매물, 그러니까 팔 노예만 뽑아놓고 나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귀족들에게 초대장을 돌리고, 경매 열 장소를 섭외하고, 말 잘하는 경매사를 뽑고.
일은 일이지만 취미삼아 한다고 생각하니까 잡무도 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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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경매가 시작되는데, 타라가 정기보고를 올리러 와서는 대뜸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왜 이래?”
“죄송합니다, 백작님. 제 능력이 부족해서 맡기신 일을 다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타라에게 뮌이 관리하던 아버지의 비자금을 빼내오라고 일을 맡겼었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된 모양이다.
“뮌을 찾긴 했어?”
“예. 아티아에서 조용히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안 주겠다고 하던가, 못 주겠다고 하던가?”
“자기는 비자금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버지가 비자금을 만들었다면 뮌 말고는 관리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상하네.
아버지가 실각해서 남부의 헤시아스로 내려간 마당에 뭘 믿고 버티는 거지?
뮌이 그렇게 충성스러운 인간이 아닌데.
애초에 그렇게 충성스러웠다면 아버지를 따라 헤시아스에 갔을 거다. 아티아에 남지 않고.
잠시 고민하고 있자 타라가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를 더했다.
“사실 뮌 전 집사장의 손자 중 하나는 포섭을 했습니다.”
“그래? 그런데도 비자금을 안 털어놓았단 말이지?”
“예. 혹시나 해서 일단 그 손자를 데려왔습니다만,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래.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뮌의 손자란 녀석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뒤로 묶은 꽁지머리와 옆으로 길게 찢어진 실눈, 얇은 입술.
음험한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게, 한 눈에 뮌의 피를 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치라부터 헤시아스까지의 적법한 통치자이시자 화석(火?)을 쥔 마법사, 켈자르 원정의 대영웅, 고귀하신 레시아르 백작님께 인사 올립니다. 비천한 소인은 이오시스라고 합니다.”
이오시스가 무릎을 꿇어 인사를 올렸다.
나는 타라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뮌의 손자라며?”
“예. 백작님. 그렇습니다.”
“얘는 여잔데?”
타라는 당황스러운지 이오시스를 돌아봤고, 이오시스는 크게 웃었다.
“듣던 대로 역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봐서 꼴렸거든.”
“아…….”
“뮌의 손주는 맞나? 손녀인가?”
“예. 으... 그, 그렇습니다.”
이오시스는 기선을 제압당한 듯 말을 더듬었다.
남장에 호탕한 척까지.
첫인상은 영 별로라서 바로 시험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따먹고 치워버리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나를 위해 일할 생각이 있다는 거겠지. 그대 할아버지인 뮌 전 집사장이 내 아버지의 비자금을 쥐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그 돈을 빼올 방안이 있나?”
의외로 이오시스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방안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습니다.”
“내가 그런 뜬소리를 하는 건 좋아해도 듣는 건 싫어하거든. 제대로 된 답이 아니라면 그대를 심하게 벌줄 텐데. 괜찮겠나?”
“하아... 무, 물론입니다.”
기분 탓인지 이오시스의 숨이 가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럼 설명해봐.”
“비자금은 굳이 털지 않으셔도 알아서 백작님께 굴러들어올 거예요. 그러니 기다리시는 것 외에는 방안이 없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이 방안이라면 방안인 것이죠.”
“그게 무슨 소리야? 비자금이 알아서 나를 찾아온다고? 돈에 발 달린 것도 아니고... 뮌이 나한테 그 돈을 바친다는 말인가?”
“예.”
“왜 지금 당장 바치지 않고?”
“지금이 적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담컨대 할아버지, 뮌 전 집사장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백작님께 가장 도움이 되는 순간에 비자금을 내어놓을 겁니다.”
“흠…….”
고개를 조아린 이오시스를 내려다보았다.
나이는 스물 중반 정도. 음습한 모략꾼처럼 생겼지만 엉덩이는 꽤 큰 편이라 찰싹찰싹 때리면서 질싸하기에 좋아 보인다.
가슴은 좀 작지만 그거야 임신시키면 커질 테고.
쾌락으로 절여버려서 가느다란 실눈을 뜨게 하면 어떤 표정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 그냥 먹어버릴까?
“백작님?”
타라가 나를 떠보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지금 이오시스를 타라 앞에서 따먹으면 조금씩 올려놨던 타라의 호감도가 쭉 내려갈 것 같기도 한데.
에이, 됐다.
이오시스는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생각을 바꾸고 이오시스의 말에 대해 고민해봤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느니 친위대를 보내서 뮌을 족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은데.
뮌의 손녀라는 년이 이렇게 장담을 하는 걸 보면 뭔가 있는가 싶기도 하고.
“스스로 한 말에 책임질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 몸을 걸 수 있겠냐는 말이야.”
“흐읏... 네!”
대답이 확실해서 비자금 건은 기다리는 걸로.
이오시스는 옆에 두고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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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가극(??)이 연출되고 있을 극장.
객석에는 공석 하나 없이 귀족과 기사들이 빽빽하게 들어앉아있다.
여느 때 같으면 여자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있고 남자들은 여자 몰래 꾸벅꾸벅 졸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겠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여자는 거의 없고 남자들만 눈을 벌겋게 붉히고 있다.
긴장감과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적막 속.
갑자기 무대에 드리운 커튼이 좌우로 쫙 열리면서, 경매사가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사숙녀 여러분. 레시아르 령첫 가을 경매에 참석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경매는 위대하신 레시아르 백작님의 후원으로 개최된 것입니다.”
“오늘 경매에서 얻은 수익의 일부는 성 아리렐라 수녀원에 기부됩니다. 고귀하신 여러분의 선행에 네마로우스 신의 축복이 따를 겁니다.”
“이제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저 쪽에 계신 레시아르 백작님께 경의를 표해주시기 바랍니다.”
일, 이층 객석에 앉은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모자를 벗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삼층 단독 발코니석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을 흔들었다.
“프렌다. 뭐해? 너도 인사해야지.”
옆 의자에 앉은 프렌다를 구두로 툭툭 쳤다.
인형처럼 예쁘게 차려입은 프렌다는 비척거리며 일어서선, 죽은 눈으로 드레스 자락을 잡아 인사했다.
원래도 귀여웠지만 요새 프렌다는 더 매력적으로 변했다.
그저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외모에 그늘이 드리우면서, 더럽히고 싶은, 혹은 구원해주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여자가 됐다.
밑에서 프렌다를 올려다보는 귀족들의 눈에도 슬몃슬몃 음욕들이 엿보인다.
내 여자를 내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모두가 바라는 여자를 독점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내 뒤에 시립한 타라와 파샨, 이오시스는 짧게 목례만 했다.
경례는 그걸로 마치고, 경매사는 입담을 풀면서 본격적으로 경매를 시작했다.
경매사가 익살을 떨면서 재치 있게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동안, 건장한 남자 노예들이 커다란 이젤 하나를 무대 위로 올렸다.
본격적인 노예 경매에 들어가기 전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물품 경매다.
맨 정신에 바로 헐벗은 노예부터 사기는 부끄러울 테니, 손님들에게 경매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저택 정리를 하면서 나온 골동품들을 이참에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기도 하고.
“레시아르 령의 기념비적인 첫 공식 경매! 그 첫 매물은 바로, 위대하신 레시아르 백작님께서 손수 그리신 추상화입니다!”
경매사가 이젤 위에 작게 드리운 커튼을 촥 내리자, 흰 캔버스 천 위에 굵은 필체로 마구 휘갈긴 그림이 나타났다.
“강렬하군!”
“붓에 망설임이 없네요.”
“백작님께서 그림에도 조예가 깊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만 그런가?”
당연히 이상하지. 저건 내 좆에 물감을 잔뜩 묻혀서 꼴리는 대로 휘두른 거니까.
하지만 외눈박이 나라에서는 두눈박이가 병신이다.
건전한 상식과 비판의식을 가진 귀족이 마구 매도당했다.
“실례지만 에센즈 경께서는 예술에 안목이 부족하신 듯하군요.”
“저 강렬한 화풍을 이해 못하겠단 말이오?”
“나라면 금화 백 개도 선뜻 내겠소.”
“백작님께서 손수 그리신 그림이 고작 그거밖에 안 된단 말이오? 나는 금화 삼백 개도 아깝지 않소!”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귀족들이 서로 충성경쟁을 하느라 호가를 높여 불렀다.
“그럼금화 오십 닢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십 오.”
“칠십!”
“백 닢.”
제일 안달 난 건 아버지의 친위쿠데타에 가담했던 기돔 자작과 제트리 적여우 기사단장.
내가 모른 척 넘어가주기는 했지만, 아버지 편을 든 이상 그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들은 이번 경매를 내게 공개적으로 뇌물을 바치면서 용서를 구할 기회로 삼았다.
애처가로 유명한 제트리 단장은 부인의 쌈짓돈까지 들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인 기돔 자작은 원래도 넓은 영지를 가진 부유한 영주일 뿐 아니라, 당장 내게 받은 금화 일만 닢을 현물로 가지고 있다.
그 둘은 금화 열 닢 단위로 호가를 높이다가 결국 제트리 단장이 먼저 꺾였다.
“천백오십오 골드! 천백오십오 골드! 더 없으십니까! 그럼...”
경매사가 경매봉을 들자, 기돔 자작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갑자기 끼어든 쉰 목소리가 경매봉을 멈췄다.
“이천 골드.”
뮌이었다.
저 인간이 왜 저기서 나와?
이오시스를 돌아보자, 그녀는 방긋 웃기만 했다.
기돔 자작은 불편한 표정을 짓고는 호가를 높였다.
“이천 사백!”
“삼천.”
“사, 삼천 오백!”
“사천.”
기돔 자작이 호가를 슬슬 올리며 털어내려 했지만, 뮌은 통 크게도 금화 천 개 단위로 호가를 높였다.
시작부터 불붙은 열기에 귀족들도 놀랐다.
금화 사천 닢이라면 경매 한 번에 털기에는 너무 큰 돈이다.
그것도 속성석이나 마법 무기라면 모를까, 내 좆으로 그린 그림에 꼬라박는다니.
이게 NFT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
기돔 자작은 한 손으로 눈을 덮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경매사가 경매봉을 붕붕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사천 골드! 사천골드! 더 없으십니까! 그럼...”
“오천.”
눈을 뜬 기돔 자작이 나지막이 말했다.
바로 뮌이 육천을 불렀고, 그 때부터 호가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칠천!”
“팔천”
“구천!”
“구천 오십.”
“... 만.”
기돔 자작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를 배신하면서 내게 받은 돈을 경매 한 번에 다 털린 셈이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뮌은 또 한 번 팔을 들었다.
“만 이천.”
“미친...!”
기돔 자작은 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뮌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위만 바라보았다.
결국 기돔 자작이 분통을 터뜨렸다.
“전 집사장이 그만한 돈을 정말로 지불할 수는 있소? 나는 정말로 그럴 수 있는지가 심히 의심되오만!”
“그건 자작님께서 의심할 바가 아닌 듯합니다.”
“허! 경매사! 지불능력도 없는 자가 낙찰을 받으려는 건 문제 있는 게 아닌가?”
“저, 그것이…….”
경매사는 세력 있는 영주와 전 집사장 사이에 끼어서 우물쭈물했다.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뮌이 데려온 하인들이 의자 밑에서 커다란 궤짝을 꺼냈다.
궤짝부터가 보석으로 장식되어 휘황찬란했다.
뮌이 하인들에게 손짓했다.
“열어라.”
“예.”
삐그덕 하는 소리와 함께 궤짝이 열리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금화가 드러났다.
아무리 적게 잡아 세어도 만 개는 족히 넘을 듯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기돔 자작은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깨물었다.
뮌은 실눈을 길게 뜨면서 기돔 자작에게 물었다.
“제 지불능력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셨습니까, 자작님?”
“... 후우.”
기돔 자작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살짝 고개를 올려 삼층 발코니석의 나를 훔쳐보았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이만! 이만 골드를 내겠소!”
단번에 호가를 두 배로 올린 것이다.
재밌는 돈싸움을 구경하게 된 귀족들의 눈이 한 군데로 쏠렸다.
과연 전 집사장은 이만 닢보다 더 부를 것인가, 여기서 그만 둘 것인가.
“으음…….”
기돔 자작은 뮌을 노려보면서 두 손을 꽉 쥐었다.
속으로는 ‘제발 더 부르지 마라, 제발!’하고 기도를 하고 있겠지.
그로서는 내게 뇌물을 바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체면도 잃을 수가 없게 되었다.
첫 매물에 호기롭게 큰 호가를 외쳤다가 동혈 출신에 불과한 전 집사장에게 밀렸다면, 레시아르 령 삼대 가문의 가주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이 된다.
“이만...”
“...!”
“이만 천.”
뮌이 호가를 더 부르자, 남의 돈지랄에 신이 난 귀족들이 손뼉을 쳤다.
기돔 자작은 이를 뿌드득 갈면서 소리쳤다.
“이만 사천!”
호가를 부르는 게, 거의 고함을 치는 수준이었다.
다시 귀족들의 시선이 뮌에게 쏠린다. 과연, 이번에도 호가를 올릴 것인가?
뮌은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호가를 더 부르지 않고 두 손을 내린 것이다.
경매사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이만 사천 골드! 금화 이만 사천 닢에 그림이 낙찰되었습니다!”
경매봉이 탕탕탕 울리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결국 내 좆으로 그린 그림을 사기 위해, 내게 받은 금화를 두 배 넘게 부풀려서 헌납한 기돔 자작.
그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희한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인사 오는 귀족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어수선한 자리가 정리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경매사는 지쳤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단상에 올려진 청동상을 가리켰다.
“이어서 청동 흉상입니다! 금화 오십 닢부터 시작합니다!”
귀족들이 속삭이면서 서로 가치를 셈해보는데, 이번에도 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만 오천.”
뮌은 궤짝을 연 채로 그렇게 말했다.
경매사가 식은땀을 닦으면서 물었다.
“이만 오천 골드...? 호, 혹시 단위를 잘못 말한 건 아닙니까? 골드가 아니라 실버라든가?”
“이만 오천 골드. 맞습니다.”
금화 이만 오천 닢.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생각했던 금액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다.
이거였나.
이오시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아까 지었던 미소 그대로 다시 웃어보였다.
“말씀드렸죠? 할아버지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비자금을 내놓을 거라고.”
“허어.”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왔다.
뮌은 기돔 자작을 자극하여 재산을 헌납하게 하고, 경매에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자신에게 주목이 쏠리도록 하면서 내게 비자금을 돌려준 것이다.
금화 이만 오천 닢을 나와 뮌 자신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바친 건데.
그런 수단을 떠올린 뮌도 대단하고.
그걸 알아차린 이오시스도 만만치 않다.
첫 매물 낙찰가가 이만 사천 골드. 그 다음은 이만 오천 골드.
돈의 열기에 취한 귀족들은 그 이후의 낙찰가도 마구마구 올려댔다.
한 번 호가가 확 올라가고 보니, 금화 몇 닢 정도는 우습게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긴 거다.
별 쓰레기 같은 예복이 금화 이천 닢에 팔리고, 먼지 쌓인 서책도 금화 삼천 닢을 훌쩍 넘겼다.
파티스 공국에서 차관 안 들여와도 재정 금방 회복하겠는데.
나도 금화가 복사되는 기적에 싱글벙글이다.
물건 경매가 끝나고, 흥분이 가시지 않을 무렵.
막간을 이용해 ‘초가을의 과실’에서 나온 창부들이 무대로 나와 야한 춤을 추었다.
무희들 흉내를 내긴 하는데, 수준 높은 아이돌 무대를 봐온 내 눈에는 좀 어설프다.
저것들을 동방으로 연수를 보내야 하나.
그래도 개중에는 메론이 제일 낫네.
나와 눈을 마주친 메론이 가슴을 흔들다말고 윙크를 보냈다.
밑층 발코니석에 있던 귀족 하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저 여자가 내게 윙크했어!”
“그래. 메론이군.”
“메론?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워. 저 여자도 경매에 오르는 건가?”
“모르는 소리 말게. 백작님 총애를 받아서 초가을의 과실에서 제일 유명한 여인 아닌가. 춤만 춘다 뿐이지, 백작님 말고는 모시지도 않아.”
“그런가……. 그거 아쉽군.”
그 귀족은 메론을 보면서 군침만 질질 흘렸다.
무대에서 춤사위가 펼쳐지는 동안, 다음 무대에 설 노예들이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귀족, 기사들에게 술과 안주를 전달해주었다.
“와인이나 샴페인 어떠세요? 과일주도 있어요.”
여자 말 한 마디에도 수백 가지 상상을 꽃피우는 게 남자다.
본격적으로 경매에 들어가기 전에 눈을 마주치고,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고, 추파를 주고받고 하다보면 안고 싶고, 사야겠다는 결심이 들고 하겠지.
실제로도 드문드문 노예에게 집적대는 귀족들이 보였다.
“너. 우유통이 마음에 드는군. 번호 좀 알려다오.”
“경매 순서는 일곱 번째입니다. 꼭 모시게 되기를 바라고 있을게요.”
다만 노예와 귀족 양측에 미리 주의를 주고, 통로 사이에 친위대도 배치시켜서 접촉은 엄격히 금지시켰다.
노예를 만진 귀족이 반드시 그 노예를 산다는 보장도 없고,
일단 사고 싶은 노예라도 딴 놈이 주물럭거리는 꼴을 보면 사기 싫을 거 아니야.
막간의 무대가 끝나고, 노예들도 모두 무대 뒤로 돌아간 후.
잠시 불이 꺼졌다.
귀족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속닥거리면서 방금 본 노예 중 누가 예뻤느니, 누가 가슴이 컸느니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불이 다시 환하게 켜지면서 경매사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신사 숙녀 여러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노예 경매의 시작입니다! 첫 번째 노예는 바로, 도드리아에서 온 메라라입니다!”
나뭇잎으로 성기만 겨우 가린 금발 미녀가 단상 위에 올라갔다.
“이 가슴을 보십시오!”
경매사가 긴 나무 막대기로 노예의 밑가슴을 받쳤다.
커다란 가슴이 위로 모이면서 푸딩처럼 출렁거렸다.
“이 야한 몸에순결이 유지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믿으셔야 합니다!여자 감별사들이 처녀막을 확인했습니다. 순결한 처녀임을 경매사가 보증합니다!”
경매사가 나무 막대기를 치우자, 위로 모였던 젖가슴이 이번엔 아래로 출렁 흔들렸다.
앞줄에 앉은 귀족들이 인중을 쭉 늘렸다.
그러자 경매사가 이번에는 막대기로 노예의 허벅지를 철썩 때렸다.
“하아앙~”
노예는 간드러지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다리 한쪽을 들면서 다른쪽 허벅지를 가리는 시늉을 내자 엉덩이살이 푸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어디서 이런 야한 몸을 가진 노예를, 그것도 처녀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레시아르 령 공식 경매이기에 가능한 매물! 시작가는 금화 서른 닢부터입니다!”
귀족들은 콧김을 뿜어내며 호가를 경쟁했다.
“서른 셋!”
“서른여덟!”
“마흔이오.”
“쉰둘.”
처녀 노예의 가격은 비트코인보다 빠르게 올라갔다.
올라가는 호가창을 보다보니 왠지 나도 이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녀 노예를 금화 쉰두 닢에 살 수 있다라... 이게 저점 아닐까?
“쉰...”
“백작님.”
막 팔을 들려는데, 타라가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이번 경매에는 참여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백작님께서 나서시면 다른 귀족들이 눈치를 봐서 경매가 위축될 수도 있다면서, 스스로 자제하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런 말을 내가... 하긴 했지.”
“예. 하셨습니다.”
“그래.”
“네.”
“어.”
“맞습니다.”
타라와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처녀 노예의 호가는 금화 백 닢이라는 저항선을 뚫어버렸다.
“이런, 씨발!”
“…….”
“저걸 아까 사뒀으면 앉아서 금화 오십 닢을 버는 건데! 멍청한 여편네 때문에 손해 봤네! 아, 타라, 그대한테 한 말은 아니야.”
“예. 그러시겠죠…….”
결국 처녀 노예는 금화 칠백칠십 닢에 팔렸다.
아니, 저걸 시초가에 사서 팔았으면 이득이 얼마야.
속이 콱 막히고 화가 울컥울컥 솟아오르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타라 말이 맞긴 하다.
여기서 내가 나서면 귀족들이 다 내 눈치만 보겠지.
아쉬움을 참고 다음 경매부터는 팔짱을 끼고 관망하기로 했다.
이어서 노예 몇 명이 더 팔리고 나서, 갑자기 든 생각이.
이건 주식도 코인도 아니고, 경매인데.
호가 불러서 샀으면 그대로 고점에 물렸던 거 아닌가?
갑자기 타라한테 좀 미안해졌다.
물론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다음은 몰락한 은혈 귀족 가문의 여식! 노이아스 가의 이실리야 영애입니다!”
직계는 아니고 방계지만, 틀린 말은 안 했다.
여자는 동혈이지만 가문은 분명히 은혈 귀족 가문.
그래도 은혈이 섞여 있으니 운이 좋으면 격세유전에 따라 은혈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다만 이번엔 처녀란 말은 없었다.
비처녀니까.
굳이 비처녀란 걸 말할 필요는 없잖아.
“같은 귀족에게 이런 치욕을 주다니! 부끄러운 줄들 아세요!”
자기가 비처녀인 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실리야 영애가 꽥꽥 소리 지르며 단상에 올랐다.
그래도 나름 귀족가 영애라고 드레스를 입혀 놨다.
젖꼭지와 보지 쪽에만 물을 흠뻑 적셔서 윤곽이 그대로 다 드러나긴 했지만.
경매사는 고급 매물에 흥분해서 침까지 튀겨가며 소리를 질렀다.
“사교계에서 지나치며 봤을 지도 모르는 그녀! 무도회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보셨습니까? 그녀에게춤을 신청하셨습니까? 그녀의미소를 취하신 분도 있을 테고 그녀에게 싸늘하게 거절당하신 분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적당한 금화만 지불하시면 이 오만한 영애를 바로 안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여자들에게 인기 없었을 추남 귀족들이 하물을 뻣뻣하게 굳혔다.
하지만 제일 눈을 빛낸 건 젊은 동혈 귀족들이었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야심찬 동혈 젊은이들에게, 은혈인 배우자를 얻어서 은혈인 아이를 낳는 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귀천상혼은 거의 이뤄지지 않기에, 신기루 같은 꿈이기도 하다.
그 꿈을 이번에 이뤄낼 생각에, 그들은 급히 가진 돈을 셈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걸 떠나서도. 수컷으로서 자기보다 지위 높은 여자를 능욕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면 자지가 딱딱해지겠지.
“으읏... 그런 눈길들을...”
노골적인 시선을 한몸에 받은 이실리야 영애가 부르르 떨었다.
그녀를 격려하듯, 누군가가 객석에서 소리쳤다.
“아가씨! 걱정 마세요! 제가 곧 구해드리겠습니다!”
젊은 기사였다. 적당히 잘생긴 녀석이었다.
이실리야도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키얄! 키얄!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노예의 갑작스런 돌발행동을 경매사가 막아서려 했지만, 나는 신호를 주어서 그대로 두게 했다.
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대충 사이를 알만했다.
이실리야의 처녀를 딴 놈이 바로 저 새끼겠지.
하지만 키얄의 복장은 허름했다.
딱 봐도 돈이 많지는 않아 보였는데.
“어이! 이실리야 아가씨! 거기 그 기사 놈이 돈이나 제대로 들고 왔겠소? 괜한 기대는 마시오! 대신 내가 가격 잘 쳐서 사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주먹코 아저씨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이 양반은 경쟁가문의 가주 정도 될까.
이실리야는 씩씩대며 바닥을 발로 굴렀다.
“프고그! 더러운 인간! 협잡꾼! 너에게 팔리느니 혀 깨물고 죽겠어! 이 못생긴 개구리 같으니!”
말 하는 것 봐라. 자지를 화나게 하는 천재인가?
처음에는 이실리야를 놀려먹으려던 것 같던 주먹코 아저씨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속으로는 자지로 존나게 혼내주는 상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다른 귀족들은 하급 기사 키얄과 부유한 귀족 프고그의 싸움에 주목했다.
언제나 남의 싸움은 재밌는 법이니까.
“금화 이백 닢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금화 이백 닢!”
키얄이 냅다 시작가를 불렀다.
“이백 이십!”
프고그가 바로 따라붙었다.
“이백... 이십이!”
돈이 많이 없는지 찔끔 호가를 올린 키얄.
저래서는 안 되는데.
경매는 심리전이다.
키얄의 호주머니가 가벼운 걸 눈치 챈 프고그가 씩 웃고는 대번에 호가를 올렸다.
“사백!”
“사백... 이십...”
“팔백!”
“아... 아아...”
이변은 없었다.
프고그가 중년의 재력을 과시하며 가뿐하게 낙찰을 받아냈다.
“아아악! 안 돼! 싫어! 저런 기분 나쁜 두꺼비 같은 아저씨! 싫어! 싫다구!”
“죄송... 합니다... 아가씨...”
이실리야의 비명과 키얄의 한탄도 낙찰을 따낸 프고그에게는 달콤한 조미료가 될 뿐이다.
그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주변의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축하드립니다. 프고그 경. 저 이실리야 영애를... 부럽습니다, 어허허!”
“잘 됐습니다. 프고그 경. 노이아스 가 녀석들이 프고그 경께 얼마나 해악을 끼쳤습니까? 이 기회에 울분을 싹 다 푸셔야지요.”
“허허허. 이거 고맙소. 내 여러분들께 맛 한 번씩은 보게 해드리리다.”
저 아저씨, 보기보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
발악하는 이실리야 영애가 무대 뒤로 끌려 나가고서도 노예 경매가 계속 이어졌다.
귀족들은 매번 볼 거리를 만들어내면서 금화를 뿌려댔다.
돈이 워낙 쉽게 벌려서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다.
스무 명에 달하는 노예가 차례대로 팔려나가고, 경매도 끝을 맞이했다.
경매사가 약간 지친 기색으로 드디어 마지막 매물을 소개했다.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예는,지구라트 숲의 화전촌에서 온 토모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