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노예경매
* * *
단상 위로 올라온 건 토모였다.
반투명한 옷감 너머로 흰 피부가 비치는데, 유두와 여성기만 얇은 망사 속옷으로 간신히 가려졌다.
특수한 취향을 가진 귀족 신사들이 눈을 벌겋게 붉혔다.
“토...!”
토모의 이름을 외치려는 프렌다의 입을 틀어막고, 귓가에 속삭인다.
“쉿. 이제 와서 어쩌게?”
“으으읍...!”
“지금까지 계속 모른 척 해왔잖아. 왜, 갑자기 죄책감이 들어? 그럼 프렌다가 토모랑 바꿔서 저기 단상 위에 오를 수 있겠어?”
그렇게 물으면서 프렌다의 입을 틀어막은 손에 힘을 서서히 풀었다.
예상대로, 프렌다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었다.
“저택에서 계속 마주치는 거 힘들었잖아.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줬으면 마음이 편할 거 같은데, 토모 그 독한 년은 분명히 아무 말도 안 했을 테고. 차라리 안 보이는 데로 가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한 적 없어?”
“저는... 그런 건... 바라지...”
“정말?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 저는... 그런... 저는...”
프렌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몸을 흔들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 아래, 무대에서는 사회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소리쳤다.
“어려보이지만 총명하고 충성심 깊은 노예입니다. 신사 여러분이 어떻게 기르는지에 따라 요부가 될 수도, 정숙한 첩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럼, 금화 열 닢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열다섯!”
“열여덟!”
“스물!”
음욕에 찬 귀족들이 바로 호가를 올려댔다.
개중에는 한 손으로 자기 사타구니를 주물러대면서 다른 손을 드는 녀석도 있었다.
토모는 어깨를 움츠린 채로 위축되어 가슴을 가렸다.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토모가 참 귀엽네. 파는 게 좀 아까워질 정도야. 어쩐다. 다시 내가 사들일까? 응?”
“백작님...”
“아니지. 그래도 토모가 계속 저택 안에 있으면 프렌다가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 느낄 거 아니야. 서로 불편하느니 그냥 파는 게 나아. 음. 그게 낫지.”
“제발... 제발... 그만 하세요...”
프렌다가 내 팔을 꼭 붙잡고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 얼굴에서는 분노나 설움보다도 절망이 묻어나고 있었다.
발랄하고 생기 넘치던 프렌다가 처음 봤을 때의 베티아처럼 망가진 모습에, 나는 자지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걸 느꼈다.
프렌다를 일으켜 세워, 드레스를 뒤로 들어 올리고 팬티를 옆으로 젖혔다.
안은 물기 하나 없이 뻑뻑했지만, 더 참을 수가 없다.
바로 바지를 허벅지까지 내려서 발기한 자지를 꺼내고, 프렌다의 질구에 귀두를 꾹 눌러서 꾸역꾸역 삽입했다.
“흐윽...!”
프렌다는 꽉 깨문 이 사이로 신음을 흘렸다.
위층 발코니석에서 소리가 들리자, 아래층의 귀족 몇이 위를 올려보았다.
나는 살짝 손만 흔들어 인사해주었다.
아래에서는 드레스를 입은 프렌다가 어정쩡하게 서 있고, 그 뒤에 내가 바짝 붙어 있는 걸로만 보이겠지.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사람은 다 안다.
귀족들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목례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프렌다의 안은 내 살을 꽉 조이면서 아플 정도로 압박을 가했다.
자지를 박아 넣은 채로 프렌다의 마른 엉덩이를 주물렀다.
살집이 별로 없어서 바로 볼기 뼈가 딱딱하게 만져진다. 마음고생을 하느라 그새 살이 더 빠진 것 같다
주무르기에는 감촉이 별로라, 위에서 아래로 살살 쓸어보았다.
이건 미끈한 감촉이 기분 좋다.
손을 움직여 드레스 안쪽으로 허벅지, 고관절 근처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유리 도자기처럼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끈했다.
그대로 보지 주변을 손으로 희롱하면서, 질벽과 꾹 맞물린 자지를 억지로 깊게 밀어 넣었다.
밀착한 부위가 늘어나면서 사타구니 언저리 허벅지와 불알이 프렌다의 살결에 문질러진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극장에서 프렌다를 범한다는 게 해방감과 배덕감을 자극한다.
지금도 모른 척 힐끗힐끗 여기를 올려다보는 녀석들이 있다.
놈들은 굳어가는 하물을 어쩌지 못해 안달 날 뿐이지만, 나는 마음껏 프렌다의 보지에 자지를 찔러 넣으며 정욕을 채운다.
“흐읏... 으으읏...”
프렌다는 작게 흐느끼면서 뒤로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자기야 앞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한 거겠지만, 그 작은 손이 내 몸을 꼬옥 잡는 게 어째 사랑스럽다.
진퇴운동 없이도 항문이 근질근질해진다.
소변보는 감각으로 가볍게 정액을 싸질렀다.
도퓻! 도퓻! 도퓨웃!
“아으... 으응...”
자지가 위아래로 꺼떡거리면서 질벽을 두들기자, 프렌다가 뒤로 목을 젖혔다.
상체를 구부정하게 굽혀서 프렌다의 정수리 위에 턱을 얹고는, 희미하게 올라오는 샴푸향을 맡으면서 계속 사정한다.
질벽에 꽉 끼인 자지가 움찔거리면서 몇 차례에 걸쳐 희뿌연 정액을 내뿜었다.
“아우... 우우...”
질내에 뿌려진 정액 덕에 약간은 안이 젖어들었다.
후배위로 뒤에서 깊게 꽂은 채로 기둥 절반까지만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계속해서 짧게 피스톤질.
질척. 턱. 질척. 턱. 질척. 턱. 질척.
한 차례 사정해서 아래로 축 늘어진 불알이, 앞으로 자지를 밀어 넣을 때마다 프렌다의 엉덩이골을 주기적으로 때리면서 서서히 다시 올라온다.
“으읏... 흐읏... 흐으읏...”
“조용히 해. 다 듣겠다.”
내 바로 밑층에 앉은 귀족들은 차마 고개를 돌려보진 못하고, 귀만 쫑긋 세운 채로 열심히 나와 프렌다의 정사를 훔쳐듣고 있다.
그렇잖아도 창부와 노예들의 헐벗은 몸을 보면서 발기한 자지가, 근처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섹스 소리에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있지 않을까.
참는 것도 고역일 테지.
나는 참을 필요가 없으니, 서비스나 좀 해주기로 했다.
“프렌다. 안에 엄청 조인다.”
“... 히읏...”
“방금 그렇게 정자 짜내놓고서 또 정자를 갖고 싶은 거야? 응?”
“네... 엣... 으읏...!”
“바라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빌라고요...”
“빌어봐.”
“... 백작님 정자... 쥬세요... 프렌다를... 임신... 시켜... 쥬세요...”
“잘했어.”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프렌다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손을 밑으로 내렸다.
“프렌다. 뒤로 몸 젖혀. 그렇지. 내 위로 살짝 앉는다고 생각하고.”
“... 읏... 읏... 이렇... 게요...?”
프렌다의 무릎 안쪽 오금으로 팔을 넣어 허벅지를 꽉 껴안고 들어올렸다.
자연스레 프렌다의 무릎이 굽혀지면서 팔 바깥쪽으로 종아리가 나왔다.
드레스 앞섬이 약간 들리기는 하지만, 밑단이 길어서 하반신을 간신히 가려주기는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여기서 내 행동을 지적할 놈은 어차피 없다.
팔을 움직여 프렌다를 내리면서 동시에 허리를 위로 퉁겨 자지를 깊숙이 박았다.
빼낼 때는 허리를 뒤로 슬쩍 빼었다가, 다시 넣을 때는 프렌다 안이 다 차도록 깊이.
꼿꼿이 솟은 자지 위로 프렌다를 내리칠 때마다 불알이 프렌다의 항문을 툭툭 두들긴다.
피스톤질을 할 때마다 드레스 옷자락이 사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살 부딪는 소리와 서로 겹쳐서 묘하게 야한 느낌을 자아낸다.
착. 착. 착. 착.
프렌다는 내가 자지를 올려칠 때마다 힘없이 흔들리다가 어쩔 수 없이 내 어깨에 머리를 대고 뒤로 몸을 젖혔다.
그녀의 엉덩이가 내 치골에 닿을 때마다, 피가 잔뜩 몰려서 딱딱해진 귀두가 미성숙한 자궁경부를 콕콕 찔렀다.
“아으... 아흐으...”
프렌다는 거의 우는 듯한 신음소리를 냈다.
이대로 꽉 껴안아서 종이인형을 찌그러뜨리듯이 망가뜨려버리고 싶다.
사정감이 빠르게 차올랐다.
아래서는 계속 호가 경쟁이 이어지다가, 결국 결판이 났다.
“마흔 둘! 금화 마흔두 닢에 부게른 남작님께 낙찰되었습니다!”
토모가 언뜻 위를 올려다보았고, 프렌다가 난간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두 소녀의 시선이 서로 엇갈렸다.
나는 계속해서 프렌다의 안에 자지를 밀어 넣으면서 귀를 물고 속삭였다.
“인사해.”
“…….”
“마지막이잖아. 인사해.”
“아... 우...”
“이대로 보낼 거야? 인사도 없이? 이제 다시 못 볼 텐데?”
프렌다는 한참 망설이다가 간신히 용기를 냈는지 속삭이듯 말하면서 손을 들어올렸다.
“안... 녕... 토모...”
하지만 토모는 못 본 척 슥,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곧 경매사에게 이끌려 무대 뒤로 사라졌다.
프렌다가 들어 올렸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스칠 뿐.
프렌다는 내가 들어서 박는 대로 흔들리면서 애달프게 중얼거렸다.
“토... 모...”
“히이... 히... 그래... 사과할 자격도... 없지...”
“그치만... 미안해... 미안해... 미안... 해애... 흐긋...”
자지에 피가 더 쏠리면서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프렌다의 허벅지를 휘감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그녀를 으스러뜨릴 듯이 허벅지를 꽉 쥐고, 허리를 세게 퉁겨,자지를 가장 깊은 곳까지 쭉 밀어 넣어 마침내 사정했다.
뷰루룻!
뷰루루룻!
엄청난 양의 정액이 질내와 자궁을 가득 채우다못해 질구 밖으로 밀려나가며 프렌다의 허벅지를 적셨다.
프렌다가 앞으로 내밀었던 손이 부르르 떨리다가, 아래로 툭 내려갔다.
“아윽…….”
그녀는 내내 참아냈던 눈물 한 줄기를 기어코 흘려냈다.
#
위령비 근처의 세이프 하우스.
쿠데타 당시 은신처이자 내 부하들의 집결지로 쓰였던 장소다.
나는 거기서 주안상을 받아 부게른 남작에게 술잔을 건넸다.
“토모는 일단 그대가 낙찰 받아서 데려간 걸로 하겠어. 나중에라도 혹시 행방을 묻는 자가 있으면... 뭐 그럴 거 같진 않지만, 적당히 변명해서 둘러대게. 도중에 도망쳤다고 하면 되겠지.”
“예. 그리하겠습니다.”
“미안하군. 내 놀이에 말려들게 해서.”
부게른 남작은 잔을 받아 쭉 들이켜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백작님. 제가 딱히 한 것은 없지요.”
“그래도 한 번은 안아보고 싶지 않았나? 토모는 귀엽고 작으니, 그대 취향에 딱 맞았을 아이인데.”
“제, 제가 어찌 백작님의 여자를... 맹세컨대 그런 욕망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역시 가방끈이 긴 양반이라 그런지 눈치가 빠르네.
부게른 남작은 전혀 사심 없다는 맑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 했지만, 그의 추한 얼굴에서 그런 표정은 선천적으로 지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여하튼.
“고생을 하긴 했으니 보상을 해주어야 할 텐데. 돈으로 보상하는 건 이제 우리 사이에 좀 그렇고.”
“예, 예.”
“다음 경매에서부터는 남작 취향의 여자들 한둘 정도 미리 빼놓으라고 해두지.”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준 그 노예는 어떤가? 잘 지내고 있나?”
“예. 아주 잘 지내고 있지요.”
부게른 남작은 사악하게 웃으면서 웃었다.
능욕에 맛을 들인 거 같은데. 어째 내가 좀 미안해지기도 하고.
“내 사정으로 남작을 아티아에 너무 오래 붙잡아뒀군. 이제 가정도 좀 돌봐야지. 영지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아……. 가야지요…….”
상당히 돌아가기 싫은 눈치였다.
아내한테 눌려 지내는 거 같던데, 살구에 노예까지 데려가면 바가지 박박 긁힐 게 뻔하다.
그래도 영지를 너무 오래 비워두는 건 영주인 부게른 남작으로서도, 그에게 북동부를 맡긴 나로서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기돔 자작은 내가 아티아에 좀 더 묶어둘 테니, 남작은 영지로 돌아가서 기돔 가의 이권을 좀 건드려보도록 해.”
레시아르 령 북동부의 기돔 자작의 영지와 부게른 남작의 영지는 서로 맞닿아 있다.
둘 모두 레시아르 백작에 충성하지만, 모든 이웃들이 그렇듯 서로 간에는 은근한 경쟁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전까지는 작위가 더 높고 인물도 잘생긴 기돔 자작이 부게른 남작을 압도했지만, 이제는 세가 바뀌었다.
줄을 잘못 선 기돔 자작이 추락하고, 하룻밤 새에 부게른 남작이 공신이 되면서 슬슬 레시아르 령 북동부의 균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돔 가의 주인이 영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부게른 남작의 공격적인 팽창을 막아내기 힘들 터.
영지전까지 두고 볼 생각은 없지만, 이권 사업이나 경계지역의 세수 정도는 털어먹을 수 있겠지.
이득 볼 생각에 부게른 남작의 얼굴도 좀 펴졌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필요하면 또 부르겠네. 와서 도와주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백작님. 추후에 또 뵙겠습니다.”
부게른 남작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토모와 나만 남았다.
토모는 그녀로서는 드물게 약간 얼빠진 표정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내가 널 팔 거라고 생각했나?”
“예…….”
“난 내 여자를 팔지 않아. 천금을 준대도.”
“제가 백작님의 여자였습니까?”
토모로서는 드물게 조금 반항적인 태도였다.
괴롭힘 당한 게 울분이 많이 쌓인 모양이다.
하지만 어차피 갑을관계는 확연한데 반항해봐야 토모에게 좋을 건 없지.
내가 토모의 머리에 손을 얹자, 토모도 시선을 내리깔았다.
“네게 시킬 일이 있다.”
토모는 가만히 무릎을 꿇고 내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정오의 그림자에 들어가 줘야겠어.”
정오의 그림자.
다키아 왕국 제일의 정보단체다.
고급정보를 거래하려면 정오의 그림자에 물어야 한다는 게 상식일 정도로 그 신용은 높고, 정보력도 탄탄하다.
켈자르 가주가 앓아누웠다는 정보를 아버지가 사들인 것도 정오의 그림자에서였다.
하지만 이 놈들은 영주들의 정보는 거래하되, 중앙의 정보는 절대 주지 않는다.
그러니 중앙 대신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정오의 그림자에 사람을 잠입시키는 수밖에 없다.
물론 정오의 그림자도 내부의 간첩을 늘 경계하고 있겠지.
주기적으로 피의 숙청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잠입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여러 조건을 충족하는 자로 제한된다.
적당히 머리가 돌아가고 인내심이 좋은 자.
내가 약점을 쥐고 있어 감히 배신하지 못할 자.
나이가 어려서 앞으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자.
그러면서도 잃어도 크게 아깝지 않은 자.
토모가 거기에 딱 들어맞았다.
“거기서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일단은 아무 것도 하지 마. 그냥 거기서 뼈를 묻는다고 생각하고 적응해라.”
늘 간첩의 존재를 경계하는 정오의 그림자에서 신입은 특히 요주의 대상이겠지.
의심받지 않으려면 아예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 게 제일이다.
토모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토모가 정오의 그림자에서 지위를 확립하고 나면 진짜 목표를 전달하면 된다.
알고 싶은 정보는 내 누이들의 행방.
아버지가 대신에게 첩으로 보내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편지도 닿질 않고 연락이 뚝 끊겼다.
적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도는 알아야겠다.
토모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백작님. 저, 제가 없는 동안 프렌다는...”
“걱정 마. 좋게 대우해줄 테니까.”
즐길 만큼 즐겼으니, 메이드 정도로 쓰면 되겠지.
토모가 단 한 번도 프렌다를 배신한 적이 없다는 걸 떠올려보면 프렌다는 여전히 토모에 대해 유효한 인질이 된다.
물론 프렌다를 약점 잡아서만 토모를 굴릴 생각은 아니고.
토모에게도 인센티브가 있어야지.
“바라는 게 있나?”
“바라는 거... 요?”
“그래. 어려운 일을 하는 건데 보상이 있어야지.”
토모는 잠시 나를 살피듯이 쳐다보았다.
“왜 이래? 나 이런 걸로까지 속이는 사람 아니야. 상과 벌은 확실하게 내린다고.”
“그럼, 백작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다 이행하고 나면... 제가 프렌다를 사도 될까요?”
토모가 당돌하게 말했다.
“허. 나는 내 여자를 팔지 않아.”
“저희를 금화 한 푼에 사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 만 배, 만 골드. 만 골드에 프렌다를 되사겠어요. 그래도 안 될까요?”
불손한 놈은 싫어하지만,
패기 있는 여자는 좋아한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감사합...”
“하지만 만 골드가 아니라 이만 골드야. 네 몸값도 쳐야지?”
토모는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이만 골드에 저와 프렌다의 자유를 사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암. 기다리지.”
금화 이만 닢이면 내가 기돔 자작과 아티아의 귀족들에게 살포한 돈이고, 아버지의 비자금과 엇비슷하며, 켈자르가 낸 배상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다.
토모가 똑똑하긴 하지만 아직 어려서 경제관념이 부족한 건가.
돈을 물쓰듯 쓰고, 또 그만큼 벌어오는 내 옆에서 생활해서 금전감각이 좀 무뎌진 걸 수도 있다.
뭐, 정말로 금화 이만 닢이나 벌어오면 팔아줘야지.
나는 가볍게 넘기고 말을 이었다.
“왕도로 가서 큰 양파 만물상의 궤젠을 찾아라. 내가 보냈다고 하면 반 년 정도는 묵게 해줄 거야. 그 이후부터는 네가 알아서 정오의 그림자를 찾고, 그 안에 녹아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보고할 게 있으면 궤젠에게 편지를 맡겨라. 미리 쓰지 말고, 거기 만물상에 가서 써. 너무 자주 있거나 오래 찾아가진 말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여자 친위대원 둘을 토모에게 붙여주었다.
왕도까지 동행하면서 토모에게 일반 상식과 호신술을 알려줄 거다.
토모는 내게 절을 올리고 떠났다.
“프렌다를...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
토모가 경매에서 팔려 떠나간 이후, 프렌다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던 일이다.
그리고 사실 그리 아깝지도 않다.
어차피 금화 한 개짜리 노예다.
노예 경매를 준비하면서 시간이 남아돌아 취미삼아 공을 좀 들였던 거고.
아무 것도 없어서 역으로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베티아나, 머리 좋고 이성적인 토모에 비해 감정적이고 멍청한 프렌다는 솔직히 쓸 데도 별로 없다.
적당한 곳에 방치하고, 가끔 생각나면 쓰는 오나홀 메이드 정도로 굴릴 생각이었는데.
여전히 의욕 없는 눈을 하고 있지만, 가끔 기사가 검을 휘두르며 연습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프렌다의 눈에 열기가 스쳤다.
“검을 배우고 싶나?”
“... 예.”
프렌다는 간만에 심지 있는 어투로 대답했다.
“타라. 검을 가르치기에 적당히 괜찮은 녀석을 붙여줘.”
“알겠습니다. 당연히 여자여야겠죠?”
“이제 부관도 좀 일하는 법을 아는군.”
“예... 그렇다면 체닐린 양이 좋을 듯합니다.”
“듣고 보니까 그러네. 그 좋은 인재를 계속 메이드로 돌리는 건 아깝지. 이번에 프렌다 교육시키면서 슬슬 기사로 영입 제안도 찔러보고 그래. 아. 베티아도 한 번 같이 붙여 봐.”
카이가 재능이 있었으니 베티아도 뭔가 재능이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어 보았다.
며칠 뒤, 타라가 정기 보고를 하러와서 프렌다의 이야기를 꺼냈다.
“백작님께서 맡기신 노예, 프렌다에게 검의 재능이 있습니다.”
“그래?”
“교육을 직접 담당한 체닐린 양도 그렇게 말했고, 저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자기 몸을 혹사해가면서까지 아주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프렌다는 마력이 없으니 파샨처럼 수 년 동안 내 정액을 받지 않는 이상 하급 기사도 되기가 힘들다.
그런데 검의 재능이라.
마법사인 내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데.
타라는 검을 쓰는 기사로서 좀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마력이 없는 자라도 검기(??)를 익힌다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다하는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동방에는 그렇게 마력 없는 무사로 유명세를 떨친 이들도 많습니다.”
“검기? 그게 진짜 있는 거였어? 소설도 아니고.”
“검기는 실존합니다!”
“그럼 부관도 쓸 수 있나?”
“저는... 못 씁니다만...”
“뭐야. 웃기네.”
타라의 흰 얼굴이 수치심으로 새빨개졌다.
“저, 저는 마력이 있으니 굳이 검기에 의존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래, 그래. 그런 걸로 하자고.”
“정말입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팔짱을 꼈다.
“하여튼 간에. 프렌다가 자기를 몰아붙이듯이 연습을 한다고.”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프렌다가 갑자기 검을 들겠다고 한 이유는 뭘까?
토모를 버린 자기를 벌주기 위해서 몸을 혹사시키는 건가?
단순히 고되게 움직여 모든 걸 잊기 위해?
부게른 남작에게서 토모를 찾아올 힘을 얻기 위해?
아니면 모든 일을 꾸민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금이야 알 수 없을 테지.
동기야 어찌됐든 프렌다가 오나홀에서 검사로 승격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프렌다가 날을 세운대도 그 날을 쓰는 건 결국은 나일 테니까.
“그래. 프렌다는 계속 단련시키도록 하고, 베티아는?”
“그쪽도 의외로 재능은 괜찮은데...”
타라는 약간 마뜩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휘두르는 검이 기사의 검이 아닙니다.”
“그럼?”
“암살자의 검입니다.변칙적이고 잔혹한 검입니다.”
오히려 좋다.
베티아가 나를 위해서 스스로 죽을 수도 있고, 다 죽일 수도 있다고 했던가.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 암살자.
이건 통치자라면 누구라도 갖고 싶어 할 인재다.
“암살자라면 체닐린이 가르치기에는 적합하지 않겠군.”
“예. 그녀는 곧은 검을 휘두르는 기사단장이었으니까요.”
“초가을의 과실에 연락을 넣어. 마담 포멜로가 그쪽 인간 몇을 알고 있지.”
이로써 세 명의 노예가 모두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토모는 정오의 그림자로,
프렌다는 견습 기사로,
베티아는 암살자로.
도합 금화 두 닢 반 푼짜리 투자였으니, 나는 큰 기대 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참. 제일 중요한 돈 얘기를 안 했네. 이번에 얼마나 벌렸는지 추산 다 끝났나?”
“예. 수입은 칠만 사천 골드이고, 경비 지출은 오천 골드 가량입니다.”
“그럼 순이익이 육만 구천...? 크. 역시 경매가 좋긴 해.”
다만 다음번에도 이번 경매 수준으로 돈이 벌리지는 않을 거다.
여기서 기돔 자작이 낸 뇌물과 뮌이 낸 비자금 합계 사만 구천 골드는 빼야 할 테니.
물론 그래도 상당한 이익이 발생할 건 자명하다.
“비자금에 경매 대금, 노예상들이 새로 내는 세금까지 합치면 돈 문제는 대략 해결될 거 같은데.”
“예. 다른 지출을 좀 줄인다면 백작위 계승식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올 겨울에 바로 열 건 아니고. 내년 봄 즈음으로 잡고 천천히 준비하자고. 이오시스가 꽤 능력이 있어 보이던데, 머리 맞대고 같이 의논해 봐.”
“알겠습니다.”
타라가 막 나가려는데, 세리야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백작님. 파티스 공국에 보낸 사절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뭐라던가? 차관은 준대?”
“그게... 파티스트롬 가의 아마트리체 영애가 사절과 함께 와서 백작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백작님을 뵙고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