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노예 토모의 지하 우리 생활
* * *
토모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대로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 어쩐지 음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까 소리쳐야 했을까, 나는 노예가 아니라고.’
토모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 이 사내가 그걸 가만히 봐주진 않았을 거다.
지금도 자신의 뒷덜미를 세게 휘어잡고 짐짝처럼 끌고 가고 있으니.
‘버티자. 버티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야.’
토모는 결국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노예 사냥꾼에게 이끌려 작은 노예상점에 들어갔다.
마른 여자가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자크 씨. 오늘은 그 애 하나 뿐인가요?”
“그래. 화전촌이 텅 비었더라고. 마수가 깽판을 치고 간 거 같던데... 이 년 하나 숨어있던 걸 겨우 찾았지. 에이씨, 대침공 때가 좋았는데.”
“군납상인들이 요즘 돈을 버는 걸 보면 켈자르를 치든, 파티스를 치든 간에 머잖아서 전쟁이 나긴 날 것 같아요. 그때까지 서로 버텨야죠.”
“그러자고. 가격이나 제대로 쳐줘.”
“흐음……. 그 아이에게 손 안 댄 건 맞으시죠?”
“아, 글쎄 나랑 장사 한 두 번 하나?”
노예 사냥꾼은 답답한 듯 가슴을 두어 번 쳤다.
마른 여자는 호호 웃으면서 변명하듯 말했다.
“우리 상점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게 그거인 거 아시잖아요. 들여오고 파는 과정에서 손대지 않는 거.”
“이런 꼬맹이는 줘도 안 먹어. 가슴이 없잖아, 가슴이.”
“그렇긴 하네요. 자크 씨 취향은 쭉쭉빵빵한 미녀였죠.”
두 남녀는 잡담을 주고받으면서 빠르게 흥정을 마쳤다.
노예 사냥꾼은 셈을 끝내고는 여자에게 물 한 잔만 받아 마시고 바로 나갔다.
토모는 눈만 굴려서 주변을 살폈다.
‘이 여자 혼자인가? 도망칠 수 있을까?
손이 묶여있는데, 이걸 어떻게 잘 풀면...’
짜악!
채찍이 토모의 발밑을 때렸다.
토모는 여자가 채찍을 꺼내는 것조차 보지 못했는데.
어지간한 실력자였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따라와. 괜히 반항하면 네 년만 힘들어지니까.”
노예 사냥꾼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가운 목소리.
토모는 도주를 포기하고 순순히 여자의 뒤를 따랐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십 수 개는 족히 넘는 우리가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우리마다 허름한 천옷을 입은 여자가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네 명까지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입 하나 뻥끗하지 않고 조용히 토모를 지켜보기만 했다.
토모는 어쩐지 조금 무서워졌다.
노예 상인은 토모가 벽을 보도록 하여 세운 후에 우리 하나를 열고, 잽싸게 채찍을 다시 쥐었다.
“들어가.”
토모는 반항할 틈도 없이 우리로 끌려들어갔다.
우리 안에는 약간 나이 든 여자와, 자신과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사고 치지 마. 아나, 저 년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네 책임이야.”
“네, 주잔느 님.”
노예 상인의 이름은 주잔느였다.
그녀는 나이 든 여자, 아나에게 잔뜩 겁을 주고는 등을 돌렸다.
토모는 주잔느가 떠나기 전에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고 빌었다.
“저기... 주잔느 님... 손에 밧줄 좀...”
“며칠 동안 보고, 얌전하게 지내면 풀어줄 거야. 그러니까 허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여자는 채찍을 한 번 바닥에 세게 내리쳐서 경고한 다음에 위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계단 위의 문이 삐거덕 닫히고 나자, 갑자기 복도 안이 시끌벅적해졌다.
“또 하나의 썅년이 지옥에 빠졌구나!”
“어려 보이는데. 엄마는 어디다 두고 혼자 왔어?”
“여리여리 한 게, 보니까 일주일도 못 버틸 것 같네.”
토모는 겁에 질려 고개를 팍 수그렸다.
여자들의 새된 목소리가 웅웅 울리면서 그녀의 전신을 헤집어놓는 것 같았다.
“다들 닥쳐!”
아나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아나는 한숨을 푹 쉬곤 토모에게 다가갔다.
“저 년들은 그저 새로 들어 온 년 놀려 먹는 것밖에 낙이 없는 쓰레기들이니까 무시해.”
“네…….”
“프렌다. 이리 와 봐. 나이도 비슷할 테니까 프렌다, 네가 잘 가르쳐.”
“네! 아나 언니!”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깜찍한 소녀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녀는 토모의 손을 붙잡고 철창의 반대편인 벽 쪽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안녕. 나는 프렌다야. 저 언니는 아나 언니고. 네 이름은 뭐야?”
“토모…….”
“토모! 엄청 귀여운 이름이다. 내 이름도 그런 이름이었으면 좋겠는데. 프렌다는 너무 흔하잖아.”
생글생글 웃는 프렌다에게, 토모는 문뜩 화가 나서 날카롭게 톡 쏘았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친구가 와서.”
“친구?”
“여긴 다 언니들밖에 없거든. 나만 어리다고 맨날 놀리고 그랬는데. 이제 너가 와서 너무 좋아.”
토모는 이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조롱하는 게 아닐지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순진한 얼굴로 웃는 이 소녀는 아무리 봐도 진심으로 말한 것 같았다.
프렌다는 토모의 손을 붙잡은 채로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넌 어떻게 들어왔어? 난 아빠가 도박에서 져서 팔렸는데. 백 밤 지나면 온 댔는데 어제가 백 밤째였거든. 아나 언니는 그냥 포기하라고 했는데, 아, 이게 아니지. 토모 넌 어떻게 들어왔어?”
참새처럼 쫑알거리는 프렌다의 말투에 토모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마수가 마을을 습격해서...”
종종 벌어지는 비극이었다.
세금이나 채무를 피하기 위해 숲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모여 화전촌을 일군다.
하지만 마력이 없는 이들에게 마수는 사신이나 다름없다.
영주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니 마수가 한 마리라도 마을에 들이닥치면 잔인한 학살이 펼쳐지고 만다.
토모는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꾹 참았다.
어머니는 늘 냉철하고 현명하셨다.
자신을 잔불이 남은 뜨거운 아궁이 안에 숨겨서 살렸다.
“살아야한다. 토모. 살아야 해.”
그게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자신을 아궁이 안에 밀어 넣고 나서, 어머니는 발소리를 크게 내며 밖으로 내달렸다.
곧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울지 마아…….”
프렌다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자신을 껴안으려 했다.
토모는 팔로 이슬을 훔치고는 프렌다를 냅다 밀었다.
“안 울었어. 꺼져.”
이 멍청한 여자애랑 친해질 생각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토모가 보기에 적어도 이 지하 복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목소리 큰 아나였다.
어수룩한 프렌다는 절대 친해져서는 안 되는 얼간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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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는 지하 우리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아나에게는 서글서글하게 굴면서 호감을 샀고, 프렌다가 무언가를 실수할 때면 가장 먼저 나서서 욕하면서 입지를 쌓았다.
그래도 프렌다는 굴하지 않고 틈만 나면 자신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지만, 토모는 그때마다 날카롭게 쳐냈다.
“손님 오셨다. 얘들아.”
주잔느는 손님이 있을 때는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곤 했다.
토모는 그럴 때마다 최대한 몸을 숨겼다.
좁은 우리 안에서 물리적으로 숨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기척을 줄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시선을 애매한 곳에 둔다든지,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든지, 그런 것만으로 체구 작은 토모는 쉽사리 손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손님들의 취향은 토모나 프렌다보다는 가슴과 골반이 큰 여자들에게 쏠려있었기 때문에 토모는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지하 우리 생활은 갑갑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밥은 제때 나왔고, 딱히 해야 하는 일도 없었다.
굶주린 배를 쥐고서 밭가는 일을 도와야 했던 화전촌 생활에 비하면 나은 점도 있었다.
토모는 이대로 이 안에서 살면서 아나처럼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주잔느가 손님 하나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왔다.
그거야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그 남자는 어쩐지 분위기가 흉악했다.
턱밑의 살이 세 겹으로 접힌 남자였다.
하지만 뚱뚱하다기보다도 잔인하다는 인상이 먼저 들었다.
토모의 허벅지만큼이나 두꺼운 팔뚝에는 굵은 털이 숭숭 나 있었다.
평소에는 손님들을 향해 추파를 던지던 다른 노예들도 그날만은 남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복도를 거닐면서 우리를 한 번씩 살피고는 주잔느에게 물었다.
“한 번씩 좀 대봐도 되지?”
“바초 님. 저희 상점에서는 구매 전에 미리 손을 대는 게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손을 댄다는 게 아니라, 칼을 대본다고.”
바초는 가죽 칼집에서 면이 네모난 푸주칼을 꺼냈다.
어찌나 큰지, 그 칼로 내려치면 돼지 뒷다리라도 단번에 잘라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토모는 제발 주잔느가 저 정신 나간 제안을 거절하길 바랐다.
하지만 주잔느는 어깨만 한 번 으쓱했다.
“그거라면 뭐……. 자르진 않으실 거죠?”
“칼등으로 살짝 대보기만 할 거야. 육질이 어떤지는 확인해봐야 할 거 아니야.”
“좋아요. 대신 은화 세 닢은 받아야겠어요. 또, 만약에라도 팔 다리 중에 하나라도 자르거나 부러뜨리시면 그 노예는 바초 님이 사시는 거예요.”
“그래.”
바초는 푸주칼을 털레털레 들고 우리 사이를 걸었다.
토모는 제발 자신만 걸리지 않기를 빌었다.
하지만 나쁜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 법.
바초는 자신이 갇힌 우리 앞에서 딱 멈추었다.
“저기 검은 머리칼, 저 년. 어린 게 고기가 탱글탱글하겠어.”
“으욱. 바초 씨 정육점에서 파시는 건 아니죠?”
“성문에 목 걸릴 일 있어? 가족들이랑만 조용히 나눠먹을 거야.”
“그러시면 뭐.”
주잔느는 남의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우리의 문을 열고는 토모를 잡아끌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주잔느 님.”
“얘가 왜 이런담. 손님 앞에서.”
주잔느는 망설임 없이 채찍을 후려쳤다.
“아악!”
토모는 등에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주잔느는 토모의 검은 머리카락을 휘어잡아서 질질 복도로 끌어냈다.
“너무 막 다루지 마. 고기가 상해.”
“에이. 본인도 치실 거라면서.”
“나는 전문가잖아.”
주잔느와 바초는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는 토모를 앞뒤로 붙잡았다.
“잘못하면 칼날로 맞으니까 가만히 있어.”
“으흐윽... 으흑...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휙.
“꺄아아악!”
바초는 살짝 팔을 내렸을 뿐인데도, 토모의 몸 위에 칼등이 대어질 때마다 길게 붉은 선이 남았다.
몇 시간 후면 저대로 사지가 잘려나가겠지.
토모는 고통과 공포에 부르르 떨었다.
“이거 괜찮은데. 어려서 그런지 육질이 야들야들해.”
바초는 껄껄 웃으면서 칼등으로 토모의 몸을 쓸었다.
‘나... 잡아먹히는 건가?
마수도 아니고, 사람한테?’
무섭게 날뛰면서 마을사람들을 뜯어먹던 마수의 모습이 바초와 겹쳤다.
아픈 건 싫다. 죽는 건 더 싫다.
살아야 하는데. 어머니가 살라고, 당신 몸을 바치며 살린 몸인데.
절망에 빠진 토모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제가... 더... 야들야들하거든요?!”
프렌다였다.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게,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바초의 시선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다.
“저건 또 뭐야?”
“글쎄요. 미쳤나?”
“끌고 나와 봐. 저것도 괜찮아 보이긴 하네.”
프렌다는 토모와 같은 방식으로 복도에 끌려나왔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요! 아아아악!”
그리고는 바초의 칼등이 피부에 선을 남길 때마다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토모는 프렌다의 몸에 자신과 같이 붉은 선이 남겨질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건 이 고통을 자신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동질감과, 프렌다가 자신 대신 팔릴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안도감, 그리고 그 안도감에 대한 죄책감이 뒤섞인 것이었다.
“어린년들이 확실히 반응이 좋긴 좋아. 그런데 살이 너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지방이 적당히 있어야지. 저기 안쪽에 저 년은 살집이 좀 있네.”
“힉!”
모른 척 구석에 쭈그려 있던 아나가 마찬가지로 끌려나왔다.
바초는 어깨와 허벅지에 칼등을 대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기는 한데...”
“저 년으로 하시면 싸게 드릴게요. 너무 오랫동안 안 나가서 폐기를 할까 하던 년이라.”
“그래? 얼마에 줄 건데?”
“원래 금화 한 닢인데, 반 닢만 주세요.”
“음... 은화 하나만 더 깎자고.”
“너무 하시네. 저 년한테 들인 밥값도 안 들겠어요. 에휴,바초 님이니까 깎아드리는 거예요.”
“그래, 그래.”
주잔느는 바초에게 돈을 받고서는 아나를 넘겼다.
“아, 안 돼! 안 돼요! 살려줘! 살려줘어어!”
아나는 철창을 꽉 쥐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마구 채찍을 맞았다.
마지막에는 바초의 커다란 주먹을 얼굴에 맞고는 코피를 철철 흘리며 기절했다.
“에이씨. 괜히 쳤네. 피 다 빠지겠어.”
“저도 청소하느라 고생이겠는데요.”
“직접 할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얘, 토모. 프렌다. 너희들이 알아서 정리해놔.”
주잔느와 바초는 아나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한 차례 소란이 끝나고, 적막이 흘렀다.
맞은편 우리에 있는 노예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아나가 흘린 피가 바닥의 굴곡을 따라 이리저리 흐르다가 토모의 발을 적셨다.
토모는 눈을 꼭 감았다.
너무 추웠다.
이 세상이란 건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차라리 엄마가 넣어준 아궁이에서 땔감이 되었으면 이런 꼴이 되진 않았을 텐데.
토모는 어렸을 적에 얼어붙은 강가를 건너다가 얼음이 깨져서 발이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발만 담갔다가 얼른 뺐지만, 지금은 온 몸이 시릿한 찬물에 깊게, 깊게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토모는 이 순간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순간이 그녀의 인생을 전후로 나누어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오지 못할, 우리 저편에서 막 나가는 노예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어버릴 순간이라는 걸, 그녀는 직감했다.
그 순간.
무언가 따뜻한 게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으... 으아... 으아아앙!”
프렌다가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토모를 위로 하려 한 게 아니라, 자기가 위로를 받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웃어서는 안 되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토모는 울면서 웃었다.
그리고는 프렌다를 마주 끌어안았다.
“왜... 나선 거야?”
“으흑... 토모가아... 흐으윽... 없어지며어언... 흐으윽... 싫으니까아아...”
“왜?”
“토모느은... 흐읍... 내애... 친구잖아...”
아주 작은 온기가 거기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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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가 바초에게 팔려간 후, 토모는 실감했다.
우리에, 노예상점에 갇혀 있는 이상 숨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을 살 사람은 바초보다 더 심한 악당일 수도 있다.
차라리 자기가 먼저 나서서 좋은 주인을 찾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이 오면 추파를 던지는 노예들은 그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다.
토모는 그녀들이 우습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토모는 자신과 다른 노예들을 비교해보았다.
일단 얼굴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입을 다물고만 있어도 귀엽다는 칭찬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가슴이 너무 작고 엉덩이도 평평하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몸매 좋은 노예들을 놔두고 자신을 선택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토모는 살색이 마구 겹쳐진 장면을 떠올렸다.
빈곤한 평민들은 자식이 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대놓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토모의 부모는 그런 자들은 아니었지만, 좁은 가정집에서 토모도 몇 번이나 부모의 성교를 훔쳐볼 기회가 있었다.
남녀관계가 어떤 것인지 토모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특히 엄마가 아빠에게 입으로 해주는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에 생생했다.
'고추를... 입으로... 빨았었지.'
그걸 손님에게 해준다면 밋밋한 몸매를 메꿀 토모만의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그걸 실제로 익히려면 연습이 필요했다.
그래. 연습이었다.
“연습하자.”
토모는 프렌다에게 검지를 내밀고서 말했다.
프렌다가 바초 앞에 나선 때부터, 그녀가 울면서 자신을 친구라고 불러준 때부터 그녀를 버리고 혼자 여길 벗어난다는 생각은 버렸다.
“이게 뭔데?”
프렌다는 토모의 검지에 자신의 검지를 맞대고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남자 고추 본 적 있어?”
“응. 동생 거. 딱 요만했어.”
“다 큰 남자 고추는?”
“본 적 없는데…….”
“내 손가락 다 합친 거보다 커.”
“진짜? 엄청 크다.”
“그걸 잘 빠는 연습을 해야 돼.”
“왜?”
“그래야 좋은 주인을 만나지.”
프렌다는 왜 그런지 묻기보다도 바초에게 팔려간 아나를 떠올리는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토모는 프렌다의 뺨을 검지로 콕콕 찌르고는 다시 검지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
“자, 해 봐. 이게 맛있는 소세지라고 생각하고. 대신 깨물면 안 돼.”
프렌다는 토모의 검지를 앙 물었다.
무언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토모의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프렌다는 혀로 토모의 손가락을 할짝할짝 핥으면서 토모를 올려다보았다.
“으웁... 짜아. 꼬추도 이렇게 짤까?”
“같은 살이니까 그렇겠지?”
“맛있으면 좋을 텐데.”
“고추가 맛있어서 어디다 써?”
토모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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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오지 않는 동안에는 딱히 할 게 없는 생활인지라, 프렌다와 토모는 틈만 나면 ‘연습’을 해댔다.
둘은 금방 손가락 펠라치오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걸 조금 즐기게도 됐다.
“토모~ 연습하자.”
“바보. 방금 전에도 했잖아.”
“바보라고 하는 사람이 더 바보거든. 또 하고 싶은데 어떡하라고.”
프렌다는 살짝 힘주어서 토모를 밀쳐 눕히고는,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토모의 뺨을 손으로 만지면서 웃었다.
“헤헤헤. 토모 귀엽다.”
자기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는 걸까, 이 바보 같은 여자애는.
토모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바닥에서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분홍색 머리카락, 커다란 눈동자, 앵두 같이 촉촉한 입술.
그 모든 게 너무 예쁘고 소중했다.
토모는 속으로 주잔느를 욕했다.
자신과 프렌다를 가둬서가 아니었다.
프렌다를 자신과 같은 중급 노예, 금화 한 닢으로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금화가 엄청나게 가치 있는 거란 건 토모도 알지만, 그래도 주잔느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프렌다에게 금화 백 개, 아니, 만 개도 줄 수 있다고, 토모는 그렇게 생각했다.
좁은 우리 안에서 어렴풋한 연정이 서서히 싹텄다.
소녀의 마음에서 우정은 사랑과 잘 구별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좋은 주인에게 팔리겠다는 명분으로 매일 같이 몸을 겹치고 있으니.
토모는 가슴이 조이는 듯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프렌다의 다리를 꽉 잡았다.
“이번엔 내가 빨아줄게. 아니, 손가락 말고... 거기.”
“거기? 왜? 남자한테는 잠지가 없잖아.”
“고추는 있잖아.”
“그건 손가락으로 연습했잖아.”
“끄음…….”
둔한 프렌다라도 성기를 빠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럼 어쩔 수 없다... 고 포기하기에는 토모도 너무 열이 올라 있었다.
“그럼 항문을...”
“뭐? 똥꼬?”
“어... 남자도 항문은 있잖아.”
“거길 왜 빨아? 더럽게!”
“그런 문화가 있어.”
프렌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결국은 끄덕였다.
좁은 시골 마을에서 자라서 좁은 노예상점의 좁은 우리에 갇힌 프렌다의 세계는 좁았다.
똑똑한 토모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하고 받아들였다.
토모는 프렌다를 엎어 눕혀놓고서 아껴둔 물로 항문을 잘 닦았다.
“프렌다는 여기도 분홍색이네.”
“바보…….”
프렌다는 부끄러운지 천옷을 끌어올려 얼굴을 숨겼다.
그녀의 항문은 너무 예쁜 선홍빛이라, 혀를 대는 게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도 아무런 냄새가 나질 않았다.
오히려 어렴풋하게 우유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토모는 일단 시험하듯이 혀로 가볍게 프렌다의 항문을 찔러보았다.
“히읏!”
“어때?”
“조금... 이상해.”
“싫진 않아?”
“싫지는 않은데...”
“그럼 계속할게.”
토모는 프렌다의 항문 주변을 돌려가면서 핥았다.
더럽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프렌다의 몸은 전부 다, 그야말로 항문 주름 하나까지 너무 예뻤다.
“하아... 하아... 그마안...”
“이.... 이상해... 토모오... 나, 뒤에가 이상해...”
“흐그윽...!”
“하아앙!”
프렌다는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비틀었다.
맑은 오줌이 우리 바닥에 흩뿌려졌다.
토모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며 프렌다를 끌어안았다.
프렌다의 일부를 소유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하냐? 기지배끼리?”
“그렇게 외롭냐?”
“내 거나 빨아 봐!”
맞은편 우리에 갇힌 노예들이 시시덕거리면서 토모와 프렌다를 놀렸다.
어차피 지하 우리 안에서는 할 것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관음하며 비웃고 헐뜯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러니 작은 여자애 둘이 물고 빨고 하는 광경은 놀리기에 제격이었다.
프렌다는 이유도 모르고 부끄러워할 뿐이었지만, 토모는 화가 났다.
자신이 굉장히 소중히 여긴 무언가를 무시당한 것 같았다.
“입 닥쳐!”
그렇게 소리쳤지만, 나이 많은 아나와 달리 어린 토모의 외침은 그 자체가 놀림거리일 뿐이다.
노예들은 토모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한참동안 그녀를 놀렸다.
토모는 프렌다를 껴안고 벽면 구석에 가서 씩씩거렸다.
소중한 걸 조롱당하고 싶지 않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또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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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상점, 지하 우리에서의 일상은 단조롭게 흘러갔다.
노예매매라는 것 자체가 음지에 숨어서 하는 장사라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따금 오는 손님도 대개는 가슴 큰 노예를 사가고, 몸집 작고 밋밋한 체구의 프렌다와 토모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토모도 그다지 마음에 차는 상대가 나타나질 않아서 프렌다와 함께 기척을 숨겼다.
그래도 손님이 왔다 갈 때면 프렌다는 자기를 사줄 주인이 어떨지를 이야기하는 걸 즐겼다.
이 답답한 생활이 어서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그러는 거라고, 토모도 이해했다.
“어떤 사람일까?”
“음... 일단 잘생긴 사람! 토모는?”
어쩐지 조금 가슴 부근이 따끔했다.
토모는 작은 통증을 숨기고 대답했다.
“난 외모보다는 성격이 온화했으면 좋겠어. 때리거나 아프게 하지 않고, 아랫사람한테도 상냥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으면.”
“괜찮을 거야. 토모는 귀여우니까. 주인님도 토모를 엄청 귀여워할 거야.”
“... 그래. 또? 뭐 바라는 거 있어?”
“돈도 많아야 돼. 인형도 사달라는 대로 사주고, 꿀도 큰 스푼으로 떠서 먹게 해주는 부자 아저씨! 그러면 좋겠다. 그치, 토모?”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위층에서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고 해서 매번 손님이 들어온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길어진다.
손님이 온 것이다.
“잠깐만.”
토모는 프렌다의 수다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주잔느의 목소리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백작님?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단어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곧 층계를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토모는 프렌다와 이어진 손에 힘을 주었다.
백작님이나 되시는 분이 왜 이런 노예상점에 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작님의 눈에 들어서, 프렌다와 함께 이 지옥을 벗어나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프렌다.”
“왜?”
“같이 나가자.”
“그래!”
“꼭 같이.”
“응! 토모랑, 프렌다랑. 같이.”
주잔느와 여우수인 뒤로, 잘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토모는 그의 눈에 띄기 위해 프렌다와 손을 잡고 우리 앞쪽으로 나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