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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40화 (40/166)

〈 40화 〉 행로

* * *

아마트리체 영애가 요청한 마수 토벌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한동안 자리를 비우는 만큼, 남길 자와 데려갈 자를 가려 뽑는 게 중요하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마티란 자작이 백작 대리를 맡는다. 타라와 세리야가 보필해.”

“네. 백작님. 돌아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 루이즈랑 기다리고 있을 게요.”

마티란 자작이 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은근슬쩍 정부 어필을 했다.

백작 대리를 준 건 그녀가 내 오른팔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레시아르의 세 마리 번견 중에서 기돔 자작은 몰락하는 수순을 밟고 있고, 부게른 남작은 변경 영지로 돌아갔으니, 마티란 자작이 홀로 우뚝 서게 되었다.

다만 권력욕이 어지간한 여자니까, 부관참모인 타라와 메이드장 세리야로 양쪽에서 견제를 해둘 필요가 있다.

전권을 주지는 않는다는 은근한 의사표시다.

“다음으로, 하이덴은 친위대 절반이랑 같이 따라오고, 파샨은 나머지 친위대 절반과 같이 아티아에 남아.”

“네에에? 도련님! 왜요?”

나와 떨어지게 된 파샨이 펄쩍 뛰었다.

“내가 백작위 차지하고 나서 반년도 안 돼서 아티아를 비우는 거잖아. 아버지야 헤시아스로 내려갔고, 경매장에서 봉신들 만나서 얼굴 도장 찍었으니까 별 일이야 없을 테지만, 그래도 경계를 해둬서 나쁠 건 없어.”

“그래도…….”

“이것도 중요한 임무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도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임무라고. 파샨, 너한테 이 임무를 맡기는 내 마음을 모르겠어?”

“중요한 임무! 그렇군요! 이 파샨만 믿으십쇼, 도련님!”

파샨이 눈을 밝혔다.

단순한 녀석.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파샨을 놔두고 하이덴을 데려가는 건 이 기회에 녀석과 좀 친밀도를 쌓으려는 목적이 크다.

고추 달린 사내놈과 사이좋게 지낸다는 게 오슬오슬하긴 하지만, 하이덴은 어쨌거나 친위대의 부대장.

친위대는 무슨 임무든 내 명령만 떨어지면 그대로 받들어야 하는 수족이므로, 충성심을 확실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너무 파샨만 끌고 다니다보니까 하이덴과는 거의 접점이 없어서...

이렇게 생각날 때마다 데리고 다녀야지. 안 그러면 너무 소외되겠지 싶다.

그 외에 프렌다, 베티아는 실전을 겪기엔 이르니까 집 보기.

체닐린은 프렌다를 가르쳐야 하니까 남고.

상담할 상대로는 이오시스를 데려간다.

호위병 및 친위대와는 별개로 기사 스무 명을 따로 뽑아 가기로 했다.

타라가 백여우 기사단에서 실력 좋은 자들을 적어놓은 명단을 내밀었다.

“아니. 이번엔 적여우 기사단에서 뽑겠다. 제트리 단장도 데려갈 거야.”

“백여우 기사단이 아니라... 적여우 기사단 말입니까?”

백여우 기사단 출신인 타라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편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제트리 단장과 적여우 기사단은 레시아르 백작가에 충성하는 기사들이야. 이제 레시아르 백작은 나고. 앞으로 계속 쓸 거라면 거리를 두는 것보다는 가까이 두는 게 맞지.”

“그렇군요. 제가 또 안목이 좁아...”

“차근차근 배우면 되지. 자책할 필요는 없어.”

간만에 타라의 존경하는 시선을 받으며 그 자리를 해산했다.

#

출정일 아침.

아마트리체 영애와 함께 아침식사를 마치고 저택을 나와 보니, 정원 분수대 앞에서 카이가 뽈뽈거리면서 마력운용을 연습하고 있었다.

“연습은 잘 되어가나?”

“아, 네. 백작님.”

“한 번 해 봐.”

카이는 똑바로 선 채로 손바닥을 앞으로 쓱 내밀었다.

삼십 초 정도 지났을 때, 주먹만 한 화구(火?)가 출현했다.

이삼분 걸려 라이터불 정도를 만들어냈던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확실히 재능이 있긴 한데.

“빠르고 강해졌어. 연습 정말 많이 했군.”

“고맙습니다!”

“어머나. 귀여운 아이네요. 혹시...?”

내 옆에서 가만히 카이를 지켜보던 아마트리체 영애가 슬쩍 떠봤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알 테지만, 미혼 남성 귀족이 정부나 첩을 둬서 아이를 가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그런 거 아니오. 재능이 쓸 만하여 옆에 두고 키우고 있는 거지.”

“네에, 네. 그렇군요.”

아마트리체 영애는 내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불의 마법사인 내가 불을 발현시킬 수 있는 카이를 훈련시키고 있으면 역시 부자로 보이는 건가 싶기도 하고.

베티아의 아들이기도 해서, 조금 귀엽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긴 하다.

“그래. 남자는 실전에서 연습해야지.”

“백작님?”

“나는 이제 부란타 고원의 마수를 사냥하러 가려 한다. 너도 따라오겠느냐?”

“네!”

카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꼬마 마력병이 마지막으로 일행에 추가.

제트리 단장 및 휘하 기사들은 내성 밖에서 합류했고, 우리는 가을볕을 쬐면서 아티아를 나섰다.

#

가는 길은 한적했다.

슬슬 가을이 지고 겨울이 돌아오는 계절이라, 농부들은 집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상인들도 멀리 나다니지 않았다.

아마트리체 영애는 전용 마차에서 틀어박혀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근위기사들이 마차를 둘러싸고 눈을 번뜩이면서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미혼 아가씨니까 몸가짐에 조심스러운 건 알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게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미움을 받으니까 좀 그러네.

나도 마차를 끌고 오긴 했지만, 날도 좋아서 말을 탔다.

양 옆으로 친위부대장 하이덴과 적여우 기사단장 제트리가 따라왔다.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라 분위기는 약간 어색하다.

“제트리 단장.”

“예. 백작님.”

서로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공통의 화제가 있어야 하는데.

제트리 단장이 좋아하는 게 뭐가 있더라.

그래. 애처가랬던가?

“제트리 단장의 아내가 무척 아름답다고 들었소만.”

“...!”

제트리 단장은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말고삐를 세게 쥐었다.

“왜 그러시오?”

“백작님! 아내만은, 제 아내만은 안 됩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요? 그냥 단장의 아내가 아름답다는 말을 한 것뿐인데.”

“차라리 저를 벌하십시오!”

제트리 단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에서 뛰어내려 무릎을 꿇었다.

친하게 지내려는 건 역효과를 낸 것 같다.

당분간은 거리를 두는 게 오히려 낫겠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다른 적여우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 내 시선을 피했다.

하이덴만 뒤늦게 눈을 돌리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이덴. 자네 어머니는 잘 계시나?”

“... 예. 백작님.”

“하이덴이 그리 가고 많이 적적할 텐데.”

“... 예. 그, 그렇습니다.”

하이덴도 영 말을 안 받아준다.

친하게 지내려는데 아랫사람들이 따라주질 않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주었다.

#

별일 없이 파티스 공국 영내에 진입하고서도 며칠이 흘렀다.

고위 귀족이 일행에 둘이나 있으니 가급적이면 도시나 마을을 거쳐서 행로를 잡지만, 그게 안 될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노상에서 식사를 하게 될 때도 있다.

그게 바로 오늘, 부란타 고원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거대한 바위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꼬불꼬불한 오솔길만 나 있는 지형이다.

고원에는 농촌이 여럿 있다고 하지만, 거기까지 올라가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릴 듯해서 점심을 미리 먹고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오늘 점심은 뭔가?”

“통후추를 곁들인 염장 돼지고기와 단풍잼을 넣은 닭고기 수프입니다.”

“또 베이컨인가?”

“지난번에 들린 마을에서 보급을 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오늘은 내가 요리하겠다고 전해.”

“예. 백작님.”

전생에서는 요리한 적이 거의 없지만, 현생에서는 꽤 즐겨하는 편이다.

화학적이고 자극적인 조미료를 잔뜩 퍼 먹었던 기억 때문에 귀족가의 화려한 음식도 아무래도 조금 부족하게 느껴져서.

전생의 요리들을 비슷하게라도 따라해 보려고 비싼 식재료들을 펑펑 써가면서 연습을 했었지.

실패작을 다 먹어치우느라고 파샨이 고생을 하긴 했다.

그래도 덕분에 꽤나 요리 실력이 늘었다.

늘어놓은 재료들을 보고서 메뉴를 고민하다가 치킨으로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여행길에서는 굽고 찌고 삶는 요리가 많이 나와서, 간만에 바삭바삭하게 튀긴 닭고기가 먹고 싶었다.

부위별로 도축되어 털까지 말끔하게 뽑힌 닭고기 위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한다.

하룻밤 재워두면 염지가 더 잘 되어 맛있다고 하지만, 내 입맛에 그 정도까지 차이는 모르겠고.

튀기기만 잘하면 이대로만 해도 충분히 맛있다.

그 옆에 따로 그릇을 빼어 빵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부어서 튀김옷을 준비한다.

튀김가루에 레몬껍질과 허브 몇 종류를 아주 얇게 썰어 넣고, 우유를 조금 따라서 휘적휘적 뒤섞는다.

본격적으로 요리가 시작되자, 근처에 시립하고 있던 제트리 단장이 슬쩍 다가왔다.

“백작님. 혹시 튀김요리를 하시려는 겁니까?”

“그렇소. 보고 바로 아는 걸 보니 제트리 단장도 요리를 즐겨하시나 보오?”

“부끄럽지만... 가끔 아내가 조를 때면 직접 고기를 굽고 면을 삶기도 합니다.”

“부끄러울 게 뭐 있소? 자기 손으로 음식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보람찬 일인데. 부인도 좋아하겠소.”

“하하하…….”

제트리 단장은 멋쩍은 듯 웃고는 다시 물었다.

“제가 뭐 도울 게 있겠습니까?”

“거기 팬에 기름 좀 담아주시오. 넉넉하게.”

그는 내 말대로 해바라기유를 팬의 절반 깊이까지 차도록 콸콸 부었다.

“고맙소. 이제 물러나시오. 불을 올릴 테니까.”

“예.”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거리까지 떨어지도록 한 후에, 팬 아래에 불길을 일으켰다.

적당히 온도가 올랐을 때, 튀김옷 입힌 닭고기를 한 번에 던져 넣었다.

자글자글 끓는 소리를 내며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고기를 한꺼번에 넣으면 기름 온도가 떨어져서 맛이 없다고 하지만, 화염을 다루는 마법사인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튀김기름이 적정 온도를 유지하도록 불의 크기를 정확하게 조절하면서 치킨을 조리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내 곁을 지키는 호위병과 친위대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침 삼키는 소리를 냈다.

꽤 넉넉하게 만들긴 했지만 이 인원을 다 먹일 순 없는데. 미안하게 됐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치킨을 집개로 집어서 하나씩 올려두고 잠시 식히면서 기름을 뺀 후에, 다시 한 번 더 팬에 넣어 튀긴다.

두 번 구워서 겉을 바삭바삭하게 만드는 비법이다.

두 번째 튀기는 동안 잠시 팬에서 손을 떼고 디핑소스를 준비한다.

달콤한 단풍잼에 통후추와 마늘, 반달고추를 잘게 다져서 넣었다.

이렇게 하면 칠리소스와 비슷한 맛의 달콤하면서 매콤한 소스가 완성된다.

디핑 소스를 하나만 만들면 식사가 단조로워지니까, 치즈 소스도 만들기로 했다.

딱딱한 고형 치즈를 천천히 녹이면서 버터와 우유, 밀가루, 소금, 후추를 순서대로 넣고 휘젓는다.

꾸덕꾸덕해져서 스푼으로 퍼서 뒤집어도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게 하면 된다.

디핑 소스를 만든 후에는 두 번 튀긴 치킨을 퍼내고, 닭기름이 묻어나온 팬에 크게 썬 감자를 집어넣어서 감자튀김을 만들었다.

“다 됐다. 가져가.”

내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요리하는 동안 좌불안석 안절부절 못하던 메이드들이 급히 다가와서 식기와 요리를 받아들었다.

메이드들은 탐스러운 엉덩이를 흔들면서 탁자 위에 커다란 접시를 놓고, 그 위에 치킨을 올린다.

디핑소스는 따로 조그마한 나무 그릇에 매콤 소스와 치즈 소스를 나눠 담았다.

무, 당근, 오이가 새콤달콤하게 맛이 든 피클을 꺼내서 예쁘게 장식하면 식사 준비 끝이다.

의자에 앉아 메이드들이 분주하게 식탁을 차리는 걸 지켜보았다.

요리하면서 이마에 밴 땀을 가을바람이 기분 좋게 식혀준다.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아마트리체 영애가 콧노래를 부르며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내가 땀을 식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흠칫했다.

발목이 살짝 돌아간 걸 보면 돌아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 같은데.

잠깐 그러고 있다가 또 마음을 돌렸는지 똑바로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레시아르 백작님이... 손수 요리하신 건가요?”

“그렇소.”

“아음... 저, 음... 끄으음...”

아마트리체 영애는 앓는 소리를 내다가 물었다.

“실례지만, 재료는 어떤 걸 쓰셨나요?”

“신선한 닭고기와 튀김옷, 해바리씨유, 뭐 그 정도요.”

“다른 건 안 들어갔고요?”

“향신료는 좀 들어갔지. 그것 외에는 넣은 것 없소.”

내가 먹는 걸 본 아마트리체 영애가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렇잖아도 식사에 초대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자리를 차지할 줄이야.

이지적인 것 같아도 고명딸로 자라 그런지 은근히 막나가는 데가 있다.

그래도 미인이라 용서가 되는 게 있다.

“식기 전에 드시오.”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포크와 나이프가...”

“아. 이건 손으로 잡고 먹는 게 맛있소. 원하신다면 포크와 나이프를 드리겠지만.”

“그럼 잠시 예법은 용서해주세요.”

아마트리체 영애는 새하얀 면포를 어디선가 꺼내서 닭다리를 하나 집더니, 그대로 두툼한 살 부위를 호쾌하게 뜯었다.

볼이 불룩하게 튀어나오도록 고기를 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게 보기 좋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몇 번 씹다말고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이거!”

아마트리체 영애는 닭다리를 한 손으로 쥔 채 다른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서, 탁자 밑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매워. 매워요!”

“물 마시지 말고, 자, 치킨을 이 치즈 소스에 한 번 찍어서 다시 드셔보시오.”

아마트리체 영애는 내 말대로 치즈 소스에 치킨을 담가 먹었다.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의외로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었다.

“맛있어요!”

“그랬다면 다행이오.”

“치킨의 매운 맛이 치즈 소스의 농후한 풍미에 중화되면서... 으으음, 잠깐. 잠깐만요. 여기에는 뭐가 들어갔죠?”

“버터와 우유, 밀가루, 그 정도요.”

“그럼 백작님도 드셔보시겠어요?”

아마트리체 영애는 갑자기 반항적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치킨 하나를 집어서 치즈 소스를 듬뿍 찍더니 내 입에 가져다댔다.

아가씨가 먹여주는 치킨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

나는 맛있게 그걸 받아먹었다.

그걸 본 아마트리체 영애의 얼굴이 다시 풀렸다.

“죄, 죄송해요. 제가 괜한 오해를...”

“무슨 오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요리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오. 사람 먹을 걸로 장난치고, 그러지 않소.”

“죄송... 합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과한 아마트리체는 곧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이 닭요리에 뭘 넣으셨길래 이렇게 매운 건가요?”

“요 근처에서 주운 허브요. 고추씀바귀라고 하는데.”

“아, 그거라면 알아요. 독초 아닌가요?”

“독초 맞소. 그냥 씹으면 떫은맛에 마비독이 들지만, 가열하면 감칠맛 나는 매운맛이 도는데, 독은 확 날아가게 되오.”

“와아. 그렇군요.”

“치즈 소스만 먹지 말고, 여기 매콤 소스도 찍어 드셔보시오.”

“매운 치킨에 매운 소스를 찍어 먹으라고요?”

“그게 별미요.”

“그럼 어디 한 번, 윽...!”

아마트리체 영애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서 급히 우유를 청했다.

체면불구하고 꿀꺽꿀꺽 목 넘김 소리를 내면서 우유를 마신 아마트리체 영애의 입가에는 하얀 우유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후아... 이것도 맛있긴 한데, 너무 매워요. 전 치즈 소스가 더 마음에 드네요.”

그녀는 은근슬쩍 내게 소스를 만드는 방법까지 물어봤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알려주었는데, 아마트리체 영애는 상당히 고마워하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맛있는 식사를 같이 하고 나니 아마트리체 영애의 경계심도 꽤나 풀린 것 같았다.

그녀는 간만에 마차에서 나와, 나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서 말을 몰았다.

야외에 나오니 확실히 해방감이 드는지 예법과는 상관없이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레시아르 백작님은 아카데미에 다니지 않고서도 마법사가 되셨죠?”

“그렇소.”

“아쉬워요. 같이 다녔으면 재밌는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하긴, 가문을 이을 후계자라면 아카데미에 잘 입학하지 않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저희 큰오빠도 그랬고요.”

“아마트리체 영애는 이 근처 아카데미에서 수학하셨소?”

“아뇨. 수준 있는 아카데미는 전부 왕도에 있잖아요. 은혈 귀족만 되어도 지방 아카데미는 잘 안 가요. 저는 왕도에서도 이름 높은 성 스테파니노 아카데미를 졸업했구요.”

그녀는 은근히 학벌에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카데미에는 별 관심도 없어서 잘 몰랐지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대단한 성 스테파니노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면, 아마트리체 영애도 대단한 수재셨겠소.”

“글쎄요. 아카데미에서는 그 안의 세계가 다인 줄 알았는데... 세계는 생각보다 너무 넓더라구요. 으음, 여기만 해도, 졸업하고 와서 보니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요.”

아마트리체 영애는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 여기갑자기 마수들이 많아졌어요. 그건 정말 많이 변했더라구요.”

또 한 번 화제를 바꾸려는 그녀에게, 나는 진심으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확실히 그런가 보군.”

나는 팔을 들어, 고인돌처럼 거대한 바위가 맞물려 세워진 그 옆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화염으로 빚어진 장창이 그쪽으로 쏘아져 빠르게 날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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