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59화 (59/166)

〈 59화 〉 불청객

* * *

“불청객이 들어온 것 같더군요.”

바리보예즈는 콧수염을 잡아당기면서 여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들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자, 바리보예즈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홋홋하고 웃다가 정색하곤 물었다.

“여기로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심약한 여자 하나가 우리가 숨은 쪽으로 시선을 향하긴 했지만, 다행히 바리보예즈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다시 말했다.

“묻고 있지 않습니까. 왜 대답들이 없을까요.”

네가 띠꺼우니까 그렇겠지.

나는 손을 쥐락펴락하면서 판자 틈새 사이로 놈을 노려봤다.

어딜 가든 이목을 끄는 중앙의 대신이 이런 촌구석 동굴에 들어오다니. 여기서 기습해서 놈을 죽여 버리면 쥐도 새도 모르겠지.

이데트 누이의 복수를 이렇게 빨리 이뤄낼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

나는 그대로 마력을 끌어올리려다가 퍼뜩 멈추었다.

그런데 바리보예즈가 마법사였던가?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숨기려면 얼마든지 숨길 순 있었을 테지만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또랑또랑하게 귀여운 목소리가 울렸다.

“네가 마음에 안 드니까 그런 거겠지.”

바리보예즈의 뒤를 이어 여자 하나가 들어왔다.

화려한 금발 곱슬머리. 선명한 샛노란 색 눈동자. 그 안의 새까만 동공은 뱀처럼 곧게 서서 자기주장을 하고 있다.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도톰하니 붉다.

상당히 기가 드세 보이는 미소녀였다.

“오. 그대는 언제나 내게만 야박하군요. 나의 사랑, 마드모아젤. 화리메.”

“징그러워. 만지지 마.”

바리보예즈가 두 팔을 펼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여자는 그의 팔을 탁 쳐내곤 스스로 팔짱을 꼈다.

가슴골이 깊게 파인 드레스라 두 팔 위로 올려진 가슴 윗부분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슴이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머리가 세 개 달린 수준인데. 저건.

내 여자 중에선 금발 미녀 브레이스나 고급 창부인 메론과 겨우 비교할 정도다.

그래도 그녀들은 체격이 여자치고는 큰 편이라 가슴이 커도 비율이 맞았지만, 저 여자는 키가 땅딸막한 주제에 가슴만 불균형적으로 커서 더 도드라져 보였다.

“흐, 읏차.”

화리메는 갇혀있던 여자들 중 하나를 골라잡고 그 어깨 위에 걸터앉았다.

난데없이 인간의자가 되어버린 여자가 필사적으로 버티건 말건, 그녀는 두 다리를 꼬고서 발만 까딱거렸다.

입은 방긋방긋 웃고 있는데도 눈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꼴이 꽤나 거만해 보인다.

“누가 동굴에 들어왔어. 그리고 내 귀여운 아가들을 전부 쳐 죽였어. 모른다는 소리는 하지 마. 여기 온 거 다 아니까.”

그녀는 여자들을 쭉 둘러보다가 서늘한 톤으로 경고했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아는 대로 다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내 아가들이 다 죽어서 너희들을 쓸 데도 사라졌으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가 말할게요! 다 말할 수 있어요!”

“어딨는지 알아요!”

여자들은 서로 경쟁하듯 떠들어댔다.

감히 날 배신해?

라고 말하기엔, 저 여자들과 내 관계는 아무 것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저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심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데, 화리메가 손을 휘둘러 여자들을 다물게 하고는 한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럼……. 너. 네가 말해봐.”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오페이아였다.

허겁지겁 옷을 입은 티가 확연해서 눈에 띈 모양이었다.

체닐린이 내게 바싹 달라붙어 속삭였다.

“바이스. 지금이라도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가 여기 숨은 걸 저 여자가 밝힌다면...”

키는 멀대같은 게 귀엽긴.

쫀득쫀득한 허벅지를 주무르며 대답해주었다.

“오페이아는 날 배신할 수 없어. 미장센이 잡혀있는 걸 뻔히 알고 있으니까.”

“그, 그런 건가? 그럴 수도... 그런데 손 좀 떼지...”

“내 나름대로 긴장을 푸는 거야.”

“그럼 본인 허벅지나 만지시지.”

체닐린은 내 손등을 꼬집고는 뒤로 물러났다.

나는 입맛을 다시고 다시 판자 틈새 사이를 살폈다.

잠시 안 보고 있던 사이 화리메와 오페이아의 문답은 끝난 듯했다.

예상했던 대로오페이아는 내가 여기 숨어있다는 걸 밝히진 않았는데,당연히 화리메도 쉽사리 넘어가주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너, 옷매무새가 왜 그래?”

“잠시 씻느라... 급하게 벗었다가 입었습니다.”

“씻어? 여기서? 그래, 그렇단 말이지? 흐으응.”

화리메는 콧소리를 내더니 검지를 까딱였다.

동굴 벽 한쪽 구석이 우르르 무너지더니, 그로부터 작은 돌멩이 하나가 빠르게 날아와서 오페이아의 복부에 꽂혔다.

“끅...!”

“말도 안 되는 변명하지 말고. 다음번엔 그 예쁜 얼굴을 꿰뚫어 버릴 거야?”

“켁, 쿨럭!”

오페이아는 피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저런 씨...!”

아무리 가슴이 커다래도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는 건 용서 못한다.

바로 나가서 배빵 후 교배프레스로 이어지는 참교육을 시전하려고 하는데, 체닐린이 급히 나를 잡아 세웠다.

“바이스. 침착해야 한다. 저 자도 마법사야.”

“마법사?”

“마력의 궤적을 느껴라. 저 여자, 마력으로 벽을 깎아내린 게 아니라, 석벽 안으로부터 마력을 끌어냈다.”

마력의 잔향을 맡아보니 정말 그랬다.

화리메는 마법사, 그것도 광석을 다루는 금석(??)의 마법사였다.

그럼 여기까지 동굴을 뚫고 지나오면서 난리법석을 피웠던 게, 바리보예즈가 아니라 화리메였던가?

이건 좀 곤란하게 됐는데.

바리보예즈도 만만찮은 마력의 소유자인데, 그를 호위하는 ‘강철의 손아귀’ 소속 기사가 둘.

거기에 마법사 화리메까지.

내가 바리보예즈와 화리메를 동시에 맡는다 쳐도 파샨과 친위대, 그리고 체닐린이 강철의 손아귀 기사를 하나씩 맡아야 한다.

지난번에 체닐린이 강철의 손아귀와 맞붙었을 때 밀렸던 걸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한 매치다.

내가 이긴대도 내 여자들이 다칠 위험이 너무 크다.

잠시 고민하고 있자 파샨이 쪼르르 달려와서 말했다.

“도련님. 절 믿으세욧. 허우대만 좋은 중앙 기사 놈들, 제가 파파팍! 해치울 수 있습니다!”

“음. 글쎄. 강철의 손아귀가 만만한 놈들이 아닌데.”

“버티고만 있으면 도련님이 도와주실 거잖아요?”

“그래도…….”

체닐린도 다시 내게 다가왔다.

“그래. 바이스. 나를 믿어라. 저번에도 내가 놈을 이기지 않았나.”

“프렌다 없었으면 쳐발렸을 거면서 이기긴 뭘.”

체닐린은 얼굴을 붉히고선 말을 돌렸다.

“그건... 어쨌든! 어차피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건 맞긴 하지.”

나는 부하들과 눈을 맞춰보았다.

파샨과 체닐린은 물론이고, 친위대원들 모두 눈동자에 자신감이 넘쳐났다.

자신감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건 아니긴 하지만…….

“좋아. 그럼 해보자.”

계획은 간단하다.

내가 우선 바리보예즈와 화리메에게 급습을 가하면, 나머지가 뛰쳐나가서 강철의 손아귀 기사들의 발을 묶는다.

그 사이 내가 둘을 해치우고 부하들과 협력해서 기사들을 마무리하면 끝.

오페이아와 여자들을 데리고 아티아로 돌아가서 계승식 전까지 즐겁게 논다.

완벽한 계획이다.

“그럼 센다. 하나, 둘. 응?”

판자를 박차고 불길을 뿜어내려고 팔을 뻗은 순간이었다.

천장에서는 종유석, 바닥에선 석순이 동시에 올라왔다.

“헛!”

급히 팔을 되돌림과 거의 동시에 종유석과 석순이 상어 이빨 맞물리듯 부딪혔다.

하마터면 외팔이 백작이 될 뻔했다.

“뭐야, 시발.”

홧김에 발을 굴러 전방으로 불똥을 쏘아냈다.

하지만 화염은 바위기둥을 채 뚫지 못하고 스러졌다.

작정하고 뚫으려면 못 뚫을 것도 없지만, 이걸 만들어낸 화리메가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겠지.

기습은 실패다.

곤란한데…….

일단 시간이나 끌 생각으로 아무 말이나 붙여봤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맞물린 돌기둥 하나가 스스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빈틈 사이로 화리메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 눈썹을 치뜨면서 날 가소롭게 쳐다보는 게, 벌써 다 이긴 것처럼 으스댄다.

“그렇게 떠들어대는데 안 들릴 거라고 생각했어? 모르는 척 해주느라 힘들었거든.”

소리 때문에 들켰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할 리가.

목소리가 들킬 정도였다면 감각 좋은 파샨이 미리 알려줬을 텐데.

“감각? 웃기네. 이 동굴 전체가 다 내 둥지야. 이 안에서는 누가 뭘하든 다 알 수 있거든?여우 수인의 감각으로 내 감지를 피해낸다고? 아하하하, 정말 웃겨.”

화리메는 성격 나빠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더했다.

“응, 그러니까,너희들은 동굴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내 거미줄에 붙잡혔단 거야.”

잘난 체하는 게 띠꺼워서 한 마디 해줬다.

“그래? 그럼 내가 네 아가들을 죽이고 다닐 때는 왜 몰랐냐?”

“아니, 그건!”

화리메는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로 삿대질을 해댔다.

“잠깐 나갔다 온 거고! 나라고 맨날 여기에 붙어있어야 돼? 바람 좀 쐬고 싶을 때도 있을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

“아니... 내가 왜 변명을 하고 있지.”

화리메는 풍성한 금발 머리를 쓸어 올리곤 다시 팔짱을 꼈다.

풍만한 가슴이 강조되며 내 시선을 빼앗아 갔다.

화리메는 피식 웃곤 팔짱을 더 올려 껴서 가슴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부각시켰다.

“지금 여기에 정신 팔려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

“가슴은 언제나 중대 문제다.”

“하아아... 레시아르의 탕아란 별명이 왜 생겼는지 알겠네. 바보 같긴.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돼?”

그녀는 팔짱을 풀고 어깨 위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나와 파샨, 체닐린, 친위대원들의 발목 위에 바위로 만들어진 족쇄가 채워졌다.

바닥에서 순식간에 자라나서 피할 틈도 없었다.

파샨이 낑낑대면서 족쇄를 부수려는 걸 본 화리메가 입을 가리고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 바보, 바보, 바보! 발버둥 쳐도 쓸모없어! 이 동굴은 전부 내 영역이니까!...히얏?!”

화리메는 웃다말고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구가 아슬아슬하게 어깨 너머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 뭐야? 사람이 말하는데?”

“아니. 궁금해서.”

“뭐가!”

“정말 이 안에선 다 반응할 수 있는지. 반응속도 보니까 속성 효과를 받는 거 같긴 하네. 땅 타입 포켓몬이라 그런가.”

“무슨 소리야, 그게!”

화리메는 벌컥 성을 냈다.

나는 무시하고 고개를 슬쩍 돌려 그 옆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내무대신. 안녕하쇼.”

“레시아르 백작.”

바리보예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인사를 받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저번엔 작별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도망치듯 떠나버려서 서운했는데. 다시 만나게 돼서 뭐... 반갑지는 않지만서도.”

“피차일반 아니오.”

“하여튼간에. 이번엔 서로 못 본 걸로 합시다. 어때. 중앙에서 마수를 배양하고 있다는 거, 나는 입 꽉 다물 테니까, 그 쪽도 내가 한 실수는 넘어가주는 걸로...”

“그러기엔 우리 쪽에서 잃은 게 너무 많습니다만.”

바리보예즈는 하이브의 시체 쪼가리를 꺼내 들었다.

인간을 양분 삼아 시시각각 마수를 낳던 끔찍한 흉물은 너덜너덜한 파편으로만 남았다.

그 마석은 모조리 내가 챙겼고.

좀 심했나? 싶긴 한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애초에 그딴 걸 내 영지에서 기른 것 자체가 문제 아니오.”

“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제와서 잘잘못 따지는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바리보예즈는 좌우로 시립한 기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판금갑옷에 투구를 쓴 강철의 손아귀 기사 둘이 스르릉, 섬뜩한 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바리보예즈는 기사 뒤로 물러나며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어차피 백작은 여기서 죽을 텐데.”

“허.책임질 수 있겠어?”

“책임?”

“아무리 중앙의 대신이라도 레시아르 백작을 암살하려 했다는 게 밝혀지면 그냥 넘어갈 순 없을 텐데.”

바리보예즈는 한 쪽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렸다.

“여기서 백작을 죽이면 그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은 계승식도 올리기 전의 백작 대리일 뿐이지. 당신이 죽으면 당신 아버지가 기꺼이 백작위를 돌려받을 거요.”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넌 여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테고, 공석이 된 내무대신 자리를 둘러싸고 침 흘릴 놈들이 아주 많을 거다.”

“허허허. 젊어서 그런지 너무 격정적이시군.”

“열정적이라고 표현해줘. 난 화염의 마법사니까!”

말을 마침과 동시에 팍 뛰어들면서 화염을 온몸에 둘렀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가능한 태양불꽃방패.

그 어마어마한 열에 내 발목을 묶은 바위 족쇄가 스르륵 녹아내렸다.

바리보예즈는 흠칫 놀라며 뒤로 후다닥 뛰었다.

나는 뒤로 불꽃을 튀겨 부하들의 족쇄까지 녹여버리곤, 힘주어 앞으로 내달렸다.

바리보예즈를 보호하기 위해 적 기사 둘이 내 앞을 막아섰다.

완벽한 합으로 검날을 겨누어 내게 휘두르는 게역시 보통이 아니다.

“하히얏!”

파샨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 들어가, 적 기사 하나의 무릎을 발로 찼다. 유효타격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관심을 돌릴 정도는 됐다.

체닐린도 때맞춰 다른 기사에게 검을 마주 휘둘렀다.

깡하고 검이 부딪는 소리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그래도 덕분에 기사들의 검격은 내게 닿지 않았고, 나는 막힘없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대로 바리보예즈의 면상에 파이어펀치를 먹여주려 하는데, 바닥에서 암석가시가 튀어 올랐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그대로 가시에 내 몸을 들이댔다.

암석가시가 전신을 둘러싼 화염에 닿자마자 펑하는 소리가 울렸다.

암석가시가 열을 견디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뭐야?”

화리메가 당황해서 펄쩍 뛰었다.

젖가슴이 크게 출렁이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급박한 전투상황에서 간계를 쓰다니. 비열한 년.

저 년을 꼭 사로잡아서 죄값을 치르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자꾸 일어서려는 하반신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뭐야! 이 와중에 거길 왜 세우고 있어!”

아니. 화리메가 삿대질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가라앉진 않은 모양이다.

뭐 어때.

나는 자지를 꼿꼿이 세운 채로 화리메에게 달려들었다.

“싫어어어! 저리 가!”

화리메는 기겁하며 팔을 위아래로 휘둘렀다.

동굴 천장과 바닥에서 종유석과 석순이 동시에 올라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피하지 않고 다리를 내리찍어 석순을 부수고, 주먹을 올려쳐 종유석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화리메는 금발을 쥐어뜯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뭐냐고! 여긴 내 영역인데! 어떻게 내 바위를!”

“자연계, 아니, 금석의 마법사라고 해서 방심하고 있지 않나?”

“뭐?”

“나와 네놈의 능력은 완전히 상하관계에 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사실 타고난 마력량으로 무식하게 찍어 누르는 것뿐이긴 하다.

마법사인 화리메도 그걸 모를 리가 없고.

자기 영역에서 다른 속성의 마법사에게 밀린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지, 화리메는 발악하듯 발을 쿵쾅쿵쾅 내려 찍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굴 전체가 우르르 출렁이기 시작했다.

잡혀 있던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통로 바깥으로 도망쳐 나갔다.

“힘없는 여자들을 괴롭히다니. 용서할 수 없다!”

여자들 속에 섞여서 도망치던 오페이아가 흘깃 날 쳐다본 거 같은데. 무시하고.

오로지 화리메만 보고 달려들었다.

화리메는 깜짝 놀라서 가슴 위로 팔을 모아 몸을 가렸다.

두 팔 사이로 보이는 깊은 가슴골. 거기에 손이 막 닿으려는데.

“그만둬라!”

바리보예즈가 내 옆구리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동심원 형태의 마력 파동이 나를 덮쳤다.

화염 방패가 바리보예즈의 공격을 막기 위해 옆쪽으로 분산된 틈을 타, 화리메가 전면에서 재차 암석가시를 쪼아냈다.

“죽어!”

“싫어!”

새로이 마력을 뽑아내 암석가시를 완전히 융해해버렸다.

마력이 쭉 빨려나가서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이 정도론 끄떡없다.

나는 화리메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면서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손을 넣었다.

물론 그 손 부분의 화염은 모두 제거했다.

사람은 미워해도 가슴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건 화리메지, 화리메의 커다란 젖가슴이 아니니까.

“힛? 뭐야, 뭐야, 뭐야, 뭐야!”

“크으…….”

커다란 가슴 사이에 손을 세로로 비집어 넣은 순간, 바로 알았다.이 젖통은 국보급 젖통이란 걸.

가슴이 너무 탱탱하면 부드럽지 않고, 반대로 지나치게 부드러우면 심지가 없어 축 늘어지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 이 가슴은 탄력과 부드러움을 최적의 비율로 유지하고 있다.

슬쩍 두들기면 푸르릉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힘주어 만지면 손가락이 파고들 정도로 야들야들하다.

크기도 어마어마한데 촉감까지 완벽하다니. 괘씸한 젖가슴이다.

“아니.이건 젖가슴이 아니라 젖푸딩이군.”

“뭐, 뭐, 무, 무슨...”

상식 외의 행동에 화리메가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사이, 오히려 바리보예즈가 눈이 뒤집혀서 내게 마구잡이로 마력창을 쏴댔다.

“이 놈! 그 더러운 손 치워라!”

처음에 마드모아젤이니 뭐니 하며 화리메를 불렀던 걸 보면 바리보예즈는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화리메가 바리보예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쪽은 딱히 그런 마음이 없었던 거 같고.

뭐 딱히 중요하진 않은 일이다.

어차피 화리메는 내가 곧 따먹을 테니까.

“내무대신. 그만 두지? 이 년이 어떻게 돼도 좋다는 거야?”

손가락을 옴지락거려 화리메의 밑 가슴을 제치고 명치를 찾아 급소에 엄지를 꾹 눌렀다.

그 바람에 드레스 앞섬이 쭉 내려가서 젖꼭지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예쁜 가슴 모양에 걸맞게 깔끔한 선홍색 유두다.

가슴만 놓고 보면 흠잡을 게 없는 여자군.

아니, 이게 아니고.

화리메의 명치에 엄지를 댄 채로 바리보예즈에게 다시 한 번 협박했다.

“손들어. 안 그러면 목숨은 장담 못한다.”

“비열한!”

“어허. 손들래도.”

바리보예즈는 마력 투사를 포기하고 주춤주춤 손을 들었다.

“아니. 손 들라니까?”

“들었지 않소!”

“너 말고. 너 말이야, 너.”

“으, 응?”

화리메는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 세 보이는 년이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꼴리긴 하네.

나는 화리메의 가슴 사이에 넣은 오른손이 아닌, 반대쪽 빈 왼손을 들었다.

그리곤 가차 없이 그녀의 따귀를 때렸다.

“꺗!”

분명히 뺨을 때렸는데 가슴이 출렁거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게 가능한 건가?

한 번 더 시험해보았다.

“흣...!”

이번에도 결과는 동일했다.

이게 인체의 신비인가.손에 느껴지는 젖푸딩의 출렁임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몇 번 더 시험해보고 싶은데 세 번째 시도를 하기 전에 화리메가 후다닥 두 손을 들었다.

쿠퍼 인대가 당겨지며 가슴이 살짝 들렸다.

손등 위에 가슴이 슬쩍 걸쳐진 상태가 되었지만, 무식한 가슴 크기 때문에 여전히 손등에 실린 중량은 묵직하다.

물론 그게 좋다.

나는 손등을 살살 밑가슴에 문질러대면서 엄지로 명치를 꾹 눌렀다.

“힛…….”

화리메는 긴 눈썹에 이슬을 매달고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나와 그녀는 서로 피부가 직접 닿아 마력 회로에 직접 마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로, 사실상 칼을 목에 댄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화리메에게 직접 마력을 쏠 수 있듯, 화리메도 내게 마력을 흘려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마력을 쏟을 수 있는 입구는 내 손가락으로, 마력회로 중 가장 말단에 불과하다.

내가 명치를 통해 그녀의 단전으로 바로 마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는 거다.

화리메가 내 손가락을 돌로 만들어 부숴버리려 한다면 나는 그녀의 단전을 바싹 불태워버릴 수 있는 거지.

결판은 다 난 거나 다름 없다.

“자, 잠깐.레시아르 백작.”

바리보예즈는 애걸하는 표정으로 눈썹을 모았다.

“우리 서로 못 본 걸로 합시다. 우리끼리 피를 봐서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적당하게 서로 물리는 게...”

“이 놈 봐라. 내가 아까 그렇게 하자고 할 때는 좆이나 까잡주시라고 하더니.”

“그런 말까진 안했습니다만…….”

“닥치고 무릎이나 꿇어. 기사 새끼들 다 머리 박으라고 하고.”

바리보예즈는 무릎을 꿇곤 기사들에게 급히 명령을 내렸다.

파샨과 체닐린을 몰아붙이던 강철의 손아귀 기사들은 검을 던지고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으흐흐흐.”

나는 오른손을 화리메의 가슴 사이에 집어넣은 채, 왼 손가락을 허공에서 마구 움직였다.

이젠 승리의 달콤한 과실을 취할 때다.

“이 년, 오늘 서방에 대한 예의를 가르쳐주마.”

"그, 그만해! 그만하라고!"

"네 년이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지.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된 거냐고?"

"햐읏?!"

왼 손마저 가슴에 얹고 오른 손과 동시에 젖통을 떡 주무르듯이 꾹꾹 세게 만져댔다.

당하는 화리메 입장에선 상당히 아픈지 그녀는 초반의 기세는 온데간데 없이 어깨만 옴츠리고 몸을 떨었다.

"그만! 그만 두십시오, 레시아르 백작. 내가 어떻게든 보상을 할 테니까."

바리보예즈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간청했다.

이 놈, 알고보니 순정남인가?

중앙의 대신이 여자 하나 때문에 석고대죄까지 하다니.

금석의 마법사라면 그냥 여자 하나가 아니긴 하지만.

나는 바리보예즈의 순정에 감동 받아서 서비스를 해주기로 했다.

"자, 큰맘 먹고 대출혈 서비스다!"

"꺄아악!"

화리메의 드레스를 가슴골 파인 부분에서부터 아래로 쭉 찢어서 새하얀 아랫배까지 드러냈다.

조금만 다리를 움직이면 보지가 보일 정도다.

화리메는 대차게 버둥거리다가도 내가 명치에 넣은 엄지를 꾹 누르자 부들부들 떨며 멈추었다.

바리보예즈는 눈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화리메의 드러난 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집중하는 꼴을 보아하니 화리메의 속살은 지금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럼 내가 화리메를 처음 취하는 건가?

크크. 생각지도 않은 형태로 이데트 누이의 복수를 하게 됐군.

화리메 명치에 엄지를 얹은 채로 할 수 있는 행위는 다 해봤다.

키스는 물론이고, 가슴을 빨고, 목에 마크를 남기고, 엉덩이를 두들기고, 심심하면 뺨도 한 대 더 때려보고.

어지간한 행위들을 다 한 뒤에 본격적으로 삽입을 위해 자지를 꺼내려고 하는데, 뭔가 내려놓은 듯 해탈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뒤를 돌아보니, 바리보예즈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저거 뭐야? 파샨. 가져와 봐."

"오지 마."

바리보예즈는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에 쥔 걸 보여주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니,그건 호박(??)처럼 생긴누런 색 결정체였다.

... 하이브의 마석이었다.

마도구의 명장(??)인 달반조차 다루지 못하겠다고 한 마력의 결정체.

엄청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마력폭주의 위험성 때문에 수집하는 족족 창고에 박아두기만 한 취급주의 물품인데.

“그걸 왜, 설마...아니. 아니지요?”

바리보예즈는 껄껄 웃기만 했다.

나는 화리메의 옷섬을 잘 여며주었다.

"흥분하지 마시고. 내무대신. 그게 여기서 터지면 우리 다 죽는 거 아닙니까. 문명인답게 우리 대화로 해결합시다."

"흐흐흐. 그래. 다 같이 죽는 거지."

"아니, 당신이 좋아하는 화리메도 죽는다니까?"

"그녀는 처녀로서 이미 죽었다. 아니, 네가 죽였어!"

이런 또라이 같은 새끼.

하지만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호감? 웃기는군. 그럼, 지옥에서 보자."

“너, 이 미친 새끼!”

화리메를 밀치고서 바리보예즈에게서 마석을 빼앗으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놈은 주먹을 꽉 쥐어 마석을 으스러뜨렸다.

마석이 부서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빈대의 시체가 꽉 눌려 터지면서 고대 어떤 존재의 혈액이 찔끔 튀었다.

새하얀 빛이 바리보예즈의 주먹 사이에서 발광했다.

스스로 마석을 부순 바리보예즈조차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그의 주먹을 살폈다.

일 초, 이 초, 삼 초가 흐르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나?

싶던 순간.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귀가 찢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한 통증이 덮쳐왔다.

나는 어지러운 이명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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