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67화 (67/166)

〈 67화 〉 면담

* * *

나와 파티스트롬 공작, 아마트리체 영애, 그리고 마리안 부인과 히아신스는 정원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마리안은 나와의 인연으로 나온 게 아니라, 노쇠한 켈자르 백작을 대리하여 나온 것이다.

그 남편인 유구라드는 범용한 자긴 해도 카르마시아 방위전에 직접 나설 정도로는 의기가 있었는데, 이 중요한 자리에 아내를 대신 보낸 걸 보면 전쟁 후에 복잡해진 켈자르 정국이 그를 지치게 한 모양이다.

원래도 유약한 놈이었으니. 그러니 제 앞마당에서 마누라가 내게 몸을 대준 것도 몰랐겠지.

그 사이 마리안은 지난 전쟁으로 씨가 마른 마이포흐 가의 가주가 되었고, 남작위까지 하사받았다.

켈자르를 다시 세우기 위해 가장 노력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아마 마리안이겠지.

여하튼 파티스트롬 공작에 마리안까지 왔으니 다키아 왕국 서북방의 삼대 귀족이 모두 모인 셈이다.

봄이 오고 있다곤 하지만 아직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쌀쌀했다.

그럼에도 나는 귀빈들을 안으로 모시지 않았다. 그 대신, 작은 불꽃을 무수히 띄워서 꽃망울처럼 피워냈다.

좀 유치하긴 해도 앞으로 방향을 함께할 이들에게 내 힘을 보여주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이쁘다…….”

히아신스가 작은 손을 뻗어 불꽃을 만지려 하자, 마리안이 기겁하며 딸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여전히 대단한 능력이시네요.”

마리안은 히아신스를 꼭 안으며 중얼거렸다. 거기 담긴 감정은 나로서는 파악해내기가 힘들었다.

일 년도 안 돼서 재회한 거지만 거리를 가늠하는 게 쉽지 않다.

마리안으로서는 그 긴 밤들의 기억을 모두 잊기로 정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심중 깊숙한 곳에 일렁이는 욕망을 억제해두었을 수도 있다.

나는 무난한 말투를 고르기로 했다.

“뭐, 그렇지. 여하튼 먼 길 와줘서 고맙소.”

아마트리체 영애는 나와 마리안을 번갈아 보고는 갸웃거리다가 슬쩍 떠보듯 물었다.

“두 분이 일전에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마리안은 잠시 굳어진 자세로 있다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평화협상을 기안할 때 만나 뵌 적이 있었어요.”

“마리안... 마이포흐 남작 덕에 레시아르와 켈자르 간의 우호의 가교가 놓였다고 할 수 있지.”

내 실없는 농담에 마리안은 휙 나를 노려보다가 누가 볼 세라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하지만 아마트리체 영애는 그 한 순간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누에 같은 눈썹을 살짝 들어올리며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그랬군요.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끝을 살짝 흐리기는 했으나 에둘러 켈자르의 실책을 비웃는 게 분명했다.

“그러게요. 잠시 비겁해질 용기가 켈자르에도 있었더라면 전쟁을 피하는 게 가능했을 지도요.”

마리안은 자책하듯 말했지만 비겁자라는 게 누굴 가리키는 건지는 명확했다.

가만히 있다가 한 대 얻어맞은 격이 된 파티스트롬 공작은 심기 불편한지 헛기침을 해댔다.

나를 제외한 양쪽의 입장에선 애초부터 서로 불편한 자리였다.

레시아르에 맞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던 중에 파티스 공국만 전선에서 슬쩍 빠짐으로써 켈자르만 실컷 두들겨 맞게 되었으니까.

공작은 그래도 켈자르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있는지 자세를 뒤로 물렸지만, 아마트리체 영애는 아랑곳 않고 마리안의 심기를 툭툭 건드렸다.

“켈자르 백작께서는 지난 전쟁 때 입은 상처 때문에 아직도 와병 중이시라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어서 쾌차하셔야 할 텐데.”

“백작께선 수빙(?)의 마법사니 금방 쾌유하실 거랍니다. 굳이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좋아요. 아, 마법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려시나…….”

이번엔 마리안이 말끝을 흐렸다.

마법사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건 파티스 공국의 아픈 약점.

아마트리체 영애는 테이블 아래로 내린 손을 쥐었다가 펴면서 반격할 거리를 찾다가, 마침 히아신스에게 눈을 붙였다.

“그건 그렇고, 소영애가 참 귀엽네요.”

히아신스는 낯을 가리는지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마트리체 영애는 히아신스에게 이것저것 묻다가 대답이 없자 마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이가 몇 살인가요?”

“올해로 열한 살이 되요.”

“열한 살... 이면 실례지만 귀부인께서는 연세가...”

애써 참던 마리안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아마트리체 영애...”

“어머. 잠시만요.”

아마트리체는 마리안의 말을 끊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붙은 줄 알았네요. 그게 아니라 주름이었... 아, 죄송해요.”

마리안은 서른을 좀 넘긴 나이지만 피부는 여전히 청명하고 매끈하다. 그래도 이제 스물 언저리인 아마트리체보다 성숙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그러니 아마트리체의 억지는 억지이되 상당히 기분 나쁜 억지였다.

공작조차 딸의 갑작스런 폭주에 당황해서 눈치를 주었지만, 아마트리체는 아랑곳 않고 맹공을 이어나갔다.

주름살에 좋은 화장품을 추천해주겠다느니.

인생의 선배에게 교훈을 청한다느니.

결혼생활에 대해 물으며 은근히 남편의 존재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쯤되면 바보라도 아마트리체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여자의 직감으로 나와 마리안 사이의 무언가를 잡아내고선, 마리안을 견제하고 있었다.

다만 아마트리체가 여자의 직감으로도 놓친 것이 있었으니... 그건 그렇게 견제하는 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추해 보인다는 거였다.

파티스트롬 공작조차 고명딸의 폭주에 어쩔 줄 몰라 얼굴을 벌겋게 익히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아마트리체 영애가 나에 대해 가진 호감이 컸던 모양인데. 어차피 아마트리체와 혼약할 생각이 없는 입장에서는 귀찮기만 하다.

그렇다고 아마트리체가 결혼 약속 없이 내게 몸을 줄 것 같지도 않고.

나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아마트리체와 마리안의 설전을 지켜보았다.

아마트리체는 늘 길게 말을 했지만, 마리안은 한 두 마디 받아치는걸로 그녀를 제압했다.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철부지 영애가 출산과 육아를 거친 백전연마의 엄마를 이기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마리안은 끝내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차분히 대답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요. 아마트리체 영애. 나는 영애보다는 나이가 좀 있는 편이에요.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어요. 켈자르 백작님께 사명을 하사받고 이 자리까지 나오기는 했지만 본래는 가정을 지켜야 할 사람이지요.”

“네, 네에.”

아마트리체는 마리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눈치였다.

마리안은 그녀를 딱하다는 듯이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저와 젊고 아름다운 영애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어요. 이제 저의 즐거움은 얼굴에 분을 바르고 피부에 향유를 적시는 데에 있지 않아요. 저의 즐거움은 히아신스, 이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는 데에 있답니다.”

“그... 그런가요?”

“그래요.나는 나 자신보다 이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이 아이가 사랑받기를 바란답니다.”

마리안은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하면서 히아신스의 윤기 나는 은발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아신스는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엄마의 손 빗질을 받아들였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는 마리안의 눈동자에는 끝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이 아이는 앳되고 서투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그렇죠? 백작님?”

마리안은 갑자기 나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음. 그렇소.”

“네. 다행히 레시아르 백작께서도 우리 히아신스를 귀엽게 봐주시어, 일전에는 혼약 이야기까지 꺼내신 적이 있었던가요.”

마리안이 툭 던진 말에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아마트리체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나도 등골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정말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백작의 대리로 나온 마리안에게 그거 다 거짓말이라고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귀족이 뱉은 말의 무게는 무겁다. 이거 잘못하면 정말 코 꿰이게 생겼다.

“물론, 아직 히아신스는 어리고. 레시아르 백작께서도 확약을 하신 것은 아니니 확실히 이렇다 정해진 건 없지만요.”

마리안은 내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면서 여유를 뽐냈다.

상대를 자처하고 나섰던 아마트리체는 철부지 영애가 되어버렸고, 가만히 앉아있던 나까지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딸아이를 안고 쓰다듬는 여인이 이 자리의 분위기를 단번에 휘어 잡은 것이다.

이대로 물러나긴 싫은지, 아마트리체 영애는 아버지의 팔 위에 손을 올렸다. 슬그머니 손 가죽을 쥐어짜는 것 같은데, 공작은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 눈만 부릅떴다.

공작이 쉽사리 나서주지 않자, 아마트리체의 가녀린 손등에 파란 정맥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딸의 성화에 시달리다 못한 파티스트롬 공작이 결국 입을 열었다.

“마이포흐 남작. 히아신스 영애야 아직 어리고, 레시아르 백작의 앞길도 창창한데 굳이 이런 날까지 혼약 같은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있겠나?”

“어머. 제가 그렇게까지 얘기했었나요? 죄송해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빠졌더라...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에서부터였던가요?”

먼저 설전을 시작한 게 누구냐는 은근한 물음에, 강건한 파티스트롬 공작도 쩔쩔맸다.

아마트리체 영애는 분한지 입술을 씹었다. 이지적이고 현명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상당히 전투적이다.

더 내버려두었다가는 중앙과의 싸움에 나서기 전에 아군끼리 싸울 판이다.

내가 찻잔을 들어 받침을 탁탁 치자, 양쪽 모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론은 이쯤하고. 일단은 이 자리에 모여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파티스트롬 공작님. 그리고 마이포흐 남작.”

결국 기싸움도 나를 서로 자기 편으로 가깝게 끌어들이기 위한 귀여운 캣파이트에 불과하다.

레시아르와 켈자르, 파티스 중에서 가장 위세 높은 것은 당연 레시아르고, 그 레시아르의 백작인 내가 자리를 정리하겠다는데 이론이 나올 리가 없다.

테이블에 모인 모두는 일단 기세를 접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공작에게 한 이야기를 마리안에게 다시 한 번 설명해주었다.

마리안은 눈을 밝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기는 했어요. 저희 켈자르 령에도 마수 무리가 갑자기 범람하더니, 내무대신이 다녀간 이후로는 깔끔하게 사라졌으니까요.”

“그게 다 자작극이란 거요.”

“하지만 정말 중앙에서 꾸민 짓이라는 증거가 있나요?”

파티스트롬 공작과는 달리 마리안은 실질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어물쩍 넘어가려 했지만 그녀는 중앙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사람을 불렀다.

“그녀를 이쪽으로 데려와.”

시중을 들던 메이드가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가, 곧 한 여자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누구인가?”

공작이 묻자, 화리메는 드레스 밑자락을 옆으로 살짝 들어올려 인사했다.

“드보뫼와 휘오넬라의 차녀인 화리메입니다.”

“드보뫼라면... 아우럼 백작가 출신이던가?”

“예. 공작님.”

공작의 눈에 이채가 빛났다.

“아우럼 가가 중앙과 손잡고 이런 짓을 벌인 거군. 그 끔찍한 마수가 어찌 태어났는지 알만해. 그런데 레시아르 백작은 이 숙녀 분을 어떻게 포섭했나?”

“다 방법이 있지요.”

“허허허. 대단하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분위기로 수습되어 가는데, 마리안이 또 초를 쳤다.

“그 쪽 영애께서 아우럼 백작가 출신이라는 걸 증명할 증거는 있나요? 말만이 아닌 구체적인 증거 말이에요.”

“마이포흐 남작. 굳이 세세하게 따질 게 있겠나? 이런 일은 신뢰가 더 중요한 법일세.”

공작이 만류하려 했지만, 마리안의 태도는 강직했다.

“저야 레시아르 백작님을 신뢰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다른 영주들을 설득하기를 바란다면 이 일은 애초에 성사될 수 없어요.”

마리안의 말에는 뼈가 들어있었지만, 나름대로 예리한 지적이기도 했다.

나는 화리메에게 눈짓을 보냈다.

“보여주도록 해.”

“이거면 증거가 되겠죠?”

화리메는 손바닥을 뒤집어 그 위에 주먹 크기의 황금 방패를 만들어보였다.

찬란한 빛깔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내가 만들어낸 불꽃의 빛이 바랠 정도다.

암석 마법을 주로 사용하던 그녀가 황금 마법까지 익히게 된 건 황금의 시대에 다녀온 이후라지만, 그런 내막까지 다 알려줄 필요는 없다.

공작은 입을 쩍 벌린 채 감탄사를 흘려냈고, 마리안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광채의 황금 마법은 본 적이 없어. 필시 아우럼 가에서도 지위가 높았겠어.”

“이런 걸 보여주시면 믿을 수밖에 없네요. 알았어요, 백작님.”

이걸로 레시아르, 켈자르, 파티스트롬 가는 중앙에 대항하여 연합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중소 영주들은 중앙으로 부는 바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합기 아래에 몸을 숙여야 할 것이다.

#

“바이스 레시아르!”

화리메가 발로 바닥을 쿵쿵 내딛으며 달려왔다. 그녀의시중을 들라고 붙여놓은 메이드들은 쩔쩔매며 그녀를 허겁지겁 따라온다.

나는 그녀가 다가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가 물었다.

“왜 그래?”

“하란대로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걸 다 가져갈 수가 있어!”

“뭘?”

“마석 말이야! 마석!”

화리메는 내 가슴팍을 툭탁툭탁 치면서 소리쳤다.

무슨 마석이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다. 동굴에서 가져온 하이브의 마석이겠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지는 수십 개의 마석들.

전부 다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내 창고로 들여놓았다.

“내가 주웠으니까 내 꺼 아닌가?”

“웃기지 마!”

화리메는 분기탱천해서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우럼 가에서도 겨우겨우 모은 거란 말이야! 어떻게 나한테는 하나도 안 주고 다 가져갈 수가 있어?”

“레시아르 가로 시집왔으면 아우럼 가는 잊어버려. 아니면 지참금이라고 생각하라고.”

“어떻게 그래? 난 아우럼 가에서 나고 자랐는데.”

“출가외인. 시집가면 남이란 말도 몰라?”

“몰라!”

“모르면 공부해!”

정수리에 주먹을 꽁 내리치자, 화리메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흐아앙... 이런 양아치 같은 놈인줄 알았으면 안 따라왔을 거야...”

“안 따라왔으면 넌 나한테 죽었어. 그러니까 처신 잘하라고.”

“흐아아앙...”

화리메는 서럽게 울면서 목소리를 키웠다.

괜히 사이에 끼인 메이드들만 안절부절 못하며 나와 화리메의 눈치를 번갈아 보고 있기에, 그녀들의 몸을 주물러 긴장을 풀어주기로 했다.

엉엉 울던 화리메의 눈가가 확 올라갔다.

“지금 첩실이 울고 있는데 다른 여자 만질 생각이 나?!”

“너도 만져지고 싶으면 그만 울고 이리 와서 가슴이나 대.”

“이으윽...!”

화리메는 어금니를 꽉 물고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딱 하나라도 돌려줘! 하나는 줄 수 있잖아!”

“그걸로 뭐하게?”

“그건...”

“말 못하면 못 돌려주지.”

화리메는 결국 목적을 털어놓지 않았다.

나와 한 배를 타기로 정하긴 했다지만, 비장의 한 수는 쟁여두고 싶었던 거겠지.

황금의 시대로 전이할 수 있는 열쇠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이브의 마석은 정말 비장의 한 수가 될만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시대로 전이할 수 있는 하이브의 마석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거의 죽을 뻔하던 파샨과 체닐린을 살려낸 꿀물과 황금사과. 그런 귀중한 물건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를 지경이다.

이번 일이 정리되면 원정대라도 꾸려서 그 시대의 보물들을 싹 다 털어올 생각이다.

황금의 인간들은 끝도 없이 거만한데다가 쓸데없이 세긴 했지만, 그래도 아르토는 내게 나름 우호적이었으니까.

그나저나 화리메는 언제까지 내 가슴팍을 두들겨 댈 생각인 건지.

솜주먹이라도 슬슬 아파오던 참이라 팔목을 낚아챘다.

“착하게 지내면 하나 둘쯤은 줄 테니까, 그만 가자.”

“정말로?”

“정말로.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그렇게만 말하고 계승식이 열릴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화리메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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