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정음
* * *
해가 지고 저녁 어스름이 정원 곳곳에 깔렸다.
아마트리체 영애는 별관의 이층 테라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녀와 호위기사조차 없이 혼자였다.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원단은 얇기 그지없어서 아마트리체는 덜덜 떨고 있었다.
“날이 찬데 어찌 밖에 나와 있소.”
“그럼 불꽃을 일으켜주세요. 그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아마트리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받아 손등에 가볍게 키스하며 마력을 불러일으켰다.
나와 아마트리체를 중심으로 하여,얇고 가느다란 불줄기가 넝쿨 줄기처럼 사방으로 뻗어가며 테라스를 은은하게 수놓았다.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며 백금발을 밝히자 아마트리체의 안색도 조금 나아졌다.
“아름답네요. 따뜻하고. 그리고 강력해요.”
아마트리체는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법사들은 다 그런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마법사도 결국 인간이오.”
“말, 편하게 해주세요. 이제 그 정도 사이는 됐잖아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트리체는 테라스 외벽에 손을 얹고 어두운 정원을 바라보았다.
“백작님은 늘 멋있으신 것 같아요. 지난 겨울에 부란타 고원에서 마을을 구하실 때도 그랬고, 오늘 영주들을 휘어잡을 때도. 멋있었어요.”
“무고한영주의 목을 쳤는데도?”
“무고하다뇨. 영주연합군을 결성하려는데 방해가 된 자잖아요.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그런 점도 포함해서 멋있다는 거예요.”
아마트리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비정하다고도 할 수 있고, 판단력이 괜찮다고도 할 수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런 게 아마 마리안과의 차이겠지.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마트리체가 자세를 돌려 테라스 외벽에 기댄 채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 여자 생각하셨죠?”
“그 여자라니?”
“마이포흐 남작 말이에요.”
여자의 직감이 무섭다곤 하지만 이건 뭐 거의 동물적인 수준이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트리체는 고운 얼굴을 일그러뜨리다가 두 손으로 흉한 표정을 숨겼다.
“제가... 보기 안 좋은 모습을 보였죠?”
“보기 좋지는 않았지.”
“죄송해요.”
“사과는 내가 아니라, 마이포흐 남작에게... 우나?”
“아느... 흣.. 아니... 요...”
아마트리체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숨 죽여 울었다. 그녀는 자기 마음도 뭔지 종잡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듯 했다.
어이없긴 하지만 이 나이 대 여자애들 감정이 오락가락한다는 건 현생의 축복받은 삶 덕에 잘 안다.
나는 그녀가 적당히 눈물을 흘려낼 때까지 기다리다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감사... 흡... 합니다...”
아마트리체는 뒤돌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손거울로 꺼내 화장을 확인하더니, 손빗으로 앞머리까지 정리하고 나서야 다시 내게 얼굴을 보였다.
눈이 좀 붓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인은 미인이다.
그녀는 내게 손수건을 돌려 주려다가, 그걸 품 안에 숨기며 따지듯 말했다.
“따지려는 건 아니지만, 억울해서 한 소리는 해야겠어요.”
“억울해? 뭐가? 그리고 손수건은 좀 주지?”
그녀는 내 말은 무시하고 자기 할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저보다 나이도 열 살이나 더 많고. 애도 셋이나 있다구요.”
“그래. 그렇지.”
“아니! 그 여자는 유부녀라니까요!”
“알아.”
아마트리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아주 잘 안다.
결혼한 여자와 미혼 총각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뭐 그런 도덕적인 비난을 하고 싶은 거겠지.
나를 직접 탓하기보다는, 유부녀인 마리안을 탓함으로써 그녀를 취한 나를 우회적으로 돌려 비난하고자 하는 복잡한 감정이 그녀의 가슴을 맴돌고 있을 터다.
나는 아마트리체의 옆으로 가서 테라스 외벽에 손을 짚고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결혼했다느니, 유부녀라느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남녀가 서로 눈이 맞는다는 건 그런 허례와 인습 따위는 넘어선 거야. 남자와 여자는 애욕 앞에 모든 걸 벗어던지고 어우러지는 거지.”
“그... 그런 건... 그런 건 궤변이에요!”
“그래. 아마트리체 영애께는 궤변으로 들리겠지.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고, 그대도 그렇게 할 필요 없어. 아마트리체 영애에게는 공작께서 성실하고 착한 신랑감을 구해다 주실 테니. 그대는 그렇게 결혼한 사람과 성실하게 사랑하면 돼.”
말을 마치고 보니, 아마트리체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활활 치솟고 있었다.아.이런 나이대 여자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던가.방금 내가 한 말이 그녀의 격정이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 같다.
그녀는 따지듯 물었다.
“저에겐 그런 느낌을 못 받으셨다는 거죠?”
“음……. 뭐…….”
“제가 그 여자보다 뭐가 부족한데요?”
“부족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런 건.”
“그럼요?”
꼬치꼬치 캐묻는 아마트리체가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어차피 대귀족의 딸, 독이 든 사과인데.
책임을 지지 않는 한은 따먹지 못할 과실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를 책임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
게다가 마리안이 없었더라면 아마트리체가 이렇게까지 내게 적극적으로 나오진 않았을 거라 장담한다.
그녀가 내게 가지고 있던 호감은 그 나이 대 여자가 가질 법한 동경이 거의 다일 테고, 파티스트롬 공작이 은근히 조장하긴 했을 지라도 귀족남녀 간의 선을 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마리안, 현숙하면서 사려깊은 연상의 여인이 라이벌로 나타남으로써 그녀의 마음에 경쟁심이 불붙은 게 아닌가.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귀족영애 특유의 자기중심주의, 괜찮은 남자는 전부 자기를 갈구해야 한다는 어린 마음이 그 땔감이 되었겠지.
게다가 마리안은 유부녀라는 도덕적 약점까지 있었으니까. 아마트리체 입장에서는 내가 색욕의 마녀에게 속는 순진한 청년처럼 보이려나. 사실은 그 반대인데.
어쨌거나 사춘기 애들 같은 감정에 휘말릴 생각은 없다. 들어가서 파샨이나 껴안고 자야지.
외벽에서 손을 떼고 돌아서려는데, 아마트리체가 갑자기 바지를 잡아당겼다.
“어어?”
계승식을 마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기에 바지는 팬티와 함께 술렁 내려갔다.
아마트리체는 내 자지를 한 손으로 쥐었다.
거친 손동작이었지만 귀족영애, 그것도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가 성기를 만진다는 감각은 쾌락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윽... 잠깐.”
아마트리체는 자지를 꽉 쥔 손을 앞뒤로 세게 문질렀다.
“아파!”
“아프다고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에 쥔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계란을 깨지지 않게 쥐는 것처럼.
이번엔 악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보드라운 살결만으로도 쾌감은 충분했다. 그것도 공작가 고명딸이 바짝 붙어 올려다보며 자지를 쥐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이러고 오래 있을 순 없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문제가 커진다.
나는 누가 볼세라 일단 테라스의 불꽃부터 사그라뜨리고서 아마트리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마트리체 영애, 대충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러면... 아으힉?”
아마트리체는 나를 올려다보며 생글 웃었다.
두 손이 바삐 움직이며 내 자지를 좌우로, 상하로 살살 문지르며 넓게 성감대를 자극했다.
굼벵이가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자지가 순식간에 일자로 펴지며 굳어졌다.
“이렇게 하면 좋으신 거죠? 어머. 어머머……. 역시 이런 걸 좋아하시는 거네요.”
“아마트리체 영애. 이건 윽...”
“좋으시잖아요? 남성분은 흥분하면 성기가 딱딱하게 굳으며 커진다고 배웠어요.”
“맞긴 한데…….”
아마트리체는 두 손을 돌려가며 정성스레 자지를 애무했다. 기교랄 건 딱히 없었지만 비싼 도자기를 닦는 듯 내 자지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만으로도 벌써 정액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흥흥 콧소리를 내며 페니스를 주무르다가 문뜩 물었다.
“그 여자도 이렇게 해주었나요?”
나는 마리안이 더러워진 자지를 청소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청초한 얼굴이 홀쭉해지도록 세게 자지를 빨아들이던 모습. 연상한 것만으로 자지가 꿈틀거리며 맥동했다.
그러자 아마트리체가 내 자지를 터뜨릴 것처럼 꽉 쥐었다.
“더한 걸 해준 것 같네요. 좋아요... 저도 할 수 있다구요...”
아마트리체는 내 자지를 붙든 채 하반신에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뭐, 뭐하려고?”
“입으로 하려구요.”
“숙녀가 그런 짓을 하면 안 돼.”
“왜요? 전에는 백작께서 제게 정액을 먹이셨잖아요,수프에 넣어서. 먹이는 걸 좋아하시는 거죠? 알았어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먹으면 되는 거잖아요.”
아마트리체는 긴 드레스가 땅에 끌려도 신경 쓰지 않고 테라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자지를 꼭 붙잡고는 귀두 끝을 노려보다가, 질끈 눈을 감았다.
쪽.
귀두에 입술이 닿자 등골이 오슬오슬해졌다. 내내 참았던 오줌을 터뜨렸을 때처럼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마트리체는 자지 뿌리를 착실히 쥔 채로 조금씩 머리를 사타구니에 깊게 묻었다.
귀두가 혀끝을 긁고 지나가고, 자지 아랫면이 혓바닥을 스쳐지나갔다.
“... 브읍.”
아마트리체는 자지를 반쯤 삼킨 곳에서 멈추었다.
목 끝에 귀두가 닿은 것이다.
그녀는 삼키지 못한 자지 뿌리를 두 손으로 꽉 잡고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앞뒤로 천천히 흔들었다.
침으로 번들번들해진 자지가 그녀의 입 안으로 숨어들어갔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내려다보기엔 퍽 만족스러운 광경이다.
어두운 테라스. 보석으로 장식된 드레스를 입은 공작가 영애는 내게 꿇어앉아 설익은 사랑을 갈구하며 자지를 빨고 있다니.
여체에 닿는 것은 고작해야 두 뼘 남짓한 자지뿐이지만 음습한 정복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부붑... 쭙... 후븝... 쭈붑...”
아마트리체는 처음임에도, 아니, 처음이니까 더 열심히 자지를 빨았다.
지금 이 경험이 그녀의 삶의 한 순간에 새겨질 것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선명한 기억 중 하나가 될 장면에 내가 자지를 단단히 세운 채 서 있는다는 건 상당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아마트리체의 입보지에 바이스 레시아르 다녀가다. 라고 적는 기분이라고 할까.
“쭙... 하붑... 하붑...”
계속 빨다보니 입이 아픈지 아마트리체는 붕어처럼 뻐끔거리면서 입술만 자지 중간에 찍었다가 미끄러지듯 귀두까지 돌아왔다.
그러다가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 느낀건지, 입에 다 들어가지 않고남는 부분을 한 손으로 쥔 채 흔들었다.
대딸과 펠라를 한 번씩 해봤다고 벌써 대딸펠라를 완성한 건가.
파티스트롬 공작에게 딸아이 잘 키웠다는 덕담을 건네주지 않을 수가 없겠군.
추붑. 추붑, 추붑.
탁, 탁탁, 탁탁.
입으로 힘주어 자지를 빠는 소리와, 동그랗게 모은 새끼손가락 바깥쪽이 불알에 닿는 소리가 오묘하게 합쳐졌다.
어둠 속에서 선명해진 청각은 귀로 오르가즘을 느낄 정도였다.
눈을 감으면 아마트리체가 내 불결한 곳을 자신의 입으로 감싸고 새하얀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도리어 선명하게 보였다.
자지가 두어 번 불끈 맥동했다.
아마트리체가 기둥 밑쪽으로 손을 밀던 터라 정액이 발사되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귀두 쪽으로 짜내는 손동작을 취하면 불알에 그득 모인 정자가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나는 아마트리체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
“아마트리체, 이제 그만...”
“흡...!”
“떼라니까...!”
“으브브븝...!”
아마트리체는 오히려 입과 손에 힘을 더 주며 자지를 더 세게 애무했다.
나는 못 이긴 척... 하지 않고, 아마트리체의 양쪽 뺨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그녀의 머리를 쥐고 흔들었다.
“부붑...!부웹...!”
아마트리체는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입술을 꾹꾹 눌러 자지를 아프지 않게 물었다.
그녀의 눈가로 눈물이 줄줄 흘러서 눈화장이 번졌다. 꽤나 야했다.
“내 정액을그렇게 마시고 싶어?”
아마트리체는 화장이 번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스프에 수작을 부려서 그녀가 나를 노려다 본 게 고작 반 년도 안 됐는데.지금은 그녀가 원해서 정액을 삼키고 싶어 한다니.
세상사라는 게 참 묘하다는 걸 느끼면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정감에 몸을 맡겼다.
요도구가 열리면서 부웃, 정자가 일자로 쏘아졌다.
도퓻! 퓨웃! 퓻! 퓻!
길게 날아간 정액이 그녀의 목젖을 갈겼다.
나는 사정하면서도 쉬지 않고 아마트리체의 얼굴을 오나홀처럼 쥐고 흔들었다.
뷰루루룻!뷰루룻!
“흡... 크르륵... 브븝... 쁩...!”
추한 소리를 내면서도 아마트리체는 끝까지 내 자지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동그랗게 만 입술을 자지 기둥을 착 붙이고 내가 기분 좋게 사정할 수 있도록 혀를 자지 밑면에 말아올렸다.
뷰우웃! 뷰웃! 븃! 븃!
자지가 위 아래로 맥동하면서 정액을 쏘아낼 때마다 아마트리체의 목울대가 울리는 게 보인다.
꿀럭. 꿀럭.
몇 번에 나눠 삼키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아마트리체는 결국 기침을 터뜨리고 말았다.
“쿨럭, 쿨럭! 켁, 켁! 웨엑…….”
그녀는 두 손을 받쳐 정액과 침을 뱉어내고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곱게 모은 손그릇이 꽉 차오를 정도로 내가 그녀의 입 안에 싸지른 정액량은 많았다.
그걸 어쩔 요량인지 보고 있자니, 아마트리체는 깊게 심호흡하고는 두 손을 입에 대어 후루룩 소리를 내며 정액을 전부 삼켰다.
“... 읍...! ... 븝...! 꿀꺽... 읍...! 읍...! 푸웃...! 븝...!”
그 와중에 아마트리체는 시선은 아래가 아닌 위, 바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조금씩 정액을 삼키는 모습에 자지가 절로 꺼떡였다.
“푸흐.”
그녀는 손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는 혀를 내밀어 남은 정액 찌꺼기까지 모두 핥아냈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아까 내게 가져갔던 손수건을 꺼내 입술을 두들기듯 톡톡 닦았다.
비싼건데. 저건 그냥 줘야겠군.
“하아... 어, 어때요? 잘했나요? 그 여자보다요?”
지는 걸 싫어하는 애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묻는 아마트리체의 모습은 마리안과는 다른 방면에서 매력적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자 아마트리체는 가슴 앞에 손을 모아 작게 주먹을 쥐었다. 귀여워서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그녀는 또 헛소리를 했다.
“그럼 이제, 제 처음을...”
“그건 안 돼!”
지금까지의 일도 불문에 부치기는 어렵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귀족, 그것도 공작의 고명딸을 처녀를 취한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코가 꿰이게 돼있다.
물론 그런 이유를 대면 아마트리체가 책임 질 생각도 않고 자기 입에 정액을 싸질렀냐고 분개하겠지.
나는 다른 이유를 갖다붙여 그녀를 설득했다.
“침착해. 아마트리체 영애도 이런 곳에서 처음을 낭비하고 싶진 않잖아?”
내 말에 그제야 이성이 좀 돌아왔는지 아마트리체는 흰 얼굴을 붉혔다.
“그, 그렇긴 하지만요.”
“그럼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싫어요!”
아마트리체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그럼 서로 시간을 좀 두고 생각하는 걸로 하자고.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트리체 영애는 너무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아. 나를 대하는 감정부터가 말이야.”
"제 감정을 저보다 백작님이 더 잘 아시나요?"
"타인이 보는 게 더 객관적인 법이야."
“제가 본 백작님은 그 누구보다 주관적인 사람이었는데... 하여튼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시면 안 돼요. 설렁설렁 넘어가려 하시면 전 아버지에게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힐 수밖에 없어요.”
아마트리체는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도 서늘한 경고를 날렸다.
그것 참. 무시무시하군.
헛기침을 하려니, 아마트리체는 언제 경고했냐는 듯이 살포시 웃고 말을 이었다.
“그럼... 저 먼저 돌아가 볼게요. 아버지께 산책한다고 하고 나왔거든요. 시녀들도 따돌리고 온 지라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
"그, 그래."
"시간이 필요하시면 조금 드릴게요. 남성분들은 독촉하면 싫어한다고 하시니까요. 하지만 오래는 못 기다려드려요. 아시겠죠, 백작님? 연합군의 깃발을 내리기 전까지는 결정을 내려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어..."
"그 때는 꽃과 편지와 노래를 들고 찾아와주세요."
아마트리체는 일어서서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올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테라스에 혼자 남겨진 나는 외벽에 기대 잔열을 식혔다.
"연합군의 깃발을 내리기 전까지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내게 이렇게까지 호감을 표한 대귀족의 여식은 아마트리체 영애가 처음이었다.
연합군의 중진인 파티스트롬 공작과의 관계를 생각해봐도 아마트리체와의 혼약을 맺는 건 정략적으로 괜찮은 일이겠지.
아무래도 질투심이 좀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마력이 강한 귀족이라면 넓게 씨를 뿌려 많은 아이를 가지는 것이 책무인 시대다. 그걸 들먹이면 귀족 영애인 아마트리체도 정부를 들이는 걸 못 이긴 척 넘어가 줄 테지.
하지만 나는 아마트리체 그녀 개인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그녀와 결혼하는 게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이번 전쟁에서 누군가를 만날 거라는 강한운명 같은 게 느껴졌다. 내 어릴적, 연병장에서 거의 죽어가는 조그마한 여우수인을 발견하기 전에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다가올 운명이 악연일지 인연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확인하기 전에는 가정을 꾸릴 수 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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