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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75화 (75/166)

〈 75화 〉 격돌

* * *

지면이 울렁울렁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바닥을 디딘 발부터 진동이 전해져와 심장을 뒤흔든다.

배멀미를 할 때처럼 어지럽고 역겨운 기분이 든다.

“윽...”

넘어질 뻔한 나를 체닐린이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이렇게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도 이 정도라면 진원지에서는 어떤 참극이 벌어졌을지.

깔려서 즉사한 기사들이 가장 편하게 갔을 테지. 어중간하게 직격타를 피해간 놈들은 속이 진탕이 되고 눈과 귀가 터졌을 거다.

“이게 대체 무슨...?”

볼품없이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자세를 다잡은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체닐린의 몸을 붙잡고 일어서서는, 의연한 척 허리를 세운 채 그들에게 답했다.

“아우럼 백작이 내응한 것이오. 기다린 보람이 있었군. 적들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을 테지.”

“아, 아니. 레시아르 백작님! 그런 말은 지금 처음 듣습니다! 그런 중대한 정보가 있었다면 저희들에게도 공유를 해주셨어야지요!”

늙은 귀족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글쎄. 그런 기밀은누가 들을지도 모르는데 조심해야지. 그런데 지금 내게 대드는 것인가?”

“대, 대들다니요. 허허허. 이 늙은이가 어찌 감히...”

내 눈총을 받은 늙은 귀족은 땀을 뻘뻘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저 놈, 중앙에 선을 댔겠군. 아군의 전력을 그대로 올드완에게 내보냈겠지. 비장의 한수인 아우럼 백작의 배신은 전혀 모른 채 말이야.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격언에 따라 행동한 것뿐인데, 의도치 않게 적에게는 기망을 한 셈이 되었다.

미리 떠들어댔다가 계획이 누설되었더라면 아우럼 백작의 목은 달아났을 거고, 연합군은 이 자리에서 올드완에게 쓸려나갔을 터. 구사일생했다. 정말로.

하지만 오록스 단장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겠군.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전장 한복판을 바라보는 타라의 어깨를 두들기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오시스는 그 사이 귀족들을 가까이 불러 모았다.

나는 검을 빼들어 검신에 화염을 일으킨 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서북 연합 귀족 여러분. 지금이 적기요. 검은튤립 기사단은 아우럼 백작의 대마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소. 지금 기사를 내보낸다면 적 기사들의 목을 앵두 따듯 쉽게 수확할 수 있을 터, 여러분은 지금껏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놀린 기사단을 모두 출격시키시오. 이조차 못하겠다면내 명에 거역한 것으로 간주하고, 연합군 총대장의 권한으로 지금 당장 목을 치겠소.”

그 서슬 퍼런 명령에 대드는 귀족은 없었다. 간첩이 있다고는 해도 결국 대세에 따라 줄을 선 것뿐.

대세가 연합군을 향해 흐르자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줄을 바꿔 탄 것이다.

오히려 내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직접 말에 올라 출격하는 자들조차 적지 않았다.

“가자! 연합군의 승리를 거두러!”

“레시아르 백작님! 저 위죤 남작의 이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청오소리 기사단 출격!”

아군은 남은 전력을 싹 다 긁어모아 적을 향해 돌격했다.

개중에는 아까의 그 늙은 귀족도 있었다. 저 놈은 살아 돌아와도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

"적 예비대 출격!"

"막아라!"

한편, 대마법에 휩쓸리지 않은 적 마력병과보병 연합제대가 기겁해서 연합군 전력을 막아서려 했지만, 이번에는 토루만 단장의 사향노루 기사단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적은 마력병만 해도 삼천 명을 훌쩍 넘겼지만, 토루만 단장은 사향노루 기사단의 기동력을 이용해 이리저리 들치면서 그들을 양 몰듯이 몰았다.꽤 괜찮은 용병술이었다.

그들이 벌어준 시간 동안 연합군 전력은 황금방패를 빙 둘러 포진했다.

지면을 덮은 황금방패는 여진이 사그라질 때쯤 사라졌다.

그 아래 드러난 것은 끔찍한 참상이었다.

내 예상대로 직접 대마법에 직격한 검은튤립 기사단은 시체조차 건지지 못하고 피와 약간의 살점으로 화했다. 그 수가 어림잡아도 천은 될 듯했다.

황금방패의 직격 범위를 벗어난 기사들도 충격파와 대마력의 여운 때문에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탄 기습에 적 기사들은 허무하게 목을 내주었다.

“누가 감히 내 길을 막는가!”

책상물림인 게 분명한 대머리 부게른 남작까지도 날뛰면서 적 기사의 수급을 취할 정도니.

적은 그야말로 궤멸 직전이었다.

중앙의 최정예라는 검은튤립 기사단이 이렇게 허무하게 스러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만큼 참모 마법사의 배신은 치명적이었다.

연합군 병력이 적 기사들의 수급을 수확하는 것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씁쓸하기도 했다.

이번 전투는 내 힘으로 이긴 게 아니다.

아우럼 백작이 내 막사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에게 황금의 시대로 전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거래를 트지 않았더라면, 아우럼 백작이 반역자가 되면서까지 그 거래를 지키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올드완과 싸우다가 검은튤립 기사단에 포위당해 죽었겠지.

보병을 분쇄하고 마력병의 방어태세를 단숨에 뚫어낸 검은튤립 기사단의 저력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내가 적을 오판한 거지.

중앙의 힘은 내 예상보다 훨씬 막강했다. 이기긴 이겼지만, 이런 식으로 이겨서는 안 된다.

그런 반성을 하던 중이었다.

“아우럼 백작! 전하의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가!”

올드완의 노성이 전장을 울렸다. 내 근처를 어정이면서 걷던 파샨이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등골이 섬뜩해지는 호통이었다.

황금방패에 깔려 죽어줬으면 했는데, 왕국의 제일기사라는 자가 그렇게 쉽게 갈 리가 없나.

그가 살아있다면 아우럼 백작이 위험하다.

그는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고, 그를 올드완의 검으로부터 살려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선 나밖엔 없다.

나는 바로 말에 올랐다.

“가자.”

“위험합니다. 백작님은 여기...”

“안전한 곳에 앉아만 있으면 누가 나를 따르겠어. 오록스 단장도 함께 구해오지. 마이포흐 남작과 아마트리체 영애를 부탁해.”

타라는 묵묵히 내게 경례를 올렸다.

나는 안색이 여전히 새파란 마리안과 헛구역질 중인 아마트리체 영애에게 눈인사만 보내고, 파샨을 말 위로 끌어올려 내 앞에 앉혔다.

“가자! 오늘의 사냥감은 병무대신이다!”

내 뒤를 체닐린과 호위기사, 그리고 친위대원들이 뒤따랐다.

사방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검은튤립 기사단 일부는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접전이 벌어지면서 마력창보다는 냉병기가 서로 부딪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몰아라! 둘러싸서 공격해! 거리를 내주지 말란 말이야!”

손쉬운 공을 노리고 나온 연합군 귀족들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검은튤립 기사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뒤에서 배신당한 검은튤립 기사들은 잔뜩 분노하여 흉흉한 안광을 흩뿌리며 미칠 듯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수적 열세와 명령체계의 붕괴라는 불리함을 안고 싸우는 그들에게 승산이란 없었다.

그들은 정예기사답게 끝까지 싸우다가 결국 포위당해서 하나씩 마력창에 꿰뚫려 죽었다.

“지독한 놈! 저런 놈은 준귀족 예우를 해줄 필요도 없어! 목을 잘라!”

자기 기사들을 상당히 잃은 연합군 귀족 하나가 화를 내며 방방 날뛰었다. 종자들이 그의 눈치를 보면서 검은튤립 기사의 갑주를 홀라당 벗겨냈다.

그런데 그 기사는 옆머리가 깨져서 뇌수가 흐르는 상태에서도 주먹을 휘둘러 종자 둘을 때려눕혔다.

그러자 귀족은 화를 참지 못해 직접 달려와서는 그 기사의 배에 검을 열 번이나 찔러 넣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젊은 귀족 하나를 인질로 잡은 검은튤립 기사가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댄 채로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져서 그의 목을 실수로 긋고 말았다.

젊은 귀족을 모시던 호위기사들은 울분에 차 그를 검과 도끼로 때려 죽였다. 그러나 그도 혼자 가지 않고, 도끼를 낚아채 호위기사 하나를 저승 길동무로 데려갔다.

그런 비슷한 장면들을 한참 스쳐지나가고 나니, 이번에는 검은튤립 기사들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부터는 황금방패의 타격권 안에 들어간 곳이라 적 기사들은 이미 막심한 피해를 입은 후였다.

“검은튤립은 지지 않는다!팔마레스! 세이곤! 집결!”

한쪽 다리가 부러진 듯 절뚝거리는 기사가 깃발을 휘두르며 휘하 기사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만한 타격을 입었으면서도 검은튤립 기사단의 군기는 아직도 살아서 기사들을 휘어모으고 있었다. 부상병들이 어정거리면서 곳곳에서 그리로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중심으로 패잔병이 집결하기 전에 그에게 불길을 쏘아 날렸다.

“허어억!”

깃발을 휘두르던 기사는 화염에 휩싸여 버둥거리면서도 불붙은 깃발을 끝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불이 찢어낸 깃발 조각이 재로 변해 사방으로 날렸다.

기사는 깃발이 전부 타버려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뜨거운 연기를 입과 코와 눈에서 뿜어내며 쓰러져 죽었다.

그 모습을 본 검은튤립 기사들은 그제야 기가 죽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지독한 놈들이야.저 놈들에게 시간을 주면 다시 회복해서 우리에게 검을 겨눌텐데.”

“하지만 도련님. 기사보다 병무대신을 잡는 게 더 급합니다.”

“맞는 말이야. 저들은 연합군 귀족들에게 맡기고, 우린 서둘러 가자.”

나는 부상당한 기사들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달렸고, 이내 황금방패가 직접 타격한 거대한 크레이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금방패는 앞으로 살짝 튀어나온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그걸 직격으로 맞은 지면은 거대한 거인의 숟가락으로 파낸 것처럼 안으로 쑥 파여 있었다.

그 둘레만 말을 타고 둘러봐도 십 분은 걸릴 듯했다.

“도련님. 저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파샨은 잠시 말에서 내려 어둑어둑한 크레이터 안을 살피다가 물었다.

“올드완이 저 안에 있다면. 하지만 그가 저 자리에 가만히 있진 않았겠지.”

올드완의 노호성은 이따금씩 울리며 배신자인 아우럼 백작을 욕하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확인해보면 저 구덩이를 빠져나온 건 틀림없어 보였다.

배신자를 죽이기 위해 지옥에서 돌아온 건가. 무서운 노인네.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파샨에게 말했다.

“친위대원 중에서 몸이 날랜 자만 몇 뽑아서 구덩이 아래로 내려 보내. 여기는 그들에게 맡기고우리는 올드완을 사냥하러 가자.”

남녀혼성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이 곧 구덩이 안으로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그들은 오록스 단장을 비롯해 백여우 기사단의 생존자가 있다면 그들을 구출하고, 반대로 검은튤립 기사의 잔당이 있다면 그들을 척살할 것이다.

저런 거대한 크레이터 안에 누군가가 살아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는 다시 말머리를 돌려 올드완의 목소리를 따라 달렸다.

크레이터 주변에도 적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는데, 검은튤립 기사들은 갑주 째로 찌그러져 핏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멀리서 보면 하천 바닥에 말라붙은 게나 가재와 다를 게 없었다.

“허망하군. 저런 정예한 기사들이 마법 한 번에...”

체닐린이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인 그녀가 보기에 마법사가 기사들을 대량학살하는 광경은 영 끔찍해 보일지도.

반 년 전만해도 내가 그녀의 하늘기린 기사단을 반쯤 태워 죽이기도 했는데.

마법사는 단순히 마력이 많은 기사가 아니다. 마법사는 고귀한 자보다 고귀한 자이며, 세상의 근원을 이루는 일곱 가지 속성을 잇는 자이다.

무엇보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이뤄낼 수 있는 건 오직 마법사뿐이다.

하지만 내가 과연 이런 대마법을 펼칠 수 있을까?

레시아르 근방에서는 상대가 없는 나로서도, 아우럼 백작과 스스로를 비교해보면 초라해질 뿐이다.

내가 초전에서 데픈 후작의 기사들을 태워 죽일 수 있었던 건, 그들을 땔감이 가득한 숙영지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오시스의 귀띔대로 미리 기름과 목재, 짚단을 잔뜩 준비해뒀고, 겨우내 바싹 마른 공기가 화염을 키우는 것을 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럼 백작은 아무런 도움도 없이 데픈 후작의 기사보다 몇 배는 더 정예한 검은튤립 기사단을 황금방패로 짓눌러 죽였다.

그건 정말이지 마법사 중에서도 극소수의 마법사만이 가능한 위업이었다.

아우럼 백작가의 위명은 이번 일로 더욱 떨치게 되겠지. 중앙에서는 악명이 되겠지만.

그런데 그런 대마법을 직격당하면서도 살아남은 병무대신 올드완은, 정작 마법사가 아니다.

참 신기한 일이란 말이지.

나는 잡생각을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계속 말을 달렸다.

파샨은 내 어깨 안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병무대신 또는 아우럼 백작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파샨이 그들을 찾기보다 적들이 나를 먼저 찾았다.

“저기레시아르 백작이다!”

적 마력병들이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검은튤립 기사단을 구하기 위해 소대 단위로 급파된 자들이었다.

사향노루 기사단의 요격을 뚫고 온 만큼 실력은 만만치 않겠지. 하지만 굳이 상대해줄 이유가 없다.

“무시하고 지나간다. 속진.”

"속진하라!"

마력창이 휙휙 날아들었지만 말을 빠르게 달리면 어렵잖게 피해낼 수 있다.

경로를 예측해서 말 앞으로 날린 마력창은 체닐린이 장검으로 가볍게 쳐냈다. 그녀는 재주 좋게 좌우로 몸을 비틀며 검을 휘두르다가 내게 말했다.

“이쪽으로 갈수록 적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알아.”

“더 깊이 들어가는 건...”

“아우럼 백작은 반드시 구해야 해. 그런 대마법을 쓸 수 있는 자를 죽게 할 순 없지.”

게다가 아우럼 백작은 중앙을 배신함으로써 멸문의 위험을 지면서까지 나를 도왔다.

그런 그를 저버린다면 나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중앙과 전쟁까지 벌인 지금, 한 명이라도 많은 아군을 확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또 아우럼 백작가는 마법명가인만큼, 그들이 확정적으로 우군으로 돌아서면 그 휘하의 명가들도 내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겠지.

여하튼 중요한 건 아우럼 백작은 무조건 살려서 보내야 한다는 거다.

“저기! 저기입니다! 도련님!”

파샨은 갑자기 흥분해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머리 앞을 가리켰다.

과연. 시체가 어지러이 널린 전장 한 곳에 황금빛이 반짝거리며 빛나는 곳이 있었다. 그 광채는 멀리서도 확연히 보였다. 저런 빛을 내는 건 황금마법 밖에 없지.

“저기로 가자! 이럇!”

나는 급히 말을 채찍질해 달렸다. 적 마력병들이 안간힘을 쓰며 달려들었지만 말의 주력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마력병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말 궁둥짝을 향해 마력창을 날렸지만 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멍청이들!"

"도련님! 저쪽에서 또 마력병들이 옵니다!"

"지긋지긋하게 하는구먼."

나는 말을 달리며 마력병 소대를 향해 불길을 쏘았다. 그들은 나를 잡으러 다가오다가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기사도 어찌 못하는 마법사를 마력병으로 어쩌겠다는 거야.

"계속 전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말은 헉헉거리면서도 열심히 말발굽을 달렸다.

찌그러진 검은튤립 기사들의 시체, 배가 펑 터져서 뜨거운 장기를 밖으로 내놓은 흑마, 종종 뛰는 까마귀, 조심스레 추격해오는 마력병 소대, 부러진 깃대, 박살난 바위, 길을 잃은 아군 보병, 몰려든 파리떼.

그런 것들을 모두 지나치며 말 고삐를 쥐었다.

말을 후려치듯 해서 도착한 곳에는, 정말로 아우럼 백작이 있었다.

그리고 올드완 또한 광분한 표정으로 수염을 휘날리며 서있었고. 도대체 대마법이 직격한 현장에서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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