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넥타르를 찾아서
* * *
설산에서부터 따라온 건가? 무리는 이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커져있었다.
“뒤를 밟혔군.”
아바르가 분을 씹듯이 내뱉었다.
“우리를 따라왔다고? 도대체 왜?”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는 저들에게도 좋은 양식이니까.”
“허. 죽 쒀서 개 주게 생겼군.”
나는 괭이를 부여잡고 놈들을 노려보았다.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개체는 나와 아바르를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더 컸는데, 그 놈은 울음소리 한 번으로 부하 늑대들을 부렸다.
만만치 않은 놈일 게 분명했다.
“아바르. 싸우면 승산은 있겠소?”
“말하지 않았소. 이들은 달이 떠있는 한 불멸의 존재요.”
“저번에 마주쳤을 때처럼 쫓아내는 건?”
“글쎄. 이전에 놈들이 물러난 건 지금처럼 우리를 이용해서 넥타르를 찾기 위해서였겠지. 넥타르를 목전에 둔 지금, 놈들이 물러날 이유가 없소.”
아바르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늑대는 가까이 다가오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잇몸 위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이 놈들에게 피가 섞인 사이라는 걸 호소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이 놈들 지능은 어떻소?”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소.”
“성질은?”
“더럽지. 한 번 성질을 부리면 끝까지 쫓아오니까. 불멸의 존재라는 건 원한을 갚을 시간을 무한하게 가진다는 거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화리메를 왼쪽 어깨에 들쳐 멘 후, 오른쪽 손에 얼음조각을 쥐었다.
“아바르. 화리메가 벼랑에서 만들었던 황금색 방패 기억하시오? 그걸 꺼낼 테니, 신호하면 바로 올라타시오.”
“어떻게 하려는 거요?”
“설명할 시간 없소.”
나는 아바르에게 고갯짓을 한 후에 늑대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놈들은 이제 한 번의 도약으로 우리들을 찢어발길 수 있을 정도의 범위 내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화리메의 엉덩이를 두들긴 다음, 우두머리 늑대에게 얼음조각을 내던졌다.
“카아악!”
코의 정중앙에 얼음조각을 맞은 우두머리는 주둥이를 흔들며 성질을 부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까지 쫓아오진 않겠지.
나는 놈에게 중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니 애미, 애비는 친남매끼리 흘레붙은 개잡놈들이란다! 이 천벌 받은 개새끼들아!”
“아우우우우!”
우두머리 늑대는 분개해서 목이 푸르르 떨릴 정도로 크게 하울링을 했다.
아바르도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화리메는 주저없이 바로 황금방패를 띄웠고, 우리는 그것을 타고 휙 날아올랐다.
“캉!”
늑대 몇 놈이 뛰어오르다가 서로 부딪혀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우두머리 늑대가 세게 몇 차례 짖더니, 놈들은 그를 필두로 하여 질서정연하게 우리를 추격해오기 시작했다.
“화리메, 고도 낮춰. 이 놈들이 쫓아올 수 있을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날아.”
“꼭 그렇게 해야 돼?”
“안 그러면 이 놈들이 포기하고 창고로 돌아갈 수도 있잖아.”
“그, 그건 안 되지!”
화리메는 늑대가 뛰어오르면 발톱을 걸칠 수 있을 정도로 높이로 황금방패를 띄웠다.
우두머리 늑대는 빙판길을 뛰어오면서도 창고탑을 흘끗 돌아보았다. 성가신 추격은 포기하고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포식할지 고민하는 거겠지.
다시 한 번 땔감을 넣어줄 때다.
나는 뒤로 고개를 돌려 양 손으로 중지를 치켜세웠다.
“이 똥개새끼야! 니 할애비는 원숭이야! 원숭이 좆으로 니 할머니를 존나게 따먹었단다! 이 족보도 없는 개잡놈의 새끼들아!”
“아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
늑대들은 아우성치며 빙판길을 부술 듯이 성난 기세로 달려왔다.
그러자 우두머리 늑대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계속 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단 작전은 궤도 위에 올라왔다. 하지만 늑대는 예상 외로 빙판길을 미끄러지지도 않고 쉽게 달려왔다.
우리가 황금방패를 띄워서 날지 않았더라면 일 분도 못 가서 잡혀서 사지가 찢겼겠지.
놈들은 거칠게 울부짖으면서 피라미드의 경사로를 올랐다.
“아우우우우!”
이제는 유인이고 뭐고 따질 계제가 아니다.
늑대 한 놈이 황금방패 위로 훌쩍 뛰어오르는 바람에 방패가 삐그덕 기울었다.
“꺼져!”
나는 주먹을 휘둘러 놈의 코를 가격했다.
늑대는 깨갱 울며 떨어져서는 경사로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하지만 그걸 본 다른 늑대들은 겁에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그렇잖아도 빠른 놈들의 발이 더 빨라졌다.
“이러다 잡히겠어! 빨리!”
“이게 최대 속도야!”
“이거 밖에 못한다고? 아우럼 백작가의 위명이 운다!”
“속성을 응집, 합성, 부양시켜서 세 명이나 옮기는 게 쉬운 줄 알아?”
화리메는 벌컥 화를 내면서도 황금방패를 더 빠르게 몰았다.
간신히 거리를 벌렸나 싶은데, 이번에는 우두머리 늑대가 작은 늑대를 물더니, 우리 쪽으로 휙 던졌다.
“저 미친 놈!”
작은 늑대는 날아오면서도 이를 딱딱 부딪쳤다.
그게 직격하지는 않았지만 진로를 급히 바꾸느라 속도가 느려졌다. 간신히 벌린 거리가 그 사이 다시 좁혀졌다.
“컹! 컹컹컹!”
다리 빠른 늑대 세 놈이 동시에 내게로 뛰어들었다.
“씨발!”
중간에 있는 놈의 배를 걷어차고, 왼쪽으로 날아든 놈의 턱 밑에 주먹을 갈겨주었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들어온 놈은...
“흡!”
아바르가 완벽한 정권지르기 자세로 그 놈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늑대는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자세 한 번 좋군. 나중에 좀 가르쳐 주시오.”
“농담은 됐소. 도대체 언제까지 도망칠 생각이오?”
“이제 곧 끝이오.”
우리는 어느새 벼랑 끝까지 올라와있었다.
화리메는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눈다리 바로 위에 황금방패를 띄웠다.
“깊이 끌어들여야 해.”
“알아!”
늑대 무리는 우리를 따라 거침없이 눈다리 위를 달려왔다.
“이제 어떡해?”
“더 가.”
나는 눈다리 아래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깊은 무저갱.
저기 떨어지면 불멸의 존재라도 무사하지는 않겠지.
설령 무사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놈들이 무저갱을 기어오르는 동안 우리는 넥타르를 챙겨서 원래 있던 시간대로 돌아갈 테니까.
“언제까지 가야 하냐고!”
화리메가 헥헥거리면서 소리쳤다. 마력이 다했는지 황금방패의 빛도 옅어지고 있다.
마침 반대편 벼랑이 다리를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뛰어!”
나는 화리메를 들쳐 업었고, 아바르가 내 뒤를 따라 풀쩍 뛰었다.
이제 숨 고를 시간도 없다. 화리메를 대충 던져두고, 뒤를 돌아 눈다리 위에 빼곡하게 들어찬 늑대들을 살펴본다.
놈들은 성난 기세로 눈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성질 급한 놈들은 다른 늑대의 등을 밟고 그 위를 내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저 많은 늑대 무리의 하중을 눈다리가 견딜 수 있을 리가.
눈치 빠른 우두머리 늑대는 부하들을 마구 밀쳐대며 앞으로 나섰다.
두목의 덩치에 밀린 작은 늑대 몇몇이 애달픈 비명소리를 내며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잔인무도한 놈 같으니.
녀석이 이쪽 벼랑에 도달하기 전에 끝을 내야한다.
나는 아바르에게서 괭이를 받아 꽉 쥐었다.
노리는 곳은 눈다리가 벼랑 끝에 걸친 부분.
머리 위로 괭이를 치켜들었다가, 있는 힘껏 내리찍는다.
콱.
괭이는 얼음 위로 깊숙이 들어박히기는 했지만 눈다리가 부서지지는 않았다. 거대한 회오리 바람을 견뎌낸 만큼 내구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걸 잡고 빼내려니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도통 빠지지도 않았다.
눈다리 맨 앞에서 우두머리 늑대가 필사적으로 달려왔다.
“비켜보시오.”
아바르가 급히 삽을 들었다.
그는 나와 똑같은 자세로 삽을 위로 치켜들었다가 괭이날 뒤편을 강하게 때렸다.
꽝!
괭이가 눈다리에 깊숙이 박히며 굵은 실선을 만들어냈다.
날이 박힌 얼음은 날카로운 단면을 드러내며 아래로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콰지지직!
한계를 견디지 못한 눈다리가 결국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아우우우우!”
눈다리 위에 올라간 늑대들은 난리가 났다.
놈들은 앞뒤로 정신없이 날뛰다가 서로 부딪혀서 벼랑 밑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
아바르는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곳의 주민인 아바르로서는 늑대와 나름대로 피를 나눈 사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생각이다.
“제 놈들이 먼저 공격한 건데 우리가 신경써줄 이유가 무에 있소? 게다가 놈들은 어차피 안 죽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긴 하오만...”
“저 놈들이 웃어른을 모르고 덤벼드니 아픈 맛 좀 보여준 것이라 생각하시오.”
따지고 보면 내가 저 놈들의 종조부 정도 된단 말이야.
그런데 저것들이 조상도 몰라보고 감히 나를 핍박하려 들어.
별 생각 없이 한 말에 아바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웃어른?”
“아, 저... 그러니까, 오누이가 해가 뜬 동안 낳은 것이 사람이고, 달이 뜬 동안 낳은 것이 늑대라면서? 그렇다면 사람이 형이고 늑대가 동생이지. 그런데 동생 놈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니, 형 된 도리로서 동생을 단단히 교육시켜주는 것도 윗사람으로서 해줘야 할 일이라 뭐 그런 말이오.”
좀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아바르는 내 말이 퍽 재밌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 와중에도 늑대들은 떨어져내리는 얼음조각 위로 발톱을 벅벅 긁어대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깨갱! 깽!”
하지만 그런 헛된 몸부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늑대들은 피라미드의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며 애달픈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캬우우우우! 캬우우!”
우두머리 늑대도 허공에서 몇 번이나 도움닫기를 하며 날뛰었지만, 끝내 이쪽 벼랑에 닿지 못하고 구슬피 울며 무저갱으로 떨어졌다.
애처로운 메아리 소리가 몇 번이고 울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잠시 그 자리에 머무르며 벼랑 밑을 내려다보았지만, 까마득한 어둠이 모든 것을 삼켜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됐군. 그럼 돌아갑시다.”
나와 화리메는 아랑곳하지 않고 석탑이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아바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우리 뒤를 따라왔다.
이제는 고생한 결실을 거둘 때다.
#
황금의 도시. 석탑.
설산 늑대에게 쫓기기 전에 이미 발굴 작업을 거의 다 마쳤던 터라 우리는 바로 석탑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을 메운 눈을 손으로 푹푹 퍼내자, 그 아래 묻혀 있던 황금사과와 호리병이 탐스런 자태를 드러냈다.
“이, 이게 다 얼마야?”
화리메는 히죽거리면서 정신없이 눈덩이를 파헤쳤다.
손이 벌겋게 부어도 그저 좋은 모양이었다.
아우럼 가문의 황금에 대한 집착은 이미 알고 있으니 내버려두기로 하고, 아바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배분은 어떻게 하시겠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셋이 나눠도 평생 다 못 쓸 양 아니오? 각자 원하는 만큼 챙기는 걸로 합시다.”
“그럽시다.”
나는 아바르가 벽 쪽으로 가서 눈을 파헤치는 걸 보고, 그 반대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눈 아래 숨겨진 보물들은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댔다.
나는 얼른 눈을 흩어버리고 암브로시아를 하나 집어서 입에 가져다댔다.
황금사과의 상쾌한 향기가 벌써 침샘을 자극했다.
그건 신기하게 눈 속에서도 얼지 않고 딱 좋을 정도로 시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각.
암브로시아를 씹어 넘기는 순간, 단전 근처에 묵직하게 남아있던 독기가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걸 전부 해치우고 이번에는 넥타르를 호리병 째로 들어 마시자, 아바르가 주었던 희석액과는 차원이 다른 온기가 몸 안을 감돌았다.
“흐…….”
흩어졌던 마력이 하나로 모이는 게 느껴진다.
나는 조금씩 마력의 흐름을 조절하며 그것이 몸 전체를 일주하게 했다.
단전에서부터 말단의 발끝과 손끝까지, 그리고 심장으로 돌아왔다가 두뇌까지로.
온기는 열기로 바뀌고 이내 그것은 화기(火?)로 변화한다.
팟.
검지 위에 작은 불꽃이 피어오른다.
불꽃은 붉은색에서 노란색, 흰색, 이내는 푸른색으로 발한다.
“완벽해.”
독기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력을 운용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보다 마력 운용이 원활해진 듯한 기분까지 든다.
나는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하나씩 더 집어서 먹고 마셨다.
확실히 마력량이 늘고, 그 흐름도 매끄럽게 바뀌고 있다.
“화리메. 이거...”
“응. 마력을 늘리는 효과가 있네. 으흐흐흐흐.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그녀는 이미 양손에 암브로시아를 하나씩 들고 와구와구 씹어대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지는 마.”
뭐든 과유불급이다.
마력탈진도 문제지만 마력폭주는 더 큰 문제다.
“흥, 내가 아우럼 백작가의 마법사란 걸 깜빡한 모양인데.”
화리메는 내 말에 코웃음을 쳤다.
하긴. 마법명가의 마법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천천히 마력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하나씩 섭취하며 불길을 운용한 결과, 암브로시아 아홉 개, 넥타르는 열두 개까지 먹고 마신 지점에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과 비교하자면 마력량은 대략 삼 할 정도 늘어났다. 마력의 흐름도 원활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력은 그보다 더 커졌겠지.
“으흐흐흐.”
이 정도면 고생한 보람이 있다.
나머지는...여기서 더 먹는대도 획기적으로 마력량이 늘어날 것 같진 않으니, 일단은 챙겨두고 나중에 먹든지 누굴 주든지 하면 되겠지.
이데트 누님에게도 줘야하고 말이야.
나는 아바르에게 자루를 빌려서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쓸어 담았다.
“과유불급이라며?”
화리메가 빈 호리병을 휙 던지면서 놀리듯 물었다.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있을 때 쟁여둬야지. 처음에 왔을 때는 황금의 시대, 이번에 왔을 때는 백은의 시대였는데, 다음에 왔을 때는 청동의 시대일 수도 있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어, 잠깐. 잠깐만?”
잠시 생각하던 화리메가 갑자기 사색이 되어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왜 그래?”
“우리... 어떻게 돌아가지?”
“그거야 저번에 했던 것처럼 황금의 인간의 피를... 어어어?”
저번에는 아르토의 처녀를 뚫으면서 마력을 불어넣어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 백은의 시대에는 황금의 인간이 없다. 아바르는 그들이 태양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하이브의 마석, 더 챙겨온 거 없어?”
“딱 전이할 때 쓸 것만 챙겼지. 이렇게 왕복해야 할지 누가 알았냐구.”
“그럼... 하이브 마석의 원형이 된 호박(??)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 있을 줄 알고?”
“아……. 미치겠네.”
화리메와 머리를 맞대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아바르가 슥 다가왔다.
“챙길 만큼 챙겼소?”
“더 들고 가고 싶긴 한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음?”
아바르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씩 웃었다.
“뭐가 문제요? 뭐든 말씀만 하시오. 당신들이 도와준 만큼은 나도 도와야겠지.”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마운 일인데. 여하튼 혹시 황금의... 아니, 조화로운 시대의 인간들을 찾을 방법이 없겠소?”
“조화로운 시대의 인간... 을 찾는다고? 어째서?”
“이유는 묻지 말고. 아, 꼭 그 시대의 인간일 필요는 없소. 그들의 혈액의 일부라도 괜찮은데.”
"조화로운 시대의 인간, 혹은 그의 혈액이라..."
내 말을 읊조리는 아바르의 안광이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