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88화 (88/166)

〈 88화 〉 폰세르크 다키아노스의 좌절과 전환

* * *

슈베린 궁성은 왕도 북부의 산맥을 끼고 건축되었다.

거기에 외성을 세 겹으로 둘러싸고 성탑과 해자, 관문을 과도하리만치 우겨넣은 탓에 방어 면에서는 완벽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주하기에는 최악이라 불리는 성이었다.

다키아 왕국으로 시집 온 타국의 왕녀들은 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궁성에서 한스럽게 말라죽어갔다.

하지만 다키아의 역대 왕들은 궁성을 아름답게 꾸밀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성벽을 더 두껍게 불리고 성탑을 더 높이 쌓았다.

그것은 다키아 왕족의 음습하면서도 보신적인 성향에 기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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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벽실.

시녀가 촛불을 켜놓고 나갔지만 한 줌도 안 되는 광원은 오히려 어둠을 짙게 느끼게 했다.

벽실 정중앙에 놓인 긴 직사각형 탁자의 끝에는 다키아 왕국의 군주인 폰세르크 국왕이 외로이 앉아 있다.

그는 아직 사십 대로 꽤 정정할 나이 대였지만, 누가 봐도 지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술 양 옆으로 축 쳐진 팔자주름이 그를 더 늙어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한동안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벽실에 초대받은 인사들은 국왕의 심기를 추측하며 그저 침묵을 견뎌내야 했다.

얼마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폰세르크 국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가의 조언자들이여. 발언을 허한다.”

“…….”

탁자의 반대편 끝에 몰려 앉은 대신들이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근래 들어오는 소식 중 희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특히나 바로 오늘 들어온 소식은 비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걸 입에 담는 자는 죄가 없더라도 국왕의 불흥을 사게 되리라.

대신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다가, 결국 서열에서 밀린 법무대신이 일어섰다.

“전하. 병무대신이 전령을 보내 전장의 소식을 알렸습니다.”

“올드완이? 그는 언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 어서 그 내용을 고하도록 하라.”

법무대신은 무엇부터 이를까 고민하다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병무대신이 이르길, 왕국군이 패퇴하고 페린 자작령까지 물러나고 있다 합니다.”

폰세르크 국왕은 병무대신이 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그래서 비보를 듣고 그가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보다도 의아함이었다.

“어찌 그런 일이?”

패전의 이유야 다양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가장 쉬웠다.

법무대신에게는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 탓할 대상이라는 게 바로 정해져 있었다.

“아우럼 백작이 결정적인 순간에 왕국군을 배신하고 대마법을 실현했다 합니다.”

“아우럼 백작이?”

국왕은 무언가 잘못 전달 된 게 아닌지 두 번, 세 번 물었지만 법무대신은 쩔쩔대며 자신은 병무대신이 전한 그대로 전했다고 할 뿐이었다.

국왕의 폭삭 늙은 얼굴이 드디어 분노로 물들었다.

“도대체 왜! 그는 지난 십 년간 왕가의 가장 충실한 이해자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그가 갑자기 배신을 한다고? 왜? 그대들 중 아무도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정무대신! 그대는 도대체 뭘 한 건가?”

“황공하오나 전하, 아우럼 백작가와 일을 진행한 자는 소신이 아니라 내무대신이었사옵니다.”

“그 바리보예즈는 대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냔 말이야! 그대들은 그것 또한 아는 바가 없다고 하겠지!”

국왕이 역정을 내며 테이블을 두들기자, 대신들은 목을 옷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그들은 다키아 왕국의 권력자였지만, 자신의 권력이 누구로부터 기인함을 모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폰세르크 국왕 또한 잘 알았기에, 그는 간신히 분을 삭이고 물었다.

“병무대신은 무사하다던가?”

“부상을 입기는 하였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허나...”

“허나, 뭔가?”

“카산드라 공주께서 레시아르 백작에게 인질로 잡히셨다고...”

국왕은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하고 제게 주어진 권한 이상을 행사하려는 드는 망아지 같은 딸이었다.

그래서 다른 자식들에 비해 아끼는 마음이 크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자신의 자식이 반란군에게 잡혔다는데 충격이 없을 리가 없었다.

“올드완이 늙기는 늙은 모양이다. 어찌 싸우면 내 딸을 반군에게 내줄 정도로 밀렸단 말이냐.”

“믿고 있던 아우럼 백작이 배신하였으니, 군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폰세르크 국왕은 이제는 화를 낼 힘도 없어서 테이블에 간신히 팔을 올려두었다.

“그대들이 강독을 내달라고 하여 내주었고, 정오의 그림자 또한 내달라고 해서 내주었다. 그런데도 올드완이 밀렸다는 것은, 레시아르 백작이 그것들에 대한 대책 또한 마련했다는 뜻 아니냐? 십 년의 대계가 다 무용했구나.”

아우럼 백작가와 협업한 세월만 따져서 십 년이었다.

지방 영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바친 시간은 그보다 배는 길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왕권의 취약함을 실감했다. 갈가리 분열된 권력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인스부르크 제국의 부상을 바라보며 전제왕권의 집중만이 다키아 왕국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직 그것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모두 바쳤다. 그 탓에 이렇게 늙은 얼굴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빨리 늙어버린 국왕이 울적하게 자신의 얼굴을 쓸자, 대신들은 황공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고작 한 번의 패전일 뿐입니다. 게다가 반란군도 성히 물러나지는 않았을 테니, 다시 군을 꾸려 내보낸다면...”

“고작 한 번의 패전이라고? 올드완이 이끄는 검은튤립 기사단을 내보냈다. 내가 가진 최고로 정예한 이들이었지. 그런 그들이 고작 변방의 패거리에게 패전했다는데, 이게 고작 한 번의 패전으로 보이나? 이제 이 소식은 다키아 왕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불씨를 키울 것이다. 그리 되면 왕가와 중앙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겠지!”

국왕은 길게 말하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때마침 벽실 안으로 츠빙거와 루코스, 두 왕자가 들어왔다.

“부왕 전하.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옥체를 상하실까 두렵습니다.”

장남인 츠빙거 왕자는 지나치리만치 공손히 인사하고는 부왕의 곁으로 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만이 이 늙은 왕을 신경 쓰는구나.”

“부왕 전하.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서운합니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루코스 왕자에게 국왕은 눈을 흘겼다.

“너는 네 형의 진중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형제가 똑같이 행동하면 아버지께서 저와 형을 어찌 구분하시려 그러십니까?”

계승권에 관한 날 선 농담이었지만 폰세르크 국왕은 차남의 발랄한 재능도 아꼈다.

자신이 젊음을 다 바쳐 영주들과 싸우고 헐뜯고 속이고 한 것이 결국은 이들을 위한 것이었으니.

너무 조급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은 다 못해도, 자신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 혹은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라면 전제왕권을 바로 세울 수도 있겠지.

그는 표정을 좀 풀고, 대신들에게 차를 돌렸다.

대신들은 간신히 한숨을 돌리고는 두 왕자에게 눈인사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찻잔을 서너 번 들 정도 시간의 흐른 뒤.

국왕은 대신들의 의견을 청했다.

비록 패전의 책임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능력은 지난 세월로써 인정된 것이었으니.

정무대신이 가장 먼저 말했다.

“어떻게든 군을 재편해서 서북부를 제압해야 합니다. 무너진 중앙의 위신을 다시 세울 방법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외무대신은 고개를 저었다.

“분란이 커지면 제국에서 개입할 것입니다. 아인스부르크 2세는 늘 왕국에 영향력을 투사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흠 잡힐 명분을 내어주어선 안 됩니다. 지금은 영주들에게 적당히 양보하시고 때를 노리셔야 합니다.”

재무대신이 외무대신의 말에 찬동했다.

“지난 십 년간의 마법실험으로 인해 전하께서는 엄청난 채무를 부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전쟁을 벌이시고, 확전까지 하신다니요. 영주들이 이번 가을 이후 납세를 거부한다면 더 힘들어집니다.”

법무대신은 원론적인 이야기로 중립을 표했다.

“물론 전하께서는 이번 전쟁을 중지할 권리와 계속할 권리를 모두 가지십니다.”

실종된 내무대신의 대리를 맡은 내무차관은 눈치를 보다가 급히 말했다.

“황공하오나 변경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혹여 그들이 서북부 영주들과 손을 잡기라도 하면 반란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지 않을까 우려되옵니다.”

각 대신들의 의견을 들은 국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정무대신 뿐이군. 나로서는 반기를 든 불충한 것들과 화의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치욕스럽기 그지없으나... 국무를 두루 살펴야 하는 군주로서는 어쩔 수 없겠구나.”

“전하. 레시아르 백작이 문제입니다.”

국왕이 화의로 뜻을 정할 듯하자, 정무대신이 급히 고했다.

“케인스 말인가?”

“전하. 지난 가을에 케인스 레시아르의 아들인 바이스 레시아르가 백작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옳아. 그랬다. 허나 그는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풋내기가 아니던가?”

“그 풋내기가 네스트의 비밀을 파헤치고, 소란을 키우더니, 이제는 교활한 함정으로 병무대신을 상하게 하고 카산드라 공주 전하까지 인질로 잡았습니다.”

폰세르크 국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웅이란 말이군. 그런 자들이 있지. 그런 자가 하필이면 내 적으로 나타났단 말인가.”

“소신이 말하자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어렵다면, 마침 그 자가 백작위를 계승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점을 노려보는 것은 어떻사옵니까?”

“법무대신. 그대가 생각하기에는 정무대신의 말이 일리가 있는가?”

법무대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승법은 성문법과 관습법이 치열하게 다투는 영역입니다. 확립된 준거법이 없으니 문제를 삼으려면 얼마든지 삼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허면 레시아르 백작의 계승 과정에 문제 삼을 것이 있다고?”

“소신이 알기로는, 아들인 바이스 레시아르가 아비인 케인스 레시아르로부터 백작위를 강취하다시피 하여 계승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찌 문제가 되지 않았는가?”

“과정이야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케인스 레시아르가 직접 인장반지를 아들에게 수여했으니까요. 허나 문제 삼자면 얼마든지 문제를 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폰세르크 국왕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그제야 폈다.

“일단은 케인스에게 연락하도록 하라. 내가 그를 아는데, 물러났다고 하여 가만히 뒷방에서 늙어갈 작자가 아니야. 그리고 현 레시아르 백작과 계승권을 다툴만한 형제남매가 또 누가 있는가?”

“케인스 레시아르의 장녀 이데트 레시아르는 내무대신이 네스트의 마석과 교환으로 레시아르 백작에게 보내었고, 차녀와 삼녀는 아우럼 백작가에 실험체로...”

“아쉽구나. 아우럼 백작이 배신했으니 이제 와 그들을 어찌할 수는 없겠지. 서자나 방계는?”

“레시아르 백작 가문은 손이 귀한 편이라 계승권을 다툴 만한 방계 혈족은 없습니다. 그래도 국립 아카데미에 케인스 레시아르의 서자가 하나 재학 중이옵니다.”

“나이는?”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나, 열다섯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를 이용할 수 있겠는가?”

“패륜은 상속결격사유이니, 바이스 레시아르가 케인스 레시아르에게 패륜하였다는 증거를 찾아낸다면 계승권을 주장할 만 합니다.”

“허면 법무대신이 이 일을 추진하도록 하라.”

법무대신은 레시아르 백작의 계승권을 박탈하지는 못하더라도 잡음을 일으켜 분란을 일으킬 수는 있을 것이라고 고했다.

잘하면 서북연합군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을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가문이 불안정한 동안은 레시아르 백작이 다시 군사를 일으키기 힘들 것이라고.

"허면 그리하여 레시아르 백작을 묶어두고 변경백과 협상을 해야겠구나. 언제쯤 왕이 영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무를 볼 수 있게 될꼬?"

“부왕 전하. 소자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츠빙거 왕자가 끼어들었다.

“허하마.”

“레시아르 백작이 영웅이라면, 어찌 그를 품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그 자의 누이들을 빼앗고 강역을 침범했다. 반대로 그 자는 내 기사를 죽이고 딸을 포로로 삼았지. 나와 그 자가 어떻게 서로를 용인할 수 있겠느냐?”

“부왕 전하.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가 적이라면 더더욱 가까이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부왕 전하의 자비로움에 취한 바로 그 순간.”

“껴안은 두 팔로 졸라 척추를 부러뜨려야겠지요.”

장남 츠빙거 왕자의 뒷말을 차남 루코스 왕자가 그대로 받았다.

폰세르크 국왕은 두 왕자의 우애에 흡족해하면서도 그 방법을 물었다.

“그가 내게 이미 적의를 품었을 텐데 어찌 품으란 말이냐?”

“소자의 누이동생이 마침 그의 영내에 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카산드라와 레시아르 백작을 혼약으로 맺으십시오.”

그 말에 폰세르크 국왕은 물론이고 모든 대신들까지 입을 쩍 벌렸다.

놀라지 않은 것은 그의 동생인 루코스 왕자뿐이었다.

“부왕 전하. 형님의 말이 옳습니다. 그가 전장에서 병무대신을 이겼다한들 가문에서 아버지와 이복동생과 아내를 모두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가 진정 영웅이라면, 그를 상대하는 방법은 창칼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 속에 빠뜨려 넝쿨로 얽매는 것입니다.”

국왕은 고개를 흔들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고 하여 내 딸을 인질공주로 보내자는 것이냐?”

“카산드라는 이미 레시아르 백작의 포로입니다. 그 아이를 몸값을 내고 사오는 것은 오히려 이번 패전을 인정하는 행위가 되겠지요.”

“허면... 혼담으로써 패전을 덮자고?”

“거기에 더해, 혼담 소식이 전해지면 다른 지역의 영주들은 레시아르 백작의 진의를 의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국왕은 가만히 생각해보고는 그가 사랑하는 아들의 말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각지의 영주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군사를 일으킨 건 레시아르 백작과 서북방 귀족들뿐이다.

그런데 그에게 공주와의 혼담이 들어간다면, 다른 지역의 영주들은 슬그머니 쥔 칼을 내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허나 카산드라를 그리 보내도 될지는 모르겠구나.”

“누이가 그간 얼마나 부왕 전하의 속을 썩였습니까? 사실 이번에 레시아르 백작에게 포로가 된 것도 그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다가 그리 된 게 아니겠습니까? 마침 자신이 쓰일 곳이 있으니, 그렇게라도 왕족의 의무를 다해야지요.”

츠빙거 왕자는 냉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카산드라 공주의 아버지인 폰세르크 국왕조차도 담담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기는. 그렇잖아도 밖으로 나도는 아이라 혼처가 막막하던 차였다. 레시아르 백작 정도라면 귀천상혼의 전례에도 문제될 것은 없고, 나쁠 건 없겠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레시아르 백작을 정략으로 묶어둘 수 있다면 정략으로 묶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전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정무대신이 대표로 답했다.

“허면 법무대신은 계승권에 관한 일을 맡으라. 카산드라의 혼담에 관한 일은 정무대신에게 일임하겠다. 그대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레시아르 백작이 자신의 강역에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의 가족을 통해 그를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레시아르 백작에 대한 대책은 그렇게 정해졌다.

하지만 골칫거리인 레시아르 백작의 대책조차 다키아 왕국이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일 중 하나에 불과했다.

폰세르크 국왕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음은 배신한 아우럼 백작 가문에 대한 처리와, 강독의 입수에 관한 사항을...”

벽실에는 볕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벽실 안에서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도록 음모를 거듭 짜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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