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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90화 (90/166)

〈 90화 〉 휴가의 시작

* * *

이제 완연히 봄이라고 할 수 있는 날씨다. 낚싯배 위에 드러누워 있으면 슬그머니 땀이 맺힐 정도다.

페릴은 호호 웃으며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고급 창부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건 어지간해서는 힘든 일이지만, 내가 물어보니 마담은 두말하지 않고 내주었다.

“으우으…….”

하지만 같이 낚싯배에 오른 파샨은 그녀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물론 페릴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내 머리를 무릎에 얹은 채 양산을 기울여 햇빛을 가려주었다.

“귀하신 분.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가헤시아스에서 제일 맛있는 해산물 요릿집을 안답니다?”

“그거 괜찮은데. 하지만 내가 갈 곳보다 더 요리를 잘하진 않을걸.”

“헤시아스에 아는 식당이 있으신가요?”

“식당은 아니지만 요리가 나오는 곳이지.”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페릴의 무릎에 턱을 얹었다.

낚싯배는 부두에서 멀리 나오지 않았기에 항구도시의 전경이 그대로 보였다.

수천에 이르는 연합군 기사와 병사들이 헤시아스를 나다니며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여러 영지를 돌아다니며 고향이 가까운 이들은 차례대로 보내주었지만, 정예병과 핵심전력은 그대로 모아쥐고 놓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마리안과 아마트리체의 불만이 보통이 아니긴 하지만, 나는 나대로 계획이 있어서 말이지.

그래도 여태껏 약탈 아닌 약탈을 눈 감아준 덕분에 병사들의 사기는 드높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오른편으로는 헤시아스 맞은편의 작은 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작해야 백 가구 정도가 살 법한 작은 섬이지만, 섬의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저택이 한 채 세워져 있다.

어느 쪽을 먼저 쑤셔볼까 고민이 되긴 하지만, 더 만만한 쪽이 낫겠지. 슬슬 애가 타기도 탈 테고.

“베티아. 있어?”

그물망과 나무통 사이에서 스르륵 여성의 형체가 드러났다.

“백작... 님...”

“그 놈 지금 집에 있어?”

“예...”

“도련님. 제가 가서 끌고 나올까요?”

“됐어. 일단은, 점심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즐기자고.”

나는 베티아와 페릴, 파샨을 끌어당겼다.

곧 낚싯배 위에서 교성이 어우러졌다.

#

나는 개운한 기분으로 낚싯배에서 내렸다.

선착장에 발을 딛자마자 주변에 어슬렁거리던 병사들이 황급히 뛰어와 내게 경례하고는 뒤로 붙었다.

친위대와 호위기사단을 부르러 뛰어가는 놈도 몇 보였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부두가 근처의 술집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행진에 병사들이 하나둘 씩 붙으면서 행렬은 금세 커졌다.

“잭, 잭! 이리 와, 이 새끼야!”

누군가가 속삭이듯 소리쳤지만 멀찍이서 여자 하나를 질분거리던 병사는 내가 근처에 와서야 간신히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넙죽 엎드렸다.

“배, 백작님!”

“이 친구 왜 이래? 뭐 죽을 잘못이라도 했나?”

“그, 그게...”

“그건 아니잖아? 하지만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헤시아스는 내 도시니까 말이야.”

내 도시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며, 병사가 추행하던 여자의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조금 그을린 평범한 얼굴의 여자였다. 여러 피가 섞였는지 드러난 손등에도 억센 털이 수북하다. 그냥 딱 병사가 질분거릴 정도다.

여자의 엉덩이를 두들겨 쫓아내고, 계속 걷는다.

“백작님.”

말을 달려온 적여우 기사단원들이 저 앞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뛰어온다.

제트리 단장은 숨을 고르고 총원보고까지 했다.

“뭐 그럴 것까지 있나? 다들 휴가를 즐기면 되는데.”

“하하... 예...”

“어쨌거나 왔으니 따라오도록 해. 내가 아주 맛있는 점심을 먹게 해주지.”

“감사합니다. 백작님. 일단은 말에 오르시지요.”

나는 그가 잡아준 말에 휙 올라탔다.

그 뒤로도 친위대와 호위기사단이 차례대로 붙었다.

하지만 행렬은 머잖아 잠시 멈추어야 했다.

야트막한 언덕의 초입에서 곱상한 얼굴의 도련님이 전신 갑주를 두르고 서서 내 앞을 막아 섰기 때문이다.

그는 검을 뽑아들지는 않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았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검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애민기사 헬무트 경. 중앙에 맞서 나와 검을 함께 휘두른 전우여.”

내가 먼저 손을 들어 인사하자, 헬무트의 낯빛이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그는 곧 입술을 깨물고는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건 너무하신 겁니다, 레시아르 백작 각하!”

“너무하다고? 뭐가?”

“지금껏 여러 영지를 지나치며 병사들이 저지른 횡포를 참았습니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까지 군화로 더럽히실 필요는, 이제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충분히 보상받았습니다! 이제는 민중의 삶을 보호해주셔야 할 땝니다!”

그의 말에 파샨과 친위대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검집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헬무트는 이미 목이라도 내놓을 기세였다.

여기서 헬무트를 죽이는 건 쉽지만, 그건 그를 순교자로 만들어줄 뿐이다.

게다가 나는 헬무트가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그는 개인의 용력과 용병술 모두 훌륭했으니까.

인재가 부족한 내게 그는 꽤나 쓸 만한 기사가 될 수도 있다. 오록스 단장의 빈 자리를 메꾸기에는 아직 부족하겠지만.

나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긴장하며 마른 침을 삼키는 게 보인다.

내가 그에게 손을 뻗었을 때,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뽑는 것을 참아냈다.

겁에 질려 검을 뽑았다면 죽일 수밖에 없었을 텐데. 역시 괜찮은 녀석이다.

“그대는 용맹하군.”

“... 레시아르 백작 각하.”

“그대의 용기에 찬사를 표하며, 더 이상 항구도시 헤시아스에 대한 폭력은 없을 것을 약속한다.”

이렇게 쉽게 목적을 달성할지는 몰랐는지, 헬무트는 어정쩡하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대의 소원이 이뤄졌다는 뜻이지."

“허나 지금도 레시아르 백작 각하의 병사들은...”

“지금도? 이보게.지금 내 병사들이 도시를 약탈하고 있나?”

“아... 닙니다.”

“그럼 뭘 하고 있나?”

“걷고... 있습니다.”

“문제 될 게 있나?”

“없습니다.”

“그럼 그대도 뒤로 가서 붙어.”

헬무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행렬 뒤에 가서 붙었다.

그렇게 행렬이 세를 불리며 이어나가기를 수십 분 정도. 드디어 목적지가 눈앞에 드러났다.

“귀하신 분. 여긴 혹시...”

긴가민가하던 페릴의 얼굴에 두려움의 빛이 스쳤다.

나는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담쟁이 넝쿨이 드리운 철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으니.

“백작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헤시아스 남작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열린 문 앞에 선 집사는 흰 천을 팔에 걸치고서 내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나는 답하지 않고 말에 오른 채로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거의 천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쫓아왔다.

집사는 당황해서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그만한 인원은 관성 때문에라도 쉽게 멈추지 않는다.

결국 천 명에 달하는 대인원이 몽땅 들어와서, 꽤 넓은 정원이 꽉 차버렸다.

“야. 이거 신기한데. 바닥에 깔린 돌에 해면처럼 구멍이 뚫려있어.”

“조용히 해, 이 새끼야. 아까 백작님이 봐주시지 않았으면 넌 매달렸어.”

“알았어... 하지만 이건 챙기자.”

“아, 아니! 방금 소매에 뭘 넣은 겁니까! 당신은 거기 배낭에 뭘 집어넣었지요? 아이고! 이, 이...!”

집사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병사들을 통제하려 했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나는 병사들을 정원에 방치하고서 저택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존귀하신 레시아르 백작님.”

그제야 헤시아스 남작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무릎을 꿇고 인사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손을 내어주면 내 인장반지에 키스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헤시아스 남작은 곰보에 사마귀까지 난 못생긴 아저씨였다.

나는 슬쩍 뒷짐을 져서 손을 뺐다.

“내 병사들이 굶주려서 말이야. 일단은 식사부터 좀 시켜줘야겠는데.”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백작님은 안쪽으로...”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모른 척 페릴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복도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헤시아스 남작은 하인처럼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와야 했다.

나는 식당 안에 들어가 내 주위의 상석에 고급 창부인 페릴, 수혈 보병 출신의 파샨, 한 때 노예였던 베티아를 주르르 앉혔다.

헤시아스 남작은 말석에 앉아 티 안 나게 분을 삭였다.

음식은 급히 준비한 것치고는 훌륭했다.

하지만 나는 괜히 포크로 접시를 두들기며 투정을 부렸다.

“페릴. 내가 실언했어. 네가 가자고 한 해산물 요릿집이 더 나았겠는데.”

“귀, 귀하신 분…….”

페릴은 나와 남작의 눈치를 번갈아보며 말끝을 흐렸다.

“남작. 내가 내 여자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먹여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내온 게 고작 이거라니, 나를 부끄럽게 할 작정인가?”

“죄송합니다. 백작님. 다시 내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직접 주방 안까지 뛰어 들어갔다.

요리사를 어떻게 갈궜는지는 모르겠지만 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요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이건 좀 낫군. 아, 밖에 있는 내 병사들에게도 이 정도 식사는 내주도록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는 시뻘게진 목을 칼라 깃을 세워 숨기며 대답했다.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차르르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두고 물었다.

“헤시아스 남작.”

“예. 백작님.”

“이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

“... 당연히 적법하게 백작위를 계승한 레시아르 백작님이십니다.”

“허면 그대는 뭔가?”

“저. 저는... 주인을 위해 집을 관리하는 집사 같은 존재지요.”

“주인이 왔는데 인사하러 나와 보지도 않는 집사가 어딨어?”

“저, 저는 초대장을 보냈습니다만...”

“자네 집 앞에 집사는 직접 뛰어나오던데. 초대장을 주는 게 아니라. 그 놈이 남작을 하는 게 더 낫겠군.”

헤시아스 남작은 기세가 팍 꺾여서 식탁보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바로 쐐기를 박았다.

“그대는 봉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지.”

“저는 전비를 보냈습니다! 백작님! 그것도 금화를 삼천 닢이나요!”

“주군을 위해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그게 상인과 다를 게 뭔가? 이 항구도시의대리통치권을 금화로 판다면 삼천 닢은 너무 싼 가격이라 생각지 않아?”

“그, 그건... 허, 허나 헤시아스 가문의 대리통치권은 레시아르 백작님의 선대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레시아르 가문에서 주었으니 레시아르 가문의 적장자인 내가 회수하겠다는 거지.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지?”

남작은 손을 싹싹 문지르며 잠시 생각하더니 모기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백작님. 성의를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성의. 내가 또 성의 좋아하지.”

“제 침실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거기서 기다리시면…….”

자기 침실을 내준다는 건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한 거긴 하다. 그 성의라는 게 뭘지 대충 예상 가기도 하고.

하지만 이 못생긴 아저씨가 쓴 침구를 쓰고 싶진 않은데.

“침구는 새로 바꿔놔.”

“오, 물론입니다.”

나는 준비가 마쳐지기까지 식당에서 기다리다가 그를 따라 침소로 향했다.

헤시아스 남작은 그가 바친 성의를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빌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개처럼 뛰어나올 거면 처음부터 개처럼 길 것이지. 오, 방은 좋네."

"그러게 말입니다. 도련님. 그냥 슥삭해버릴까요?"

"지금 그 자의 목을 친다고 해서 나한테 반기를 들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공포로만 지배할 수는 없는 법이지. 일단 지금은 승자의 기쁨이나 즐기자구."

침실 안은 꽤나 화려했다.

가구는 모두 일등품이었고, 침대는 열 명이 굴러도 될 만큼 커다랬다.

꽃잎과 허브가 바닥 곳곳에 뿌려져서 진한 향기가 피어올랐으며, 물고기 모양의 향로에서 희미한 연기가 흘러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 냄새를 맡은 베티아가 대뜸 미간을 찌푸렸다.

“백작님... 약... 입니다...”

“약?”

“흥분제와... 강장제... 성욕증진제... 그런 것들을... 섞었습니다...”

“그럼 마약인가?”

“그것보단... 미약...입니다... 하지만... 오래 맡으면... 중독 될 수도...”

베티아의 말을 들은 파샨이 이를 갈고, 체닐린이 헤시아스 남작을 연행해올지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도시 안에 들어온 병력이 얼마인데 헤시아스 남작이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진 않을 테고.

여자와 약으로 정신을 쏙 빼놓고 어떻게든 용서해주겠다는 언질을 받아두겠다는 심산이겠지. 뻔하다, 뻔해.

벌이야 나중에 내리면 그만이지만, 약에 대해서는 좀 호기심이 생겼다.

수혈인 베티아야 몰라도 나 같은 금혈은 그냥 독에 당하지 않는다.

설마하니 중앙에서 강독을 받아서 쓰려는 거라면... 헤시아스 가문은 그 날로 멸문일 테니 그렇진 않을 것 같고.

만약 그래도 넉넉하게 가져온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로 해독하면 되고.

찬찬히 살펴보면 내게 해 될 건 없다. 헤시아스 남작이 자기 침소에서 나를 해치려 들 정도로 멍청하진 않겠지.

“이 정도 수작이면한 번 속아주지, 뭐.”

“... 알겠... 습니다...”

베티아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존재감을 지웠다. 언제 봐도 신기한 기술이다. 눈을 치켜 뜨고 잘 살피면 보이지만, 주의를 조금이라도 돌리면 그냥 가구 중 하나로 보이니까.

체닐린은 파샨과 논의하고는 방문을 열고 나가 문 앞에 기사들과 섰고, 파샨은 방구석에 가서 쿠션을 끌어안고 앉았다.

“귀하신 분, 저는 어찌할까요...?”

“이리 와.”

나는 페릴을 침대 위에 앉히고 그 무릎에 다시 머리를 베었다.

허벅지 안쪽 다리가 관자놀이에 뭉개지며 달큰한 살내음을 풍겼다.

부드러운 살 위로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놀고 있자니, 곧 헤시아스 남작이 보낸 ‘성의’가 도착했다.

하지만 그 성의가 남작의 아내나 친척일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들어온 건 서로 똑같이 생긴 네 쌍둥이였다.

사막의 자갈처럼 피부는 약간 어두운 색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특히 코가 오뚝하며 다리가 늘씬하게 길다.

유려한 각선미를 자랑하듯 다리는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옷이랄 게 비단 한 토막을 앞뒤로 묶어서 가슴과 보지를 간신히 가릴 정도고,그나마도 비단이 얼마나 얇은지 꼭지와 둔덕의 윤곽이 도드라진다.

몸을 샅샅이 핥듯 구경하고 있자, 넷 중 하나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절을 올렸다.

엎드린 채로 무어라 말을 하긴 하는데, 내가 아는 언어는 아니었다.

뭔가 바로 몸을 겹칠 분위기는 아니라 고개를 까딱하니, 네 쌍둥이는 서로 눈빛만 주고받고는 바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퍽 우아한 춤선을 그렸다. 옷이 짧고 얇아서 그렇지, 무대 위에 올려둔다면 박수갈채를 자아낼 솜씨였다.

하지만 향내가 짙어지고 땀이 흘러 분을 적실 정도가 되자, 쌍둥이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순서대로 내게 키스를 날리더니, 서로 가슴을 문지르고 엉덩이를 비빈다.

그 격렬한 움직임에, 비단옷을 묶은 매듭이 슬그머니 풀려나간다.

스륵.

흘러내린 옷 아래 숨어있던 연갈색의 나체가 드러났다.

페릴의 무릎베개를 벤 채 그걸 지켜보던 나는 웃통을 벗어던졌다.

네 쌍둥이는 똑같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는 침대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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