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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98화 (98/166)

〈 98화 〉 가화만사성

* * *

침묵은 꽤 길게 이어졌다.

사정이 끝나고 발기한 자지가 질 안에서 쪼그라들 때까지 서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었으니.

사정 후의 탈력감 때문에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가?

아직도 내 밑에 깔린 누이의 보드라운 살결 때문에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 같다.

뭔가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지?

누님이 잠든 지 십 년이 지났다고?

내가 누님을 구해왔다고?

그런데 정욕이 동해서 어쩔 수 없이 보지를 좀 빌렸다고?

너무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 그저 얼어만 있기를 또 수 분 여.

결국 먼저 침묵을 깬 건 내가 아니라 이데트 누이였다.

“... 새로운...꿈... 이구나...”

누님은 쉰 목소리로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꿈?

누님은 이 상황을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수가 있나?

상황 판단이 잘 안 돼서 얼어있는데, 이데트 누이는 끙끙거리며 팔을 움직였다.

간신히 들어 올린 팔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손끝이 겨우 내 뺨을 쓸었다.

“우리 아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련한 말투.

어렸을 때 들었던 고풍스러우면서도 자애로운 누님의 옛 말투 그대로다.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처음으로 내가 한 일이 후회될 정도였다.

내가 어쩌자고 큰누님을 덮쳤을까. 아직도 누님의 질 안을 누비는 이 놈의 자지를 꽉 잘라...

버릴 순 없을지라도, 앞으로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겠지.

이데트 누이는 파르르 떨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연신 내 뺨을 어루만졌다.

찡그린 얼굴을 보면 격통에 시달리는 게 분명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몇 번이고 나를 달래주었다.

“괜... 찮... 단다.”

누님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눈을 감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서 급히 목에 손가락을 대어보니, 맥은 있다.

그냥 너무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얼른 맞댄 하복부를 떼어내고 일어섰다.

“베티아.”

존재감을 지우고 있다가 스르륵 나타나는 베티아.

“네, 백작님...”

“누님 좀 부탁해. 씻기고, 옷 좀 입혀줘.”

베티아는 두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사이 잽싸게 방을 나서서 따로 씻고, 향수도 좀 뿌리고, 아예 정복을 갖추어 입고 돌아왔다.

그 사이 이데트 누이의 방은 베티아가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창문 너머로 정사의 열기가 쓸려나가고, 상쾌한 밤공기가 들어왔다.

이데트 누이의 몸도 약간의 자국을 빼면 깔끔하게 변했다.

눈을 감고 있기는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확실히 생기가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우선 이 경사를 같이 나눌 상대를 부르기로 했다.

“파샨. 세리야 좀 불러와.”

급히 달려간 파샨은 곧 세리야를 데리고 돌아왔다.

“백작님, 어인 일로...”

나는 이데트 누이를 가리켰다.

“누님이 깨셨어.”

“그, 그게 정말인가요?”

세리야는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 순간, 이데트 누이가 몸을 뒤척였다.

“아…….”

세리야는 저도 모르게 침대 가로 달려갔다.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빈틈을 보이지 않던 깐깐한 메이드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세리야는 십 년 전의 시녀로 돌아가 주인 아가씨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간절한 부름에 이데트 누이는 천천히 눈을 다시 떴다.

“... 세리야...?”

이데트 누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세리야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씨... 정말로, 정말로 돌아오셨네요.”

이데트 누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울지 마렴, 세리야. 오늘은 이상하네... 바이스는 다 컸고... 세리야까지 나왔으니... 이 꿈이, 끝날 때가... 됐을까...?”

“아가씨…….”

“알아. 네가 바이스를... 지켜줬구나.”

이데트 누이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세리야의 어깨를 다독였다.

하지만 너무 간만에 일어나서 그런지 그녀는 금방이라도 다시 잠에 들어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세리야의 옆으로 끼어들어 이데트 누이의 손을 부여잡았다.

가녀린 손은 내 손 사이에 폭 덮여버렸다.

“누님!”

나를 바라보는 이데트 누이의 눈동자가 점점 커진다.

그녀의 손을 통해 내 마력이 전해진다.

화염의 성질을 가진 마력이 누님에게로 전해지며 점차로 그녀의 몸을 데운다.

“꿈이... 아니야...?”

이데트 누이는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누이의 손을 강하게 쥐며 더 많은 마력을 흘려 넣었다.

흡수되는 것보다 흘러넘치는 게 수십 배는 많지만, 상관없다.

가능한 많은 온기가 전해지도록 마력을 계속하여 불어넣으면서 누님의 손을 꽉 잡는다.

“꿈이 아니에요, 누님.”

“아아... 아... 이렇게, 이렇게 컸구나...”

이데트 누이는 눈물을 줄줄 흘렸고 그걸 본 세리야도 다시 눈물을 흘려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서로가 기뻐서 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데트 누이의 기억은 십 년 전에 멈춰있었다.

우리는 그 십 년 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데트 누이가 눈을 떴다는 소식은 저택 안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직은 재활을 해야 할 테지만, 내 여자들은 가능한 빨리 누님을 만나기를 희망했다.

누님도 그녀들을 보고 싶다고 해서 결국은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마티란 자작과 화리메, 아마트리체, 그리고 어째서인지 카산드라 공주까지 이데트 누이의 환심을 사려고 모여들었다.

이데트 누이는 어색해하면서도 정성스럽게 그녀들을 대했다.

이데트 누이는 아직 몸이 완벽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직접 차를 따라서 돌리고는 세리야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티테이블에 동그랗게 모여 앉은 여자들은 이데트 누이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차를 마셨다.

“그러니까... 마티란 자작님께서, 제 남동생의 아이를 임신하셨다고...”

“네에. 시누님. 말씀 편하게 하시어요.”

싹싹하게 웃으며 자신의 배를 은근슬쩍 내보이는 마티란 자작, 루이사의 모습에 화리메가 이를 갈았다.

“시누님!”

“아, 네? 영애께서는...”

“아우럼 가문의 황금마법사, 화리메에요. 저도 바이스의 첩실이구요.”

“아…….”

이데트 누이는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

자그마했던 남동생이 곰처럼 커져서 첩실을 둘이나 끼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한가.

화리메는 누님이 당황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다다 쏟아냈다.

“암브로시아와 넥타르. 시누님께서 드신 영약, 효과가 어떠셨어요?”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거, 사실은 제가 구해온 거예요.”

“그러시군요. 어찌 감사해야할지…….”

이데트 누이는 화리메에게 감사를 표하며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루이사가 바로 견제구를 던졌다.

“그대가 영약을 구해왔다고요? 내가 알기로는 일은 서방님이 다하고, 화리메 양은 마지막에 손만 얹었다는데.”

“아하하, 내가 손만 얹었다고요? 자작께서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잖아요.”

화리메의 반격에 본전도 못 건진 루이사는 내게 눈치를 주며 자기 배를 쓰다듬는다.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자꾸 배를 쓰다듬으면서 눈치를 주는데, 어쩔 수가 없어서 어물쩍 한 마디만 했다.

“뭐... 같이 구해온 거긴 하지만...”

“백작니임?”

“기여도를 따지면 내가 좀 더 하긴 했나.”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루이사 편을 들어주자 화리메가 벌컥 화를 낸다.

“바이스!”

“어머. 상스럽게 서방님 이름을 막 부르고. 그러면 안 되지요.”

루이사는 부채를 촥 펼쳐서 화리메를 가리고는 이데트 누이에게 속삭였다.

“화리메 양은 아직 어린데다가 지금껏 밖으로 쏘다니기만 해서 귀족 가의 예의범절에 약하답니다. 게다가 방계출신이라고 하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시누님.”

은근히 자기가 화리메보다 낫다고 강조하는 걸 화리메도 못 알아들을 리가 없다.

그렇잖아도 카산드라 공주가 정실로 들어오면서 지위에 불안을 느끼던 화리메는 이 참에 루이사의 역린을 확 긁어버렸다.

“그렇게 예의범절을 잘 아시는 분이 재가(??)는 왜 하셨대?”

“뭐, 뭐라고요?!”

“그렇잖아. 미망인이면 망부(??)나 기리면서 살 것이지, 왜 자기보다 새파랗게 젊은 바이스한테 들러붙어서 그러냐고요.”

이번에는 루이사가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화리메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마주 노려본다.

살벌한 분위기가 피어오르는 와중에 이데트 누이만 허둥지둥 차를 권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러지 마시고... 자아...”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누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카산드라 공주가 끼어들었다.

“그냥 들어주려고 했더니 더는 못 들어주겠군. 그대들은 병자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생각도 없는가?”

약혼자라고는 하지만 정실이 될 여자가 서열정리에 나서자, 첩실에 불과한 루이사와 화리메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내 첩실이 아니고, 지위도 공작가 영애인 아마트리체는 당당하게 맞대꾸를 했다.

“어이가 없네요. 이데트 영애를 저렇게 만든 게 누구인데. 대체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애초에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은 있는 건가요?”

“... 왕가의 명예롭지 못한 과거에 관하여는 사과하겠다. 허나 그대의 말이 지나치다. 나는 레시아르 백작의 약혼자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정략혼이잖아요?”

“허…….”

카산드라 공주가 기가 막혀 하자, 그 뒤에 시립해있던 여기사가 호통을 친다.

“아마트리체 영애님! 그게 공주님께 대체 무슨 무례입니까!”

“닥쳐!”

“... 읏...!”

시퍼런 눈동자가 안광을 불태우자 여기사는 공포에 질려 부르르 떤다.

금혈인 아마트리체가 살기를 뿜어냈음에도 무릎을 꿇지 않은 것만 해도 자질은 충분하다.

하지만 아마트리체는 질투심에 마력을 화산처럼 뿜어냈다.

“한 달 전만 했어도 서로 싸우던 사이가 아닌가요? 중앙과 왕가의 흉계에 파티스 공국의 영지민 뿐만 아니라 레시아르의 병사들도 많이 죽었어요. 그런데 약혼이라니! 마티란 자작님이나 화리메 양은 인정하더라도, 저는 인정 못해요.”

“그대가 인정 못한다면 어찌 할 것인가?”

카산드라 공주도 자존심이 상하는지 쇳소리를 내며 아마트리체의 마력을 받아쳤다.

“약혼은 양가 부친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나와 레시아르 백작이 모두 합의하여 성사된 것이다. 이 약혼에 대하여 아마트리체, 부외자에 불과한 그대가 인정 못한다고 한들 그대가 정녕 어찌하겠다는 것이냔 말이다!”

“당장에라도 파혼시켜야지요! 백작님께서도 좋아서 약혼하셨을 리가 없어요!”

“대체 그대가 레시아르 백작의 무엇이라고 그 따위 주장을 함부로 하는가!”

“나는 백작님이 가장 사랑하는 정인(?人)이에요!”

“망상증이 과하다!”

"갑자기 나타난 주제에! 당신은 백작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잖아!"

"그대가 백작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철부지라는 것은 알지! 그리고 백작은 그대를 이용하는..."

"백작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마!"

이러다 서로 목이라도 조를 기세다.

티격태격 싸운다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금혈의 여인 둘이 일부러 마력을 흘려내면서 싸우는데, 누구 하나라도 발끈해서 마력을 쏘아내기라도 하면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말겠지.

한숨이 절로 나오네.

이데트 누이를 볼 면목이 없다.

그냥 내 여자들을 소개시켜 줄 생각이었는데, 누님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그 사이 루이사와 화리메도 다시 끼어들어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기 센 여자 넷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면서 싸워대니 골이 다 울릴 지경이다.

이데트 누님은 다시 병상에 누워야 할 듯 안색이 파랗게 질렸고.

나는 성질이 나서 버럭 소리쳤다.

“그만!”

하지만 여자들은 들은 척도 않고 서로 대거리를 계속한다.

이 여자들이, 나를 뭘로 보고.

화가 확 치밀어 올라서 나도 마력을 끌어올린다.

팔을 타고 치솟는 불꽃을 그대로 위로 던져 펑하고 터뜨린다.

갑작스러운 폭음과 섬광에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덕분에 겨우 소란이 잦아들었다.

정신을 차린 여자들은 차례대로 나와 이데트 누이에게 사과했다.

“할 말이 많은데, 누님 앞이라 참는다.”

내 말에 여자들은 고개를 움츠렸다.

자기들도 좀 심했다는 자각은 있었던 모양이다.

처벌은 이따가 밤에 내릴 거라고, 눈총으로 못박아주었다.

화리메도 그렇고 루이사도 처벌 섹스를 당해본 적이 있어서 부들부들 떨었다.

아직 당해본 적이 없는 아마트리체만 헤헤 웃었을 뿐이다.

저 아가씨도 한 번 당해봐야 알겠지.

자리가 정리되긴 했지만, 서로 얼굴을 붉힌 상태에서 차가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다.

그대로 해산하는 분위기가 된다.

“그대에게는 못 보일 모습을 보였군. 사과하겠다. 다음에 따로 초대하도록 하지.”

제일 지위가 높은 카산드라 공주가 이데트 누이에게 먼저 사과하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 뒤를 이어 아마트리체와 루이사, 화리메가 순서대로 방을 나섰다.

“참... 개성적인 아가씨들이더구나.”

“미안해요, 누님.”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이데트 누이는 의외로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 중에서 누가 제일 좋니?”

“누님?”

“궁금할 만도 하지 않니. 그 아가씨들이 이제는 우리 가족이 될 테니까. 역시 마티란 자작님이니? 배가 나온 걸 보니 곧 있으면 귀여운 조카가 나오겠던데. 그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구나.”

목소리에 설렘이 가득한 걸 보니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데트 누이의 손을 깍지 끼어 잡으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님이 제일 좋습니다.”

“얘는…….”

이데트 누이는 살짝 눈을 흘겼지만, 나는 진심인데.

누님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는지 손깍지를 풀고는 내 손등을 지그시 꼬집었다.

나는 다시 누님의 손을 잡아 깍지를 껴버렸고,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던 이데트 누이는 갑자기 뭔가 생각해내기라도 했는지 얼굴이 푹 익어버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란다. 그저... 이상한 꿈이 생각나서... 아니, 아니란다. 신경 쓰지 마렴.”

“신경 쓰지 말란다고 신경이 안 써지나요.”

다시 손깍지를 잡으며 누님을 끌어당기자, 이데트 누이의 얼굴이 석류알처럼 빨개져버렸다.

“그동안 여자를 놀리는 법만 배웠나 보구나. 예전에는 그리도 순진하던 아이가.”

“남매의 정을 나누는 것인데 그리 부끄러워 하실 일이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누님이 괜히 이상한 상상을 하시는 거 아닙니까?”

“얘는...!”

품에 들어온 이데트 누이는 내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두들기며 삐진 티를 냈다.

지금 내 나이가 이데트 누이가 저택을 떠났을 때의 나이와 비슷하니까... 우리의 정신 연령은 대충 맞아떨어지게 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필사적으로 자지가 발기하는 걸 참고 있었다.

이제 이데트 누이를 어떻게 하는 건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이건 조건반사적인 반응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누님을 얼마나 안았는데.

이 보드랍고 살짝 서늘한 살결을 끌어안기만 해도 저절로 자지가 서고 마는 거다.

게다가 깨어있는 이데트 누이는 잠에 들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사랑스러웠다.

나를 바라보는 황옥색 눈동자에는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가끔은 거기에 기이한 정욕 같은 게 담기기도 하는데... 나라면 몰라도 누님이 친남매 사이에 욕정을 느낄 리가 없으니 내가 뭘 잘못 본 거겠지.

여하튼 누님이 더운 숨을 뱉고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내 행동에 반응해주고, 내 장난에 따스하게 꾸짖는 말을 돌려준다는 건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었다.

잠시 딴 생각에 빠진 사이에 바짓춤이 묵직해져서 누님의 엉덩이 위쪽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한다.

딱딱하게 닿는 느낌을 이데트 누이도 못 느낄 리가 없다.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누님은 남매끼리라도 이렇게 다 큰 사이에 서로 껴안고 있으면 흉이 된다며 내 포옹을 풀었다.

그래도 누님과 대화하는 것 만으로 행복하다.

우리는 넉넉하게 남은 다과를 천천히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세리야가 끼어들어서 한두 마디씩 거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다가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화제가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하기 어려운 말을 하기 직전의 어색함이었다.

이데트 누이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심한 듯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런데 파레트와 수잔느는...”

의도적으로 피했던 이야기였는데.

내가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는 그 사이, 이데트 누이는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눈치 챘다.

“나처럼 된 거구나.”

“미안해요. 누님. 내가...”

“아니란다. 아버지가 그리 정하셨을 텐데, 바이스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이데트 누이는 애처로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자신이 당한 일을 다른 누이들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 하나보다.

“아버지의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올까요? 누님 앞에서 개처럼 짖도록 해줄 수도 있는데.”

“언제 그런 무서운 농담을 배웠니?”

“농담 아닌데.”

“... 그 동안 정말 이상한 것만 배웠어. 아버지가 이제 와서 내게 사과한다 한들,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니. 나는 그저... 그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이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데트 누이 자신도 그 일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아우럼 가문은 왕국 최고의 마법명가고, 중앙은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머리를 가진 키메이라니까.

하지만 지금의 아우럼 가문은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해있고, 중앙은 불만에 찬 영주들로 둘러싸여 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누님."

"... 너무 무리하진 마렴. 언제나 네가 건강한 게 최우선이란다."

"걱정 마세요. 누님도 들으셨겠지만 저는 병무대신도 물리친 대마법사에요."

"그래, 그래. 잘 컸구나."

이데트 누이는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그저 흐뭇한 얼굴로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하지만 얼굴에는 약간 괴로운 기색이 비치고 있었다.

"누님. 일어나신지 얼마 안 됐는데 저 때문에 너무 무리하시고 있어요. 어서 들어가서 이만 쉬세요."

"그래야겠다. 너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알았어요. 세리야, 누님을 부탁해."

"예. 백작님. 아가씨, 팔을 여기에 얹어주세요."

나는 세리야가 이데트 누이를 부축해서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는 책사 이오시스를 따로 불렀다.

곧 이오시스가 급히 달려왔다.

나는 그녀가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이오시스. 아우럼 가로 보낸 자정의 여명 단원들 말이야, 아직 소식이 없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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