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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104화 (104/166)

〈 104화 〉 힘의 정리

* * *

“오, 오오오!”

화리메는 신기해하며 황금방패를 어루만졌다.

그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황금마법.

나는 화리메의 피가 살짝 묻은 얼음송곳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황금방패는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멀리서 체닐린이 정말 해도 되냐는 표정을 띄우지만, 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잇!”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마력창.

기사단장이었던 체닐린이 만들어낸 것 인만큼 그 속도와 위력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황금방패에 맞닿은 순간, 마력창은 형편없이 깨어져나갔다.

“오오오! 막아냈어!”

화리메는 폴짝폴짝 뛰며 손뼉을 쳤다.

위아래로 덜렁거리는 젖가슴이 보기 좋아 흐뭇하게 웃고 있자, 체닐린이 곧 근처로 다가왔다.

마력창을 던진 그녀로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정말 막아냈군. 그 가짜 황금방패로.”

“가짜라니. 열화복제가 아니라니까. 오히려 방어력은 더 커진 것 같은데.”

“흥.”

체닐린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내심 이 얼음송곳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도 이게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바르가 전이 직전에 쥐어준 얼음송곳.

이걸로 카산드라 공주의 호위마법사인 요리헤의 피를 빨아들였더니 그의 속성마법인 빙결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잠시 잊고 있었다가 혹시나 해서 화리메의 혈액으로 시험해보니, 그녀의 속성마법인 황금마법까지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오대속성 마법사의 피를 하나씩 다 묻히면 오대속성을 전부 쓸 수 있게 되는 거 아니야?”

화리메는 흥분해서 콧김을 불었다.

“일단 그렇긴 하지.”

“그럼...!”

“그런데 제한이 있긴 하더라고.”

“제한?”

“일단은 얼음송곳에 묻힌 마법사의 혈액이 신선해야 돼. 봐, 방금 네 피를 묻힌 덕에 황금마법은 이렇게 잘 나오는데, 요리헤의 피는 다 말라붙어서...”

투툭.

송곳 끝에서 이슬 크기만 한 얼음 조각이 몇 개 나오고 끝이었다.

“이렇게. 피가 오래되면 그 속성마법은 거의 못 쓰게 되더라고.”

“그래도 내가 있으니까 황금마법은 기본으로 쓸 수 있게 된 거잖아!”

“그렇긴 하지.”

원래 내 속성인 화염과 화리메의 속성인 황금까지, 나는 2인분 역할을 해내는 다중속성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전투 중에 적 마법사의 혈액을 묻힌다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더 늘어나는 거고.

화리메가 폴짝폴짝 뛸 만큼 이게 어마어마한 아이템이긴 하다는 거지.

“그게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상냥하네! 그런데 나한테는 왜 아무 것도 안 줬지...”

“너는 배 터져라 암브로시아 먹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에잇.”

화리메는 나와 툭탁거리면서도 은근히 눈치를 살폈다.

나는 적당히 그녀를 상대해주다가 저택으로 돌려보내고, 체닐린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침 테라스에 앉아있던 루이사와 아마트리체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수건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한 번 기강을 잡아둔 덕인가.

화리메는 물론이고 다들 조금씩 처신에 주의했다.

루이사는 태교에 집중했고, 아마트리체는 다른 첩실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 중이다.

다만 카산드라 공주만은 아직 어쩌지 못하고 있다.

왕가에서 휙 던진 딸이라지만 그래도 일국의 공주인지라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첩실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서 방치 중이다.

그래도 이데트 누님이 나 대신 신경을 써주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고.

“그런데 뭐가 그리 고민인가?”

체닐린이 뒤에서 물었다.

나는 그대로 뒷짐을 지고 걸으며 대답했다.

“다음번에 중앙을 어떻게 상대할지, 그게 고민이란 말이지.”

“다음번? 카산드라 공주와 약혼했으니 중앙과의 분쟁은...”

“혼약 하나로 전쟁을 막는 건 불가능해. 이미 분쟁의 불씨가 일어난 이상, 언젠가는 불길이 피어오르게 돼 있어.”

중앙은 다른 영주들을 견제하느라,

나는 지난 전쟁의 피해를 회복하느라 서로 잠시 물러선 것뿐이다.

당분간은 창칼을 맞대는 대신 계략으로 승부하겠지만, 결판은 결국 전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전간기(戰??)에 힘을 비축해둬야 하는 이유다.

“합!”

“으얏!”

잠시 생각에 빠져 걷다보니 친위대 본부까지 도착했다.

마침 부대장 하이덴과 베티아의 아들인 카이가 대련 중이었다.

하이덴은 마검을 휘둘러 공격하고, 카이는 요리조리 도망치며 작은 불꽃을 틈틈이 쏘아대고 있었다.

그 뒤로도 수백 명에 달하는 친위대원들이 서로 검을 맞대거나 레슬링을 하고 있다.

나이는 대개 하이덴과 카이의 사이로, 열넷에서 열여섯까지가 대다수다.

전쟁고아와 노예들을 끌어들여와 친위세력화한 건데,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한 만큼 충성도는 단연 높다.

멀찍이서 파샨이 조장들에게 직접 검술을 가르치는 모습이 보인다.

더 가까이 가면 괜히 방해될까 싶어 슬쩍 본부 건물을 돌아서 지나가기로 했다.

체닐린은 내 뒤를 따라오며 친위대원들의 실력을 평했다.

“기세가 사납고 맹렬하다.”

“좋다는 거야?”

“기껏해야 동혈, 거의 다가 수혈인 아이들인 걸 감안하면 대단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

훈련만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갑옷부터 무기, 장신구까지 마도구로 도배하느라 등골이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래도 돈 들인 만큼 성과는 나왔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그 비용을 기사단을 충원하는 데 썼다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기사단장 출신인 체닐린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이 정오의 그림자와 맞섰지. 하이브의 동굴에서도 마수들과 싸웠고.”

“그 전신(??)이 우리 켈자르 기사단의 발을 악착 같이 묶은 보병 대대였다고 했나?”

“그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도록 훈련된 자들. 그러니 기사단과는 다르게 쓸 수 있는 조직이란 거야.”

자정의 여명도 마찬가지.

이오시스가 독단으로 만든 조직이지만 그대로 인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중앙과의 전쟁은 단순히 기사단의 힘만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래도 사실 기사단 전력이 제일 아쉽긴 하지. 무엇보다도 오록스 단장.”

“그 말인가. 실로 기사다운 자였다.”

체닐린은 잠시 묵례로 애도를 표했다.

나도 그가 아깝긴 매한가지다.

코티지 부단장과 젊은 기사 헬무트, 미장센의 삼두체제는 아직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연합군에서 빼온 기사와 원래 레시아르에 충성하던 소속 기사들 간의 불화도 속속 보고되고 있고.

“당분간은 너도 기사단을 좀 살펴줘. 호위 업무를 유연하게 조율하라고 전해놓을 테니까.”

“음? 그래도 되는 건가?”

“호위라고 하지만 내가 너보다 세잖아.”

“아니, 그건!”

체닐린은 얼굴을 붉히면서 언성을 높였지만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삐졌나?”

“누가 삐졌다고... 읏!”

“엉덩이가 빵빵한 게 삐진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릴!”

나는 픽 웃고 손을 뗐다.

“하여튼 부탁 좀 할게. 타라나 이오시스에게도 말은 해뒀지만, 그래도 기사단장이 보면 보이는 게 있을 테니까 말이야.”

“나를 믿는 건가?”

“당연하지. 넌 내 여자잖아?”

“... 이 정도로 역겨우면 한 바퀴 돌아서 도리어 상쾌할 정도군... 읏!”

나는 소리 나도록 체닐린의 엉덩이를 빵 때려주었다.

체닐린의 엉덩이는 탄탄하고 찰져서 때리는 맛이 있단 말이야.

“자꾸 그렇게 때려대면 나도 다 생각이...”

“아, 맞다. 전부터물어볼 게 있었는데.”

“... 뭔가?”

“켈자르 마력병 제대 말이야. 어떻게 그만한 수를 꾸렸던 거지?”

켈자르와의 전쟁에서 골치 아팠던 게 그들의 마력병 제대였다.

보병과 마력병을 혼합해서 운용한 아군과 달리, 켈자르는 마력병만으로 단독 제대를 구성했었는데 그 수가 상당히 많아서 처리에 골머리를 썩였다.

체닐린은 입술을 몇 번이고 옴짝이다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군. 켈자르의 기밀을 팔아넘기는 것 같은...”

“레시아르와 켈자르는 우호국이라고. 함께 힘을 합쳐서 중앙과 맞서 싸우는 우방 중의 우방인데 무슨 그런 말을 해?”

“그건 분명히 맞는 말인데... 알았다. 사실 바이스, 네가 알고자 한다면 내가 입을 다물어도 얼마든지 알아낼 방법이 있을 테니.”

체닐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력병 제대에 관해 설명했다.

“그만한 수의 마력병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선대 켈자르 백작님의 유훈 덕이다.”

“유훈?”

“그 분께서는 기사가 영지민을 취할 수 있도록 동침권을 인정하고, 그렇게 동침해서 나온 아이 중 마력이 있는 자들을 비싼 값에 사들였다.”

“그 분도 만만치 않게 악덕영주신데.”

“핫, 자기 성욕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는 너와 같이 보면... 아흣!”

“자꾸 엉덩이 두들겨 맞고 싶으면 계속 도발해라. 응?”

“... 그 분께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켈자르 전체를 위해 그런 수를 안배하신 것이다.”

효율적인 수라는 건 인정한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바꿔서 그대로 레시아르 령에 도입하고 싶은걸.

여유 있는 도시민들은 제외하고, 당장 먹고 살기 바쁜 농노들만 동침권의 대상으로 한다면?

기사들이야 맘에 드는 농노를 골라 동침할 수 있어 좋고, 농노 입장에서는 아이를 비싼 값에 팔 수 있어서 좋고, 물론 나는 마력병을 충원할 수 있어 좋고.

지금 당장 도입하면 내가 마흔이 되기 전에 쓸 만 한 마력병 제대를 꾸릴 수 있을 터.

이건 서두를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농노 중에 예쁜 처녀가 있을 수도 있는데.

물론 그럴 확률은 극히 드물지만, 그런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짜증이 난단 말이지.

“그래. 일단은 내가 다 따먹고...”

“레시아르령에 젊은 처녀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말하는 건가?”

“그럼 예쁜 처녀만...”

“예쁜지 아닌지, 처녀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할 건가?”

“음... 초야권! 그래, 초야권을 행사하는 거야!”

“초야권?”

“귀족과 기사를 제외한 레시아르의 모든 처녀는 결혼식 전에 레시아르 백작에게 처음을 바쳐야 한다는 거지.”

체닐린은 한심하게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기사의 씨앗을 받는 것보다 내 씨앗을 받는 편이 강한 아이가 나올 확률이 높은 건 자명한 사실이다.

물론 내 정력에도 한계가 있으니 그 많은 처녀들과 매일 섹스를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못생긴 년의 초야권은 내가 갖지 않고 그냥 팔아버리면 된다.

처녀초야권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반대로 여자 친구나 약혼녀의 처음을 지키고 싶은 놈들을 위해 초야권방어권을 파는 것도 재밌겠다.

초야권방어권을 뚫는 절대초야권, 절대초야권을 튕겨내는 초야권반사권, 초야권반사권을 왜곡시키는 초야권굴절권…….

이건 좀 뇌절인가?

여하튼 초야권으로 쏠쏠하게 재원까지 마련할 수 있겠는걸.

내가 생각나는 대로 아이디어를 읊고 있자 체닐린이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란이라도 나지 않으면 다행이겠군.”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긴.”

마력량으로 신분이 결정되는 이 세계에서 신분체계만큼 공고한 것은 없다.

민란은 처녀 불알처럼 농담의 소재일 뿐이다.

게다가 메이드 데이지나 부란타 고원의 금발 사촌들만 떠올려 봐도, 내가 따먹어주면 농노들은 감사하다고 넙죽 엎드릴 거란 말이지.

“크흐흐흐. 레시아르의 모든 미녀들은 다 내 거다. 아니, 이 좋은 제도를 왜 진작 시행하지 않은 거지?”

“마력병 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체닐린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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