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마법사 게임
* * *
“들어왔습니다.”
파타하가 뒤늦게 말을 움직여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포함해 다들 두 번째로 보드판을 일주했으니, 게임은 슬슬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마침 돌아온 것은 열다섯 번째 턴.
“가정이 충만해지는 때지.”
오스트 공작은 서랍장에서 귀족 카드를 여러 장 꺼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두 자신이 소지한 귀족 카드를 꺼내서 호스트인 오스트 공작에게 보여주었다.
“데어뷘트의 여식 말고는 다들 문제없군 그래. 자, 하나씩 받고 돌려.”
귀족 카드를 두 장 이상 소지하고 있다면 세 턴 마다 한 번씩 새로운 귀족 카드를 받을 수 있다.
모두가 카드를 받는 와중에 파타하만 귀족 카드가 없어서 넋을 놓고 있다.
수드베리히 후작은 비만한 몸을 쿠션 위로 기대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것이 고귀한 일족의 의무일지니.”
“성 네마로우스의 유언이군요.”
“잘 알고 있구먼. 종교학에 관심이 있나, 백작?”
“교양 수준으로 익혔을 뿐입니다.”
나는 받은 귀족 카드를 확인하고 주사위를 굴렸다.
나온 값은 5.
말은 ‘무도회’ 칸으로 움직인다.
“무도회를 개최하겠습니다. 부디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난 빠지겠어.”
“가겠네.”
“저는 귀족 카드가 없어서...”
파티스트롬 공작과 파타하를 제외하고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이 참여했다.
나와 오스트 공작, 수드베리히 후작은 각자 가진 귀족 카드를 모두 뒤집어서 내놓았다.
“먼저들 고르시죠.”
“음... 이걸로 하지.”
“난 이 카드로.”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은 내 카드 중 하나씩을 뽑아갔다.
나는 반대로 그들의 패에서 카드를 한 장씩 뽑았고.
귀족 카드를 뒤집어보자, 금혈 카드 두 장이 손에 들어와 있었다.
“운이 좋군.”
“제기랄. 난 은혈 카드를 뽑았어. 후작, 자네는 어떤가?”
“저는 금혈을 주고 금혈을 가져갔으니 그대롭니다.”
혼자 손해를 본 오스트 공작이 씩씩대며 주사위를 굴렸다.
나온 값은 1.
말은 ‘창문세 창설’ 칸으로 들어갔다.
그는 서랍장에서 금화 카드를 가져가며 지나가듯 물었다.
“그래, 아우럼 가문은 언제까지 버틸 것 같아?”
나나 파티스트롬 공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우럼 가문의 영지는 서북부와는 반대편에 있어서 사정을 알기가 쉽지 않으니.
그나마 남부에 근거지를 둔 수드베리히 후작이 좀 아는 게 있는지 말을 받았다.
“공작께서 단장급 인재를 셋이나 붙이셨다면서요? 못해도 반년은 버티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야. 내가 급한 만큼 폰세르크 국왕도 급할 테니.”
아우럼 가문은 중앙에 빌붙어서 강독과 하이브를 만들어냈다.
그들이 이 사태의 원흉이라는 말이 되지만, 뒤집어 보자면 해독제의 비법을 아는 것도 그들뿐이라는 말이 된다.
당연히 귀족들은 아우럼 가문에서 해독제를 구하려 들고, 중앙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아우럼 가문을 지우려든다.
이해와 원한이 골치 아프게 얽히고설킨 것이다.
“아우럼 가가 완전히 망해버리기 전에 제조비법만이라도 빼내보시죠?”
수드베리히 후작이 말을 옮기며 오스트 공작을 떠봤다.
후작의 말은 이제 네 번째로 공작의 말을 따라잡고 있었다.
오스트 공작은 코웃음을 쳤다.
“후작, 어떤 카드를 낼지 패 좀 미리 까보겠어?”
“누구 좋자고요?”
“아우럼 가문 놈들도 같은 거지. 누구 좋자고 자기 패를 다 까겠나.”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패는 해독제의 비법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제조법을 숨기려 하는 거 아니겠어. 나도 몇 번 회유도 해보고 협박도 해봤지만 안 됐단 말이야.”
오스트 공작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영지전을 위해 출병시킬 카드를 내밀었다.
수(?) 속성의 마법사 카드.
함께 꺼낸 나머지 아홉 장의 카드는 모두 농노 카드로, 블러핑 용이었다.
그와 동시에 카드를 내민 수드베리히 후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귀족 카드 한 장, 기사 카드 세 장이 모조리 도륙나게 생겼으니까.
“어쩌자고 벌써부터 마법사를 꺼내십니까.”
“아껴뒀다가 차례가 다 가도록 못 쓰는 경우도 봤거든. 흐흐흐. 자네도 물 좀 먹어 봐.”
오스트 공작은 수드베리히 후작에게서 카드를 몽땅 빼앗아 서랍장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 좋아하실 게 아닙니다. 이제 마법사 카드는 한 번밖에 더 못 쓰는 거니까요.”
“알아, 알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스트 공작은 껄껄 웃었다.
수드베리히 후작은 두 번의 횟수 제한이 있는 마법사 카드를 끝까지 아끼고 싶어 했다.
오스트 공작은 그의 전략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손해를 만회할 만큼 막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상성으로 제 마법사가 공작님 마법사를 이긴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한테 마법사 카드를 쓸 건가? 백작이 저만치 앞서나가는데?”
수드베리히 후작은 내 앞에 산더미 같이 쌓인 카드를 보고는 혀를 찼다.
그는 오스트 공작에게 금화카드를 반절이나 밀어주었다.
“웬일인가?”
“앞서 나가는 놈이 있으면 발목이라도 붙잡아야지요.”
“이거 받고 자네랑 손잡으라고?”
“싫으십니까?”
“아니. 좋지.”
둘이 서로 합이 잘 맞았다.
파티스트롬 공작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희미하고, 파타하는 밟는 칸마다 함정이 터지니 손잡으려면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긴 하다.
이제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은 노골적으로 편을 먹고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주사위를 굴리고, 그 다음이 그들의 차례라 상대하기가 상당히 거슬렸다.
그들을 떨쳐내고 멀찍이 나가려고 했지만 초반에 운이 다한 건지, 주사위를 던지는 족족 1이나 2밖에 나오질 않았다.
한 번 말이 같은 칸에 들어오자,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 팀은 번갈아가며 내게 영지전을 걸어왔다.
먼저 오스트 공작을 물리치고 나면, 그 다음으로 주사위를 굴려서 온 수드베리히 후작과 맞붙어야 한다.
그런데 오스트 공작은 계속해서 내 협정안을 물린다.
그러니 다음 턴에도 내 말은 그 칸에 그대로 묶인 채로 오스트 공작, 수드베리히 후작과 연이어 영지전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허어…….”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아무리 앞서나가고 있다지만 둘을 동시에 상대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그 둘이 나란히 2, 3위를 달리는 플레이어들이란 말이지.
내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자 수드베리히 후작이 투실투실한 턱을 쓸면서 킬킬 웃었다.
“골치가 좀 아픈가? 이런 걸 보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는 걸세.”
수드베리히 후작이 훈수를 두는 사이, 파티스트롬 공작이 냅다 주사위를 굴렸다.
나온 값은 3.
파티스트롬 공작의 말이 내 말이 있는 칸으로 폴짝 뛰어 들어왔다.
한 칸에 몰린 말이 무려 네 개.
파티스트롬 공작은 콧잔등을 긁다가 오스트 공작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자네 마음대로 하면 되지.”
“그럼 세력전도 가능하던가?”
그 말에 오스트 공작이 클클 웃었다.
“들어와.”
“아니, 자네들 말고.”
파티스트롬 공작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제기랄. 알았어. 연합전 룰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일단은 동수니까 다들 동시에 내자고.”
우리 넷은 동시에 카드를 내밀었다.
놀랍게도 둘이나 마법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스트 공작과 파티스트롬 공작이었다.
“이런…….”
“룰이 어떻게 되더라?”
“원래는 속성대로 잡아먹히는 건데, 수(?)와 금(?)은 상극 관계에 있지는 않으니까... 그냥 서로 기회 한 번씩 날리고 마는 거지.”
오스트 공작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나를 노리고 수(?) 마법사를 내민 게 틀림없는데, 내가 마법사 카드를 꺼내지 않아 헛발질을 했으니.
“그럼 영지전 결과는 마법사 카드 빼고 귀족, 기사 카드 수대로 정해지는데.”
“귀족 카드는 레시아르, 파티스가 셋, 오스트, 수드베리히가 셋을 냈어.”
“혈통은?”
“금혈 하나, 은혈 둘. 이것도 서로 같군.”
“기사 카드는... 이런!”
“허허. 우리 편이 하나 많군.”
“빌어먹을!”
간신히 이겼다.
나와 파티스트롬 공작은 딱 잃어버린 만큼의 배상만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은 협정안 수용을 거부했다.
“그걸 다 들어주면 우리 둘은 손잡고 나락가란 말인가?”
“그럼 다시 전쟁하자는 겁니까.”
“못할 거 없지.”
다음 턴에도 발이 묶여서 다시 연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간단히 승부가 결정 났다.
내가 화(火) 마법사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뭐야, 후작. 자네가 마법사 카드를 내서 견제했어야지.”
“제 마법사 카드는 화염에도, 금속에도 상성으로 밀리지 않습니까.”
“아차.”
그제야 자기 실수를 눈치 챈 오스트 공작이 무릎을 쳤다.
그가 수(?) 마법사 카드의 사용 기회를 전부 써버린 것이 실책이었다.
결국 그들은 우리 연합의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하고 나란히 꼴찌로 떨어졌다.
그 사이 파타하가 열심히 앞으로 나가며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에잇. 텄군.”
오스트 공작은 분통이 터지는지 시가를 잘근잘근 씹었다.
수드베리히 후작도 육중한 체구를 뒤로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마법사 카드를 아끼셨어야지요.”
“내 탓인가? 자네가 마법사를 냈으면 됐을 거 아니야.”
“그랬으면 저는 이미 탈락했을 겁니다. 파티스트롬 공작께서 금(?) 마법사를 냈지 않습니까.”
“허헛…….”
“백작 좋은 일만 시켜주게 됐지 뭡니까.”
수드베리히 후작의 말에 내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게임 시작하기 전에 말하지 않았나. 승자에게 배신자의 생사여탈권을 넘기겠다고.”
“들은 적이 없는데... 저와 파타하 경은 직전에 참가해서 말입니다.”
“아, 그렇군.”
후작은 자세를 고쳐 앉더니 내게 명단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서남부의 몰케 백작을 필두로 하여 서른 명의 귀족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살생부군요.”
“이해가 빨라 좋군. 그래. 아직도 멍청하게 중앙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놈들이지.”
“이들을 모조리 죽여도 된다는 말입니까? 귀족 전범이 텅 비겠는데요.”
“모조리 죽여도 되고, 전부 다 살려도 되고. 그걸 이 게임의 승자에게 정하게 하겠다는 거네.”
“중앙이 보고만 있을까요?”
“우리라고 당하고만 있을 것 같나? 왕가가 병무대신과 강독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금화와 혼맥이 있지. 적어도 살생부에 관해서는 중앙의 개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수드베리히 후작이 살생부를 다시 받아 챙기는 동안 오스트 공작은 시가를 뻑뻑 피웠고, 파티스트롬 공작은 카드를 세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대귀족의 위세라는 게 이런 건가.
골방에 앉아 카드게임으로 귀족들의 생사를 결정한단 말이지.
그 자리에 내가 주사위를 굴리는 플레이어로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다.
레시아르 가문이 여기까지 컸단 말이지.
게다가 살생부.
서른 명에 달하는 귀족들의 생사여탈권.
대귀족들의 보증 하에 그들의 목을 벨 수도 있고, 재산을 앗아갈 수도 있고, 아내와 딸을 취할 수도 있단 말인데.
상상하기만 해도 입꼬리가 멋대로 꿈틀거린다.
"왜 그런가, 백작?"
"아뇨. 별 것 아닙니다."
나는 더 열정적으로 게임에 임했다.
기세라는 게 있는 건지, 주사위도 높은 값이 연달아 나와 내 말은 앞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몇 번 더 주사위 굴리는 소리가 오가고.
말이 바삐 움직이더니, 드디어 세 번째 일주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이제 한 번만 더 5나 6이 나오면 게임은 끝나게 된다.
이 상태에서 점수 결산을 하면 무조건 내가 1위지.
“저걸 어떻게든 잡아야하는데.”
오스트 공작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차이가 이만큼 벌어졌는데 수가 있겠습니까.”
“자네가 그런 수는 잘 쓰잖아. 어떻게든 해봐. 후작 덕에 이기면 몰케 백작의 별장은 넘겨줄 테니까.”
“저야말로 공작님 덕에 이기면 골드스톤 상단 지분권을 넘겨드리죠.”
“끙…….”
승산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지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은 별 의미도 없는 흥정으로 시간을 때웠다.
그 사이 파티스트롬 공작에게 주사위를 넘겨받은 파타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검지와 엄지만을 퉁겨 주사위를 던졌다.
“6! ‘연속 경주’ 칸입니다!”
“오! 믿고 있었다네, 파타하 경!”
“잘 던지라고.”
파타하는 이번에도 똑같이 엄지와 검지를 퉁겼다.
주사위는 허공에서 몇 차례나 휘리릭 돌더니 보드게임판 위에 안착했다.
나온 값은 6.
“오...!”
“좋았어!”
파타하의 말이 연속으로 6칸을 두 번 움직임으로써 내 말을 따라잡았다.
“이런…….”
“영지전을 하시죠, 레시아르 백작님.”
그녀는 곧장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내 카드를 꺼냄과 동시에 그녀의 카드를 뒤집어 보았다.
“농노 카드 두 장... 뭐하자는 겁니까?”
“제가 졌군요.”
“됐습니다. 농노 카드 한 장만 주시죠.”
“아뇨. 거절하겠습니다.”
파타하는 여전사 같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이 여자도 대귀족의 여식이었지.
협정안이 거부당했으니 바로 이어지는 내 턴에서도 영지전이 계속된다.
이번에도 파타하는 농노 카드 두 장만을 내밀었다.
그녀가 노리는 건 명확했다.
내 발목을 묶는 것.
“좋아! 이 틈에 얼른 따라가세!”
오스트 공작이 희희낙락해서 주사위를 던졌다.
그 뒤를 따라 수드베리히 후작과 파티스트롬 공작이 말을 달려왔다.
아직 격차는 뚜렷하지만, 파타하는 자기 턴에 다시 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다섯 개의 말이 모두 한 칸에 들어왔다.
완주를 코앞에 두고서 벌어진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군침만 삼킨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경쟁 상대이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끌어내리고 싶은 대상은 선두를 달리고 있는 나일 터.
나는 이들이 하나로 뭉치기 전에 먼저 제안을 던졌다.
“농노 카드만 내시는 분께는 살생부에서 세 명을 골라 가져가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몰케 백작만 제외하고는 원하는 대로 고르셔도 좋습니다.”
내 말에 파타하의 귀가 쫑긋거렸다.
“골라 가지게 한다니... 그건...”
“말 그대롭니다. 그 셋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양도하겠다는 뜻이죠.”
어차피 여기서 다구리 맞으면 일 위는 꿈도 못 꾼다.
그러느니 일등상을 좀 나누는 한이 있더라도 이기는 게 낫지.
게다가 여기 모인 넷이 각기 세 명씩을 골라 가져가도 내게는 열여덟 명이나 남을 테니까.
“잠깐만. 백작. 게임을 하는데 그런 식으로 회유를 하면 어떡하나?”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께서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오스트 공작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다른 플레이어들을 돌아보았다.
“여봐들, 고작 셋으로 만족할 거야?”
“고작 셋이라니요. 오스트 공작께서는 저를 밀어내고 나서 일 위 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공작께선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수드베리히 후작님은요? 파티스트롬 공작님? 파타하 경?”
이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암만 생각해도 나를 이기고 일 위까지 쟁취할 자신은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를 믿을 수도 없다.
당장 나를 물리치고 나면 서로 싸워야 할 마당이니, 자기 혼자 어정쩡하게 마법사나 귀족, 기사 카드를 먼저 낭비했다가는 고스란히 손해를 봐야하는 것이다.
나는 오스트 공작이 더 뭐라 하기 전에 끝을 내기로 했다.
“그럼, 동시에 내도록 할까요.”
내 말에 모두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카드를 내밀었다.
“아!”
“이런.”
“허.”
“참…….”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 파티스트롬 공작, 그리고 파타하 데어뷘터.
그들은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한탄했다.
짜고 친 것처럼 농노 카드만 나온 것이다.
“금화 카드 한 장씩만 주시죠.”
관대한 협정안을 거부하는 이는 없었다.
나는 금화 카드 네 장을 받고, 주사위를 굴렸다.
나온 값은 6.
내 말은 세 번째 일주를 끝냈다.
“결산은, 뭐 해볼 필요도 없겠군요.”
마법사는 살아서 돌아왔고, 귀족과 기사 카드도 넉넉하다.
차곡차곡 쌓아 둔 도시민과 금화 카드는 하위권인 오스트 공작과 수드베리히 후작, 파타하 데어뷘터의 것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축하하네. 백작. 자, 받게.”
수드베리히 후작이 살생부를 건넸다.
나는 다시 그것을 받아 읽었다.
개중에는 토캄 남작의 이름도 있었다.
나는 연회실에서 만났던 토캄 남작부인의 풍만한 지체를 떠올렸다. 그건 정말 아까운 몸이었는데.
“...자, 말씀드렸던 대로 몰케 백작과... 그리고 토캄 남작만 제외하고 원하는 대로 셋 씩 골라 가지시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