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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123화 (123/166)

〈 123화 〉 간단한 임무

* * *

이튿날. 나는 이모와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세제르 자작은 몸이 안 좋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사촌 누이들은 졸리다며 나오지 않았다.

이 놈의 집구석은 왜 이래?

여하튼 아침식사는 이모가 호언장담한대로 꽤 훌륭했다.

백작으로서 어지간한 진미는 다 먹어본 내 입맛에도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특히 탱글탱글한 수란이 일품이었다.

노른자는 아무런 간을 하지 않았는데도 커스터드푸딩 맛이 났다.

“요리사 실력이 상당하군요.”

“내가 직접 왕도에서 데려왔어요.”

이모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탁자가 퉁하고 흔들렸다. 거기에 내 시선이 사로잡혔다.

이모는 테이블 위에 가슴을 올려둔 채로 내게 빵을 건넸다.

“수란이 마음에 드셨다면 더 내오게 할까요?”

“그래주시면 고맙겠군요. 그 전에 요리사에게 요리에 대한 치사를 하고 싶은데요.”

“어쩜, 상냥하셔라.”

이모는 종을 울려 요리사를 불렀다.

그는 긴 요리 모자를 쓴 채로 급히 달려왔다.

나이는 이모와 비슷한 정도로 사십대 정도인가. 수염을 단정하게 깎아서 깔끔한 인상.

젊었을 적에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것 같다.

“존귀하신 레시아르 백작 각하를 뵙게 되어...”

“그런 말은 됐고. 네가 한 요리가 내 입맛에 맞아 적당한 치사를 하려고 한다.”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나는 뒤에 선 파샨에게 손짓을 보냈다.

파샨은 샤샥 잽싸게 금화를 넣은 비단주머니를 만들어서 요리사의 발치에 던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요리사는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는 물러갔다.

뒤로 종종걸음을 하는 와중에 잠깐 고개를 들었나 싶었는데, 이모와 서로 시선이 맞은 듯 했다.

아니. 분명히 시선이 맞았다.

그건 일개 요리사 따위가 저택의 안주인에게 보내는 시선이 아니었다.

이모의 입가에 띄워진 것도 마찬가지로 요리사 따위에게 보내는 미소가 아니었다.

재밌군. 재밌어.

저택에 남자를 두니까 이런 불상사가 생긴단 말이지.

세제르 자작이 좀 불쌍해지긴 하지만, 내가 그를 위해서 나서줄 이유도 없지.

나는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이모는 저택 바깥까지 따라 나왔다.

“이모님. 저는 이만 나가서 하이브를 찾아보겠습니다.”

“차라도 드시고 가지요.”

“시간이 없어서요. 서두르는 게 이모님께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다는 말 밖에 해줄 게 없네요. 잘 부탁할게요, 조카님.”

이모는 내게 세제르 령의 지도를 넘겨주었다.

나는 그걸 받고는 파샨과 함께 고타마에 올랐다.

“가자.”

“예! 도련님!”

파샨은 고삐를 세게 낚아챘다.

고타마는 다리로 지면을 박차며 단숨에 날아올랐다. 어마어마한 각력이었다.

“잘 부탁할게요, 조카님!”

아래서 이모가 손을 모아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불륜과는 별개로 영지에 대한 사랑은 있다는 거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세제르 자작 대신 영지를 돌면서 마수 사냥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여하튼 기류에 오르는 것은 금방이었다.

고타마는 날개를 양쪽으로 쫙 펼친 채 바람에 몸을 맡겼다.

파샨은 한참 고타마를 조종하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

“응? 왜?”

“세제르 자작 부인은 좀 수상합니다.”

“그렇긴 하지. 아마 요리사랑 불륜 중일 거야.”

“자작 부인을 믿으십니까?”

“그다지 믿진 않아. 하지만 이모니까. 게다가 그녀가 불륜 중인 건 나랑은 상관없고.”

“그래도... 여기 오래 있으면 정오의 그림자가 도련님의 거취를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알아. 그러니까 오늘만 찾아보고, 없으면 내일 출발할 거야.”

내가 단정적인 어조로 말하자 파샨도 입을 다물었다.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이모가 나를 배신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미 판세는 뒤집혔는데, 중앙에 달라붙는 것처럼 멍청한 짓을 할 까닭이 없으니.

게다가 나는 강독에 당했다가 회복한 적이 있으니 강독도 무용하다는 걸 이모도 알겠지.

이번의 일은 간단하게 해치우고 떠나면 된다.

우리는 고타마를 타고 계속 날았다.

세제르 령은 자작령치고는 상당히 넓었다. 아마 농지가 적고 산지가 많아서인 듯한데.

특히 메네스 산맥 근처는 지형이 지독할 정도로 복잡했다.

이모가 말한 대로 계곡과 골짜기가 수백 갈래로 갈라져서, 걸어서는 도저히 하이브의 은신처를 파악할 수가 없었을 거다.

사람을 몸에 태우고 나는 마수는 귀하지.

고타마, 이 녀석이 보물이다.

내가 몸을 쓰다듬자 고타마는 질색을 하며 날개를 흔들었다.

“이런 버릇없는 놈.”

고타마는 코웃음을 치고는 훌훌 날개를 털었다.

“어... 도련님! 저깁니다!”

파샨이 가리킨 손끝을 따라가 보니 마수들이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

“저 쪽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아니, 저기서 갈라지는 건가?”

“일단 저기부터 가보겠습니다. 도련님. 꽉 잡아주세요. 타마야, 가자.”

고타마는 끼루룩 울고는 급강하를 시작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재밌어!

나는 신이 나서 좌우로 불길을 내질렀다.

“께에엥!”

마수들을 갑자기 떨어지는 불의 비에 우왕좌왕하다가 새까맣게 타죽었다.

털이 잔뜩 난 놈들이라 서로 불을 옮겨대다가 전멸한 것이다.

간만에 몰이사냥을 제대로 한 것 같아서 속이 다 시원하다.

“파샨! 이번엔 저기로!”

“네! 도련님!”

파샨은 고삐를 홱 꺾었다.

고타마는 전투 중에는 군말 없이 내 지시를 들었다. 그녀의 날개 한 쪽이 접히면서 우리는 비스듬히 사선으로 날았다.

움푹 들어간 분지 지형에 딱 좋게 모여든 마수 놈들이 보인다.

나는 그들 무리의 가장자리를 둘러서 불을 질렀다.

“께엥! 께에엥!”

“껙! 껙! 껙!”

마수들은 불길을 피해 달리다가 저들끼리 부딪혀서 넘어졌다.

그리고는 공포 때문인지 서로 치고 박고 싸운다.

유혈극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이럴 땐 압도적인 화력으로 구워버리는 게 제 맛이지.

나는 손을 뻗어 불길을 휘어 감았다.

이내 화염의 반구가 그들을 단숨에 집어삼킨다.

수백에 달하는 마수가 한 번에 몰살당했다.

“좋아! 이대로 계속하자! 다음번은 저기!”

“도련님! 마수가 아니라 하이브를 찾으셔야 합니다!”

“아참.”

사냥이 재밌어서 깜빡할 뻔했다.

내 목표는 마수를 잡는 게 아니라 하이브를 찾는 거였다.

하이브를 찾지 않는다면 내가 떠난 후에도 계속 마수가 생산될 테니까.

“이쪽은 아닌 것 같으니까 저쪽으로 가보자.”

우리는 한동안 고타마를 타고 다니며 마수들의 자취를 쫓았다.

하지만 산맥 어딜 찍어도 마수들로 넘쳐나서 하이브가 어디 숨어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소모한 마력은 크진 않지만, 계속 하늘에서 빙빙 날다보니 마음이 지친다.

괜히 배도 고프고.

“파샨. 어디 마을에 들러서 점심이라도 먹고 하자.”

“네. 도련님. 아까 산등성이 쪽에서 작은 화전촌을 봤습니다.”

“화전민은 어딜 가나 있군그래.”

“화전촌에는 세금이 없으니까요.”

가정맹어호(????虎).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던가.

이 세계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어딜 가나 서민들은 세금으로 죽어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가끔 부인이나 딸을 빼앗기기는 해도, 세율은 낮은 레시아르 령은 천국이 아닐까?

여하튼 우리는 화전촌으로 날아갔다.

커다란 마수가 날아오자, 화전촌에서는 비상이 났다.

“마수다! 마수가 날아온다!”

고타마를 향해서 활을 겨누고, 도끼를 들고...

하는 녀석은 당연히도 없었다.

마력이 없는 화전민들로서는 그저 땅에 머리를 묻고, 나와 내 가족 아닌 누군가의 희생으로 마수의 배가 부르기를 비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나와 파샨은 고타마가 착륙하고 나서 훌쩍 뛰어내렸다.

마수 위에서 사람이 내려오자, 화전민들은 얼떨떨한 얼굴을 들었다.

“뉘, 뉘신지...”

“귀족이시다.”

파샨은 그렇게만 밝혔다.

그래도 화전민들은 바로 얼굴을 땅에 박았다.

“고귀하신 귀족 나으리!”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힐끗 둘러봤지만 안을만한 여자는 없었다.

파샨이 귀족으로 보일만큼 다들 털이 덥수룩한 수인이었으니까.

파샨은 수인들에게 은화 세 닢을 튕겨주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할 것이다. 너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식기와 가장 훌륭한 음식들을 내어 와.”

아마 촌장인 듯싶은 남자가 조심스레 은화를 받고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나와 파샨을 그의 집으로 모셔갔다.

이 마을에서는 가장 좋은 집이겠지만, 그래봐야 좁은 통나무집이다.

내가 식탁에 파샨과 마주하고 앉자, 촌장의 나이 든 부인과 딸들이 접시를 날랐다.

손이 심심해서 여자들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장녀로 보이는 여자는 골반이 커서 만지는 재미가 있었다. 차녀는 엉덩이가 좀 작군. 삼녀는 살집이 있어서 괜찮은데.

마음껏 딸들을 희롱해도 화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 씨앗을 받아 동혈의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적당히 엉덩이를 주무르다 식사를 시작했다.

거친 빵에 수프. 아침에 먹은 식사와 비교하는 게 부끄러울 수준이다.

그래도 못 먹을 수준은 아니라 약간 들기로 했다.

파샨은 수저를 뜨다 말고 촌장에게 물었다.

“마수들을 보지 못했나?”

“작년 겨울만 해도 없었는데, 올해 겨울에는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나리.”

“근처에 특히 더 마수가 많다든가 하는 곳 없었어?”

“나으리. 사실은...”

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엉덩이가 작은 차녀였다.

촌장은 차녀가 허락도 받지 않고 대답한 것에 대경실색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손을 흔들어 그를 멈추었다.

“계속 말해봐.”

“예. 귀족님. 사실은 큼바위 밑에서 마수들이 계속 올라오는 걸 봤어요.”

“큼바위?”

“저 밑에 있는 큰 바위인데, 저희들은 큼바위라고 불러요. 원래는 그 위에서 춤도 추고 놀았는데, 갑자기 마수들이 나타나서 요즘은 가보지도 못했어요.”

나는 식기를 밀어놓고 일어섰다.

잘하면 점심은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서 먹을 수 있겠는데.

#

넓적한 바위.

정말 커다래서 마을처녀들이 올라가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다.

그 바위의 그늘 아래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뱀처럼 생긴 마수 한 마리가 땅 밑에서 올라와 혀를 날름거렸다.

“저래서 위에서는 안 보였구먼.”

“도련님.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니.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지.”

나는 뱀 마수를 밟아 으스러뜨리고는 구멍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마력을 휘감아 지하로 화염을 뿜어낸다.

불길은 지하 통로를 따라 내달렸다.

화르륵!

저 멀리서 불길이 서너 개 치솟았다.

숨구멍이 몇 개씩이나 있었던 모양이지만 이제야 의미 없지.

파샨은 불이 다 식으면 아래 있는 마석을 주워서 저택으로 오라고 화전민들에게 명령했다.

마석을 주워온 만큼 산 밑의 농지를 나눠주겠다고 하니 다들 열의를 밝혔다.

들고 도망갈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어차피 하이브의 마석만 제외하면 내게는 용돈 수준이니까 크게 상관은 없다.

하이브의 마석은 이들이 처분할 수 있을 리가 없고.

이렇게 일을 간단하게 끝냈다.

하지만 저택에 돌아가도 잔뜩 기대한 점심을 먹지는 못했다.

세제르 자작이 죽어있었던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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