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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영주의 귀축성행기-154화 (154/166)

〈 154화 〉 대운하

* * *

어디선가 나타난 족제비 수인은 고기 파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꾀죄죄한 몰골을 보아하니 이걸 사 먹을 돈은 없을 것 같고.상인이 아는 사람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가! 가라고! 이 도둑년아!”

상인은 윽박을 지르면서 족제비 수인을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움직이질 않았다.

“손님들.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만...”

“그래, 뭐.”

“정말 감사합니다요... 이리 와, 이 년아! 저번에는 좋게 보내줬더니 내가 호구로 보였냐!”

상인은 나와 파샨에게 허리를 굽실거리고는 칼을 들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족제비 수인 여자는 후다닥 달아나버렸다.

상인은 쫓아가지는 못하고 발만 구르다가 다시 돌아왔다.

나는 족제비 수인이 도망간 쪽을 눈여겨보고 물었다.

“듣자하니 저 여자가 저번에 뭘 훔쳐간 모양이지?”

“닭을 한 마리 사다가 묶어 놓은 적이 있었는데 잠깐 눈 뗀 사이에 저 년이 물고 달아나지 뭡니까.”

“물고 달아나?”

“족제비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슬그머니 물고 도망가는 건 제일입지요.”

상인은 투덜거리다가 내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다물고는 고기파이를 잘라서 내왔다.

어떻게 보관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러 조각으로 나뉜 고기파이 안쪽에서는 뜨거운 김이 나왔다.

“이거 맛있겠는데. 파샨. 넌 아까 생선포 먹었으니까 안 먹어도 되지?”

“아, 안 먹어도... 되... 됩니...”

“농담이야. 같이 먹자.”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고기 파이를 절반씩 나누어 먹었다.

저택에서 먹는 식사와 비교할 것은 아니었지만, 맥주와 양파보다는 훨씬 나았다.

“맛이 괜찮은데. 여봐. 이거 하나 더 있나?”

“예이.”

“포장해줘.”

“알겠습니다요.”

나는 파샨에게 고기파이를 들게 하고 이동마차를 나왔다.

파샨은 좀 걷다가 내게 속삭였다.

“도련님. 아까 그 여자가 따라오고 있습니다.”

“알아.”

“슥삭해버릴까요?”

“아니. 좀 두고 보자.”

족제비 여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우리를 따라왔다.

나는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걸었다.

수십만 명이 모였다고는 해도, 모든 곳에 사람들이 넘쳐흐르는 것은 아니다.

라울 강 남단 쪽에는 아직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아서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시야 내에서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게 될 때 즈음.

그제야 족제비 수인은 겨우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모습은 꽤나 흉측했다.

모피에는 흙과 오물이 묻어있고, 입가에는 쓰레기 찌꺼기가 붙어있다.

그럼에도 족제비가 으레 그렇듯이 귀엽게 생기기는 했지만, 그 눈동자에 비치는 식욕과 독기 때문에 귀염상이 영 바래보였다.

“쉐에엑!”

족제비 수인은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이빨이 꽤 날카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다.

애초에 마력도 거의 없는 수인 여자.

나는 물론이고 파샨에게도 상처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족제비 수인에게는 격의 차이보다도 파샨의 손에 들린 고기파이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으며 파샨에게 외쳤다.

“줘... 줘! 그거 줘!”

“이건 도련님 거야, 이 족제비 년아!”

파샨이 코웃음을 치자, 족제비 수인은 소리를 지르며 파샨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파샨은 고기파이를 뒤로 빼고는 한 발로 족제비 수인의 다리를 걷어찼다.

“키악!”

족제비 수인은 땅바닥에 굴렀다.

파샨은 바로 그녀의 명치를 밟아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대로 발에 무게를 실으면 족제비 수인은 갈비뼈가 부러져 죽고 말 것이다.

“사... 살려... 미, 미안해...”

족제비 수인은 컥컥거리면서 빌었다.

파샨은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놔줘.”

“네. 도련님.”

파샨이 발을 떼자, 족제비 수인은 급히 기어서 도망쳤다.

“음...”

“도련님?”

“아냐. 저기 좀 앉아서 쉬자.”

나는 너른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고기파이를 꺼냈다.

파샨이 그것을 반으로 가르니 진한 육향이 새어나왔다.

스스슥.

풀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파샨은 여우 귀를 쫑긋거리다가 한쪽을 가리켰다.

과연. 족제비 수인은 그쪽 풀 밑에 숨어있었다.

한 번 매운 맛을 봤으니 덤벼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고기 냄새가 나니까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파샨과 고기 파이를 한 조각씩 나눠먹었다.

배를 채워서 그런지 이동 마차에서 먹을 때보다는 훨씬 맛이 덜했다.

“거기 족제비.”

“…….”

“이름이 뭐야?”

“…….”

“대답하기 싫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나는 고기 파이 한 조각을 뒤로 휙 던졌다.

족제비 수인은 달려와서 그걸 한 입에 낼름 받아먹었다.

녀석은 고기 파이를 찹찹찹 급하게 씹다가 켁켁하고 기침을 했다.

파샨은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지켜봤지만, 이 녀석도 조그마한 여우 수인일 적이 있었지.

나는 고기 파이를 한 조각 더 던졌다.

족제비 수인은 입 안에 든 것을 씹느라고 조금 몸이 둔해졌는지 이번에는 고기 파이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녀석은 땅에 떨어진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흙 알갱이가 묻은 고기 파이를 허겁지겁 먹었다.

그동안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수인들의 삶은 원래 이런 것이다.

번식력이 강해서 한 번에 자식을 여럿씩 낳지만 부양할 여력이 없다보니 자기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집을 떠나서 떠돌게 된다.

가뭄이나 전쟁이 몰아닥치면 이들의 인생은 더욱 고달파지게 된다.

그나마 이반 같이 적당히 나이 있는 수인 남자라면 일거리를 구하기도 쉽고, 조금 노력하면 추가 수당도 받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족제비 수인처럼 어린 수인 여자라면 일을 받는 것조차 마땅치 않을터.

이반의 손등에 있던 배식 도장이 이 족제비 수인에게서는 보이질 않는다.

배식을 받지 않는다는 건, 결국 여기 대운하 사업에서 맡은 일이 없다는 거겠지.

일거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너무 작고 또 여자라서 받아주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가진 돈은 여비로 다 써버렸고, 그렇다고 딱히 돌아갈 곳도 없으니 이 근처를 전전하면서 틈나는 대로 도둑질을 하면서 배를 채우고 있는 건가.

대충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족제비 수인이 내 쪽으로 조금 다가와서 한 마디를 했다.

“페렛.”

“응?”

“내 이름. 페렛.”

족제비 수인, 아니, 페렛은 그렇게 말하고는 얌전히 그 자리에 앉았다.

고기 파이 두 조각으로 길들여진 거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고기 파이를 담은 상자를 들어보았다.

이럭저럭 먹다보니 안에 든 것은 두 조각 정도였다.

“이거, 줄까?”

“응!”

“그럼 넌 이 고기 파이의 대가로 뭘 줄 수 있어?”

내 물음에 페렛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품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이거...”

온갖 잡동사니가 든 주머니였다.

거의 가치가 없는 동전이 몇 푼, 말린 풀잎, 손톱, 머리카락을 묶은 것, 정체 모를 쓰레기들이 한 가득이었다.

"이건 필요가 없는데."

"그럼..."

"다른 거 없어? 고기 파이 먹고 싶은 거 아니야?"

"먹고 싶어!"

페렛은 내가 고기 파이를 들었다 놨다 할 때마다 눈알을 굴리면서 침을 줄줄 흘렸다.

파샨은 얼굴을 찡그리고 호통을 쳤다.

"도련님을 대할 때는 존댓말을 써!"

"존댓말?"

"잘 모르겠으면 요자를 붙이라고!"

"알겠어... 요."

페렛은 자기를 걷어찬 파샨이 무서운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역시 고기 파이가 먹고 싶은지 다시 앞으로 나왔다.

"나... 그거 먹고 싶어... 요. 근데 가진 거 그게 다... 요."

"팔 게 하나 있잖아."

"팔 거? 없는데... 요."

"너 자신 말이야."

내 말에 페렛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살 거야... 요?"

"고기 파이 두 조각에 판다면."

"팔게!... 요! 팔게!"

페렛은 무르기 없다는 듯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달려들었다.

파샨은 그녀를 다시 걷어차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말라고 제지했다.

페렛은 내 손에서 고기 파이를 받아가서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처음으로 웃음기를 보였다.

"나를 산다는 사람 처음이야... 요. 가슴도 작고 키도 작아서 아무도 안 샀는데... 요."

놀라운 일도 아니다.

수인 남자들은 아이를 순풍순풍 낳을 수 있는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을 선호하니까.

그리고 그런 육감적인 몸매의 수인 여성들은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로지랑 아말린은 맨날 산다는 사람이 줄 섰는데... 요. 나는 아무도 안 사줘서 부러워서... 요. 그래도 나리가 고기 파이에 사줬으니까 로지랑 아말린도 나를 부러워할 거야... 요."

페렛은 금세 고기 파이 두 조각을 해치우고는 아쉽다는 듯이 손바닥을 핥으며 그렇게 말했다.

"로지, 아말린? 네 친구야?"

"나한테 가끔 밥 먹여주는 사람. 저기 개울 옆에 빨간색 천막에 가면 있어... 요. 거기 가... 요."

페렛은 내 팔을 잡아당겼다.

고기 파이를 먹었으니 자기 몸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페렛의 몸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인은 내 취향이 아닌 데다가, 흙과 쓰레기 사이에서 한참 뒹군 듯한 페렛의 몸에서는 정말 악취가 났다.

그렇지만 페렛을 안기보다도 이 곳에서 생활하는 수인 여자들의 생활이 궁금해서, 나는 일단 발을 옮기기로 했다.

개울 옆의 빨간색 천막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마침내 도착한 천막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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