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아카벌레 3
* * *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TV를 바라보니 로제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듯한 풍경이 보였다.
“벌써 3교시인가.”
게임을 하다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 같았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자 몸이 부유감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로제의 곁으로 이동했다.
역시 이런 메커니즘인 건가.
“아! 오셨네요!”
혼자서 멀찍이 떨어져 아카데미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던 로제가 반갑다는 듯 나를 맞이했다.
“네가 불렀으니 말이다. 벌써 3교시인가?”
“네! 대련 시간이에요. 대련은 아카데미 외부에 위치한 대련장에서 따로 실시하고 있어요.”
“그래? 안내해라.”
“네!”
대련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대련장은 사면에 비석이 박혀있는 형태였는데 익숙한 형태였다.
“저건, 프리즘 스톤인가?”
가챠할 때 쓰던 게임의 재화 [프리즘 스톤] 그 돌들 가운데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박혀있었다.
“네! 저 프리즘 스톤에 적혀있는 룬 문자가 죽음에 이르는 충격은 한 개당 한 번씩 흡수 한다고 들었어요.”
아티팩트 같은건가. 역시 소환사 아카데미라 그런지 본격적이다.
“모두들 모였나!”
학생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로제가 ‘교관님이에요!’ 라고 속삭여 주었다.
교관은 양 머리에 늑대귀가 달린 수인이었다.
갈색빛 피부와 바지 뒤에서 붕붕 진자운동을 하고 있는 꼬리, 수인은 처음 보는 것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진짜 수인을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3교시 수업 시작이다. 로제 폰 유글리아!”
“네넵!”
갑작스러운 호명에 로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소환수를 소환 하는데 성공했다고 들었다.”
“네! 맞습니다!”
“지금까지 소환수가 없어 수업에 참여를 못했지? 오늘부터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네!”
설마 지금까지 소환수가 없다는 이유로 수업도 못들었던 건가.
그렇다는 말은 로제에게 이번 대련이 첫 실전이나 다름 없다는 소리였다.
이를 증명하듯 로제의 꽉 쥔 주먹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로제.”
“네, 넷?!”
“긴장하지 마라. 내가 이기지 못할 놈은 없다.”
“아…… 네!”
비록 아직 이 몸뚱아리는 1성이었지만 충분한 경험치와 아이템을 쳐바르면 충분히 세계관 최강자가 될 수 있는 몸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이런 뉴비들한테 진다고 생각하는 것 부터가 어불성설이지.
“당신이 소문이 자자한 소환수인가 보군?”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수인교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귀족이라고 들었다. 재미있는 모습을 기대해도 되겠지?”
벌써 행정실에서 기입했던 정보가 퍼진 것일까. 생각보다 빠르다 생각했다.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내 대답에 수인교관이 씨익 웃는다.
“좋군. 로제, 소환수를 소환한지 첫 날이라면 네게 대련상대 선택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네, 알고있어요!”
“네 선택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게 소환수의 등급과 실력지표다.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저는, 엘레나양을 지목하겠어요.”
로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학생들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등엘프가 엘레나양을?’
‘분수를 모르는거 아니야?’
‘재미있겠네, 제대로 밟힐 것 같은데’
그래, 더 떠들어봐라. 너희가 떠드는 만큼, 저 엘레나라는 엘프의 수치심은 더욱 커질테니까.
“로제, 엘레나를 대련 상대로 지목한다는 건 진심이겠지?”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되묻는 교관. 로제는 굳은 눈동자로 교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데이지 엘레나!”
“예!”
교관의 부름에 당당히 걸어나오는 엘레나. 그녀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 서려있다.
“소환수와 함께 제대로 밟아드리죠.”
“더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거에요. 엘레나양.”
로제가 받아 칠 것이라고 생각 하지 못한 것일까? 엘레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기싸움은 거기까지 하고, 두 사람 모두 소환수와 함께 대련장 위로 올라가라.”
나와 엘레나는 대련장의 왼편, 엘레나와 물의 정령은 오른편에 섰다.
“그럼 두 소환사 준비.”
교관은 그렇게 말하곤 숨을 깊게 들이쉰다.
잠깐, 저 모션은 분명…….
“로제, 실례하마.”
“네?”
나는 로제의 귀를 막아주었다.
그와 동시에 대련장을 덮치는 커다란 소리.
“시작!!!!!!!”
교관이 내짖은 피어와 동시에 대련이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음파공격에 귀를 부여잡고는 교관을 노려보고 있는 엘레나.
사전 경고 없이 피어를 내지른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잠깐 교관──”
[스킬 : 폭발적인 속도]
다리 근육이 부풀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땅을 박차고 교관에게 궁시렁 거리고 있는 녀석에게 달려든다.
“운디네!”
엘레나의 외침과 동시에 물의 정령, 운디네가 [스킬 : 물의 장벽]을 발동했다.
한 장, 두 장, 비로소 세 장째에 닿고 나서야 멈추는 발차기.
곧 바로 [스킬 : 아쿠아 에로우]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운디네가 사용하는 아쿠아 에로우는 직선으로 한정되지.”
몸을 숙이자 머리 위로 아쿠아 에로우가 지나간다.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운디네!”
운디네가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마 통째로 나를 삼켜 익사시키려는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군.”
이딴게, 이딴게 아카데미 상위권의 실력이라고?
“로제, 변신하겠다.”
“네?! 지금요?!”
내 발언에 크게 당황하는 로제.
“변신 마법을 펼치면 바로 버프들을 부탁하마.”
“네!”
소환사의 주된 포지션이 바로 그것이다. 소환수의 보조.
“운디네! 삼키세요!”
“응!”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운디네가 나를 삼킨다. 그야말로 물감옥에 같힌 상황.
“엘레나님의 물 감옥이야!”
“저거에 걸리면 꼼짝을 못하지!”
“엘레나님 파이팅!”
아무래도 관중들은 모두 내 패배를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지금의 모습이라면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고 말겠지. 하지만, 이것은 내 본모습이 아니다.
뻐끔뻐끔.
아마 운디네에게는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변신.
화려한 불빛이 내 몸을 감싼다. 빛의 형태로 변한 내 몸은 서서히 변해가며 한 마리의 곤충으로 바뀐다.
3쌍의 다리, 단단하고 검은 키틴질의 껍질, 기다린 더듬이와 움직일 수 있는 날개까지.
바퀴벌레 폼. 변신이다.
“저, 저게 뭐야아아아!!!!”
“꺄아아아악!!!!!”
물 속에 있음에도 관중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아, 즐겁다. 내 모습을 보고 공포에 떠는 인간들을 보니 너무나도 즐겁다.
악마가 되면서 취향도 바뀐 걸까? 너무 행복해서 더듬이가 떨릴 지경이다.
“흐아악?! 이게 뭐야아아아앗!!!!”
나를 가두고 있던 운디네의 몸이 초진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르르르르르르.
이내 나를 뱉어 버리며 뒤로 도망치는 운디네.
“저딴걸 품고 있으라니! 난 못해 엘레나!”
“어찌 저런 끔찍한…… 저런 끔찍한 몰골은 처음이에요!”
경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엘레나.
아니,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더러워! 끔찍해! 그야말로 괴물!”
아니.
“당신 같은 끔찍하고 못생긴 괴물에겐 질 수 없어요!”
좆같네?
“운디네! 사자심을 발동시켜 줄게요!”
엘레나가 운디네를 향해 지팡이를 뻗으며 [보조스킬 : 사자심]을 발동했다.
일정수치 이하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고 정신력을 올려주는 스킬.
효과가 있었는지 운디네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응! 엘레나! 할 수 있어!”
“로제. 사전에 말해놓았던 그것을.”
뒤를 돌아보고 있자 양쪽 눈을 가리고 있던 로제가 대답했다.
“네! 바로 걸게요!”
[보조마법 : 헤이스트]
[보조마법 : 투명화]
로제의 마법이 내 몸에 깃들었다. 아마 녀석들의 눈에는 더 이상 내가 보이지 않을터. 녀석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운디네! 수증기를 퍼뜨리세요!”
엘레나의 말과 동시에 운디네가 양팔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옅은 안개가 주변에 끼기 시작했다.
오, 운디네의 물을 조종한다는 설정이 이렇게 사용되는 건가.
“찾았다! 운디네! 아쿠아 에로우!”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오는 아쿠아 에로우를 재빨리 뒤로 움직이며 피한다.
“다크사이트를 쓴 건 큰 실수였어요! 당신의 외형만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겁먹지 않으니까요!”
몸에 수증기들이 몸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속도를 늦추려는 모양이었다.
“그레고리님!”
내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눈을 가리고 있던 로제가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이정도는 위기 축에도 들지 않은데 말이지.
“로제, 잠깐 눈을 감고 있어라.”
“네? 알겠어요!”
나를 믿고 눈을 감는 로제, 그러자 엘레나가 로제를 가리키며 외쳤다.
“운디네! 로제를 공격해요! 소환사만 무력화해도 이길 수 있어요!”
너희가 그렇게 나올 거라고 알고 있었지.
엘레나를 향해 날아가는 아쿠아 에로우를 등판으로 막는다.
수압이 강한 호스로 등을 두들겨 맞는 느낌. 하지만 큰 고통은 없다.
“계속 눈을 감고 있어라 로제. 슬슬 끝낼터이니.”
“네!”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이 스킬은 내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스킬이다. 그리고 방금 전 내 [스킬 : 폭발적인 속도]는 운디네에게 막혔지.
하지만, 그건 내가 두 발로 달려갔을 때의 이야기였다.
나는 몸을 바닥에 붙였다. 비로소 땅에 붙은 3쌍의 다리가 즐거운 듯 부르르 떤다.
그대로 나는 하나의 탄환이 되어 엘리나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우, 운디네!”
보이지 않는 형체가 자신을 향해 기어오는 풍경은 어떨까? 분명 괴기하고 무섭겠지.
하지만, 그 정도로는 두 녀석을 쓰러뜨리기엔 부족하다.
“운디네 막아요!”
“응!”
엘리나를 향한 경로에 5장의 물의 방벽이 세워진다. 하지만, 땅에 붙어서 가니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우, 운디네!”
“엘레나를 위해서라면!”
엘레나의 앞에 서 양 팔을 벌리는 운디네, 아마 몸으로 막은 뒤 나를 삼킬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지?
나는 직접 공격할 생각이 없는데.
[스킬 : 날개 펼치기]
팟 파르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날아오른다.
다크사이트는 스킬 발동과 동시에 해제한 상황.
그야말로 눈 앞에서 인간만한 바퀴벌레가 날개를 펼치며 푸드덕 거리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 아.”
“엘리나? 엘리나!”
내 모습을 본 엘리나의 눈동자가 돌며 흰자로 바뀐다. 그리고 털썩 쓰러지는 엘리나.
운디네는 재빨리 쓰러지는 엘리나를 붙잡고는 흔들기 시작한다.
“엘리나! 엘리나!”
녀석들의 패인은 간단했다.
첫째. 상대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했다는 것이고.
둘째. 엘레나는 자신의 담력을 과신한 나머지 본인에게 사자심을 걸지 않았다.
로제는 그냥 내 모습을 보고서 기절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코앞에서 날개를 펼친다? 이건 어느 누가 와도 버티지 못할 멘탈 데미지를 입을 것이다.
“변신.”
다시 몸을 인간폼으로 변신 시키고 뒤를 돌아본다.
아직까지 내 말을 듣고 따라준 로제가 눈을 가리고 있었다.
“로제, 이제 눈을 떠도 된다.”
“네!”
가린 눈을 뜨는 로제. 앞에 엘레나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환하게 웃는다.
“그레고리님! 이겼어요! 우리가 이겼어요!”
제자리에서 방방 뛸 만큼 좋을 걸까.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승자! 로제 폰 유글리아와 그 소환수, 그레고리 존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니 몇몇 학생들이 혼절하거나 벌벌 떨고 있었다.
교관마저 멘탈 데미지가 상당했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로제.”
“네?”
헤실헤실 웃으며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녀석. 나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정도로 좋아하지 말아라.”
“네!”
그리고 나는 쓰러진 엘레나와 운디네에게 다가갔다.
운디네가 나를 노려본다.
“왜 온거야! 우리를 놀리러 온거야?!”
뭐, 원래라면 여기서 좋은 승부였다고 웃어주고 그래야겠지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못됐다.
“맞아. 너희 놀리러 왔어.”
내가 오기 전까지 로제를 괴롭히던 녀석들이다. 온정을 배풀필요는 없지.
“너무 상심하지마라.”
일단 대충 위로해주는 척을하고.
“상대가 나이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어주고는 몸을 돌려 로제와 함께 무대를 퇴장한다.
“그레고리 존스!!!!!!!!!!!!!!!!!!”
내 뒤편에서 들려오는 운디네의 처절한 절규. 악마가 되어서 그런지 이것마저도 행복하다.
아, 상쾌해. 사이다 최고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