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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4화 (4/169)

〈 4화 〉 아카벌레 ­ 4

* * *

모든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본래 로제의 방으로 들어서려던 우리는 사감에 의해 막혔다.

“어…… 여기가 제 방인데요?”

“이제는 아닙니다.”

안경을 올리며 그렇게 말하는 사감. 이내 사감은 로제에게 카드 하나를 건내주며 말했다.

“13층. 오늘부터 로제님과 소환수, 그레고리 존스님이 머물 장소입니다.”

사감의 말을 들은 로제의 눈이 커졌다.

“네? 13층이요?”

“예. 방 안에 있는 개인 짐들은 모두 옮겨둔 상태이니 몸만 가시면 됩니다.”

“그레고리님! 13층이래요! 13층! 13층이면 왕족님들이나 고위층 소환수를 가진 사람들만 사용하는 층이라구요!”

오, 아카데미에 측에서 이렇게 나오는 건가?

소환수의 종족과 작위에 따라 방이 달라지는 소환사 아카데미의 시스템.

“들뜨지 마라 로제. 당연한 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좋은 방을 준다는데 그 누가 싫어할까?

아무래도 [대공]이라는 내 작위가 방을 바꾸게끔 만든 것 같았다.

“아, 그리고 행정실의 니자젤님께서 두 분을 13층의 방에서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옮겨야 하는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알겠다. 로제, 가자.”

“네!”

원래의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13층으로 이동했다.

판타지 세계관이면서 마도공학을 들먹이며 과학까지 존재하는 세계라니, 그야말로 편리한 세계관이었다.

“지, 진짜 저희가 여기서 지내는 게 맞죠?”

“이 정도로 놀라지 마라. 내겐 당연한 거니까.”

원래 원룸에 살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내 머릿속의 대공님이 이렇게 말하라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니자젤이 보였다.

“오셨군요.”

“아직 집주인도 들어가보지 못한 방에 먼저 들어가 있는 손님이라니, 웃기는 군.”

나는 그렇게 말하곤 로제와 함께 니자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왜 나를 째려보고 있는거지?

“그레고리 존스 대공?”

아, 무서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왜 부르지.”

“그레고리 존스 대공께선 분명 입학서류에 대공이라 적어주셨죠.”

“맞다.”

“마침 저희 교직원 분들 중에 악마를 다루시는 분이 있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레고리 대공을 아느냐고 말이죠.”

“그게 어쨌다는거지?”

여기서 갑자기 이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지?

“그 악마가 말하길 현재 지옥에 존재하는 대공은 총 3명이라고 했고 그 중 그레고리 존스라는 이름을 가진 대공은 없다더군요.”

아, 그렇게 나오는 건가.

피식.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뭐가 웃긴거죠?”

“그야 웃을 수 밖에.”

아, 니자젤, 메인 스토리때부터 등장하던 NPC. 하지만 여전히 나보다 이 세계에 대해 모르고 있다.

“네가 물어보았다는 악마는 순위에도 들지 못한 소악마겠지?”

“그, 그렇습니다만?”

말을 많이 하려니 목에 갈증이 느껴졌다. 마침 거실에 미니 바(bar)가 있기에 대충 고풍스러워 보이는 병 하나를 꺼내 잔에 따라 입을 축였다.

음, 나쁘지 않네.

“대공의 이름은 가볍지 않다.”

그게 바로 이 소환사 아카데미의 설정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옥의 대공은 총 4명. 그 중 알려진 것이 3명일 뿐이다.

“마계가 얼마나 넓을 것이라 생각하지? 내가 관리하는 땅은? 그 악마가 모든 마계를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 그게……!”

“뭐,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서류에 적어도 별 일이 없지 않았는가.”

“당신이 어떤 사술을 썼을 지──!”

“아카데미의 보안이 겨우 그 정도라는 것을 인정하는 건가?”

내 말을 들은 니자젤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든다.

“그렇게 증거가 찾고 싶다면 네가 직접 찾아라. 굳이 내가 찾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군. 네가 하는 말은 모두 추론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에겐 증거가 뚜렷하게 보인다. 로제에게도 말이다.

바로 상태창을 외치면 떠오르는 이 시스템창.

[마계의 대공, 그레고리 존스]

[★☆☆☆☆☆☆☆☆☆]

세상 그 자체인 이 창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고위악마에게 물어보던지 해라. 방금도 말했다시피 내가 증명해야 하는 건 서류 작성으로 끝났다.”

축객령이었다. 이만 이 방에서 나가라는.

내 말을 들은 니자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리고 나가기 전, 갑자기 뒤를 돌아선 니자젤이 외쳤다.

“결과 확인 후, 만약 거짓을 말하시는 거라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겁니다!”

“그러던가.”

쿵! 하고 문을 크게 닫으며 방을 나가는 니자젤.

나는 여유롭게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로제의 건너편에 앉았다.

“저…… 그레고리님 니자젤 선생님은 원래 저런 분이 아니에요. 항상 따돌림 당하던 저도 따로 챙겨주시고…….”

“알고 있다.”

로제가 용사의 후손이라는 건 니자젤도 알고 있을테니.

아마 니자젤의 눈에는 로제가 조카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그나저나 지금 네가 니자젤을 걱정할 때가 아닐텐데?”

“네?! 제, 제가요?”

갑자기 본인의 이야기가 나와 당황하는 로제.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특훈이다. 내일까지 제대로 된 소환사로 만들어주지.”

* * *

“좋아. 준비는 됐나.”

“…네! 준비 만전이에요!”

“좋다. 이번에는 좀 버텨보도록.”

“네!”

우렁찬 대답과 동시에 로제가 고개를 들어 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으으읏! 으윽! 캬아앗!”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레고리님은 너무 무섭게 생겼……크읏!”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눈을 감고 싸울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건 그레고리님의 말이 맞지만…… 더 이상은 무리에요!”

“그래, 이번에는 꽤 오래 버텼군.”

나는 그렇게 말하며 변신폼을 해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기절은 안 하겠지.”

“네! 맞아요. 보다보니 귀여운 점이 있는 것 같……진않네요. 아직까지는.”

확실히, 나라도 바퀴벌레에서 귀여운 점을 찾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거로 하지.”

“아니에요. 소환사로써 당연한거죠.”

그런 녀석이 첫 만남부터 기절을 했느냐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후…… 너무 힘들었어요. 잠시 흡연을 해도 될까요?”

“흡연?”

엘프가 담배도 폈었나? 아니 것보다, 이 녀석 학생 아니야?

내 얼굴을 본 로제가 아하하! 하고 멋쩍은 듯 웃는다.

“담배……라기 보다는 약이랄까요.”

그렇게 말하며 허벅지의 홀스터에서 꺼낸 것은 예술품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 파이프담배였다.

“사실 제 조상님이 혼혈이시라 그런지 잔병같은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보니 고향에서 보내주신 약을 이렇게 섭취하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비닐팩에 담긴 약초 봉투였다.

잠깐, 저건 뭔가 위험하게 생겼는데.

“……생긴 게 좀 위험하게 생긴 것 같군.”

아니, 누가봐도 저건 그거잖아.

내 표정을 봤는지 손을 휘젓는 로제

“잠깐만요!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거에요? 이건 절대 이상한게 아니라 약초라구요. 약초! 진짜아…….”

그렇게 말하곤 침울한 표정으로 파이프에 약초를 넣어 재워놓는 로제. 이내 마법으로 손가락에 불을 피어오르게 한 뒤 파이프에 불을 붙힌다.

"푸우! 보셨죠! 이상한 냄새도 안나잖아요?"

“흠, 실내흡연을 해도 되나?”

“약초라 문제 없어요. 냄새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요.”

파하~ 하고 로제의 입에서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느껴지는 향기는 은은한 허브와 진한 꽃 향기, 그리고 약한 약재의 냄새였다.

확실히, 나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걸 안 펴주면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살이 나기 시작하면서 꽤 위험해지거든요.”

뻐끔뻐끔. 파이프를 빠는 로제. 이내 거울을 바라보던 로제의 얼굴이 굳는다.

"흐아악!! 염색이 또 빠졌어!"

그렇게 말하며 바라보는 것은 본인의 정수리. 자세히 살펴보니 뿌리 부분이 검게 물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뭐냐, 그 머리는."

뿌리가 새까만 엘프? 잠깐만, 염색? 염색이라고?

"너…… 그 금발은 염색이었던 거냐?"

순수해 보였던 엘프 소환사가 금발 염색에 담배까지 피는 양아치였다니.

"설마 피어싱이 있다거나 어딘가에 문신이 있는 건 아니겠지?"

"네? 어, 없어요! 그런 거 없다고요! 사람을 대체 어떻게 보시는 거에요?!"

"금발 염색 꼴초 엘프."

"그건 너무하잖아요!"

그렇게 외치고는 울상을 짓는 로제.

"타 종족과의 혼혈이란게 그렇잖아요. 두 종족의 특성이 유전되는 거.저는 인간 쪽 조상님의 유전자 때문인지 태어날 때 부터 흑발이었거든요. 그래서 항상 염색을 하고 있어요.”

흑발 엘프는 이상하니까요. 라고 말하며 웃는 로제.

담배를 모두 폈는지 파이프를 빈 통에 턴 로제는 창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자~ 약도 먹었고 방도 옮겼으니 이제 짐 정리를 해야겠네요!”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지.”

“예?”

고개를 휙 돌리며 나를 바라보는 로제.

“뭐지? 내게 일이라도 시킬 셈이냐?”

“아, 아니요! 그, 그건 아니지만!”

로제의 반응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심심하면 나오도록하마. 내 방은 어디지?”

“어…… 글쌔요?”

“그럼 저 방을 쓰도록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두 번째로 큰 방을 가리켰다.

어차피 소환을 해제하면 익숙한 공간이 있는 내게 방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알아서 짐 정리를 하도록. 소환의 해제를 부탁하마.”

“네에…….”

침울해 하는 로제를 뒤로하고 나는 원룸으로 돌아왔다.

역시, 익숙한 곳이 최고다.

나는 재빨리 컴퓨터 의자에 앉아 내가 가지고 있던 소환사 아카데미 설정집 파일을 찾았다.

“흑발의 엘프…… 병…… 분명 어디서 봤었는데?”

고인물인 내가 익숙하다면 분명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

수 백장에 달하는 설정집이었지만 나는 천천히 설정집을 읽어나갔다.

“……찾았다.”

[인간과 엘프의 혼혈 하프엘프에 관하여]

라는 제목을 가진 항목. 나는 재빨리 그 안에 적힌 내용들을 탐독해 나갔다.

* * *

원룸 방 안에서 자고 있을 때 쯤. 띵동이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아침인가.”

TV 화면을 바라보니 아카데미에 갈 모든 준비를 마친 로제가 거울을 보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방 안에 있는 전신 거울로 내 모습을 바라본다. 방금 자고 일어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인터폰으로 걸어가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준비가 되면 나가도록 하지.”

[우와앗?! 방금 뭐지?! 귀, 귀신인가? 귀신이면 당장 나와!]

여전히 얼빵한 반응.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레고리다.”

[아,그레고리님? 안에서도 말씀하실 수 있으신 거예요?]

“소환수라면 아마 다 할 수 있을거다.”

게임 속에서도 대부분의 소환수들은 소환이 해제된 상태로도 소환사와 소통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이렇게 또 하나 배우네요. 아침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아서 불러봤어요.]

아카데미의 아침식사? 확실히,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알겠다. 금방 준비하고 그쪽으로 넘어가지.”

[네!]

준비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변신”

바퀴벌레로 변신.

“변신.”

그리고 다시 인간의 폼으로 돌아오면 완벽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역시 편리하네.”

그래도 가끔, 샤워는 하는 편이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샤워만한 게 없으니까.

소환에 응해 밖으로 나오자 로제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레고리님!”

“그래, 식당은 어디지?”

“네! 1층에 있는 별관 식당건물이에요.”

“가지.”

“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 건물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변에 식당으로 향하는 수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길게 서있는 줄이 보였다.

“시설이 제법 괜찮군.”

마치 현대의 뷔페를 보는 느낌. 길게 늘어져 있는 테이블마다 음식들이 놓여져 있었고 학생들은 그것을 자유롭게 먹는 모양이었다.

“네! 저기에 줄을 슨 다음 편한 자리에 앉아 먹으면 되요! 평소에는 혼자 먹었는데! 이젠 그레고리님이 함께네요!”

밥도 항상 혼자 먹었던거냐.

괜히 로제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레고리님! 여기에요!”

재빨리 줄에 선 로제가 나를 부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는 저기다.”

“……예?”

내가 가리킨 손가락의 끝.

그곳은 [VIP ROOM] 이라 적혀있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그레고리님? 거기는 저희가 못가는…… 아! 저희도 이제 13층에 살고 있죠!”

“그래.”

13층은 VIP들을 위한 공간. 우리에게 저곳으로 갈 자격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나는 대공이니까.

“저…… 엄청 감격스러워요. 제가 13층으로 가게 될 것도…… 저기서 밥을 먹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말하는 로제. 점점 마음이 짠해진다.

“익숙해져라. 내 소환사인 네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이다.”

“네!”

[VIP ROOM]

그야말로 그 이름값을 하는 장소였다.

그곳에 위치한 요리사들은 학생들에게 오더를 받고 즉석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직원들이 음식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로 가서 앉지.”

“네!”

그렇게 빈 자리에 앉아 주문을 받으러 오는 직원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언제부터 여기에 열등 엘프를 받기 시작한거죠?”

또 어떤 새끼들이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대체 이 학원은 왜 이따구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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