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5화 (5/169)

〈 5화 〉 아카벌레 ­ 5

* * *

“저기로 가서 앉지.”

“네!”

그렇게 빈 자리에 앉아 주문을 받으러 오는 직원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언제부터 여기에 열등 엘프를 받기 시작한 거죠?”

또 어떤 새끼들이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대체 이 학원은 왜 이따구야?

[소환사 아카데미아]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소환사가 소환수를 활용하는 법과 여러 지식, 학문을 갈고닦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당연하게도 전 세계에서 학생들을 받는 만큼 인종 또한 다양하다.

그리고 이 인종에는 당연하게도 인간 역시 포함되어 있다.

"언제부터 여기에 열등 엘프를 받기 시작한 거죠? 여기가 VIP룸이라는 걸 잊기라도 한 건가요. 엘프?"

마치 나는 고귀하다. 라고 표현하는 듯한 걸음걸이로 등장하는 드릴 머리의 여성과 그 뒤에 선 검은 정장의 미청년.

촤륵. 하고 부채를 펴 입가를 가린 여성은 부채 위에 떠 오른 반달 눈으로 우리를 노려 보고 있었다.

“이 학원은 인성교육 시간이 없는 건가? 틈만 나면 열등 엘프, 열등 엘프, 인성 수준이 말이 아니군.”

“어…… 매주 수요일 2교시에 예절과 도덕 시간이 있긴 한데요…….”

“로제.”

“네?”

“닥쳐라.”

“네…….”

“당신은 뭐죠?!”

여성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진다. 좋게 보는 시선은 아니었다.

“네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았는데 굳이 내가 밝혀야겠나?”

내 말을 들은 여성이 헛웃음을 삼킨다.

“하! 한 방 먹었네요.”

탁! 하고 부채를 접고는 귀족스러운 몸짓으로 몸을 숙이는 여성.

그녀는 처음 사나운 목소리와는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는 사가리 백작가에 몸을 담고 있는 파르페 사가리라고 해요. 그리고 이 옆은 제 소환수인 푸르푸르라고 해요. 72악마 중 34위이자 지옥의 백작이죠.”

자기 이름이 불리자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푸르푸르.

자기 소환수를 72악마 중 한 명이라 말하는 파르페 사가리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 기억으론 R~SR 사이에서 놀던 녀석일 텐데. 뭐, 여기선 높은 걸 수도 있지.

“자, 저희 소개는 해드렸으니 그쪽의 소개를 들어도 되겠죠?”

그리고 다시 까칠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파르페 사가리.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레고리 존스다.”

그리고 힐끔, 푸르푸르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마계의 대공이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파르페 사가리가 들고 있던 부채가 떨어졌다.

“……네?”

“귀가 안 좋은 건가? 마계의 대공이라고 했다. 이 정도 직위면 여기서 밥을 먹어도 상관없는 거겠지?”

“네? 자, 잠깐만요! 마계의 대공이요? 마, 말이 안 되잖아요! 마계의 대공이요?! 마계의 대공이 이런 열등 엘프에게 올 리가 없잖──”

“입조심해라. 내 소환사다.”

“……아, 아무튼! 당신이 대공일 리가 없잖아요! 푸르푸르! 마계의 대공중에 저런 남자가 있나요?”

휙 고개를 돌리며 푸르푸르를 향해 묻는 파르페. 푸르푸르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계에 유명하신 대공분들을 제외하고도 몇몇 대공분들이 계신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겠지. 개발사 측에서도 계속 카드를 내려면 여지를 남겨두어야 하니까.

“허나, 제 부족한 식견으로는 잘 모르겠군요.”

응? 이 자식 좀 보게?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푸르푸르.”

“예.”

“솔로몬의 악마 중 34위이며 지옥의 백작이자 26개의 군단을 지휘하는 천둥과 번개의 악마여.”

꿈틀. 하고 푸르푸르의 눈가가 움직였다.

“정녕 내 심기를 거스르려 하는가.”

그야말로 괘씸했다. 이것이 본래의 내 심정인지, 그레고리 존스의 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몹시 괘씸했다.

마계의 백작밖에 되지 않는 것이 감히 대공에게 대드는 것에 대해.

그리고 높아 봐야 SR이 끝인 녀석이 10성까지 노리는 나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심기를 거스르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단지, 처음 뵙는 분이 대공이라 칭하시기에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끝까지 나를 대공이라 인정하지 않는군.

“힘으로 증명하라. 이 말인가?”

“악마에게 그것 말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푸르푸르의 말을 들은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맞는 말이라서? 아니, 가소로워서다.

“언제든 도전해라.”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악마 아니랄까 말하는 것도 얄밉다.

나는 몸을 휙 돌리며 말했다.

“로제. 식사나 하지.”

“앗! 넷!”

각자 원하는 음식을 주방장에게 시키고 나서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로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그레고리님……. 괜찮으신 건가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싸움을 피하는 거로 보였을 수도 있어요.”

방금의 상황을 본인의 시각에서 분석한 것일까? 확실히 로제의 말대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었다.

일반 학생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너의 생각은 충분히 공감한다만 로제, 귀족이라는 것들은 조금 다르다.”

“네? 그런가요?”

[특성 : 귀족] 때문인지 이런 것에 대해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바로바로 알 수 있었다.

“싸우자고 먼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하급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급자는 결투를 받는 사람이지 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를 향한 폭력은 그야말로 결투라는 말로 포장한 폭력일 뿐이다. 그러한 폭력은 다른 이들의 반발을 불러 올 뿐이었다.

“그러니 기다리는 것이다. 녀석은 반드시 우리에게 결투를 신청해 올 테니까.”

“네?! 반드시요?!”

“녀석은 그럴 수밖에 없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며 R등급 푸르푸르에 대한 설정을 떠올렸다.

[항상 웃는 표정을 짓고 있는 푸르푸르 이지만, 그의 몸에 있는 악마의 피는 언제나 싸움을 열망한다.]

설정이 그런 걸 어떡해? 기다리면 지가 오겠지.

“음식 나왔습니다.”

서빙 직원이 테이블에 토마토 파스타와 스테이크, 레드 와인을 내려놓아 주었다.

“그런데 너는 아침부터 그렇게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거냐?”

“네! 이렇게 고급스러운 고기는 처음이예요!”

아, 얘가 좀 힘들게 살고 있었지.

“이거 먹고 식후빵까지 때리면 키야~!”

“……많이 먹어라.”

진짜 신났구나.

* * *

“푸르푸르, 아까 보았던 그 남자. 어떻게 생각하시죠?”

VIP룸에 위치한 프라이버시룸. 그 안에선 파르페 사가리와 푸르푸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솔직히 말해 위험한 남자입니다.”

푸르푸르의 말을 들은 파르페의 눈이 커진다.

“그렇다면 그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마계의 대공들은 본인의 영토에서 나오지 않는 게 대부분이라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곤 이내 입꼬리를 올리는 푸르푸르

“뭐, 붙어 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푸르푸르, 정말 그 남자와 싸울 생각인 건가요?”

“예. 그 남자, 뭔가 있는 거 같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푸르푸르는 본인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집어 들었다.

뚜욱. 뚜욱. 핏물이 떨어진다.

* * *

“시간표.”

“예! 금일 시간표는 1, 2교시 기본 교양, 3교시에 대륙역사. 4교시에 보조 마법학개론, 5교시가 소환학개론이고 6, 7교시가 대련이예요!”

“오늘은 오전 내내 비어 있군.”

“네! 맞아요! 혹시 같이 수업 들으시는──”

“어디 좀 다녀오마.”

“네?”

“볼일이 있다.”

“그런가요……. 알겠어요…….”

금방 흐물흐물해져서는 표정으로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 로제.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금방 돌아 올 테니 수업, 잘 듣고 있도록.”

“……네! 아! 학생증은 꼭 들고 다니셔야 해요! 그레고리님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니까요.”

“걱정 하지마라.”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아카데미 밖으로 나섰다.

아카데미의 밖, 이 세계에 오고 나선 처음으로 외출하는 것이었기에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조심히 다녀오십쇼. 소환수나리.”

“고맙다.”

아카데미의 경비를 뒤로하고 경비에게 들은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마차로 10분 거리에 도시가 있다고 했으니 걸어서 한 두시간은 걸릴 터,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

스킬을 활용하면 말과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도착한 소환사의 도시. 일명 [서머니아] 라고 불리는 도시였다.

“게임에서는 항공뷰로 보여 줘서 그런가. 직접 보는 거랑은 많이 다르군.”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의 도시. 수많은 마차와 인파가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미미하게 다르지만 길은 같겠지.”

[서머니아]는 그야말로 [소환사 아카데미아]의 주축이 되는 도시.

길 정도는 일반 유저라도 모두 외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큰길과 골목 그리고 작은 점포들을 지나 도착한 곳은 [파리와 염소] 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였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이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순식간에 내게 몰리는 시선.

아무 말없이 매대로 걸어가자 컵을 닦고 있던 바텐더가 입을 열었다.

“어떤 걸 찾으슈.”

“염소 젖과 압생트를 섞은 뒤 불을 붙인걸로.”

“……처음 뵙는데.”

“그것까지 네놈이 관리하나.”

“……쳇. 뒷문으로 나가서 3번째 방으로 들어가슈.”

그야말로 비밀스러운 상황의 연속. 이 정도의 암호와 보안은 필수 불가결 한 것이었다.

이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흑마법사 집단이었으니까.

바텐더의 말을 따라 뒷문으로 나간 뒤 세 번째 문으로 들어서자 검은 천막의 뒤로 인영이 보였다.

“그래, 우리 악마님은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찾아오셨나?”

마치 소리 자체를 뭉그러뜨린 듯한 목소리. 신비스럽기 까지 한 목소리였다.

전부 어설픈 연극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늙은이는 무슨, 지랄말고 이 거적때기나 치워라. 파이몬.”

“파이몬? 호오, 내 정체를 알고 왔다 이 말이신가?”

앞을 가로막은 천막을 손으로 걷어 내자 은발의 꼬맹이가 곰팡대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이런, 이게 누구신가. 그레고리 존스! 나의 오래된 친우이자 바알제붑과 함께 벌레를 다스리는, 모든 지하를 다스리는 마계의 대공님이 아니신가! 음, 그대라면 나와 마주 앉을 자격은 충분하지.”

앉으시게.

라고 말하는 파이몬 나는 그녀의 앞에 앉아 뚫어지게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똑같다. 역시 똑같다. 게임 속에서도 꽤 희귀하고 주류덱에 쓸 수 있다는 SSR등급의 카드. [파이몬]과 똑같이 생겼다.

일러스트로만 보던 사람이 실제로 나타나면 이런 외형이라니, 참으로 신비로웠다.

“그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어떠신가? 그렇게 강렬한 눈동자로 바라보면 이 노구도 부끄러우이.”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순간적으로 부끄러웠지만 그레고리 존스답게 대답을 하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하하하! 너무 차갑게 그리 말하지 마시게, 자. 술이라도 하시겠는가? 마침 귀한 손님이 올 때 내놓으려 한 게 있었지.”

파이몬이 손가락을 튕기자 벽에 진열 되어 있던 술과 잔이 날아와 내 앞에 놓여졌다.

쪼르르르. 소리를 내며 잔에 술이 차오르고. 나는 짧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목을 축였다.

“음? 귀한 거군.”

이름까지는 모르겠지만 이 혀가 반응하는 걸로 보아 꽤 고급품인 듯싶었다.

“아아, 이곳저곳에 있는 흑마법사들이 대가로써 건넨 것이지.”

그러곤 자기도 한 모금 마시며 나를 바라본다.

자, 무슨 일로 온 거냐. 라는 눈으로.

“마계로 돌아가려고 한다. 도움을 줬으면 좋겠군.”

“응?”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파이몬의 눈이 순간 흐리멍덩해졌다.

마치, ‘이 새끼가 방금 뭐라 한 거지?’ 라는 표정이다.

“다시 한번 말해야 알아듣겠나. 마계에 들를일이 있어 너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다.”

탁! 하고 술잔이 테이블에 놓인다.

“자, 잠깐만 기다리시게. 자네, 혹시 지금 스스로 마계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내게 말하는 겐가?”

“그렇다.”

“왜지?”

“엘프에게 소환당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 엘프가 용사의 후손이다.”

“말이 되는군.”

대체 왜 대화가 이따위인 거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현재 힘에 제약이 생겼고 스스로 마계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그래? 흐으음? 그렇단 말이지…….”

오른손에 잔을 들고 있던 파이몬이 왼손가락을 테이블에 탁탁 튕기기 시작했다.

일러스트에 그려진 장면. 파이몬이 손익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음. 좋네, 단 조건이 있다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조건이 뭐지?”

내 말을 들은 파이몬이 씨익. 웃었다.

“한 번.”

그렇게 운을 땐 파이몬이 계속해서 말했다.

“단 한 번만 내 부탁을 들어 주게. 어떤가. 이 정도면 대가로서 알맞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파이몬의 얼굴은 사악함과 흥분, 그리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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