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아카벌레 8
* * *
[스킬 : 바퀴벌레 킥]
몸의 체중과 힘, 그리고 마력을 발 끝에 덧씌워 상대를 처리하는 피니시 기술.
그것이 바로 내 머릿속에 들어온 이 스킬의 효과였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본인이 악당이라 인식한 상대에게 추가적으로 데미지가 들어간다는 효과.
덕분일까, 푸르푸르가 쌓아 올린 스톤 월은 순식간에 흙먼지로 산화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바퀴벌레 킥이다. 너 같은 악당에게 걸맞은 기술이지."
발이 명치에 꽂힌 채 그대로 땅에 박혀버린 푸르푸르. 나는 기절한 녀석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린다.
그 뒤쪽, 눈물이 맺힌 사가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벌벌 떨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괴, 괴물!!!"
푸르푸르를 손에 쥔 채, 천천히 사가리를 향해 걸어간다.
"히익! 크으으으윽! 오지마! 오지마아!!!!!!"
털썩. 하고 푸르푸르를 녀석의 앞에 내려놓는다. 순간 벙찌는 표정을 짓는 사가라.
나는 그런 사가라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있어선 너희들이 더 괴물로 보인다."
"괘, 괜찮으세요?! 그레고리님!"
입에 파이프를 꼬나물고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로제의 모습.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움찔하고 얼굴이 굳은 로제가 이내 웃는다.
"아, 그, 그게! 힘을 좀 썼다고 몸이 안 좋아져서요! 그나저나 저 저 싸가… 파르페씨는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뭘 어떻게 할 것도 없다."
힐끔. 시선을 돌리니 교관이 우리에게로 다가와 푸르푸르의 상태를 살폈다.
"음, 확실히 끝난 거 같긴 하군. 승자는 로제 폰 유글리아와 소환수 그레고리 존스다."
승리했다는 말을 듣고 변신을 풀었다.
악마 푸르푸르.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로 버거울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게임 속의 능력만을 생각하고 전투력을 예상한 내 잘못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것 역시 깨달았다.
역시, 이곳은 현실이다.
"교관. 무리한 대련으로 인해 소환사가 힘들어하는 것 같다. 이후 대련은 관전하지 않고 하교해도 되겠지?"
"그렇게 하도록."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곤 로제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멋쩍은 듯 파이프만 뻐끔뻐끔 물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기게 느껴졌다.
"돌아가자."
"네! 아, 잠시만요!"
갑자기 뒤돌아 대련장으로 뛰어나가는 로제.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봤어? 자기가 이겼다고 파르페씨 앞에서 담배 연기를 내뱉고 있던 거…….'
'저런 소환수랑 같이 살고 있다고? 정체가 뭐야?'
'저거 염색한 거라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 엘프가 맞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싸가지 없는 년이라니…….'
아무래도 방금의 대련 때문에 로제에게 안 좋은 소문이 생긴 모양이었다.
뭐, 멍청이 취급받는 것보다야 백배는 나을 것 같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제가 달려와 내게 지팡이를 보여주었다.
"이걸 챙겨야 했거든요. 헤헤.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냥 지팡이가 됐지만요……."
울상이 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로제는 지팡이를 휙휙 휘둘렀다.
툭, 하고 지팡이가 부러진다.
“내 지팡이가아아……….”
솔직히 내 소환사가 저런 저급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더 좋은 걸 구해주마. 우선 나 먼저 쉬마.”
“아, 네!”
엄청나게 지쳤다.
[스킬 : 바퀴벌레 킥] 때문인지, 아까의 격렬한 전투 때문인지 몸에 탈력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소환사의 곁에 있을 때만 이동할 수 있는 [심상 공간]
아직까지도 그리움이 느껴지는 방 안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컴퓨터 의자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마음만 같아선 침대에 쓰러져 자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 세계는 그렇게 친절한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에는 재앙이 있고, 내 소환사를 노리는 무리들이 있으니까.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내 힘을 기르고 로제의 힘을 길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아라크네에게 받은 계승석이었다.
“흠, 이렇게 변하나.”
아라크네가 건네준 계승석은 USB 모양을 바뀌어 있었다.
아무래도 공간에 의해 형태가 변화한 듯싶었다.
컴퓨터에 USB를 꽂자 폴더 하나가 나왔다.
클릭.
안에 있는 것은 단 하나의 파일이었다.
[소환사 아카데미아 외전(그레고리 존스)]
“하, 이런 식으로 보여준다고?”
호승심이 일었다.
게이머인 내게 이런 방식으로 과거를 알려주겠다는 건가.
“좋아. 어울려주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파일을 실행시켰다.
* * *
침대에 쓰러졌다.
“……변신.”
방이 환하게 밝혀지며 몸이 바퀴폼으로 변한다.
역시, 이쪽 몸이 더욱 편하게 느껴졌다.
“아, 다음부터는 바퀴폼으로 할까.”
아무래도 효율도 더 올라갈 것 같았다. 바퀴폼은 사용할 수 있는 팔이 한 쌍이나 더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내 과거를 모두 알 수는 없었다.
이 빌어먹을 게임에 챕터제한이라는 게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해봐야 미연시 같은 게임이면서 챕터 제한은 무슨…….”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챕터가 풀리는 시스템이겠지.
아라크네가 따로 제한을 걸은 것 같지는 않고 세계적인 제한이거나 이 몸이 스스로 제한을 걸은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략적인 건 알았네.”
[그레고리 존스]
지옥의 대공이자 지하의 왕으로 불리는 악마.
파리의 왕이자 악마들의 왕 바알제붑과 라이벌이며 동시에 친우이기도 하다.
그레고리가 다스리는 영토는 마계의 남쪽, 도시 하나 정도의 영토로 그리 크지 않은 영토다.
허나, 그 누구보다도 많은 영토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하의 왕’
바알의 영토를 제외한 마계의 모든 지하가 내 영토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난 부자였어!”
내 허락 없이는 광산도, 지하공사도 할 수 없다는 뜻.
내 영토에 갔을 때 보았던 재물들은 모두 그런 것들에 관련한 대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 정보도 꽤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실비가 내 영토를 관리하는 이유였다.
“원래부터 귀찮은 걸 싫어하는 악마였을 줄이야.”
이 몸은 과거부터 무언가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의 바로 아래 있는 아라크네에게 모든 걸 떠맡겼다는 모양.
그래서 나를 아는 악마는 그리 많지 않은 거였나.
“원래 관심병이 있던 것도 아니고, 유명해질 이유는 없겠지.”
그저 이렇게 갑질이나 하며 뜯어먹을 게 있을 때마다 뜯어먹는 게 좋았다.
시간을 바라보니 어느덧 새벽 5시 정도가 되었다.
이 몸은 굳이 수면을 취할 필요가 없는 몸 이었지만…… 역시 휴식에는 수면이 최고였기에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아주, 아주 조금만…….
띵동! 띵동! 하는 벨소리가 들려온다.
바퀴의 상태로 벌떡 일어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전 7시 30분. 2시간 30분 정도밖에 수면을 취한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지.”
TV를 켜자 내게 말을 거는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그레고리님? 어…… 오늘 아침 식사, 같이 가시나요?]
그 모습을 본 나는 인터폰으로 걸어가 말했다.
"그래, 곧 가지."
그리고 변신. 변신만 할 뿐인데 쾌적하기 그지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로제의 곁으로 이동한다.
"좋은 아침이에요! 편히 쉬셨나요?"
"그래, 너도 괜찮은 거 같아 다행이군."
"헤헤, 다 그레고리님 덕분이죠."
힐끔, 로제의 뒤를 바라본다. 평소 메고 다니던 지팡이가 보이지 않았다.
"지팡이, 없어도 되나?"
"네! 다행히 오늘은 대련 수업이 없거든요."
“다행이군.”
지팡이는 사용자의 마력 운용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니 대련에선 반드시 필요했다.
예시를 들자면 총알을 손으로 던지는 것과 총으로 쏘는 것의 차이 정도일까.
물론 이 세계는 손으로 총알을 던져도 총보다 더 빠르게 날릴 수 있는 초인들이 있는 세계였지만.
음, 나중에 로제도 그 정도로 만들어 놓을까.
"저……. 그레고리님? 표정이 왠지 무서운데요."
“별 것 아니다. 지팡이는 오늘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에 가지러 가도록 하지.”
”네? 오늘이요? 그…… 지팡이는 가격이 꽤 되는데…….“
”걱정하지 마라. 친구 녀석에게 썩어날 정도로 많은 게 지팡이니까.“
물론 그 친구는 파이몬을 뜻하는 거였다. 전사인 주제에 정체를 숨기겠다고 마법사 노릇을 하는 녀석이니…… 쓸만한 걸 꽤나 가지고 있을 터였다.
“친구분이요? 그레고리님, 여기에 친구분도 계셨나요?”
“본인이 친구라고 했으니 친구겠지.”
이건 먼저 날 친구라고 부른 파이몬의 잘못이다.
자기가 먼저 친구라고 했으니 지팡이 정도야 잘 챙겨주겠지.
친구가 그런 거잖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그레고리님도 친구가 있어서!”
……무슨 의미지.
“어제도 그러면 친구분을 만나 뵈러 간 거였겠네요!”
“그렇지.”
이제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로제. 이 녀석은 대체 내가 어딜 다녀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말이죠…… 어제 저녁을 먹는데 서머니아에 인간의 정신을 갉아먹는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음?
“존재만으로도 인간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미치게 만드는 괴물이었다고 하는데…… 친구를 만나러 가신 그레고리님이 그러셨을 리는 없으니까요!”
아니
“다행이에요!”
그거 나 맞는데.
“크흠, 밥이나 먹으러 가지.”
“네!”
어떻게 저 얼굴을 보고 진실을 말해.
내가 그 괴물이라고…….
* * *
식사 후 식당의 뒤편.
식후로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로제가 지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로제.”
“그게 말이죠……. 헤헤, 혹시 오늘도 자리를 비우시나요?”
로제의 말을 듣고 오늘 내가 할 일이 있었나 떠올렸다.
[소환수 아카데미아 외전]은 챕터가 막혀 할 수도 없고, 심상 세계로 들어가봤자 할 거라곤 게임밖에 없었다.
파이몬을 만나러 가는 건 방과 후 이고 말이야.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거 같군.”
“정말요?!”
환하게 웃으며 되묻는 로제.
대체 뭐가 그렇게 기쁜 거지?
“그래. 그래서, 그건 왜 묻는 거냐.”
“그게 말이죠. 혹시 오늘 저와 같이 수업을 들어주실 수 없나 해서요.”
“수업?”
“네! 아카데미 수업이요!”
아카데미의 수업인가. 확실히, 게임에서도 대충 흘러가듯 넘어간 게 아카데미의 수업 시간이었다.
대부분 [이 몬스터는……………]이런 식으로 전개됐었지.
뭐, 들어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기도 했고.
“좋다.”
“정말요?! 야호옥! 콜록콜록!”
파이프를 물고 있던 로제가 그렇게 소리를 치더니 연기를 내뿜으며 기침하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로제. 그럼에도 로제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수업을 같이 듣는 게 그렇게 좋은 거냐.”
“네! 사실 소환수와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분들이 너무 부러웠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이내 파이프 담배의 약초를 재떨이에 털어낸 로제는 파이프를 청소하고는 홀스터에 넣었다.
“1교시는 몬스터학이에요! 자! 가요!”
이게 그렇게 신이날 일인가?
나는 그렇게 로제의 등쌀에 떠밀려 교실에 도착했다.
로제와 내가 동시에 교실에 들어서자 수많은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소환수를 소환한 지 3일도 안 된, 지금까지 열등 엘프 소리를 듣던 로제가 나와 함께 상위권 학생들을 줄줄이 꺾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와 로제는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첫날 앉았던 자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소리가 울리며 교사로 보이는 인간이 들어와 수업을 시작했다.
키는 약 168cm 정도. 길게 기른 주황색 머리를 뒤로 묶은 여성이었다.
교사는 들고 온 출석부를 교탁에 내려놓고는 한 명, 한 명,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나를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교사의 눈이 커졌다.
“그레고리 존스? 오늘은 수업에 나왔군. 평소 수업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흥미가 생겨서.”
“……그렇군. 너, 내 이름은 알고 있나?”
“모른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로제가 작게 속삭였다.
“큐즈. 큐즈 선생님이에요.”
“큐즈. 라는군.”
내 대답을 들은 큐즈가 피식 웃는다.
“고맙다. 로제. 그럼 출석을 계속 부르지.”
그렇게 다른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 때, 로제가 다시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였다.
“큐즈 교관님은 과거 이름을 날렸던 엄청난 전사세요…! 오늘 1교시인 몬스터학과 체술을 담당하고 계시고요.”
그런가.
확실히 내가 보아도 꽤 전투를 치른 전사처럼 보였다.
지금은 긴 팔의 셔츠를 입어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손목이나 목, 머리카락으로 가린 부분에 크고 작은 흉터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던 것이다.
“그렇군.”
“거기 두 사람. 잡담은 그만하지. 수업 시작했다.”
“아, 넷! 죄송합니다!”
큐즈의 지적을 들은 우리는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업은 몬스터의 종류, 약점에 관한 내용들.
확실히 뉴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내게는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나 다름없어서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따분한 시간을 20분가량 보냈을까.
문득 큐즈의 시선이 내게 고정돼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레고리 존스.”
“왜 그러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니, 집중했다.”
대놓고 집중 안 했다고 할 수는 없어 일단 거짓말을 했다.
“집중했다고? 좋다. 그렇다면 질문 한 가지를 하지. 집중하고 있었다면 대답할 수 있을 질문을 말이야.”
대놓고 집중하지 않은 너는 절대 모를 거다. 라는 듯한 눈빛. 그 모습에 호승심이 생겼다.
“해봐라.”
내 대답을 들은 큐즈가 씨익 웃는다.
“좋다. 방금 전 내가 화약 슬라임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화약 슬라임의 특징과 약점, 안전하게 사냥하는 방법은 뭐가 있지?”
질문을 들은 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화약 슬라임 말인가?”
“그래, 화약 슬라임.”
아무래도 내가 멋쩍어서 웃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내가 잡은 화약 슬라임만 모아도 세계대전을 일으킬 텐데.
* * *